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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2-11 17:15
[기타] 성군의 위민치세 (15) 야인정벌 - ① 여진족 개관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881  


조선조에 와서 야인(野人)으로 불리던 여진 집단은 북방민족의 한 계파로서 시대를 지나면서 숙신(肅愼),읍루(挹婁),물길(勿吉),말갈(靺鞨)로 불리우다 고려시대에 와서 여진족(女眞族)으로 불리우며, 거주지는 송화강(松花江) ·목단강(牧丹江흑룡강(黑龍江) 유역과 만주(滿洲) 동부 해안지역 일대에 살았다. 우리 한민족(韓民族)에 대해서는 상고시대에 예맥족(濊貊族)이라 구분하여 불렸다.

예맥족과 북방민족의 여러 지파들의 연합국가(동이족)인 단군왕검의 조선이 스러지고 나서 부여, 고구려가 그 국가를 계승하여 역사를 이어갈 때, 여진의 선조인 말갈족(靺鞨族) 또한 고구려의 지배를 받으며 그 역사를 같이 하였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속말말갈(粟末靺鞨)과 백산말갈(白山靺鞨)은 지금의 랴오닝성(遼寧省) 차오양(朝陽)에 해당하는 영주(營州)로 이주하였고, 대조영이 고구려의 유민들과 흑수말갈(黑水靺鞨)을 이끌고 발해를 건국한 뒤 피지배층으로 복속되었다.

   926, 발해가 멸망하자 이들은 서쪽으로는 요(), 동쪽으로는 고려의 압박과 견제를 받으면서 소부족으로 사분오열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만주지역의 산간지대 및 고려 변방지역 일대에 분산 거주하였다. 쑹화강(松花江)과 헤이룽강(黑龍江) 하류 지역에 근거를 두고 거란에 복속된 말갈족을 서여진(西女眞, 또는 숙여진(熟女眞))이라 하였으며, 거란의 치하에서 벗어나 두만강 유역의 고려 동북방으로 이주해 온 여진을 동여진(東女眞, 또는 생여진(生女眞))이라 일컬었다. 이들은 수렵·어로·목축과 원시적인 농경생활을 영위하기도 하였으며, 동족끼리 서로 세력다툼을 하거나, 고려·요의 국경지역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일삼았다.

   이들중에 흑룡강 이남 지역으로부터 두만강 유역 및 함경도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던 동여진은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면서 고려의 지배를 받을 것을 자청하였다. 이에 고려는 인접 동여진 부족의 거주지역을 기미정책(羈縻政策) 대상 지역으로 편입시켰다. 그런 다음 이 지역 내에 주(()을 설치하고 그 부족들을 고려의 호구대장(戶口臺帳)에 입적시키되, 여진인들이 자치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그들을 고려의 간접적인 영향권에 들게 하였다. 그리고 영구 귀화인(歸化人)에 대해서는 가옥과 토지를 주어 살게 하였다.
    또한, 고려는 여진의 추장이나 유력자들에게 관직과 생활필수품을 제공하는 등의 선무공작(宣撫工作)을 전개하였다. 이에 여진은 고려에 복종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조공무역(朝貢貿易)을 통한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여진인들은 이러한 물질적 욕구(物質的慾求)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에는 수시로 고려에 무력도발(武力挑發)을 자행하여 변경지역에서 빈번하게 소요를 일으켰다.
    고려는 여진의 이러한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서 수세적 조치(守勢的措置)와 공세적 조치(攻勢的措置)를 조화있게 운용하는 양면정책(兩面政策)을 구사하였다. 압록강 하류로부터 동해에 이르는 변경지역 일대의 요지에 다수의 요새를 구축하여 여진의 침략을 방어할 태세를 강화하는 한편, 그들의 도발행위(挑發行爲)에 대해서는 강력한 무력응징(武力膺懲)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강온(强穩) 양면의 정책에 의하여 고려는 국초 이래로 대여진 관계에 있어서 항상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1세기 초엽에 여요(麗遼)전쟁이 종식된 이후로 이들에 대한 고려와 요의 통제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이 틈을 타고 흑룡강 연안의 동여진 부족인 완옌부(完顔部) 추장 영가(盈歌)가 여진족을 통합, 북간도(北間島) 지방을 장악한 뒤 두만강까지 진출하였다. 1104(숙종 9) 영가의 뒤를 이은 조카 우야슈[烏雅束]는 더 남하하여 고려에 복속한 여진부락을 경략하였다. 이때 고려에 복속한 여진인으로 완옌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은 무리가 있어 우야슈는 이들을 추격, 함경도 정평(定平)의 장성(長城) 부근까지 진출하여 고려군과 충돌하였다. 고려에서는 문하시랑평장사 임간을 보내어 우야슈를 정벌하게 하였으나 실패하고, 다시 추밀원사 윤관(尹瓘)을 보내 겨우 화맹(和盟)을 맺었다.

   1107(예종 2) 고려는 별무반(別武班)을 편성하여 윤관을 도원수로, 오연총을 부원수로 하여 군사 17만을 동원, 함흥평야 일대의 여진족을 토벌하고 북청(北靑)까지 진출하여 함주(咸州)를 중심으로 9성을 쌓았다. 또한 남방의 민호를 옮겨 9성에 이주시켰으며, 특히 길주성(吉州城) 안에 호국인왕사와 진국보제사를 창건하고 개경으로 개선하였다. 그러나 9성을 쌓은 뒤 이를 방어하기가 어려운데다가 여진족이 9성을 돌려달라고 애원하여 9성을 쌓은 지 1년 만에 여진족에게 돌려주었다.
   그 뒤 아구다(阿骨打)가 여진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여 1115년 국호를 금()이라 칭하고, 1117년 고려에 형제관계를 요구하여 왔고, 1125년 요()를 멸망시킨 뒤에는 여진의 금제국이 만주를 비롯한 회수(淮水) 이북의 북부 중국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금제국은 고려에 사대(事大)의 예를 강요하고 송나라와의 교류에도 간섭하였다. 이로서 당시 고려의 집권자 이자겸은 금나라와 타협하게 됨으로써 이후 고려의 고토회복은 물거품이 된다.
   1234년 다시 몽고족의 원()제국이 중국 대륙을 장악하자, 여진족은 원주지인 만주로 귀환하였다. 그로부터 16세기 후반 누루하치(努爾哈赤)가 후금(後金)을 잇는 청나라를 세울 때까지 약 4세기 동안 여진족은 만주지방에서 여러 갈래의 소부족으로 분산되어 동족끼리 세력다툼을 일삼으면서 수렵·어로·목축과 원시적인 농경 생활을 영위하였다.

북방 알타이(Altai, 몽골어로 황금의 산이란 뜻)에서 내려온 퉁구스족(러시아인들이 시베리아를 강점하면서 붙인 명칭)은 나라를 세울 때마다 알타이라는 말이 가진 의미를 나라 이름에 표현했다. 알타이는 밝은 쇠붙이혹은 해 뜨는 곳’, ‘태양처럼 밝다라는 뜻이다.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하고 아사달에 도읍을 정했을 때도 그랬다.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역시 알타이를 뜻한다.
   퉁구스족은 스스로를 쥬신(Jusin, 珠申), 쑤썬(Susen, 肅愼), 쥬르젠(Jursen, 女眞) 등으로 불렀다. 이것은 모두 조선에서 나온 말이다. 쥬신족이라고 통칭하는 상고시대의 조선은 한민족을 포함한 알타이어계 퉁구스족 모두를 지칭하는 것이다. 만주지역의 알타이계 퉁구스족은 지금도 말갈을 모허’, 여진을 쥬르젠이라고 부르며 자신들의 조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을 조상신으로 숭배하며 매년 제사를 지낸다. 또한 금나라와 청나라는 물론이고 고구려도 자신들의 역사로 생각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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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12-11 20:30
   
글에 오류가 있어서 지적합니다

1) 숙여진은 현 요심 및 요동반도에 해당하는, 동요하 서남지역이고, 생여진은 동요하 바깥 지역입니다. 이는 무경총요와 요사에서 확인이 되는 것으로 제가 이미 다룬 바 있습니다

2) 흑룡강 이서, 연해주 지역의 여진족들은 고려가 기미 지배를 한 게 아니라 주현을 설치해서 직접 영토에 편입한 겁니다 위의 본문 설명을 잘 보면 글 작성자가 스스로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오래도록 기미지배, 즉 간접지배 상태에 있던 것은 하얼빈 지역의 여진, 훗날 완안부로서 새 정체성을 띠게 된 지역입니다 이미 영가시절부터
감방친구 18-12-11 20:32
   
4) 흑수말갈은 발해 건국세력이 아니라 가장 오래도록 발해에 저항한 세력입니다 이들로부터 여진족이라는 명칭이 발해 후기부터 나타나며 후에 금나라를 세우는, 여진족 통합 주도 세력이 이 흑수말갈, 즉 흑수여진입니다
감방친구 18-12-11 23:06
   
아마르칸 18-12-26 18:40
   
좋은 자료네요.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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