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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01 17:53
[기타] 조선 개화, 악몽으로 시작하다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861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952220&memberNo=1978994

조선의 개화는 끔찍한 악몽과도 같은 과정을 거치며 이루어졌다. 
Tonghaks(동학)으로 시작해서 청일전쟁을 거쳐 종국에는 왕후가 시해되었다. 
사실 외세에 기댄 성공 방정식에 왕후가 의문을 품은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동학이 성장했던 요인에 대해 사람들은 중국과 전쟁을 하고 싶어 하는 외부 세력이 이를 부추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독립에 대해서라면 조선은 사실 전혀 생각조차 품지 않고 있었다.

조선이 중국을 바라보는 태도는 마치 자녀가 부모를 생각하는 것과 같았기에, 이러한 관계를 끊는다는 것 자체가 아주 이상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 부모는 조선에 거의 간섭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있지 않았던가.

사실 조선은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의 영광스런 중심인 위대한 중국으로부터 공인받았다는 것을 아주 영광스럽게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러므로 ‘조선에게 독립을!’이라는 구호는 이곳 동방의 책략가들로부터 나온 말로, 조선에 관심을 나타내던 뭣 모르는 서양인들을 따돌리기 위한 방책이었다.(청일양국강화조약의 제1조는 '청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 따라서 자주독립에 해가 되는 청국에 대한 공헌(貢獻), 전례(典禮)등은 장래에 완전히 폐지한다.'이다. 청으로부터 조선을 독립시켰다는 명분을 얻게 된 일본은 노골적인 내정 간섭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구호는 여우가 어미 닭이
제 병아리를 품은 걸 보고 저러다가
닭이 병아리를 짓눌러 죽이겠다며,
병아리를 구출한답시고 닭장을
습격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부담이 조선의 북쪽 지역에 지워졌다. 평양은 황폐화되었고, 그곳으로부터 수 킬로미터 떨어진 시골까지도 전쟁이 남긴 악취가 진동하는 버려진 땅이 되고 말았다. 

결국 청나라 군대는 압록강을 넘어돌아갔고, 조선은 일본의 명령을 받는 정권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지배력을 확대하던 일본의 앞길을 끝까지 막아내던 사람이 있었다.

일본은 보낼 수 있는 가장 유능한 공사를 파견했지만, 자신이 외통수에 몰려 당했다는 걸 확인한 순간 그는 싸움을 포기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일본 공사로서는 제 나라의 안녕을 위하여 자신과 자신의 가장 유능한 보좌진을 교묘하게 제압했던 저 가녀린 체구의 조선 왕후의 용기와 날카로움 그리고 여성스러움을 경탄할 수밖에,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대체 누가 이 공명정대한 시대에 이러한 비열한 행위가 행해졌다고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문명을 바로 세우겠다는 거짓 명분을 앞세워 별 장식과 금술, 견장으로 치장한 서양식 제복을 입은 사백 명의 남자가 어느 밤 궁궐 담을 넘었다. 그들의 목표는 의지할 데 없는 한 여인을 죽이는 것이었다. 바로 조선의 왕후를. 

1895년 10월 8일,
궁궐 쪽에서 들려온 총성에
나는 이른 아침잠에서 깨고 말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가보았더니
...(중략)...
왜군 2개 중대가
궁궐 안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보았다.
...(중략)...
우리는 대체 이 쿠데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중략)...
그리고 그날 늦게 왕후가 시해되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조선, 그 마지막 10년』, p259

나는 사백 명의 장정들 중 남자다운 기상을 가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에, 또 명령을 내리는 장교에서부터 맨 뒤 열의 졸병에 이르기까지 사백 명 모두가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겁쟁이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의문의 여지가 없는 진실은 이러했다.

그들은 저 ‘용맹스러운’ 사무라이 칼로 왕후가 죽을 때까지 난도질한 후에 시신에 석유를 붓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태워버렸다. 그들은 왕후를 틀림없이 제대로 처리했다고 확신하기 위해 궁녀를 서넛 더 죽인 후에야 행진으로 빠져나왔다. '아! 고결한 사백 군사여!'  (‘용맹스러운’, ‘고결한 사백 군사’는 반어법으로 일본의 행위를 비꼬고 있다. 반어법은 저자의 문장에 자주 사용되는 은유다.)

조선 국민들은 경악했고, 왕은 1895년 10월부터 1896년 2월까지 볼모가 된 채 잡혀 있었다. 그러던 왕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마침내 탈출했는데(아관파천), 진실을 알고 있던 문명 세계는 모두 만세를 외쳤다!


을미사변, 울고있는 고종을 알현하다

조선은 이제 확실히 일본의 손아귀 안으로 들어갔다. 고종은 하는 수 없이 조선의 독립을 천명했다. 고종을 포함해서, 중국을 아주 높이 받들어 온 선대 모든 왕들의 그 조선 문명을 들여다보면 사실 왕은 독립할 생각이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에게 중국이란 ‘대국’ 혹은 ‘Chun-guk(중국)’으로, 위대한 중심이 되는 왕국이었다. 반면 일본은 난쟁이들이 사는 허접한 땅, Wai-guk(왜국)이었다.

그리고 소위 경장(=갑오개혁)이 뒤따랐다. 넓은 소매를 없애고, 긴 담뱃대를 금지했다. 국민들에게 검은 옷을 입을 것을 명령했다. 조선은 검은 염료가 없었으므로 검은 옷감은 일본에서 들여와야 했다. 

이 모든 것은 조선 사람들에게 엄청난 치욕이었고, 일본 사람들을 그 어느 때보다도 증오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손에 쥔 것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일본의 미숙함을 다시 한 번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렇게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 1895년 3월부터 1896년 10월까지 계속되었다.

왕보다도 더 강한 기질을 가지고있다고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왕후는 일련의 거짓 경장을 강력하게 반대했고, 자신의 나라가 일본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것에 결연히 저항했다.

몇 년 전 왕이 사형을 언도하여 관직을 박탈했던 자들을 압력을 행사하여 다시 정부에 복귀시킨 사건은 약한 이웃 나라에 대한 일본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드러내는 것이었다.(갑신정변을 일으켜 왕을 협박하고 자신들의 정부를 수립하려다 실패한 후 사형을 피해 일본으로 도망간 역적들을 일본이 조선 조정의 핵심 관료로 복귀시켜 왕에게 치욕을 안기고 꼭두각시로 만든 것을 가리킴)

일본은 Soh Kwang Pom(서광범, 갑신정변의 주역) 및 일당들을 사면하라고 왕에게 강요했다. 왕이 증오하고 두려워했던 자들을 다시 관료로서 왕의 면전에 서게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모순은, 오직 모순적인 동양적 사고방식 위에서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추방된 자들이 해외에 나가서 보고 배울 수 있었던 유능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들의 손으로 경장을 실시하도록 했다는 것은 잔인하다고까지 하지 않더라도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가장 졸렬한 방식이었다. 경장에 대한 조선인들의 시선은 완전히 빗나가 있었다.

1895년 10월 8일(양력), 궁궐 쪽에서 들려온 총성에 나는 이른 아침잠에서 깨고 말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가보았더니, 많은 조선 사람들이 머리채가 헝클어진 채 우왕좌왕 열린 옆문으로 궁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왜군 2개 중대가 궁궐 안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보았다. 30분 전,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 Hong(홍계훈 - 임오군란, 동학혁명 진압에 참가하였으며, 임오군란 당시 명성왕후를 자신의 동생으로 속여 피신시킨 공을 세웠다. 을미사변 때 일본군을 막다가 죽었다.) 장군이 총에 맞았다고 했다. 우리는 대체 이 쿠데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왜군이 궁궐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늦게 왕후가 시해되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조지 허버 존스 씨와 나는 다이 장군, 르 장드르 장군과 함께 이 참혹한 미스터리를 분석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왕의 처소 근처에 대기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전하의 권위가 떨어지고 곤경에 처하신 것을 지켜보자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전하는 중전마마를 생각하며 울고 계셨다. 일본인이 중전을 죽였다고 왕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때에 전하를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인가! 전하께서는 왕후의 복수를 하는 자에게는 자신의 머리칼이라도 잘라 신을 삼아주겠다 했다.

하지만 궁궐은 사방이 막혀 있었다. 왜군은 궐문을 지키고 있었고, 조선인 반역자들은 왕을 포로로 잡고 있었다. 강대한 힘을 가진 국가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는 이상, 아무 것도 그를 구할 수 없었다. 

러시아, 영국, 미국만이 매일같이 이 사태를 비난하고 최대한의 유감을 표명할 뿐이었다. 전하의 아버지와 형도 반역자임이 분명했다.

시해범들은 체포되어 일본으로 호송되었다. 재판에 부쳐진 시해범들이 무죄로 석방되자, 그의 철천지원수는 바로 wai-in(왜인) 혹은 왜군이라는 것을 왕은 다시 한 번 절절히 느꼈다. 

비록 일본 정부는 자신들은 을미사변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지만, 이 살인자들이 저지른 일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이러한 행위는 조선 사람들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의 마음에도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는데, 일본 정부가 진실하다는 것은 산신이나 귀신조차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왕실 사람들과 세자는 연금당한 채 암울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탈출할 수 있는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궐문으로 하루 몇 대의 여성용 가마가 출입하긴 했지만, 왕실 사람들은 절대 나올 수 없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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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19-01-06 10:31
   
명성황후가 아직 살아있을때 맞는가 확인하려고 옷 벗기고 성적으로 능욕했다는 말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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