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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04 11:41
[한국사] 병자호란에 동원된 청나라군 병력규모...!!!
 글쓴이 : 촐라롱콘
조회 : 2,298  

병자호란에서 최근까지 적어도 10만 이상의 청나라군이 동원되었다는 기존의 통념이


당시 조선-중국(만주-청나라)측 사료들의 교차분석 등을 통해 이제 적어도 주류사학계에서만큼은


병자호란 당시 조선침공에 동원된 청나라군 총 병력규모를 5~6만명 선으로 조정하고 있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개인적으로 그동안 만주8기 가운데 7기가 동원되고 더하여 몽골팔기군-요동출신 한족병들의


상당수가 동원되고... 더구나 청태종이 친정하였다는 점 등을 감안하여 당연히 막연히 10만은 웃돌 것으로


그동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동안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첫번째 청태종 시기에는 명나라와의 오랜 전쟁과, 17세기 초에 동북아시아 전체에 영향을 미친


 이상기후와 대기근의 영향으로 인한 생산력 감소에 따른 아사-병사자들의 급증으로 만주족인구 자체가


정체되거나 감소되었고 이에 따른 영향으로 만주-몽골팔기 니루의 정원이 기존의 300명 내외에서 200여명


규모로 축소되었다는 부분이 첫 번째 이유이고.....


또한 그동안 결정적으로 간과했던 부분이 예를 들어 8기가운데 7기가 조선침공에 동원되었다면


그동안 팔기군 가운데 7/8의 병력이 동원된 것으로 짐작하기 마련인데....


문제는 팔기의 병력숫자란 어디까지나 최대 동원가능한 숫자이고,


물론 이것이 방어전일 경우에는 편제상 숫자와 비슷한 동원이 가능하지만....


병자호란과 같은 대외원정일 경우에는 1개 니루에서 보통 최대 60명 정도가 동원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라는 부분입니다.


대외원정일 경우 적용되는 1개 니루당 60명선을 적용한다면 1기에 니루가 30개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대략 1기당 최대 2,000명 미만에 해당하며.... 실제 병자호란에 동원된 만주팔기+몽골팔기의 총병력 규모가


2만명 내외 규모이며....이를 세분하면 만주팔기가 대략 1만 3~4천에 만주팔기의 절반규모인


몽골팔기가 6~7천 규모라는 것을 추산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병자호란 이전 시기에 정벌하거나 복속했던 내몽골지역의 차하르부를 비롯한 여러 몽골부족들에서


동원된 외번몽골군의 규모가 대략 1만2천명 규모였으며....


요동출신 한족병들이 1만여명 규모이고, 모문룡휘하의 명나라군 출신으로 후금시기에 투항한 


공유덕,경중명,상가희 등의 한족3왕 휘하의 명나라군 출신 한족병들이 수 천명 규모로 추산되니


여기까지 더해도 대략 총병력이 4만 5천 내외 규모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청태종 홍타이치의 가노병 2~3천명에다가 만주팔기-몽골팔기군에 딸린 보조병들이


(노예신분에 가까우며, 팔기전투병들의 보조전력으로 팔기군을 따라 물자수송, 포로획득과 약탈에 참여하고


병영내의 굳은 일을 담당하며.... 유사시에는 전투에도 동원되었습니다. 후금-청나라 내에서 일반적으로는


팔기병력 대비 1:1 규모에 달했지만, 대외원정일 경우에는 팔기병력 대비 절반 규모가 동원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병자호란에 동원된 팔기병력이 2만이라면 대략 1만명 규모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병자호란에는 이들 보조병들의 규모를 대략 1만여 명 규모로 추정하니....


이들까지 더하면 병자호란에 동원된 청나라군 총병력규모가 대략 5만 5천~6만명 규모가 되는 것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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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스 18-10-04 14:03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군은 보급 같은건 생각 안하고 바로 수도로 같는데 이때 인조가 피난을 빨리 갔다면 장기전으로 가서 청나라군이 보급 부족으로 패배할수도 있었는데
     
군주 18-10-04 15:30
 
당시 만주 상황이 정말 안 좋았죠. 조선이 잘 버텨줬으면 인조가 그런 수모를 당하지도, 명나라가 안 망할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촐라롱콘 18-10-05 01:37
 
병자호란에 동원된 청나라군은 병사 개개인이 일반적으로 15일~20일치 식량을 휴대하고
출발했습니다. 심양출발을 기준으로 한다면 15일치 식량은 심양에서 출발해서
조선의 한양과 경기일원에 이르기까지 겨우 견딜만한 양입니다.

심양보다 더욱 원거리인 내몽골 일대에서 동원된 몽골부족들의 경우 20일치 식량을
휴대했더라도 한양에 이르기까지는 턱없이 부족하여... 외번몽골병들의 경우 조선의
평안도 일대의 서북지역에서 대대적인 약탈을 행한 다음 남하를 이어나가기도 했습니다.

다시말해서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군은 조선에서 지속적으로 전쟁을 수행해나가기 위해서는
조선에서의 현지조달에 대부분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물론 주로 보병으로 구성된 한족병들과 팔기군의 보조병들이 청나라 본국에서 조선원정군이
필요로 하는 식량조달의 일부를 수행하기도 했지만.... 당시 조선에서와 마찬가지로 청나라에서도
우역이 유행하여 수송을 담당하는 소들이 대거 폐사하는 바람에 보급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만약 조선의 청야전술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청나라군도 커다란 곤경에 처했을 것이 확실시
되었겠지만....청나라군의 전광석화와 같은 남침속도로 인해 청야전술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던
차원을 넘어... 한양과 남한산성 주변을 비롯하여 여러 고을에 비축해둔 식량이 고스란히 청나라군에게
넘어가는 바람에... 적어도 조선원정 기간 동안에 청나라군이 식량보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또한 정묘호란의 경우처럼 남침경로의 상당수 고을들이 크고작은 저항을 했던 경우와는 달리
병자호란 당시는 서북지역을 비롯한 남침경로상의 여러 고을들이 저항을 포기하고 투항하거나
투항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읍을 비워두고 남침경로상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산성에
고립된 관계로 인해... 미처 옮기지 못한 대읍에 보관된 식량들 또한 고스란히 청나라군에게
넘어갔습니다.

더군다가 이전까지 10만을 웃돌 것이라는 청나라군의 규모가 절반 수준인 5~6만 규모로
파악됨에 따라 식량부족에 대한 부담도 상당히 경감되었을 것입니다.

인조의 항복으로 공식적인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청나라군은 수 십만에 달하는 조선포로들까지
비록 충분치는 않았겠지만 목숨을 연명시킬 정도로는 식량배급을 이어나가면서 끌고갔으니
(1월 30일 인조가 항복한 이후 조선포로들 대부분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경내를 벗어난 시점이
3월까지 내내 이어졌으니...)

청나라군의 조선에서의 현지조달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된 셈입니다.
포미 18-10-04 18:46
 
기본적으로 청이 당시 조선을 친 건 일생일대의 도박이었습니다.
실패하면 명의 군대까지가 아니어도 살 수 없던 생산력 고갈의 고비였습니다.
가난한서민 18-10-05 02:42
 
한 나라를 정벌하는데 5~6만은 그냥 터무니 없습니다.
조선 사신이 청으로 가고있는데 이미 압록강을 건너고 있었고 조선의 성들은 저항도 못해보고
다 함락되었고 남한산성만이 15일인가 버틴게 다입니다.
청 황제 홍타이지가 직접 왕과,조선의 신하,조선의 백성 3분류에게 말을 전달했고
왕에게 "정묘년의 치욕을 갚겠다면서 어찌 산성에 숨어 있느냐? 백성이 도탄에 빠졌는데 거기 있으면 뭐가 되느냐?" 이리 협박하고 남한산성을 구원하러 간 조선의 수만군도 다 패퇴시킵니다.
아무리 조선이 태평성대와 임진왜란으로 페허가 되었어도 5~6만으로 다 뚫어버릴수는 없습니다.
70만의 조선인 노예를 데려가는건 더욱 힘들고요. 남자는 노예, 여자는 성노리게로 끌려갔죠
청은 그 당시에 패전을 경험한적이 없어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조선쯤이야 일도 아니였구요
명장 원숭환 이후 청나라는 오직 산해관만을 못 넘었지 이미 성 밖 요령을 다 평정하고 청에게 몽골족은 박살났고 명도 계속 산해관에 갇혀 수비하고 명나라 본토는 반란에 망하고 있었습니다. 청은 적수가 없었고 조선을 정벌하는건 일도 아니였는데 5~6만은 아닐겁니다. 오죽하면 황제가 되는데 몽골,한족,만주족 3족에게 인정받죠
조선인들만이 "오랑캐가 무슨 황제야" 라는 식으로 무시하고 뒤에서 명을 지원하고 그러다가 병자호란 터지죠
위구르 18-10-06 01:44
 
능양군 이 암군이 선조만큼 도망이라도 쳤으면 하는 가정은 쓸모 없을듯 하지만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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