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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05 13:54
[한국사] 썩어도 준치라고 몽골족들의 전투력은 병자호란에서도....!!!
 글쓴이 : 촐라롱콘
조회 : 5,861  

화약병기가 냉병기를 대체해가는 17세기 무렵


또한 비록 몽골-원나라 시기의 전성기에 비하면 축소되고 쇠퇴해가는 몽골족들의 위상이기는 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병자호란에서도 몽골족들의 전투력은 어느정도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네요~~~


병자호란에 참전한 청나라군 전체병력 가운데 팔기에 소속된 내번몽골족이 수 천명, 외번몽골족이


1만 2천 가량으로 얼추잡아도 몽골계들이 전체 청나라군 가운데 1/3 이상의 병력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세부적인 전투에서도 몽골족들의 활약을 보자면....첫번째 부원수 신경원이 방어하던 영변 철옹산성 전투에서.....


신경원이 수성전에서는 청나라군의 공세를 며칠동안 잘 막아냈지만


청나라군이 물러난 이후, 이들을 추격하겠다고 신경원 이하 기보병 1,000명 가량이 출성하였다가


인근에 매복중이던 몽골군 수 백명에게 대부분의 병력이 전멸하거나 패주 분산되고, 신경원은 포로로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강화도가 함락되고 남한산성에서 농성중이던 인조가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의사를 전해오던 시기에


이전과 같은 철통같은 남한산성 포위작전의 필요성이 경감된 분위기속에서....청태종은 포위병력 가운데


외번몽골부족 출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략 4,000명 가량을 차출하여 경기북부와 강원도,


함경도를 경유하여 두만강을 건너 혹시 존재할지도 모를 동해여진의 잔류 부족민들을 복속시키고


인축을 포획하라는 임무를 내리게 됩니다.


이들이 청태종의 명을 받고 북상하다가 김화-철원일대에서 조우한 부대가 때마침 남하하던


평안감사 홍명구와 평안병사 유림이 이끌던 평안도출신의 5천 병력이었습니다.


홍명구와 유림은 분산해서 포진하다가 홍명구의 2,000병력은 홍명구 이하 대부분의 병력이 전사하였고


유림의 병력은 홍명구군을 전멸시키고 곧바로 들이닥친 몽골계 청나라군의 1차공세를 막아낸 뒤 


야음을 틈타 청나라군 몰래 전장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를 김화전투라 하여 병자호란에서 승리했던 전투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하지만....


정작 몽골계 청나라군들에게 큰 타격은 입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 역사서의 표현대로 김화전투에서 몽골계 청나라군 수 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이후에 이들이 강원도북부-함경도-간도지역에 이르기까지 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김화전투가 벌어지던 시기만 해도 병자호란의 막바지였는데.... 이들 몽골계 청나라군들은 이후 강원도 북부에서


분탕질을 치며 북상하다가 강원도-함경도 경계 즈음인 철령-안변 일대에서.... 전쟁이 끝나 함경도로


복귀하던 남병사 서우신이 이끄는 7천명 가량의 함경도군과 조우하여 교전을 벌이게 됩니다.  


철령전투에서는 함경도군이 몽골계 청나라군에게 다소의 타격을 가했지만.....


이들을 추격하다가 안변 일대에서 몽골계 청나라군의 매복에 걸려 전체 병력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3~4천명의 병사들이 전사하고 나머지는 패주분산하게 됩니다.


철령-안변 전투가 벌어지던 시기는 이미 인조가 청태종에게 항복한 이후 시기였지만


북상하던 이들 몽골계 청나라군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 계속적으로 약탈-살상행위를


계속했던 것입니다. 결국 함경감사 민성휘가 몽골계 청나라군 진영을 방문하여 전쟁이 종식되었음을


확인하고서야 몽골계들의 약탈-살상-교전행위는 중지되고 안변-함흥 이북의 함경도지역을 북상하는


동안에는 별다른 만행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이들 몽골계들은 두만강을 건너 동해여진의 잔여세력들이 남아있다고 추정되는 간도지역을 수색한 뒤에


해산하여 몽골계들은 내몽골 일대의 그들 고향으로... 소수의 만주족 팔기군들은 심양으로 복귀하여


청태종에게 복명하게 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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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 18-10-05 16:00
   
잘 봤습니다. 확실히 몽골계통이랑 퉁구스계통 민족들이 싸움은 잘했던 것 같아요.
막걸리한잔 18-10-05 20:05
   
병자호란이 손쉽게 조선 깊숙히 들어올수 있었던 배경 설명은 왜 뺍니까???
안그래도 태평성대를 이루면서 경제에만 치중했던 조선이 임진왜란을 맞이해서 그나마 있던 작은 군대가 임진왜란으로 조선은 거의 모든 군 전력을 소실하게 되고..나라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겨우 북방의 변경을 수비하는 병력만 남아있던 상황이었는데..
그 북방의 변경을 수비하던 이괄이 조정과의 마찰로 인해서 이괄의 난을 벌이다 실패해서 그 변경을 지키던 병력들이 후금으로 투항해버려서 거의 허수아비가 된 꼴이 되었던게 조선인데..
이런 상황에서 이괄이 후금을 설득해서 조선을 치자고 꼬드기고 결국 이괄의 복수는 후금으로 시작됩니다.
그런 연유로 조선의 약한곳만을 길안내한것도 이괄이고..
그렇게 정묘호란이 일어났지만 의병이 일어나서 오래 있지 못하고 뒤돌아 갔죠..
즉 아무리 군이 없다지만 민간인들이 결속하게 되면 후금도 상대하기 버거운게 조선이었다는겁니다.
병자호란도 마찬가지..
곧이어 바로 병자호란이 일어났지만 속전속결로 항복만 받아내고 되돌아가죠..
그 이유는 마찬가지입니다.
병력도 없고 폐허가 된 나라를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고 속전속결로 치고 빠지는게 뭐 대단하다고..
     
촐라롱콘 18-10-05 21:04
   
1.[[임진왜란으로 조선은 거의 모든 군 전력을 소실하게 되고..나라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겨우 북방의 변경을 수비하는 병력만 남아있던 상황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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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정묘-병자호란은 30~40년 시차가 나는데요....???
왜란으로 인해 국가시스템 또는 경제적 측면에서 파괴되거나 큰 타격을 입어 영향이
호란 시기까지 영향을 미쳤다면 이해라도 가지만...
병력 등의 근간이 되는 인적자원의 측면에 있어서 왜란의 영향이 호란까지 갈 수 있나요...???



2.[[이런 상황에서 이괄이 후금을 설득해서 조선을 치자고 꼬드기고 결국 이괄의 복수는 후금으로 시작됩니다.
그런 연유로 조선의 약한곳만을 길안내한것도 이괄이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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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은 이괄의 난 당시에 한양 인근 안산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경기도 이천 즈음에서 자기 수하들에게
살해당했는데요...??? 혹시 이괄의 휘하장수였다가 이괄과 함께 살해된 한명련의 아들 한윤의 행위를
언급하신 것 같은데요...???



3. [[그렇게 정묘호란이 일어났지만 의병이 일어나서 오래 있지 못하고 뒤돌아 갔죠..
즉 아무리 군이 없다지만 민간인들이 결속하게 되면 후금도 상대하기 버거운게 조선이었다는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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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 당시 후금침략군 규모는 3만 내외 규모입니다. 당시 조선에 들어온 후금군은 조선만 상대한 것이
아니라.. 철산-가도 일대에 포진한 모문룡군 또한 견제해야 했으며... 그리 많지 않은 병력으로 조선 깊숙이
들어가 한양까지 진출하여 조선을 완전히 제압하기에는 애초에 무리가 따르는 병력규모였습니다.

따라서 침략초기부터 지속적으로 후금이 먼저 화의를 제의하면서...조선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적당한
명분이 쌓이면 애초에 철수를 염두해두고 있었습니다. 1월에 침략하여 3월초에 조선과의 화의가 성립되어
철군수순을 밟게 된 것이며... 철수하는 경로상의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를 분탕질치면서 철수하게 되니
오히려 화의를 맺기 이전보다는 화의를 맺은 철수과정에서 큰 피해를 당하게 된 조선군병들과 백성들의
저항 횟수 또한 늘어났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당시 조선군,의병,백성들의 저항이 후금군의 본진이나 퇴로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고... 3월에 화의가 성립되었음에도 수 천명의 병력을 국경 일대인 의주-창성에 그 해 하반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주둔시켜... 조선의 화의이행을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4.[[곧이어 바로 병자호란이 일어났지만 속전속결로 항복만 받아내고 되돌아가죠..
그 이유는 마찬가지입니다.
병력도 없고 폐허가 된 나라를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고 속전속결로 치고 빠지는게 뭐 대단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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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명나라와 대치하고 있던 청나라로서는 조선과의 전쟁을 오래 끌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병자호란 당시에 이러한 청나라의 약점을 역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당시 조선의 실책과 무능을
반성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요....???

반면 청나라군은 2차대전 당시 독일기갑부대의 전격작전을 연상시키는 조선의 허를 찌르는 기상천외한
속적속결 작전에 힘입어 조선을 굴복시킴은 물론 조선에서 탈취한 인적-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병자호란 직전까지 어려웠던 청나라 내부의 경제적 어려움에서 탈피했음은 물론...
명나라에게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충실한 번국인 조선을 굴복시켰음은 물론 향후 명나라를 상대하는데
조선의 인적-물적자원까지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병자호란 직후 바로 가도의 정벌로 이어집니다.
 
청나라는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가장 적합한 최선의 작전을 구사하여 이를 성공시킨 것입니다.

아니 실상을 보면 허를 찌르는 작전도 아닌 것이...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가 악화된 이후 청태종이
조선을 압박하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쳐들어올 시기까지 알려주고, 너희 조선이 이렇게 대처하면
우리는 이렇게 할 것이다라고 공개적으로 알려주기까지 했음에도... 조선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병자호란에 동원된 청나라군 병력 또한 5~6만 규모로서(물론 명나라와 대치하던 청나라로서는
그들 나름으로는 가용한 상당한 병력을 동원한 경우이지만)...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조선의 중앙-지방
방어군 전체보다 훨씬 규모가 적었습니다.
물론 조선군 또한 병력을 결집시키지 못하고 각개격파당하기는 했지만... 조선군을 각개격파할 당시에
상대했던 청나라군 개별 부대 또한 오히려 조선군보다 소수인 상황에서 조선군을 격파한 케이스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역사에서 흔히 중과부적으로 피치못하게 패했다는 표현을 시도때도 없이 자주 사용하는데
병자호란에서의 여러 전투에서는 청나라군이 중과부적의 소수임에도 병력규모 측면에서는 훨씬 컸던
조선군이 패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심지어 12월 15일 경 인조가 남한한성으로 들어간 이후부터 청나라본진이 한양-남한산성 인근으로 진출한
12월 말에 이르기까지 무려 2주 가까운 기간에는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군 병력이 4천 여 명 규모인데 반해
포위당하는 남한산성 입방군의 규모가 1만2천~1만3천에 달할 정도로 조선군이 오히려 다수였습니다.
          
막걸리한잔 18-10-07 03:36
   
임진왜란과 차이가 30년 난다?
님아 임진왜란으로 명나라는 요동을 정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30년이 지났는데 왜 정비하지 못했을까요??
또 임진왜란으로 인조반정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묵살하고 30년이 지났는데 정상적이었다는 듯이 말하는 님이 더 이상하지 않나요??

그리고 이괄의 난으로 후금에 투항한 인물이 중요한것인가요?
후금으로 투항한 이괄 세력으로 인해서 북방 변경이 비고 핵심 전력을 상실했다는 중요한것입니다.
오히려 조선군의 핵심이 후금의 전력으로 탈바꿈한 사건입니다.
이것이 아무것도 아닌양 덮어두려고 하는군요..
오히려 그런 이유로 정묘호란이 일어나고 후금이 성장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또 조선군은 청군과 다르게 임진왜란으로 인해서 육군과 수군으로 편성되다 보니 병자호란때 청군이 약한 수군으로 대응하려다가 작전실패한것이 바로 병자호란입니다.
뻔한 전략을 쓰다가 당한것이죠..

그리고  정묘호란이 의병이 일어나서 곧바로 퇴각한것은 왜 일까요???
정규군이 그만큼 부족했다는것은 기정 사실입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시는지..
그 부분은 역사저널 그날에서도 자세히 설명했었죠..

또 병자호란이 제대로 싸웠다고 주장하시나요???
한마디로 전술에서 패배한것이라 봐야 맞습니다.
첫번째 지방군들은 문신들이라도 모아서 숫자만 채워서 수천명씩 오다가 각개 격파당하고..
두번째 남한산성은 전쟁에서 패배한게 아니고 내부에 준비되지 않은 식량 자원 때문에 전의를 상실해서 항복한것입니다.
세번째 당시 청나라가 싸운 군은 속오군으로 농민으로 구성된 민간인이나 마찬가지의 군대였습니다.
정규군을 가진 김자점은 병자호란이 끝날때까지 싸우러 오지도 않았습니다.
참 무슨 숫자만 가지고 선동하는 수준하고는..

청나라는 당시 청태종이 직접 참여하는 정예중의 정예군이었고요..
               
촐라롱콘 18-10-07 17:11
   
[[님아 임진왜란으로 명나라는 요동을 정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30년이 지났는데 왜 정비하지 못했을까요??]]......???
.
.
임진왜란이 일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시점이라면

명나라가 요동을 정비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요동은 이미 후금에게 넘어간

이후입니다. 뭔 헛소리를 하시는지....???




[[그리고 이괄의 난으로 후금에 투항한 인물이 중요한것인가요?
후금으로 투항한 이괄 세력으로 인해서 북방 변경이 비고 핵심 전력을 상실했다는
중요한것입니다. 오히려 조선군의 핵심이 후금의 전력으로 탈바꿈한 사건입니다.]]...???
.
.
그래도 사실관계상 명백히 오류인 것은 언급해야하지 않을까요...??

이괄이 직접 투항한 것은 아니니... 그리고 저 또한 그냥 사실관계상의 오류를
지적한 것 뿐인데... 님꼐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시네요...^^

그리고 이괄의 난에서 이괄군은 후금과의 국경에서는 한참이나 떨어진 한양과
그 인근에서 결정적으로 패하고 보다 남쪽의 경기도 광주-이천에서 이괄 등의 수뇌부가
반란군 내의 자중지란으로 살해되고, 완전히 와해되었는데...

마치 이괄군의 주력이 후금으로 투항한 것으로 착각하시는 것 같네요...^^

이괄의 무리 가운데 후금으로 투항한 인물은 이괄의 측근이자 이괄과 같이 살해된
한명련의 아들 한윤과 그를 따르는 몇 명만이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후금으로의 투항한
숫자이며, 물론 반란군에 가담했던 연유로 인해 조선조정의 탄압을 받아 이를 견디지
못하고 후금으로 넘어간 무리들이 있다는 개연성은 충분히 있지만...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한 것이고... 그렇다 하더라도 최대 기백명 이상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최대 100명 가량이 후금에 투항했다고 해서 후금의 전력이 향상되었다고
하기에는....^^

부차전투,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모두 거치고 이 모든 시기에 후금-청나라에 투항하고
포로가 된 이들 중에서 쳥나라 팔기군으로 편입된 모든 조선 출신들을 전부 합쳐도
6개 니루 최대 2,000명 가량이 조선출신들인데....^^




[[조선군은 청군과 다르게 임진왜란으로 인해서 육군과 수군으로 편성되다 보니
병자호란때 청군이 약한 수군으로 대응하려다가 작전실패한것이 바로 병자호란입니다.]]
.
.
병자호란 당시 조선수군과 청나라군이 교전한 지역은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해협에
한정되었는데요..??

그나마도 유빙이 떠다니고 급류가 센 강화해협에는 비교적 덩치가 큰 조선판옥선들은
제대로 된 접근조차 하지 못했고... 충청수사 강진흔이 이끄는 충청수군 200명 정도만이
작은 배 7척에 분승하여 강화해협을 건너는 청나라군과 교전했다가 물러나고
말았습니다만...??

병자호란에서 무슨 수군 중심으로 대응했다는 것인지...??
기병 중심의 청나라군에게 강화도공략을 제외하고 조선수군과 부딪힐 일이 뭐가 있는지..??




[[정묘호란이 의병이 일어나서 곧바로 퇴각한것은 왜 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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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뇌피셜이신지..?? 후금군이 1627년 1월에 쳐들어와 3월초에 화의가 성립되었는데
후금군 주력은 6월이 되어서야 압록강을 건너 후금으로 철수했을 정도로
화의가 맺어진 이후에도 황해도-평안도를 거쳐 느릿느릿 철수해가며
인축을 획득하고 재화를 약탈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요.....???

후금군의 가장 깊숙히 진출한 지역인 황해도 평산 인근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3월 초에 화의가 맺어진 이후 철수했다면 그 달 안으로 철수가 가능함에도
몇 달 이나 지난 6월이 되어서야 후금군 주력이 국경을 넘었는데......

그후에도 수 천 병력을 의주-창성 일대의 국경지대에 잔류시켜 조선의 조약이행을
압박하기도 했는데요...??
 
애초에 한양까지 진격하는 것을 비관적으로 본 것은 침공군 3만 규모였던 후금군쪽입니다.
그래서 의주성을 함락하자마자 조선측에 화의의 의사를 내비쳤고... 조선의 응답이 없자
선천-정주 일대의 능한산성까지 진출해 함락하고... 그래도 응답이 없자
청천강을 건너 안주성까지 함락시키고도 응답이 없자
평양-황주 라인까지 진출했고 그떄서야 조선측이 화의의 의사를 내비치기 시작하였고
후금측에 보다 유리한 조건을 만들고 조선을 압박하기 위해 예성강변의 평산까지
진출했던 것입니다.

강화회담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자 후금군이 조선을 더욱 압박하고자
개성으로 진격하려는 제스처를 취했고
개성을 수비하고 있던 유도대장 김상용은 이에 놀라 황급히 개성을 버리고
한양으로 철수하는 유약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후금군이 의주-안주-평양-황주-평산까지 진격하는 동안

그것도 병자호란과는 달리 성이나 고을 하나하나 점령할때마다
조선의 반응을 기다리면서... 더구나 안주성을 함락하고는 나흘간이나 쉬면서
느긋하게 진군해왔는데도...

도대체 조선중앙의 정예군들은 후금군 앞에 꼬빼기도 내비치지 않았으니....
개성-한양이 떨어져야 그때서야 움직일 생각이었나....???

정묘호란 당시에도 후금군이 마음만 먹었다면 한양까지 진격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촐라롱콘 18-10-07 17:19
   
[[또 병자호란이 제대로 싸웠다고 주장하시나요???
참 무슨 숫자만 가지고 선동하는 수준하고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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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가지고 먼저 딴지거신 쪽은 님이시잖아요...???

님의 앞선 댓글에서 병자호란 당시에 조선군은 병력도 거의 없었다면서요...???

다른 건 몰라도 그냥 병력수만 보자면 조선군이 숫자상 훨씬 우월한 전투에서도

소수인 청나라군에게 발린 경우가 많다라고 반박한 것인데요....???




[[정규군을 가진 김자점은 병자호란이 끝날때까지 싸우러 오지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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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점은 토산전투에서 예친왕 다이곤이 보낸 별동대에게 패한 이후로
청나라군에게 겁을 집어먹었거든요~~~

김자점의 5천병력이 그보다 숫자가 적은 대략 3천명 규모의 청나라군 별동대에게
당한 이후로 김자점이 수세적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청나라군도 대단한 부분이..... 다이곤의 청나라군보다 앞서 남하하는
김자점 휘하의 조선군 규모를 5천이 아닌..... 1만 5천으로 알고 있었는데도
이들을 격파하러 별동대로 3천 규모의 병력만을 보냈으니.... ^^
          
꼬꼬동아리 18-10-07 08:30
   
이제좀 그만좀 해라 태국아재 임진왜란이 30-40년으로 수복될만한
전쟁이였냐? 계속 전쟁했음  임진때처럼 의병들이 위협수준까지 발전했겠지  모자란 태국인씨  역사적인 근거를 들고와서  반박을 하던지 이제  당신의 뇌피셜 지겹다  당신덕에 태국인 혐오생긴다
박쥐처럼 댓글마다  일본vs한국  일본편  중국vs한국  중국편
몽고vs한국  몽고편 그외다수나라vs한국  그외다수나라편
대단하십니다 그것도 전부 뇌피셜에 능려자들한테 팩트 체크당하고 도망가도 또 다음글에  똑같은 뇌피셜 싸지르고 그렇게 싫으면  우리나라  싸이트 접속하지 말던가  니 아무리 글 싸질러도 니 글  동조하는 사람도 없어요 모자란 태국인씨  태국인혐오 쩔려고 하네  ㅈㄴ 못사는 gdp반도 안되는 태국 후진국 ㅅㄲ하나 기어들어와서 분탕질 치네
               
촐라롱콘 18-10-07 17:23
   
내가 무슨 소녀시대라도 되나...??

왜 이리 끈질기게 내가 쓴 글마다 따라다니며 스토커짓인지....^^

단순히 내 이목을 끌려는 의도라면 님의 성공을 인정하는 바이며

님의 기억력과 끈기에 경의를 금치 못합니다...^^

나도 내가 그동안 쓴 글 다 기억 못하는데... 대단하십니다...^^
                    
꼬꼬동아리 18-10-07 17:48
   
스토커 같은소리하네  니 심각한 어그로꾼이라는거는  자각은 하냐?
우리나라 심각할정도로 스토커짓 하면서 비하하고  까내리는  이유가 뭐냐?  그것도 전부 니 뇌피셜로 그리고 니가 쓴글 검색하면 다나와 밥통아 뭘몰라 니가 쓴글들  천천히 검색해봐라 니가 어떤 어그로꾼인지  댓글알바 하냐? 좃본하고 짱개 알바는 이해하는데 개후진국  조빱 태국이  이런 어그로  끄니  아주 가당차지도 않다 알겠냐 그냥  여거나라 싸이트에서 쳐놀아
                         
촐라롱콘 18-10-07 19:59
   
내 글이 뇌피셜로 쓴 부분이 있으면 제발 그 부분을 정확히 찝어 반박 좀 해 봐라....^^

그리고 너도 참 할 일 없고 시간도 무지 남아도는 인사로구나...!!!

내 글이 무슨 금과옥조라고 내가 쓴 글들을 검색까지 하는 수고를 하는지... ^^
위구르 18-10-06 01:43
   
Korisent 18-10-06 10:06
   
거의 모든 고대아시아 전쟁에서 차이니스는 없었죠. ㅋ
꼬꼬동아리 18-10-07 20:44
   
어이 태국인 아저씨  니가 위에 쓴글만 해도 뇌피셜이야  무뇌충아 이미 전문가들이 무수한 이론을 내놓았는데 니가  뭐라도 되냐? 청나라에 관한  인원숫자  드러난게 없어 고서  가지고 쳐오라고 위에도 버젓이 후진국 대학쳐나온 ㅂㅅ모자란 태국원숭이가 자기가 뇌피셜 싸지런건지도
모르고  드런 후진국 태국 대학 하나 쳐나와서 쳐 씨부는거보면 어디 하버드는 나온 줄 알겠다 ㅋㅋㅋ
어이 후진국 아저씨 그냥 여거나라로 꺼져 ㄷㅅ아 대한민국이 여거 후진국태국보다 발전해서 질투나서 까내리고 싶지? 후진국에 살면  후진국 답게 살아 모자란 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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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꼬꼬동아리 18-10-07 21:06
   
꼬꼬동아리 18-10-07 21:08
   
촐라롱콘씨  저번에는 일제패망후 우리나라 떠나가던 일본인 피해받은거도 옹호하는 댓글들도 달더만 그놈의 쪽빨이 피해자 코스프레  그대로 따라쳐하는 태국인일뽕씨 기록도 없는 니 뇌피셜로 그것도 찾아서 올려줄게 지금 시간이 없어서 내일 계속 댓글 달아줄게  태국인이면서  일뽕이자 중뽕 몽골뽕까지 쳐먹어서 배가 많이 부르시지? 위에 올린건 빙산의 일각이야 더 올려서 가생이 유저들이 니  실체를 알아야지 안그래 지능형  일뽕씨?
꼬꼬동아리 18-10-09 12:18
   
가생이 유저분들 이거 꼭 한번씩 보세요
촐라롱콘의 실체 입니다 일뽕 그것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지능형 일뽕 입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0692&sca=&sfl=wr_name%2C0&stx=라롱콘&sop=and&page=23
예전에 가생이 하던 유저들은 전부 다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촐라롱콘 이사람한테 호의적인 분들도 계시더군요
역사와 관련없는 일본천황<<<이런거에는  댓글로 우리나라사람이 일본왕을 천황으로 부를필요 없다 라고 호감을 산뒤  진짜역사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우리나라 역사 축소 할려고 엄청 노력하는
중뽕에 일뽕까지 쳐묵쳐묵 하신분입니다 역사를 드라마로 배워서 제법 거짓역사를 잘 알고있어 역사 관심없는 분들이 보면 자칫 진짜인것처럼  속아 넘어갈 수도 있으니 조심을 기해야하는 지능형 중뽕 일뽕입니다
꼬꼬동아리 18-10-09 15:45
   
발해는 한국역사가 아니다
-촐라롱콘-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8379&sca=&sfl=wr_name%2C0&stx=라롱콘&sop=and&page=20
꼬꼬동아리 18-10-09 15:52
   
일본에 관해서는 일뽕
중국에 관해서는 중뽕
나는 항상 뇌피셜이다 절대 기록따윈 적지않는다
-촐라롱콘-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40356&sca=&sfl=wr_name%2C0&stx=라롱콘&sop=and&page=19
꼬꼬동아리 18-10-09 16:05
   
예전 가생이 하던분들은  ㅉㅉㅉ와 촐라롱콘이 동급으로 비교되며 중뽕 일뽕 어그로꾼인지 다 알고있었던시절 댓글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41078&sca=&sfl=wr_name%2C0&stx=라롱콘&sop=and&page=19
     
촐라롱콘 18-10-09 19:26
   
뭔 댓글이 이렇게 달렸나 싶어 궁금해 들어와 봤더니만 주범이.... ㅋㅋㅋ

너 정말 스토커 맞구나...!!! 나같이 별볼일 없는 인물이 예전에 쓴 글들을 아주 친절하게도
나열까지 해놓으셨네....^^

뭐 어쨌던 내가 예전에 쓴 댓글들 죄다 까맣게 잊어버렸었는데
기억을 새삼 떠올리게 해주니 오히려 내가 다 고마울 지경이네....^^

그런데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인물이라고 쓸데없이 이런데다 정력을 낭비하고 앉아있냐..?? ^^
나를 귀찮게하면 어디서 돈이 나오냐, 떡고물이 떨어지냐...???

뭐하러 쌩고생을 자처하며 쓸데없이 시간낭비, 정력낭비 하고 있는지 원~~~
너도 부모님에게는 그래도 나름 소중한 자식일텐데 너희 부모님 너 이런 한심한 짓 하며
천금같은 시간 의미없이 낭비하는 거 아시고 계실랑가 몰라~~~ ㅋㅋㅋ

내가 다 안쓰러울 지경이네~~~

니가 정 원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부탁한다.....^^
마치 일기보듯이 예전에 내가 썼던 글 다시 보니 재미있기도 하네~~~
          
촐라롱콘 18-10-09 19:37
   
그리고 가생이 유저분들에게 "나의 실체?"를 각인시켜야 할 정도로
내가 마치 대단한 인물인양 묘사해주니 정말 황송해서 몸둘바를 모르겠네....!!! ㅋㅋㅋ

보잘 것 없는 나를 비록 부정적이나마 높게 봐주니 오히려 내가 다 고맙다....!!!
               
꼬꼬동아리 18-10-09 20:36
   
대단하다  부모님 ㅋㅋㅋ 그러는 여거부모는 니 일뽕에 중뽕 쳐묵쳐묵한 어그로인거 알고나 있냐? ㅋㅋㅋㅋㅋ
ㅉㅉㅉ라는 중뽕 정신병자랑 비교될 수준이면  니가 어떤 어그로꾼인지 잘 알텐데 ㅋ ㅋㅋ
좀 똑바로 살아라 우리나라에 왜 악감정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대부분 아시아인들이 우리나라 까는거보면 질투심밖에 없더라
니가 하는짓봐라 쪽빨이 우익들 댓글들이랑 판박인거  모르겠냐?  한심하다 한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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