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은 멸망이 아니라 와해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근거로 고조선과 한(漢)의 전쟁 이후 결과.
중원기록에 한나라 장수들은 벌을 받았습니다.
군사적 실책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면 한나라 장수들은 승리한 장수가 받을 상이아닌 처벌을 받았습니다.
근대의 2차 세계대전때의 결과를 봅시다.
독일과 소련의 전쟁이 소련의 승리로 끝난후,
소련의 장군들은 영웅이 되었습니다.
전쟁 과정은 어땠을까요?
전쟁이 끝날때 까지도 독일은 소련에 3:1의 손실 피해를 줬습니다.
독일군이 1명이 죽을때 소련군은 3명이 죽었다는거죠.
이것은 소련이 승기를 잡고 이길때의 손실비고 지고 있을때는 더 심했죠.
이런 피해를 입고도 승리를 해서 승전국이 되고 장군들은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나라는 고조선에 이겼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한나라 장수들은 손실로 인해 처벌을 받습니다.
간단히 기록은 이겼다고 했지만 제대로 이긴게 아니라는 얘기일까요?
반대로 항복한 조선인들은 작위를 받고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알수있는것은 군사작전만으로 한나라가 고조선을 이긴게 아니라는 겁니다.
승리한 한나라 장수들은 처벌당해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고 항복한 조선인들은 벼슬을 받고 상을 받았다?
이는 칼로는 졌어도 붓으로 이긴다는 전형적인 중원식 기록행태로 보여집니다.
즉, 한나라의 고조선 전쟁은 지지부진했고, 고조선인들이 이탈해 한나라로 붙으면서 한나라가 체면치레를 할수있었다는게 아닐까요?
이때 한나라로 부터 관직을 받은 조선인들은 어디를 통치했을까요?
당연히 자기가 살며 다스리던 지역이겠죠.
항복한 조선인들을 한나라 내지의 관리로 등용했을리도 없고,
그런조건이면 조선인 세력가들이 관직을 받아들이며 한나라에 항복하지도 않았겠죠.
후대의 기미주와 비슷한 성격이라고 생각하면 맞을듯 합니다.
고구려는 조상을 고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기록과 흔히 알려진 바로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습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부여인이 고조선인 이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고구려인, 백제인은 고조선이 아닌 부여만을 시조로 삼았겠죠.
부여와 고조선은 동시대에 존재했습니다.
고조선이 망하고 부여가 생긴게 아니죠.
지금의 서울사람이 한국인 인것처럼,
고구려인의 인식대로라면 부여인도 고조선인 이었던거죠.
고조선은 멸망한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고구려, 백제, 신라로 넘어간것입니다.
왕권강화가 강대국의 조건?
그런건 예전 서양식이죠.
왕권이 강화되 영주들을 누르고 강대국이 되었다.
이런것들.
우리역사에서 지방 세력가들을 완전히 누르고 왕권을 강화한건 이성계 조선때입니다.
옆나라 일본도 근대에 들어올때까지 지방세력이 힘을갖고 활개쳤었구요.
중국 역시 근대까지도 지방군벌 세력이 강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몇만에서 몇십만의 병력을 동원할수 있었습니다.
서양처럼 왕권이 강화되고 지방세력을 찍어누르지 않아도 충분히 강한 국력을 가질수 있었죠.
청동기의 시작시기?
이 역시 서양식 논리로,
그럼 이집트는 석기시대에 몇만명을 동원해 피라미드를 지었는데요?
100년 이전에 유행하던 서양의 강국의 기준을 언제까지 따르려는거죠.
부여 5가, 고구려 5부, 백제 8족, 신라 6촌.
후의 세워진 나라가 이런 연맹 왕국이었는데,
고조선만 절대왕정 국가 일리가 없죠.
물론 왕에게로의 권력 집중이 약했어도 이들 나라는 충분히 강했습니다.
나당 전쟁에서 이겼던 통일신라가 고려에 망할때까지도 진골귀족 3가문에서 돌아가며 왕을 지냈습니다.
그후 고려 역시 몽골에 항복하기 전까지 신하들이 힘이강해 좌지우지 했었구요.
절대왕정처럼
근대에 1인에게 권력집중을 이뤄 강국으로 나가려고한 국가들이 나치와 파시스트국가들입니다.
그래서 결과는 권력이 나눠진 민주주의 나라들에게 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