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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2-03 10:00
[한국사] 중국정사외국적 국역 거란/해 등 관련 주석 발췌 정리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2,407  

<동북아역사넷 중국정사외국적 국역 거란/해 등 관련 주석 발췌 정리>


현 한국 사학계 통설의 입장을 파악할 수 있는 참고 자료로서 유효하다.

관련도가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재배열하여 새로 번호를 달았다.

동북아역사넷 주석을 줄여서 '동주'라 하였고 향후 본인의 주석은 '본주'라 하여 구별하도록 하였다.




#동주001)東胡: 종족명. 匈奴의 동쪽에 거주했기 때문에 東胡라고 불렸다. 이들은 長成의 동북쪽에 살았고, 목축에 종사했다. 春秋戰國時代에는 남쪽으로 燕과 인접해 있었는데 燕에 패하자 북쪽의 遼河 상류 지역으로 이동했다. 秦나라 말기에 다시 강성해졌지만 匈奴의 冒頓單于에게 패했다. 이들을 이후 등장하는 烏丸과 鮮卑의 조상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林幹, 1995: 9~23).


#동주002)鮮卑山: 정확한 위치에 관해서는 설이 분분한데 대략 다음의 세 가지이다. ① 鮮卑人들이 이 산에 거처하여 鮮卑라는 명칭을 얻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선비가 이동함에 따라 鮮卑山의 명칭도 달라졌다고 했다. ② 현재의 大興安嶺 북단을 말한다. 현재의 內蒙古自治區 鄂倫春自治縣 阿里河鎭 서북의 戛仙洞에서 북위의 鮮卑石室이 발견되었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③ 현재의 內蒙古自治區 科爾沁右翼中旗의 서쪽이다. 현재 사람들은 이 곳을 蒙格이라 부른다.


#동주003)鮮卑: 북아시아의 유목민으로 東胡의 支派이다. 처음에 鮮卑山 부근에 모여 살아 “鮮卑”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후 呼倫池 부근으로 이동하였고 다시 陰山 일대로 이동하여 다른 種族과 접촉하였다. 檀石槐가 鮮卑의 각 부족을 통합하고, 과거 匈奴에 필적하는 유목제국을 세웠다. 檀石槐 사후 잠시 분열되었으나, 軻比能이 다시 鮮卑 각 부족을 규합하였다. 魏 靑龍 3년(235) 軻比能이 魏의 자객에게 살해되면서 분열했다가 이후 兩晉 · 南北朝時代에 慕容部가 前燕 · 後燕 · 西燕 · 南燕을, 乞伏部가 西秦을, 禿跋部가 南涼을, 그리고 拓跋部가 北魏를 세웠다. 宇文部는 北周를 세웠다.


#동주004)契丹人의 종족계통에 관한 기록은 ① 匈奴種 혹은 그 遺種: 『舊五代史』·『冊府元龜』·『宋會要輯稿』 ② 東胡種: 『新唐書』·『玉海』·『文獻通考』 ③ 鮮卑의 遺種: 『新五代史』 의 3종류로 구분된다. 契丹人과 庫莫奚인의 種族系統에 대한 기록이 사서마다 다르고, 심지어 동일한 시기에 편찬된 사서에서 조차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요인은 크게 3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後漢 和帝 永元 年間(89∼104) 北匈奴가 後漢軍의 공격을 받아 서쪽으로 달아난 뒤, 鮮卑가 匈奴의 옛땅을 점령하자 거기에 머물러 있던 匈奴餘種 十餘萬落 모두 스스로 鮮卑라 칭했다는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고대 유목민들은 그 스스로도 종족의식이 분명하지 않았거니와 동시에 종족 융합이 많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둘째, 奚를 일반적으로 突厥族과 그 종족계통이 다르다고 보는 東胡種 또는 匈奴種의 계통이라고 기록한 중국사서에서 이들이 水草를 따라 항상 이동하면서 유목하는 모습을 보고 奚가 突厥과 풍속이 같다고 기록한 것이라든가, 종족은 물론 풍속·관습·사회조직 등이 다른 契丹과 靺鞨의 풍속이 같다고 기록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인의 눈에는 중국 북방의 제 종족의 생활풍습이 비슷해 보였을 뿐만이 아니라 외모에서도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이들의 종족계통을 구분한다는 것은 그대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셋째, 위의 원인으로 인하여 修史者들이 근거한 前代 기록에 대해 명확한 고증 없이 이전의 기록을 그대로 轉寫하거나 史書를 편찬할 당시의 庫莫奚와 契丹의 부락위치만을 보고 추단했기 때문일 것이다(李在成, 1996: 60∼61). 따라서 이들의 종족계통에 대해서는 대체로 庫莫奚와 契丹 모두를 東胡의 후예로서 鮮卑種 또는 鮮卑 宇文部의 일파라고 주장하거나(白鳥庫吉, 1912: 1113), 일부학자들은 頭髮 형태와 葬禮 풍속의 고찰을 통해 契丹人을 匈奴와 鮮卑의 混血種으로 간주하기도 한다(李涵·沈學明, 1985).


#동주005)庫莫奚: 남북조시기에는 庫莫奚, 隋唐代에는 奚라 불리웠다. 東胡의 하나로 饒樂水(지금의 시라무렌강) 유역에 분포하였으며, 유목을 주로 하고, 사냥을 겸하였다. 北魏時期 종족이 점차 번성하여 辱紇主·莫賀弗·契箇·木昆·室得 등 5部로 나뉘었으며, 점차 契丹人으로 同化되었다. 庫莫奚란 명칭은 몽고어의 komagli 혹은 퉁그스어 계통인 solon語 khomugé의 음차로서, 이들 거주지에 사막이 많았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라고 한다(白鳥庫吉, 1912: 1136).


#동주006)庫莫奚란 명칭은 몽골어의 komagli 혹은 퉁그스어 계통인 solon語 khomugé의 음차로서, 이들 거주지에 사막이 많았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라고 한다(白鳥庫吉, 1912: 1136).


#동주007)『遼史』 권63 「世表」: 949에 “…… 保鮮卑山以居, 號鮮卑氏. 旣而慕容燕破之, 析其部曰宇文, 曰庫莫奚, 曰契丹.” 및 같은 책 951에는 “鮮卑葛烏菟之後曰普回. 普回有子莫那, 自陰山南徙, 始居遼西. 九世爲慕容晃所滅, 鮮卑衆散爲宇文氏, 或爲庫莫奚, 或爲契丹.”이라 하여, 이 두 기록에 근거하면, 우문·고막해·거란은 원래 하나의 세력을 이루고 있었으나, 선비 모용부 수장인 모용황의 공격으로 인해 각각 분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주008)奚: 남북조시기에는 庫莫奚, 隋唐代에는 奚라 불리웠다. 東胡의 하나로 饒樂水(지금의 시라무렌) 유역에 분포하였으며, 유목을 주로 하고, 사냥을 겸하였다. 北魏時期 종족이 점차 번성하여 辱紇主·莫賀弗·契箇·木昆·室得 등 5部로 나뉘었으며, 점차 契丹人으로 同化되었다


#동주009)『魏書』와 『遼史』의 기록을 기초로 고막해와 거란이 북위시기부터 언어가 동일하여 300∼400년 후에도 여전히 언어가 상통하였다는 점에서 異種=異部, 同類=同一한 種族을 가리키며, 이에 따라 고막해인과 거란인은 동일한 種族(species)이지만 部族(tribes)을 달리하는 관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고막해와 거란이 정치적인 면에서는 다른 세력이지만 종족적인 면에서는 동일한 계통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王民信, 1971: 26)


#동주010)庫莫奚와 契丹의 거주지역인 大興安領山脈의 동부와 남부의 초원지대는 연평균 강수량이 농경을 가능케하는 하한인 500mm에 근접하고 있다. 이는 牧農複合地帶라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목경제에서 농경부분의 비중을 가늠하는 척도인 가축구성에 있어 소의 비율이 北蒙古에 비해 현저히 높다(金浩東, 1987: 4).


#동주011)5세기 후반 이후 거란부의 영역은 지금의 내몽골자치구 시라무렌 중류 북방의 開魯와 遼寧省 朝陽을 남북으로 잇는 선으로서 庫莫奚와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북으로는 시라무렌을 경계로 地豆于와 접하고 있었고, 동에서는 遼河를 경계로 高句麗 및 勿吉과 접하고 있었다. 남쪽에서는 後燕(384~407), 北燕(409~436)에 이어 436년 北魏가 北燕을 멸망시켜 요서지방을 점령하므로써, 북위의 東北諸族에 대한 경략의 중심지가 된 營州(朝陽) 지방을 경계로 그 북방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후 거란부는 주변의 悉萬丹部 등 諸部族과의 연맹을 이루고 점차 이들이 거란부와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그 세력이 더욱 증대됨과 함께 자연 그 주거지도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479년 시라무렌 유역에 있던 거란 본거지에 대한 고구려의 침입으로 한때 거란의 주력은 大凌河(白狼水) 동방으로 남하하여 北魏에 의탁하기도 하였다. 이후 6세기 말~7세기 초에는 老哈河 유역을 중심으로 동서 500里, 남북 300里라는 그들 고유의 영역을 확보하기에 이른다(李在成, 1996: 89).


#동주012)霫: 東胡의 일종으로 수당시대 潢水(지금의 內蒙古自治區 시라무렌강) 이북에 살았다. 동쪽으로는 말갈, 서쪽으로는 돌궐, 남쪽으로는 거란, 북쪽으로는 오락후와 접해 있었다. 사면이 모두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 주로 수렵에 종사하였다. 赤皮로 옷을 만들어 입었고 언어와 습속은 대체로 거란과 같았다. 唐 貞觀 3년(628) 사자를 보내 조공했다. 후에 거란에 병합되었다.


#동주013)霫國: 東胡의 일종으로 수당시대 潢水(지금의 內蒙古自治區 시라무렌강) 이북에 살았다. 동쪽으로는 말갈, 서쪽으로는 돌궐, 남쪽으로는 거란, 북쪽으로는 오락후와 접해 있었다. 사면이 모두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수렵을 주로 하였다. 赤皮로 옷을 만들어 입었고 언어와 습속은 거란과 대체로 동일했다. 당 정관 3년(628) 사자를 보내 당에 조공했다. 후에 潢水 남쪽으로 옮겼다가 거란에 병합되었다.


#동주014)388년 北魏의 庫莫奚部 공격은 庫莫奚部의 세력 약화를 가져오고, 그것은 契丹部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새로운 독자적인 정치적 집단세력 契丹部가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늦어도 4세기 말 혹은 5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東蒙古의 시라무렌 유역 동쪽에는 契丹部, 서쪽에는 庫莫奚部 두 세력이 각각 독자세력권을 형성하여 병존하는 형세로 변하게 되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李在成, 1996: 115~116).


#동주015)地豆于: 5세기경 大興安領 산맥에서 내몽골 지방 사이에 분포하여, 북쪽으로는 烏洛侯, 서쪽으로는 興安領·柔然과 서로 접해 있었으며, 남쪽으로는 奚·契丹과 인접해 있었다. 479년 고구려 장수왕 때, 고구려와 柔然의 분할 점령 시도가 있었다. 『北史』에는 地豆干國으로 되어 있다.


#동주016)(지두우 분할 모의는) 柔然이 429년과 449년 北魏 太武帝 및 458년 文成帝의 親征으로 타격을 받은 후 제13대 受羅部眞可汗 予成의 치세(464~485) 때이다. 이 시기는 牟汗紇升蓋可汗 大檀의 치세(414~429) 이래 柔然의 중흥기라 할 수 있는데, 당시 柔然은 南朝와 연합하여 北魏를 공격하기 위해 수차례 사신을 파견하기도 하였다(朴漢濟, 1988: 200~201).


#동주017)『隋書』 권84 「奚·契丹傳」: 1881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거란은 실제로 고구려의 침입을 받았으며, 이는 분명 高句麗와 柔然의 地豆于 침략도 모의에만 그치지 않고 실행에 옮겨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예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만약 地豆于 침략이 단지 모의로만 끝나고 실제적인 군사 움직임이 없었다면, 거란이 그들의 오랜 생활터전인 시라무렌 유역을 떠나 굳이 멀리 白狼水 以東으로 남하한다는 것은 유목민족의 특성상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시 高句麗는 勿吉과 北魏의 연결통로인 시라무렌 유역에 일시적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이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勿吉의 對北魏連結路를 차단하려고 했던 것이다(李在成, 1996: 173~174).


#동주018)白狼水: 白狼川, 白狼河라고도 한다. 지금의 遼寧省 大凌河. 慕容이란 말이 몽고어 Bayan(富裕하다, 富者)의 음역이라고 한 주장에 힌트를 얻어 白狼水의 白狼도 어쩌면 Bayan에 가까운 음이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慕容部의 명칭이 白狼水에서 비롯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있다(白鳥庫吉, 1911: 63~70).


#동주019)白狼河: 지금의 遼寧省 경내의 大凌河를 말한다. 水源이 白狼山에서부터 흘러나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주020)松漠: 松漠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송막을 바로 松林沙漠으로 본다(白鳥庫吉, 1912: 1136). 또한 唐 太宗 貞觀 22년(648) 거란부의 수장 窟哥 휘하의 8部를 羈縻하기 위해 설치한 松漠都督府와 南宋代 金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洪皓가 현재의 吉林省 舒蘭縣 小城子 지역에 다녀와 저술한 『松莫紀聞』에 근거하면 북만주도 송막지역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島田正郞, 1979: 183~184). 혹자는 지금의 내몽골자치구 동남부 지역으로 遼東省 서북지방과 인접한 赤峰 이북에서 시라무렌 상류역을 경유하여 興安領에 이르는 일대의 지방이라고 상당히 넓게 정의하고(島田好, 1936: 92) 또는 지금의 내몽골자치구 克什克騰旗 일대라 하여 전자보다 좁은 지역으로 한정시키고 있다(李符桐, 1966: 22).


#동주021)『魏書』에 의하면 登國 3년 5월에 北征을 떠난 道武帝가 6월에 庫莫奚를 大破한 기록이 있다(『魏書』 권2 「太祖本紀」: 22).


#동주022)潢水: 湟水라고도 쓰는데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시라무렌강 및 하류의 西遼河를 말한다.


#동주023)弱洛水: 弱洛水는 饒樂水, 澆洛水, 즉 시라무렌강이다.


#동주024)弱洛水를 老哈河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岡崎文夫, 1943: 337과 林超民, 1990: 297), 『魏書』 「庫莫奚傳」과 「長孫肥傳」 의 기록에 보이는 赤城과 濡源 등의 지명에 의거하여 388년 北魏 道武帝의 庫莫奚 정벌로를 복원해보면, 大同(산서성)부근→張家口(하북성)→獨石口(하북성)→多倫(내몽골자치구)→大興安領南部東麓(내몽골자치구)→庫莫奚(내몽골자치구)로 볼 때, 大興安領南部東麓에서 고막해가 있는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老哈河가 아니라 시라무렌 상류를 건널 수밖에 없다(李在成, 1996: 74~75)고 반박되었다.


#동주025)鐃樂水: 弱洛水 · 澆水 · 潦落水 · 獨洛水 등으로 불린다. 지금의 內蒙古自治區의 시라무렌강을 가리키는 말이다.


#동주026)冷陘山: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扎魯特旗 남쪽의 奎屯山을 말한다. “奎屯”은 몽골어로 “冷”의 뜻이다. 산이 높고 서늘해 거란인들은 한 여름이면 이 곳에서 더위를 피했다.


#동주027)烏桓山: 대체로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阿魯科爾沁旗 북부의 大興安嶺山脈 남단을 가리킨다(馬長壽, 1962: 130~138).


#동주028)陰涼川: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札魯特旗右翼 서북쪽에 있는 陰涼河를 가리키는 것이다.


#동주029)琵琶川: 지금의 遼寧省 凌源縣 남쪽에 있는 지명이다.


#동주030)遼海: 범칭으로는 遼河 유역 및 그 以東 지역 혹은 遼河 上流 일대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동주031)(요해를 열고는) 北燕을 멸망시키고(436) 遼河 유역을 차지한 것을 뜻한다.


#동주032)黃龍: 和龍을 가리킨다. 즉 龍城. 지금의 遼寧省 朝陽縣에 있다. 東晉 咸康 7년(341) 慕容皝이 龍城을 축조하고 이곳으로 천도하고, 新宮을 和龍宮이라 이름 붙였다. 義熙 5년(409) 馮跋이 이곳에 北燕을 세웠다. 北魏 太延 2년(436) 城을 공격하고 和龍鎭을 세웠다. 太平眞君 5년(444) 營州로 바꾸어 설치하였다.


#동주033)黃龍: 遼에서 설치한 縣의 이름으로 치소는 지금의 吉林省 農安縣이다.


#동주034)(화룡에 수자리를 설치하고는) 遼西 일대를 정복하고 和龍에 和龍鎭을 설치한 것을 의미한다.


#동주035)雲中: 北魏에서 설치하였고 治所는 盛樂縣(지금의 內蒙古自治區 和林格爾 서북)이었다.


#동주036)燕과 趙는 北燕·後燕·前趙·後趙의 영토였던 河北地方을 가리킨다.


#동주037)密雲(밀운): 北魏時代 安州의 3屬郡, 즉 密雲·廣陽·安樂 가운데 하나로서 道武帝 皇始 2년(397)에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그 屬縣으로는 白檀·密雲·要陽 3縣이 있었다. 治所는 提攜城이었으며, 이 城은 지금의 古北口 서남 및 潮河의 서쪽에 있었다.


#동주038)安州: 北魏 獻文帝 皇興 2년(468)에 설치. 治所는 燕樂縣(지금의 河北省 隆化縣)에 있다. 北周 때 玄州로 개명되었다. 현재의 북경 북쪽에 있는 密雲의 북방지역이다.


#동주039)營州: 北魏 太平眞君 5년(444)에 설치되었고, 治所는 龍城縣(지금 遼寧城 朝陽市)에 있었다. 관할 구역은 지금 遼寧省 서남부 大凌河, 小凌河, 六股河, 女兒河 유역 일대이었다. 永安(528~530) 말년에 폐지되었다가, 東魏 天平 초에 다시 설치되다. 隋 大業 초에 또 폐지되었다가 唐初에 다시 설치되었다. 萬歲通天 원년(696)에 漁陽縣(지금 天津市 薊縣)으로 치소를 옮겼다. 開元 5년(717)에 다시 치소를 柳城(龍城)으로 옮겼다가 天寶 원년(742)에 柳城郡으로 바꾸었다. 乾元 원년(758)에 다시 營州로 바뀌었다가 이후에 폐지되었다.


#동주040)燕州: 北周에서 北燕州를 바꾸어 설치하였다. 治所는 長寧郡 懷戎縣(지금 河北省 涿鹿縣 서남 70리)이었다. 長寧, 永豊, 昌平의 세 郡을 거느렸고, 관할 구역은 지금 河北省 涿鹿縣, 北京市 昌平縣 일대였다. 開皇 초에 폐지되나 唐 武德 원년(618)에 다시 遼西郡으로 바꾸어 설치하였다. 치소는 遼西縣(지금 遼寧省 義縣 동남 王民屯)이었다. 武德 6년(623) 남으로 치소를 幽州 북쪽 桃谷山(지금 北京市 順義縣 서남)으로 옮겼다. 天寶 원년(742) 歸德郡으로 바뀌었다가, 乾元 원년(758) 다시 燕州로 되었다가, 建中 2년(781)에 폐지되었다.


#동주041)幽州: 前漢時代 13刺史部의 하나로 10개의 郡國을 감찰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後漢時代 감찰구역에서 지방최고 행정구역으로 바뀐 후, 治所를 薊縣(지금 北京城 서남쪽)에 두었다. 西晉時代에는 지금의 遼寧省 일대를 떼어내 平州를 설치하였지만 치소는 涿縣(지금 河北省 涿州市)에 두었다. 北魏 시기에 治所를 薊縣로 바꾸었고, 隋 大業 초 다시 涿縣으로 바꾸었다. 唐 武德 원년(618)에 다시 설치하였는데, 관할 구역은 지금의 北京市와 通縣, 房山區, 大興縣과 天津市 武淸縣, 河北省 易縣, 永淸縣, 安次縣 등이었다.


#동주042)嬀州: 당 貞觀 8년(634), 北燕州를 고쳐 설치했고 처음의 치소는 懷州(지금의 河北省 涿鹿縣 서남쪽)이었으나 長安 2년(702), 淸夷軍城(지금의 河北省 懷來縣 동남)으로 옮겼다. 天寶 원년(742), 이름을 바꿔 嬀州郡이라 했다가 乾元 원년(758), 다시 嬀州라 했다. 오대 때에 可汗州로 고쳤다.


#동주043)楡關: 關隘의 이름으로 渝關이라고도 쓴다. 수 開皇 3년(583) 설치했고 石城縣(지금의 河北省 灤縣 서북, 후에 치소를 지금의 唐山 동북으로 옮겼다.)에 위치해 있다. 일설에는 지금의 河北省 山海關市라고도 한다.


#동주044)隋(581~618): 581년 楊堅이 北周를 대신해 칭제하고 국호를 隋라 하였다. 개황 3년(583) 大興(지금의 섬서성 서안시)에 도읍을 정하고 陳을 멸한 후 전국을 통일했다. 양제 大業 7년(611) 각지에서 일어난 농민반란으로 붕괴되었다. 2대 38년간 지속되었다.


#동주045)回紇: 鐵勒 부족의 하나인데 고대 투르크어로 기록된 위구르(Uyghur)를 전사한 것이다. 지금 中國에서는 維吾爾로 전사한다. 回紇(迴紇: 『舊唐書』) 혹은 回로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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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칸 18-12-03 19:16
   
좋은 정보네요.
감방친구 18-12-03 22:33
   
중국역사지도집(한중 사학계 통설)의
거란(과 해)의 위치와 영역 및 주변 세력도
(지도 출처 : 블로그 도화원)


서진 태강 2년 2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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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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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태화 21년 4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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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 4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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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말 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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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위 무평 3년 5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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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전도 612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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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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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6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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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년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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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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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12-03 22:35
   
동북아역사넷 역대 거란전 국역 취합

1. 위서

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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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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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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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서

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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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당서

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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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jo.d_0016_0199_0070


4. 신당서

거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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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구오대사

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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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오대사

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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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2 18-12-09 14:10
   
이거 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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