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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27 13:10
[한국사] 수(隋) 임유관(臨渝關, 臨榆關) 추적 02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582  

② 노룡

(북평군의 치소)

임여관, 지금(8세기)의 명칭은 임유관인데 노룡현 동쪽 180 리에 있고 노룡새가 (노룡현) 서북쪽 200 리에 있다


盧龍

臨閭闗今名臨榆闗在縣城東一百八十里盧龍塞在城西北二百里


ㅡ 상기한 대로 통전은 문제가 많은 사서이다 특히 지리와 그 거리 기술에 있어 오류가 심하다 문제는 이렇게 동일 장소를 놓고도 서로 상반되고 이격되게 기술한 통전의 정보를 후대 사서들이 크게 비판 없이 받아 적었으며 이로 인하여 엉망진창이 되었다 통전 비판은 이 추적의 일환으로서 따로 회차를 열어 글을 게시하겠다


살펴본 바와 같이 통전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요 사서들이 임유현과 임유관의 위치를 현 하북성 진황도시 무령현 방면으로 기술하고 있고, 특히 독사방여기요는 임유관은 산해관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함에도 한중 사학계에서는 어찌하여 산해관이 아니라 무령현 임유진을 임유관이 있던 곳으로 모두 비정하고 있는 것일까?


고찰 자료 가운데 유일하게 임유관을 현 무령현 임유진으로 제시한 바이두 백과의 다른 항목을 더 살펴보자


8) 바이두 백과


渝关


옛 관의 이름이다. 유수에 의지해(근처에) 만들어졌는데 유수는 그 원천이 연산의 동쪽 기슭으로 고대의 유수는 수량이 풍부(충비)했고 물 흐름이 거세어서 옛 사람들이 이곳을 요해처로 삼아 관문을 설치했다. 유관, 임여관, 임유관, 임유관이라고도 한다.


古关名。依渝水而建,渝水源自燕山东麓,古代渝水河水量充沛,水流湍急,古人因此设立关隘,一作榆关,又称临闾关、临渝关、临榆关。


(古關名。依渝水而建,渝水源自燕山東麓,古代渝水河水量充沛,水流湍急,古人因此設立關隘,一作榆關,又稱臨閭關、臨渝關、臨榆關。)


수나라 개황 3년(583년)에 (임유관을) 만들었는데 그 옛 자리가 현 하북성 무령현 임유진이다. 당나라 때에는 동북지역의 중요한 진으로 삼았다.  요, 금, 원 시대를 거치며 점차 퇴락하였는데 명나라 홍무(명 태조 주원장, 1368~1398년) 초에 이르러 유수의 수량이 감소하고 그 물길의 세기가 감퇴하였기에 이미 군사적 목적에 있어서 적합하지 않아서 이 자리(임유진, 즉 현 무녕현의)에서 동쪽의 석하로 옮겨서 유관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명나라의 사대부 대부분은 남조(황하 이남)에서 살던 사람들로 북쪽 지리 사정을 잘 알지 못하여 글과 시를 씀에 있어서 산해관과 유관을 뒤섞어 썼으니 후세 사람들이 오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산해관에 유관을 덧씌워서 (산해관을 임유관으로) 오해한 지 600 년이 넘었다.

隋开皇三年(公元583年)筑,故址即今河北抚宁东榆关镇。唐为东北军事重镇。辽、金、元时渐废,明洪武初徐达、刘伯温复建此关时,渝水水量减少,水势减缓,已经不再适合作为军事重地,遂将此关东迁至石河一线,复用渝水关名,而明朝士大夫多是久居南朝之人,北地生疏已经,著书时将山海关与渝关混淆,造成后人误会。一因此山海关从明朝初年及被都城榆关,误会六百多年矣。


(隋開皇三年(公元583年)築,故址即今河北撫寧東榆關鎮。唐爲東北軍事重鎮。遼、金、元時漸廢,明洪武初徐達、劉伯溫復建此關時,渝水水量減少,水勢減緩,已經不再適合作爲軍事重地,遂將此關東遷至石河一線,複用渝水關名,而明朝士大夫多是久居南朝之人,北地生疏已經,著書時將山海關與渝關混淆,造成後人誤會。一因此山海關從明朝初年及被都城榆關,誤會六百多年矣。)


다소의 의역이 있으나 내용은 정확히 해석하여 옮겼다. 즉 바이두 백과의 설명은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던 그 초기에 현 무령현 임유진에 있던 임유관이 군사목적에 적합하지 않아서 그 동쪽으로 옮겼는데 그 사정을 잘 알지 못하고 더구나 북쪽 지리에 어두운 남조 출신 사대부들이 산해관과 임유관을 뒤섞어 쓰면서 산해관이 애초부터 임유관이었던 것처럼 오인되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사정이 명나라 시대에만 있었을까? 중국의 역사를 보면 특히 위진남북조 시대부터 명나라가 들어서기까지 1천여 년의 가공할 시간 동안 이곳 하북성 당산시 - 승덕시 - 진황도시 지역은 중원 왕조에 들어갔다 빠졌다를 되풀이 했으며 동시에 수많은 민족과 군벌과 정권에 속했다 빠졌다 한 지역이다. 원위, 즉 위나라의 3세기 이후, 4세기 들어서 서진, 동진 시기에는 이 지역은 이미 중원 왕조의 영역이 아니었다. 선비족의 차지였으며 북위가 이곳에 북평군과 요서군을 설치했으나 북제와 북주가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고 수나라가 들어서서 동쪽으로 확장을 꾀 했으나 40년도 안 돼서 망했고 당나라가 차지하며 근 1 세기 영위했다고는 하나 이미 7세기 후반부터는 거란, 돌궐이 유주 아래 깊숙이 들쑤시고 들어왔고 8세기 중후반이 되면 침식 당하면서 9세기에 이어 10세기에는 이미 거란 땅이 돼 버린 곳이다. 즉 이 땅은 서진 시대부터 원나라 시대까지 근 1천 년 동안 그 절반 이상이 이민족의 땅이었고, 빼앗고 빼앗기고, 잃고 되찾고, 되찾고자 하고, 되찾았으나 곧 잃고 한 그런 곳이다.


통전부터 독사방여기요, 그리고 현대의 바이두 백과와 중국고금지명대사전까지 임유관의 기술 내용을 살펴보았다.


사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정도 살펴 보고는 “아, 그렇구나. 수나라 임유관은 현 하북성 진황도시 무령현 임유진이구나”하며 수긍하고 말 일이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지금까지 모든 학자들이 이 지랄로 해왔기에 우리 역사 기술이 이 지경이 된 것이다.


끝까지 간다.


자, 그렇다면 과연 ㅡ 당나라와 수나라의 역사와 그 지리 정보를 담고 있는 신당서/구당서 지리지와 수서 지리지를 살펴서 과연 통전 이후 현대에 이르는 저 기술 정보와 합치하는지 따져봐야겠다.


수서 지리지 북평군 기술조에는 역시 임유현이 없다. 반면에 당나라 시대에는 이 지역에 임유현이 설치돼 있었다. 하므로 우선 구당서 지리지와 신당서 지리지를 중심으로 합치 여부를 따져보고 그 이후의 고찰은 다음 게시글로 넘겨서 심화하도록 하겠다.




다. 구당서/신당서 지리지 기술에서의 임유현



1) 신당서 지리지 임유관


① 평주 북평군


처음에 임유(臨渝)에서 다스리다가 무덕(武德) 원년(당 고조, 618년)에 노룡(盧龍)으로 옮겨 다스렸다. (북평군 치소를 임유에서 노룡으로 옮겼다는 말)

온구(温溝)와 백망(白望)과 서협석(西狹石)과 동협석(東狹石)과 록주(緑疇)와 미부(米磗)와 장양(長楊)과 황화(黄花)와 자몽(紫蒙)과 백랑(白狼)과 창려(昌黎)과 요서(遼西) 등의 12 수(戍)가 있다. 애천(愛川)과 주기(周夔) 등의 2개의 진성(鎮城)이 있다. 동북쪽에는 명질관(明垤闗)과 골호성(鶻湖城)과 우모성(牛毛城)이 있다.


平州 北平郡. 下. 初治臨渝, 武德元年徙治盧龍. 土貢.., 熊鞹, 蔓荆實, 人葠. 户三千一百一十三, 口二萬五千八十六. 縣三. 有府一, 曰盧龍. 有盧龍軍, 天寳一載置. 又有柳城軍, 永泰元年置. 有 温溝 白望 西狹石 東狹石 緑疇 米磗 長楊 黄花 紫蒙 白狼 昌黎 遼西 等十二戍, 愛川 周夔 二鎮城. 東北有 明垤闗 鶻湖城 牛毛城.


② 석성현(石城縣)


본래 임유현(臨渝)인데 무덕(武德) 7년(624년)에 없앴다. 정관(貞觀) 15년(당 태종, 641년)에 다시 설치하였다가 만세통천(萬嵗通天) 2년(측천무후, 697년)에 이름을 바꾸었다. 임유관(臨渝闗)이 있는데 또한 임여관(臨閭闗)이라고도 한다. 대해관(大海闗)이 있다. 갈석산(碣石山)이 있다. 온창진(温昌鎮)이 있다.

石城. 中本臨渝, 武德七年省, 貞觀十五年復置. 萬嵗通天二年更名. 有臨渝闗, 一名 臨閭闗. 有大海闗. 有碣石山. 有温昌鎮.


2) 구당서 지리지


① 평주(平州)


수(隋)에서는 북평군(北平郡)이었다. 무덕(武徳) 2년(당 고조, 619년)에 평주(平州)로 고쳤고 임유현(臨渝)과 비여현(肥如)을 다스렸다. 7년(624년)에 임유현(臨渝)과 무녕현(撫寧)을 없앴고 북평군(北平郡)으로 고쳤다.


平州. 隋為北平郡. 武徳二年, 改為平州, 領 臨渝 肥如 二縣. 其年, 自臨渝 移治 肥如, 改為盧龍縣, 更置撫寧縣. 七年, 省 臨渝 撫寧 二縣. 天寶元年, 改為北平郡. 乾元元年, 復為平州. 舊領縣一, 戸六百三, 口二千五百四十二. 天寶領縣, 三戸三千一百一十三, 口二萬五千八十六. 在京師東北二千六百五十里, 至東都一千九百里.


② 석성현(石城縣)

한(漢)의 현이고 우북평군에 속했다.

정관(貞觀) 15년(당 태종, 641년)에 옛 임유현성(臨渝縣城)에다 임유현(臨渝)을 설치하였다. 만세통천(萬嵗通天) 2년(측천무후, 697년)에 석성현으로 이름을 고쳤는데 옛 이름을 취한 것이다. (한나라 때 우북평군에 속했던 석성현의 예에서 이름을 취했다는 말)


石城, 漢縣, 屬右北平. 貞觀十五年, 於故臨渝縣城置臨渝. 萬嵗通天二年, 改為石城, 取舊名.


북송 때의 사서인 태평환우기는 비록 임유관의 위치를 현 하북성 진홍도시 무령현 방향으로 기술하고 있으나 임유현에 대한 정보, 그리고 석성현의 위치와 그 이름의 유래에 있어 신/구당서 지리지 내용을 보완해줄 수 있기에 살펴 본다



3) 태평환우기


① 평주 북평군


수 개황 초에 우북평군으로 삼았다가 10년에 평주로 고쳤다. 양제가 즉위하자 다시 주를 폐지하고 군으로 삼았다. 당 무덕 2년에 군을 폐지하고 평주로 삼았으며 임유현과 비여현 등 2개의 현을 거느렸다. 그 해에 치소를 임유현에서 비여현으로 옮겼으며 비여현을 노룡현으로 삼았다가 무령현으로 바꿔 다스렸다.

무덕 7년에 임유현과 무령현 등 2개 현을 없앴다.

천보 원년에 북평군으로 고쳤다가 건원 원년에 다시 평주로 삼았다


平州。北平郡,今理盧龍縣。

戰國時斯地屬燕,秦兼天下,為右北平及遼西二郡之境。漢因之,為遼西郡之肥如縣。後漢末,公孫度自號平州牧,擅據,及子康、康子淵,俱得遼東之地,東夷九種皆伏焉。晉屬遼西郡,後魏亦然。隋開皇初為右北平郡,十年改為平州。煬帝即位,又廢州,複為郡。唐武德二年廢郡,為平州,領臨渝、肥如二縣,其年自臨渝移治肥如,仍改肥如為盧龍縣,更治撫寧縣。七年省臨渝、撫寧二縣。天寶元年改為北平郡,乾元元年複為平州。元領縣三:盧龍。石城。馬城。


(북평군, 즉 노룡현에서) 서북쪽으로 석성현까지 140 리이다.
四至八到:南至東京。缺。西南至西京二千一百九十五里。西南至長安三千五十五里。東北至榆關守捉一百九十里,自關東北至營州五百里。南至海二百里。西至薊州三百里。北至上谷八十里。西南至馬城縣一百八十里。西北至石城縣一百四十里。西北至盧龍塞二百里。東北至營州七里。


② 석성현


석성현은 노룡현 서쪽 140 리에 있다.

한나라의 옛 현으로 갈석산이 성처럼 서 있는 모습에서 그 이름을 취했는데 우북평군에 속했다.

당 정관 15년에 옛 임유현성에 임유현을 설치했다. 만세통천 2년에 이름을 석성현으로 고쳤다. 갈석산이 있다.


石城縣。西一百四十一里,二鄉。漢舊縣,取碣石立如城以名之,屬右北平。唐貞觀十五年,於故臨渝縣城置臨渝縣,萬歲通天二年,改為石城,複漢舊名。碣石,始皇使燕人盧生求羨門,刻碣石。漢武登之望海,當山有大石,如石柱,號曰天橋柱,往往望而立於巨海之內,狀如人造,然非人力所能成也。


통전 역시 임유관을 현 무령현 임유진 방면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신/구당서 지리지의 기술 내용을 보안해줄 수 있기에 살펴보겠다.



4) 통전


(노룡현에서) 동남쪽으로 임유관까지 180 리, 서북쪽으로 석성현까지 140 리이다.


北平郡

東至柳城郡七百里南至海一百里西至漁陽郡三百里北至塞百八十里東南到臨榆闗一百八十里西南到馬城縣一百八十里西北到石城縣一百四十里東北到柳城郡七百里去西京四千三百二十里去東京三千五百二十里戶三千三十一口一萬三千七百七十




마. 정리


8세기 당나라 당시의 두우가 쓴 통전 이래 현대의 바이두 백과와 중국고금지명대사전, 그리고 현 한중 사학계 통설에서는


임유현과 임유관이 현 하북성 진황도시 무령현과 그 동쪽에 있다고 일관되게 기술한 것과는 달리


정작 신/구당서 평주 기술에서는

1) 석성현은 본래 임유현이며

2) 당나라가 624 년에 임유현을 폐지했다가 641년 그 자리에 다시 설치했으며

3) 임유현을 재설치한 후에 석성현으로 개명을 했는데

4) 석성현으로 이름을 바꾼 이유는 갈석산이 성처럼 둘러싸 있어서이며 옛 한나라 시대에 우북평군에 석성현이라는 이름의 현이 있었던 사례를 본 땄다

라고 적고 있다


즉 임유현은 현이 폐지됐다가 재건됐다 했을 뿐 계속 난하 서쪽에 있었고 석성현으로 이름이 바뀐 후에도 그 일대에 석성, 또는 석성폐현, 또는 석성현이 있던 곳이라 불리우며 그 자취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당나라는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건국된 618 년 그 해에 북평군의 치소를 임유현에서 훗날 노룡현으로 이름이 다시 바뀌는 비여현으로 옮겼다


즉 수나라 양제 시대에도 그 자리에 임유현이 임유현이라는 이름으로 있었다는 말이다


임유관은 임유현에 있는 관문이므로 당연히 난하 서쪽에 있어야 이치에 합당한 것이다


수나라 시대의 임유현이자 임유관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은가?


다음 회차에서는 임유현과 임유관의 위치를 더욱 심층적으로 추적하고자 북평군의 연혁을 고찰하도록 하겠다


우리는 지금 수당 시대의 영주(유성)와 고구려의 서계를 추적하고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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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10-27 13:24
   
중국역사지도집 당나라 지도로 보는
당나라 석성현(임유현)의 위치 ㅡ 난하 서쪽, 현 승덕시 동북쪽
이곳이 수나라 시대의 임유현 위치이다

쭝궈가 석성현의 위치를 속일 수 없는 것이 그 위치와 거리가 사서에 분명히 기술돼 있기 때문이다

http://blog.naver.com/storyphoto/viewer.jsp?src=https%3A%2F%2Fblogfiles.pstatic.net%2F20111101_234%2Fjhy8365_1320131068711uFWU3_JPEG%2F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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