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창손은 나중에 사육신들의 단종복위계획을 세조에게 꼬바른 공으로 정승까지 고속승진하죠.
사람의 천품은 교육으로도 고칠수 없다는 자신의 발언을 스스로 증명함. (철저한 유교 교육을 받은 철두철미한 유자라고 자처했으나 결국 행동은 기회주의자. 죽고나서 한명회와 함께 부관참시 되었네요.)
예전에 실록 내용이나 훈민정음과 관련한 내용들을 볼 때에, 해당 짤의 대화 내용은 없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확히는 정창손은 해당 내용과 같은 논지의 주장을 하였으나 세종대왕께선 저렇게 정창손의 주장에 감정적으로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분명 어리석은 백성들이라도 충분히 배우고 깨우칠 수 있다는 반박이었던 걸로 떠오릅니다.
즉 해당 짤의 내용은 짤을 만든 사람이 당시 상황을 각색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정창손은 이 일을 계기로 세종대왕께 찍히긴 했지만 말이죠.
세종대왕께서 개인적으로는 입이 매우 걸걸하셨다고 알고 있고 실제 그러한 내용들도 있으나, 정무를 보심에 있어서 감정적으로 저렇게 훤히 드러내는 내용은 정말로 드물었습니다.
위의 짤이 세종대왕께서 백성을 아끼고 배움에 있어서 귀천이 없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좋은 내용임에는 동의하나, 세종대왕께서 일평생 고수하셨던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오랜 시간 신하들을 설득하고 때론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하여 신하들을 조종하셨던 면모를 생각한다면. 짤의 내용은 후대에 우리가 보고 싶은 이미지로 해석아닌 각색에 더 가깝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실록 내용은 이렇습니다. 삼강행실도를 한글로 번역해 배포하는 것에 대해 김문이 가능하다고 해놓고 지금은 안된다하고 정창손이 그런거 해봐야 어차피 타고난 자질로 결정되는거라 소용없다고 해서 세종이 이런 놈들이 선비냐. 화내고 정창손을 파직시키죠. 사실 백성들이 멍청하다고 해서 파직됐다기 보다 조선 자체가 유학이 지배논리인데 유학의 가르침에서 누구나 공부해서 군자가 될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정창손이 아무리 가르쳐봐야 타고난 자질이 더 중요하다고 대놓고 유학의 가르침을 반대했기 때문에 세종이 이쉑은 선비가 아니라고 파직시킨거죠.
임금이 말하기를,
"전번에 김문(金汶)이 아뢰기를, ‘언문을 제작함에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불가하다 하고, 또 정창손(鄭昌孫)은 말하기를,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반포한 후에 충신·효자·열녀의 무리가 나옴을 볼 수 없는 것은, 사람이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자질(資質) 여하(如何)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꼭 언문으로 번역한 후에야 사람이 모두 본받을 것입니까.’ 하였으니,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아무짝에도 쓸데 없는 용속(庸俗)한 선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