당시에 평화가 오래지속돼서 국방이 문란해진 점이 큽니다.
아직도 덜떨어진 지식과 사고수준으로 식민사관에 세뇌된 사람들이 꽤 있는데,
사실 한국 역사는 전란의 피해가 적은 역사입니다. 유럽이 전쟁하는 거만 봐도 이런 개소리를 못 하는데 말이죠.
국방이 문란해져서 서류상으로 존재한다고는 하나 실제 북방에서 여진 상대하던 정예군 빼고는 방어구나 무장도
제대로 관리되기는 커녕 없는 경우도 흔했는데 훈련이라고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고 봐야죠.
임란 대비한다고 백성들 동원할 때, 반발만 봐도 당시에 얼마나 평화에 쩔어서 국방이 잘 안 돌아가고 있었던 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웃기는 걸 이 때 기록을 기준으로 조선은 항상 그랬다는 개소리를 시전하는 전문가랍시는 사람이 많다는 거죠.
한참 전성기 군의 상황은 과장과 가짜라고 폄훼하면서 말이죠. 근거라고 대리고 오는 게 흔한 게 외국 특히 유럽의 상황인데, 아주 우스운 것이 국가체제 자체도 다르고 역사문화적 맥락도 다른데 무분별하게 유럽역사가 이랬으니 한국은 이래야만 해라고 개소리들을 하죠. 그러면서 이상하게 일본은 과대평가하고 말이죠.
실제로 실록에 30만명을 한번에 모아 놓고 군사훈련한 기록도 있는데 이정도면 세계적으로도 보기힘든 엄청난 군사력입니다. 임란 때야 방어구 미비나 훈련미비 같은 건 기록상으로나 맥락상으로 이해되는 부분인데, 한창 제대로 굴러갈 때도 임란 때 같았다고 폄훼를 하는 것 보면 웃기죠. 댓글 같은데 작은 나라 드립치는 거 보면 중국애들 아닌가 싶을 정도로 터무니 없는 인식인데, 문제는 그런 인간들이 아직도 많고, 터무니없는 식민사관이 횡행한다는 거죠.
과거에도 작은 국가였던 적도 없지만, 지금도 인구나 경제나 문화수준이 큰 국가에 속하지 작은 국가라는 말을 하는 건 우스운 일인데... 이런 말이 나도는 건 순전히 식민사관이 아직도 주류에서 활개를 친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영토라면, 과거의 지도만 봐도 일본은 남쪽의 작은 섬으로 그렸고, 중국과 비교해도 현실보다 꽤나 크게 그려서 당시의 국력에 대한 인식수준을 반영해 줍니다. 중국이 과거 세계최강국이었다는 건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고 그들이 침략을 당할 수 있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강국으로 직접적인 언급하는 점만 봐도, 현대인이 과거역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물론 이게 현재까지 작은 국가니 하는 우스운 소리를 짓거리는 건 거의 병적이라 할만 합니다.
그리고 영토라면 한반도가 남이나 동으로 더 큰 육지로 이어져 있지 않고 더 가봤자. 섬인 일본인데, 바다 건너 원정은 쉬운게 아니죠. 나폴레옹이나 나치독일도 영국을 먹진 못했죠. 물론 신라시대 신라구 같이 약탈 전쟁으로 피를 말려버리는 식이었다면 좋겠지만, 딱히 여진이나 왜구 같이 목숨걸고 약탈전쟁할 이유가 없었고 말이죠.
북으로 라면 실제로 몇 번 조지기도 했고, 먹자고 하면 먹을 수 있는 영토였지만 조선이란 국가가 워낙 정부가 세금을 적게 걷고 복지는 빠방해서 농업생산력도 후진 여진 영토와 인민을 흡수해서 마냥 국력이 좋아진다기 보단 적자가 나는 거였죠. 여진이나 왜인이 조선에 귀화하고 싶어서 괜히 안달난 게 아닙니다. 세종 때, 4군 6진도 신하들은 손해난다고 버리자고 하는 거 세종이 우겨서 확보한 영토입니다. 실제 전쟁 범위에 비해 4군 6진은 정말 작은 영토입니다.
여튼 아직도 주류인식은 혈액형 구성에서 미미한 차이가 난다고 그게 일본인이 우월하고 조선인이 열등하다는 우스운 주장도 먹히던 시절의 사고수준의 식민사관이 지배합니다. 확증편향이죠. 자기주장에 맞는 것만 선택적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개소리하는...
일단 세조는 쿠데타 집권 임금이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나는 지난 임금이나 내가 폐위한 임금(단종)보다 뛰어나다는 인상을 줘야 하거든요.
그래서 3보 1정(3명의 보인이 1명의 무장정남을 지원함)을 2보 1정으로 고치고 중세보병전의 탱커라고 할 수 있는 팽배수의 인원을 줄이죠. 즉 세금을 줄이고 그 만큼의 예산 부족분은 국방비를 줄여서 조정을 꾸린 겁니다.
이렇게 되서 바로 여진족이나 외적의 공격을 받아 큰 패배라도 당하면 바로 국방전략을 교정할 텐데 문제는 운 좋게도 이시애의 난이나 여진족 이만주 공격이 연이어 성공해 버립니다.
이만주 토벌은 이만주가 명나라와 자웅을 겨루기 위해 전력을 산해관으로 집중한 틈을 탄
맥빠진 기습이었는 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성공하여 이만주를 직접 죽이는 제일 큰 공을 명나라군이 아닌 조선군이 거두게 되죠.
이때부터 전쟁의 승패는 하늘이 정하신다는 정줄놓은 군방정책이 이어집니다.
솔직히 탱커 팽배수의 방어가 있어야 후방의 궁수의 사격이 안정되게 이루어져 적의 전력을 깍을 수가 있는 건데 조선수뇌부는 궁수의 사격이 우리의 장점이니 무장보병 팽배수를 줄이고 궁수를 늘린다는 사격력만 비대한 괴상한 군대를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니 사격에 겁을 먹은 적들은 손쉽게 이기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돌파를 시도하는 적을 만나면 이상하리만치 쉽게 와해되는 군대가 되지요.
장점이 있다면 그 장점을 강화한다는 논리도 맞지만 군은 모든 상황을 견딜수 있는 균형전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상식을 당시의 문관들은 경시했던 거고 그 시작은 세조때가 맞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