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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04 18:05
[한국사] 한국 역사학계의 뿌리 이병도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2,050  








1919년 3·1운동 후 일제는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부임한 조선 총독 제등실(齊藤實)은 교활하게도


조선 사람들을 반일본 사람으로 만들려고 이른바 '교육시책'에서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듬으로써 민족혼, 민족 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그들 조상들의 무위, 무능, 악행 등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조선의 청소년들이 그들 조상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니 그 때에 일본 사적, 일본 인물, 일본 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半) 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식민사관의 폐해는 반도사관(半島史觀) 주입, 고대사 말살, 특히 단군의 신화화, 한사군 설치, 광개토왕 비문의 조작 등이다.


우리는 해방 이후 다른 분야에서는 일제의 질곡으로부터 풀려 나왔지만 국사에 있어서만은 아직도 일제의 식민사관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참고적으로 식민사관에 대한 내용이 정리된 <다물(多勿)> 147∼152 쪽



박기자 : 좋습니다. 그럼, 식민사관의 정의부터 말씀해 주세요.

 

임성국 : 1981년 <다물>지 12월호에 최만주 선생이 손수 쓰신 '식민 사관이란 무엇인가'하는 권두 논문을 바탕으로 해서 정의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한국의 독립을 부정하고 한국을 일제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려는 목적으로 한국 역사를 위조했습니다. 그 위조한 역사를 한국민들에게 강제로 반복 교육함으로써 일제의 침략 정책에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유도하여


한민족의 자주적인 민족성을 완전 거세하여 식민지 백성으로 길들어지도록 획책한 것이 바로 식민사관입니다.




일제의 식민사관을 성립시키는데는 꼭 필요한 구성요건이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상고사(上古史)와 국조(國祖)의 부정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민족이 중국 대륙과 만주를 지배했던 상고시대의 역사를 아예 쏙 빼버리고 국조인 단군과 그 윗대의 환웅과 환인 시대를 부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국 역사의 시작을 '위만 조선'과 거짓으로 꾸며낸 '한사군'에 맞춤으로써 '고조선의 건국 이념'도 '국조'도 '장구한 역사'도 없애 버릴 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소위 한사군 즉 중국 한족(漢族)의 식민지였던 것처럼 꾸몄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대에 역시 거짓으로 꾸며낸 일본 통치부(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에 상륙했던 것처럼 역사를 날조하는 가설을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한민족은 스스로 나라를 세운 일도 없었고, 고유문화도 없었고,


한반도는 주인없는 미개지였던 것처럼 조작하여 침략자의 한국 강점을 합리화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동양사의 주체였던 한민족의 역사를 한반도 안으로 압축해 버리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발해와 통일 신라가 양립했던 우리 민족의 남북조 시대를 대동강 이남으로만 줄여버리고, 대륙에서 흥망했던 고구려와 대진(大震,발해)의 국가적 활동을 우리 민족사에서 아예 없애 버리고,


고구려와 대진(발해)의 뒤를 이은 대금, 대청을 말갈 또는 여진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민족의 한 갈래가 아닌 것처럼 꾸며내어 대금, 대청과 그 국가적 활동을 우리 민족의 활동사에서 제거하려는 논리로, 우리 민족사를 대륙에 기반을 둔 강대국이 아닌


대동강 이남만의 반도내의 소국의 역사로 만들려는 음모입니다.


셋째로 우리 민족은 뿌리도 없는 유랑민[이병도의 전국유이민(戰國流移民)설]으로서 무능하고 부패하고 민족 분열을 일삼 는 망국 근성의 민족인 것처럼 자타가 공인하도록 역사를 날조했습니다.


 

예컨대 삼국사는 민족 분열, 동족 상잔의 역사이고, 고려사는 기강없는 음탕한 역사이고, 조선사는 탐관오리, 사색당쟁으로 일관한 망국의 역사로 만들어 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첫째, 뿌리도 임자도 없었던 근본부터가 중국, 한(漢)의 식민지였던 나라,

둘째, 반도 안에 움추린 채 기를 못폈던 약소국,



셋째, 예로부터 피정복민인 무능하고, 부패하고, 분열하고, 민족 상잔의 망국 근성을 가진 민족으로서 스스로는 발전할 수 있는 추진력이 없는 정체된 사회 속에서 살아온 미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독립할 능력도 없는 한갓 고깃덩어리가 열강의 침략 야욕만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평화를 파괴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동양 평화를 유지할 사명을 띤 일본이 한국을 보호하거나 식민지로 통치하는 것이 합당할 뿐만 아니라,


한국 민족의 행복도 증진시킬 것이라는 것이 바로 일제 식민사관의 골자입니다.



일제의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은 이처럼 철두철미하게 사전에 면밀하게 준비되었는데,



 그 첫단계로 역사 정복(식민사관),


둘째로 종교 정복(민족종교 탄압 신사참배 강요),


셋째로 국어와 한글 정복(일어를 강제로 사용케하고 한글을 못 쓰게 함),


넷째로 전통 정복(창씨 개명)을 총독부의 정책으로 강행했습니다.


대략 위와 같은 식민 통치 각본의 원전이 바로 다름아닌 식민사관으로 위조된 조선사입니다.





이 가짜 조선사는 모두 6편으로 되어 있는데


신라 통일 이전을 제1편으로 하고


신라통일 시대를 제2편,


고려 시대를 제3편,


조선 시대를 제4, 5, 6편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짜 역사의 역점이 안팎으로 교묘한 짜임새를 보여 주고 있는데에 우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즉 겉보기에는 그럴듯하게 근세와 근대사의 중요성이라는 미명으로 조선 왕조사에 역점을 둔 것은 실상 반도 속에 움추려 기를 못 폈던 반도속방사관(半島屬邦史觀)을 주입시키려는 음모입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이병도씨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수사관보'로서 이러한 고대사 날조 작업의 주역으로 관여했던 사실은 우리 사학계가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수수께끼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 사학계 현역 교수들의 대부분이 그의 문하생들로 단단한 인맥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며 더구나 그 정예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일제의 식민 사관을 철저히 답습하였는데, 이병도의 진두 지휘하에 식민사관에 중독된 사람들을


하루 빨리 재교육시켜 진정한 민족 사학자로 재육성해야 한다는 것이 최만주 선생의 한결같은 주장이었습니다.






박기자 : 임 선생님, 그런데 저희 세대에게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대목이 있는데요.


도대체 어떻게 해서 해방된 지 40년이나 되도록 그야말로 식민사학자들이 사권(史權)을 휘어잡고 독립된 대한민국 땅 안에서 그처럼 활개를 칠 수 있었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박기자 :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임성국 : 우선 첫째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민족 사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박은식, 신채호 같은 분은 이미 일제의 탄압으로 타계한 뒤였고 그 뒤를 이은 사학도들은


독립운동가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는 처지였는데 이러한 독립 투사들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해방이 되자 우리나라 사학계에는 일본의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제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하던 이병도나 일제가 정책적으로 식민사관의 나팔수 즉, 일제의 주구로 길러낸 친일 사학자들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민족 사학자가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이 바로 중국 북경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정인보 선생이었습니다.


이병도 따위는 정인보 선생 앞에서는 인격에 눌려 제대로 氣도 못 펴고 쩔쩔매는 판이었습니다.


정인보 선생과 이병도씨는 말하자면 해방된 한국의 사학계의 양 거두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총독부의 조선사 날조에 적극 가담했던 친일 사학자요, 또 한 사람은 독립투사요 철두철미한 민족 사학자였으니 두 사람의 학설은 사사건건이 대립할 수 밖에 없었죠.


이 팽팽한 대립이 그대로 어느 정도 계속되었더라면 이병도가 서울대학에서 양성한 제자들과 정인보 선생이 연세대에서 길러낸 제자들이 거의 비등한 숫자로 막상막하의 대결을 할 수 있게 되었겠지만


불행히도 정인보 선생은 6·25때 괴뢰군에게 납북되어 가시는 바람에 그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육당 최남선씨가 있었지만 그분은 일제 때 일본에 부역을 했기 때문에 반민특위에 걸려서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는 처지였죠.


그러니까 대항할 만한 적수가 없어지자 이병도의 독무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서울대라는 명문 대학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해 내게 되었고 그 제자들로 구성된 학회의 회장과 한림원 원장까지 맡게 되자 한국 사학계에서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카리스마적 독재자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병도씨는 그 때까지도 고령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학계의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어서 그의 승락이 없이는 대학 교수는 말할 것도 없고


전임 강사 자리 하나도 얻을 수 없는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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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 19-01-04 18:48
 
전, 단국대 사학과 윤내현교수의 『우리 고대사 상상에서 현실로』중에서 -

필자는 원래 중국 고대사를 전공한 사람으로 중국의 사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리 고대사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뒤 그러한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1980년대 초부터 우리 고대사에 잘못된 점이 많음을 지적해 왔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연구한 결과였다.


잘못된 역사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것들을 지적했던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발표를 하면서 학계에서 박수는 받지 못하더라도 함께 연구해 보자는 정도의 관심은 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너무 순진한 것이었다.


필자가 펴낸 《고조선 연구》와 《한국 열국사 연구》를 비롯한
여러 권의 단행본과 60편이 넘는 우리 고대사에 관한 논문들은 필자의 독자적인 연구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러한 점을 애써 외면하고 순수한 연구자를 “사상범”이나 되는 것처럼 음해한 것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필자를 비정통 역사학자인 것처럼 몰아붙이기도 하였다.
     
스리랑 19-01-04 18:51
 
우리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은 학자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낼 필요가 있다.
그를 안아주는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그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경우라도 그것을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한
협력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비난의 성격을 지녀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 역사 연구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역사는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풍토가 아쉽다. 새로운 주장을 받아주는 아량이 부족하다.

학문을 벗어난 공격, 심지어는 인신 공격까지도 서슴없이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 가운데 하나겠지만 이래가지고는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어느 학술 발표장의 청중들 앞에서 필자는 한 대선배 학자의 모진 질타를 받았다.

“땅만 넓으면 좋은 줄 알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날 중국 문헌을 검토한 결과 고조선의 영역이 종래의 우리 학계에서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었다는 견해를 발표했던 것이다.

지금은 고조선의 영역을 한반도와 만주를 포괄한 지역으로 보는 것이 우리 학계의 통설처럼 되어있지만 당시 우리 학계에서는 고조선을 대동강 유역에 있었던 아주 작고 미약한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에 대한 압력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던 학교의 총장 앞으로 투서가 들어왔다. 필자를 학교에서 쫓아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대 선배 학자의 학설을 따르지 않는 것은 선배에 대한 예의를 지킬 줄 모르는 행동인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교육자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필자는 학교 입장이 난처하다면 학교를 그만 둘 수도 있다는 의사를 표명하였지만
총장은 새로운 학설을 내놓는 것이 학자가 할 일이 아니겠느냐면서 오히려 필자를 격려해 주었다.
그 뒤 어느 정보 기관에서 전화를 받았다.


우리가 다 기억하는 바와 같이 1980년대는 그러한 곳에서 전화가 온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는 시대였다.
확인할 것이 있으니 만나자는 것이었다.
          
스리랑 19-01-04 18:54
 
필자의 연구실에서 만나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곤란하다면서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가 확인하고자 했던 것은 필자가 주장하고 있는 우리 고대사의 내용이었다.


필자가 북한 학설을 유표하면서 학계를 혼란하게 하고 있으니, 조사해 달라는 학계의 요청이 있어서 국장에게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고조선에 대한 연구는 북한이 남한보다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었고 고조선의 영역을 더 넓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고조선의 영역을 만주까지 넓게 잡자 이것을 북한 학설을 유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모함했던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고조선의 영역을 만주까지로 본 것은 신채호, 장도빈, 정인보 선생 등의 사학자들이


이미 오래 전에 제기한 바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 학계에서는 오히려 그것을 외면해 왔던 것이다.

필자가 제기한 견해는 중국 고대 문헌을 검토하면서 얻어낸 것으로서 고조선의 영토를 넓게 보다는 점에서는
민족주의 사학자들이나 북한 학자들의 견해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내용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일치한다 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역사 연구는 사실을 밝히는 일이므로 그것이 사실과 일치하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중요한 것이다.
사실과 일치한 연구 결과는 모두가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양심을 걸고 말하지만 필자가 우리 고대사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 것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이나
북한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학문 연구를 하는데 강단과 재야라는 분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러한 구분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지만 필자는 역사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까지 받았고


외국의 명문 대학에서 공부도 했으며 현직이 대학 교수였는데 필자를 강단 사학자에서 제외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 필자가 일부 사학자들을 식민 사관을 가진 학자라고 비난했다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기도 했다.



필자는 그런 말을 하거나 그런 글을 쓴 적이 없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남을 칭찬은 하지만, 비방이나
               
스리랑 19-01-04 19:03
 
비난은 하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필자 개인으로 말하면 역대 어느 정부나 정권 또는 기관이나 집단에서 연구비나 행정 지원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러한 말을 유포하는 사람들이 정부나 정권 또는 기관이나 단체한테서 연구비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혜택을 많이 받아왔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요즈음은 우리 고대사를 논하거나 민족의 가치관 또는 민족 정체성의 중요성을 말하면
세계화의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남북 통일을 위한 민족 동질성 회복의 차원에서나, 우리 문화와 외래 문화가 접촉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볼 때 세계화가 심화될수록
우리 문화를 유지 발전시키고 우리 가치관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데도 말이다.

이제 필자를 비방하거나 공격한 학자들에게 한마디 묻고 싶다.

필자가 고조선을 포함한 우리 고대사에 대해 새로운 견해를 내놓기까지 그대들은 무엇을 했는가?

우리 고대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지난날의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침묵만을 지켜왔는가?

그렇다면 어찌해서 필자가 새로운 주장을 한 뒤에야 그대들도 기존의 내용과 다른 주장을 하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바로 기존의 고대사 내용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 아닌가?

지금에 와서 필자가 이렇게 그 동안의 사정을 밝히는 것은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을

필자의 체험으로 알림으로써 정의롭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외롭지 않게 해주자는 뜻에서이다.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회를 만들자는 뜻에서이다. - 윤내현, 『우리 고대사 상상에서 현실로』中 -
스리랑 19-01-04 19:11
 
『식민사학이 지배하는 한국고대사』의 저자 이희진박사는 청산해야 할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을 때,

역사가 어떻게 뒤틀린 길을 가는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분야가 고대사 학계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이병도가 키운 제자들이 대한민국 학계를 장악하고 역사학을, 기득권을 수호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키운 결과가

바로 현재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기득권 수호 투쟁이 어떻게 학계의 신진대사를 방해하고, 학자들을 패거리 집단으로 전락시키며,

저잣거리의 시정잡배만도 못한 짓을 하면서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안 느끼는 파렴치한이 되고 있는지를

저자는 처참한 내부 고발자의 심정에서 진술하고 있다.



이들에게 연구 기금과 학회지 발간 및 활동비를 지원하는 관료들이 결국 이들과 야합하게 되는 과정을

이 책에서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국민의 혈세가 무사안일과 출세주위에 물든 관료들의 손을 통해 학계 기득권 세력에게 선심 쓰듯 뿌려지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충격적인 모습으로 다가갈 것이다.

또 이러한 학계 기득권 세력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언론이다.

이희진박사는 자연과학을 전공하려 들어갔던 고려대학에서 인문학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제 발로

역사학을 전공하는 가시밭길로 뛰어들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면서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스리랑 19-01-04 19:16
 
하필 역사학 중에서도 가장 험악한 고대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그 와중에 못 볼 꼴을 많이 보게 될 고대 한일관계사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다.

연구성과도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한 『가야 정치사연구』부터 『가야와 임나』,

『거짓과 오만의 역사』등 그 분야에 집중되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고대사연구자들이

얼마나 일본의 연구에 의지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뭘 모르던 시절,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되는 미천한 신분을 깨닫지 못하고

알고 있는 내용을 여기저기 발설한 죄로 지금까지 왕따를 당하고 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도 이러한 인생역정과 관계가 깊다.
스리랑 19-01-04 19:20
 
식민사학은 어떻게 우리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나?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교수를 지낸, 역사학계의 원로 김용섭 선생님께서 발간하신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라는 회고록에서 해방 이후 어떻게 식민 사학이 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으면서

아직까지 강단 권력을 휘두르며, 우리 역사와 민족을 좀먹게 했는지를 잘 증언해주신 부분이 있어 요약해 보았습니다.




6.25전쟁 이래로 남에서 제기되는 역사의 편찬 문제는, 아직은 깊은 연구에 기초한 식민주의 역사학의 청산 없이, 일제치하의 역사학자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 학자들은 일본인 학자들에게 역사학을 배우고, 그들과 더불어 학문 활동을 같이해온, 이른바 실증주의 역사학 계열의 학자들이 중심이었다.(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p35)


따라서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은 역사학계의 원로로서 주요 대학의 교수직을 독점하였으며, 그 저술은 역사학계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가는 자산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중심이 되었던 것은 이병도의 『조선사대관』과 그가 이끄는 진단학회의『 한국사』(전 7권)이었다.(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p35~36)


해방이 되었을 때, 서울에는 전통적 역사학에 기초하여 우리 역사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신채호 계열의 정인보, 안재홍등 민족주의 역사학 또는 신민족주의 역사학의 학자가 건재하고 있었다...중략...

그렇지만 6.25전쟁 이후에는 이들 모두가 납북 또는 북상을 하였고, 따라서 그 학문적 전통이 대대적으로 계승 발전되기는 어려웠다.(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우리나라 한국고고학을 이끌었다고 불리는 김원룡이라는 분이 있다. 전 서울대 교수신데 쓰에마쓰(末松保和) 라고 불리는 도쿄 극우파 국사학과 교수를 공항까지 마중 가서 서울대로 모시고 다녔다고 한다.


이 분이 한 짓이 원삼국론이다. 중국이 지금 북한을 유사시 먹기 위해 내는 이야기로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철기문화를 부정하면서 철저하게 우리나라를 남한에 가두게 하는 이론이다.(김용섭, 역사의 오솔길을 가면서)


역사학의 거두로 불리는 이병도 교수 이야기를 해보겠다. 이 분은 더 심하다... 이 분은 일본 정부에 돈 받아서 우리나라 역사왜곡에 힘을 쓰셨다. 그 덕에 지금 우리가 그 왜곡된 내용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우리나라 역사교육을 장악하고 있고 그들과 조금 다른 학자들에게는 이단아, 원색 비난으로 대응하고 있다.”
     
스리랑 19-01-04 19:23
 
김용섭(80) 전 연세대 사학과 교수의 회고록에 따르면 학과 동료 교수이기도 한 고故 한우근과 김철준 교수에게 각각 두 번씩 호된 질책을 받기도 했다.

“김철준 교수가 한 번은 나를 보고 웃으시며,‘김 선생, 김 선생 민족주의는 내 민족주의와 다른 것 같애’,

‘예, 그런 것 같습니다. …’, 그 다음은 노발대발하시며, ‘이병도 선생에 대해서 무슨 글을 그렇게 써!’하시며 질책하셨다. 마치 부하 직원이나 제자를 대하듯 나무라셨다. 전자는 경고성 발언이고 후자는 절교성 발언이라 생각되었다.”(770쪽)
 

한우근은 여러 사람이 동석한 가운데 김 교수에게 “김 선생, 우리 이제 민족사학 그만하자.”고 했다고 회고했다. “



“(한 번은) 너덧 명의 중년ㆍ노년 교수가 내방하였다.

노크를 하기에 문을 열었더니, 김원룡 교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제 때 경성제대에서 내가 배운 스에마쓰(末松保和) 선생님인데, 김 선생 강의를 참관코자 하시기에 모시고 왔어요. 김 선생 되겠지?’ 하는 것이었다.”(768쪽)


스에마쓰는 조선총독부 관리이자 경성제국대학 교수로서 임나일본부설을 체계화하는 등 식민주의 역사학을 제창하고 수립한 중심인물로 꼽히며, 당시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교수인 김원룡은 경성제국대학 시절 그의 제자였다.

이런 식으로 학교 안팎에서 압력이 거세지자 “그리하여 나의 문화 학술운동은 사실상 끝이 났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서울대학교의 관악산 이전을 계기로 나도 이 학교를 떠났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농가무테 19-01-04 19:25
 
저런 식민사관에 빠진 역사학자도 이유중 하나지만..  우리나라 실록처럼 빼도 박도 못하는 기록물이 있기에 객관성이 중요 기준이 되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합니다..  일본 같은 나라는 정사 자체가 없거든요 그냥  어떤놈이 소설  쓰면 역사가 되버리는 가소로운 일이죠
스리랑 19-01-04 19:26
 
“사사카와재단은 일본의 대표적 우익인사이자 A급 전범이었던 사람이 일본 패망 후 도박으로 번 돈으로 만든 재단이다.

2011년 이름을 일본재단으로 바꿨다. 20년 전에도 연세대가 사사카와재단으로부터 돈을 받아 연구하는 것이 논란이 된 적이 있는데,
총장을 비롯해 학교의 주요 보직교수들이 이 기금을 바탕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사회공헌의 외피를 쓴 일본 극우재단과 연세대는 왜 연구기금을 만들었을까.

제보자는 사사카와재단이 이름을 바꾼 것도 “마치 일본의 공식기금인 양 위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설립자인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가 A급 전범인 것은 맞다. 그는 1995년 타계했다.


현 일본재단의 이사장은 그의 3남인 사사카와 료헤이(笹川陽平)가 맡고 있다.

한국의 연세대학교와 일찍이 국제협력과 이해증진을 통한 동북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 확대를 위한 사업을 전개해 왔던 ‘일본재단’이 1995년 탄생됐다.”
아시아연구기금의 ‘설립자’는 연세대학교다. 나머지 액수의 상당 부분이 일본재단이 낸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9년 사이 학술교류와 연구과제 등에 지출한 금액은 총 42억원가량이다.


2005년쯤에는 TV 시사프로그램에서 연구기금의 성격 논란을 다룬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했다.
당시 아시아연구기금 측은 반박성명을 내 “아시아 연구기금에 기부금을 출연한 일본재단은 일본 경정사업 수입의


3.3%를 공익사업에 쓰도록 규정하고 있는 일본 국내법에 따라 설립된 공익법인으로서 ‘극우단체’라는 주장은 전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日극우 인사들, 일본재단 이사로 참여해

자민당 정조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나다 토모미(稻田朋美)는 2013년 “위안부제도는 전시에는 합법이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1998년 일본으로 귀화한 오선화씨는 <치맛바람>, <반일한국의 미래는 없다> 등의 저서와 TV 정치평론 출연 등의 ‘친일’ 활동으로 한국에서는 입국 거부대상자다.

이날 야스쿠니 참배 행사를 공동주최한 일본회의의 회장은 타쿠보 타다에(田久保忠衛) 교린대학교 명예교수다. <주간경향>은
     
스리랑 19-01-04 19:27
 
<주간경향>은 일본재단의 조직표에서 타쿠보 교수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재단의 평의원 명부에는 타쿠보 교수뿐 아니라 정치평론가로 직함이 돼 있는 야야마 타로(屋山太郞·83)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에서 갈라져 나온 ‘일본교육재생기구’라는 단체의 중심인물이다. 그는 2007년 뉴욕타임스에 “위안부 성노예 주장은 날조된 것”이라는 내용의 전면광고를 주도하기도 했다.

평의원을 맡고 있는 와타나베 쇼이치 일본 조오지대 명예교수(85) 역시 위 광고에 참여했는데, “남경사건(남경대학살)은 조직적인 학살이라고 볼 수 없다”는 등의 극우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일본 우익’을 연구해온 이향철 광운대 교수는 “세 사람 모두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인사로, 일본재단의 이사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인물들”이라며 “조직이 개편되면서 평의원으로 옮긴 것을 보면 외부에서 봤을 때 극우인사들을 중심으로 재단이 운영된다는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세대 현 총장, 기금 설립 핵심 역할?

그런데 왜 연세대였을까.

기금 측은 “이사회에 재직 중인 연세대 교수는 3명뿐”이라며 현재 재단은 학교와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연차보고서에 기록된 역대 이사회 명단을 보면 연세대 주요 보직자들이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핵심 라인은 연세대의
          
스리랑 19-01-04 19:29
 
핵심 라인은 연세대의 역대 총장과 재무처장이다.

12대 송자 총장(1992~1996)부터 시작해 13대 김병수, 15대 정창영, 17대 정갑영 현 총장이 역대 주요 임원을 역임한 것으로 돼 있다.

여기에 박태규·박상용·김학은 전 연세대 재무처장, 백윤수 현 연세대 재단본부장이 역시 핵심 임원으로 참여했다.

< 주간경향>은 기금의 초기 설립과정에 깊숙이 관련돼 있는 관련 인사로부터 기금 설립 초기 상황에 대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기금 설립과정을 주도한 인사가 정갑영 현 연세대 총장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재단 측에서 굉장히 놀라워했다. 사전 정지작업 없이 다이렉트로 한국 쪽에서 기금을 만들자고 제안이 왔던 것이다.




10억 엔은 일본에서도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당시 일본재단에서 한국 쪽 요청을 검토했던 시게무라 도시미쓰 교수나 지난해 타계한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 대사가 회의에 참석해서 발언한 것을 기억하는데, ‘거꾸로 일본 우익단체 돈을 받아서 기금을 만드는 것에 대해 한국 여론의 반대가 예상된다’며 부정적 평가를 한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이 협상에서 핵심 역할을 한 것이 정갑영 현 총장이라는 것이다. “당시 연세대학 총장들은 사실상 들러리에 가까웠고 정 총장이 주도하는 위치였다.

물론 좋게 보면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어내는 데 극우 의혹을 받고 있는 일본재단으로서는 이미지 변신을 할 수 있다는 측면도
               
스리랑 19-01-04 19:31
 
이미지 변신을 할 수 있다는 측면도 있었겠지만….”

2005년 프로그램위원장을 마지막으로 역임한 정갑영 총장의 이후 관련 행적은 이사회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 총장은 그 이후에도 기금 운영과 배분에서 사실상 주도하는 역할을 했다고 복수의 전·현직 연세대 교수들은 말한다.

앞서 언급한 연세대 ㄴ교수도 “외국에서 돌아왔을 때 ‘연구비를 다 만들어놨으니 찾아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연세대학교 본부에서 핵심 보직을 맡았던 한 교수는 “아시아연구기금을 연대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려는 것에 대해 몇몇 교수들이 강하게 반대하자, 정 총장 등이 주도해 학교 바깥에 기금을 세우고


여러 사람들에게 권유하다시피 해 연구비를 뿌렸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특히 인문사회 계열 교수들은 상대적으로 연구비도 부족하기 때문에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 총장의 이름은 아시아연구기금이 2013년 공개한 연차보고서에서 다시 등장한다.

‘2025년을 향한 한·일 협력의 모색’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제12차 한·일 밀레니엄 포럼’ 행사에서 정 총장은 김병철 고려대 총장, 카마타 카오루 와세다대 총장,

세이케 아츠시 게이오대학 총장과 함께 ‘한·일 협력의 미래를 향하여: 대학의 긍정적 역할’이라는 제목의 토론에서 발표를 한 것으로 돼 있다.


정 총장의 역할과 관련해 아시아연구기금 측은 “당시 정 총장의 역할과 관련해서는 사무총장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이해된다”며

“아시아연구기금에서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봉사해온 분들이 있는데, 정 총장을 찍어서 연관성을 부각시키는 것 자체가 적절한 평가가 아니며,

다소 편향된 정치적 시각에 따른 언급”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주간경향>은 정 총장에게 제기된 의혹에게 해명을 듣고자 연락을 취했으나, 마감시간까지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원문보기:
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1509011718071&code=115#csidxf105dfaf5af140fa12a4041917c0012
스리랑 19-01-04 19:36
 
동북아역사재단은 2007년부터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 10억 원을 들여 ‘고대 한국(Early Korea) 프로젝트’ 사업을 실시했다.

한국고대사를 6권의 영문 서적으로 간행해 외국인들에게 한국 고대사를 홍보하겠다가 목적이었다.


2010년에 발간한 『The Samhan period in Korean History(한국사 속의 삼한시기)』와
2013년 12월에 발간한 『The Han Commanderies in Early Korean History(한국 고대사 속의 한사군)』가 그 실체 이다.
 

그런데 이 책들은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이른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스리랑 19-01-04 19:37
 
새정치민주연합 인재근 의원이 국민연금 기금운용 본부에서 받은 '일본 기업 투자 내역'입니다.


YTN 뉴스

출처: http://www.ytn.co.kr/_ln/0103_201510050702045793


후지츠와 미쓰비시 중공업 등 37개 기업은, 회사 대표가 역사 왜곡을 주도하는 일본 우익 단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멤버입니다.


우리 국민연금이 이런 회사들에 5년 동안 1조 5천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대표적 전범 기업이자 전몰자 기념비 사업까지 앞장서고 있는 신일철주금에는 770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아베 법안'이 통과되면서 일본이 '전쟁 가능한 국가'가 된 상황에서, 군수 물자를 납품하는 업체 21곳에 투자된
          
스리랑 19-01-04 19:38
 
도요타 재단 지원금 받은 '식민지 근대화론 연구'(일부 요약)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77883


그들에게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 학자들의 학문 연구가 기본 윤리를 위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기본 윤리를 저버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두 학자의 식민지 근대화론 연구가 일본 기업의 자금지원 하에 진행됐기 때문이다.
               
스리랑 19-01-04 19:39
 
항일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에 의해 ‘정신병자’ 또는 ‘또라이’ 취급을 당했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55126.html?recopick=6



실제로 한국학 진흥사업단 단장으로 1년에 250억 원이라는 막대한 한국사 관련 예산권을 쥐고 있었고,
문제 많은 교학사 교과서 대표집필까지 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권00원장이 어느 공개 학술회의장에서
다음과 같이 단재 신채호 선생을 폄하하는 막말을 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신채호는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이고,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런 말을 듣고도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역사학자들이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이다.
                    
스리랑 19-01-04 19:40
 
을사오적 이완용은 일제강점기 여의도 면적 두 배에 가까운 토지를 소유했지만,
국고로 돌아온 것은 이 토지의 0.09%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친일파 송병준의 경우에도 일제강점기 당시 받은 토지의 0.04%만 환수 대상이 됐답니다.




[헤럴드경제=고도예 기자] 광복 71년인 15일, 일제 강점기의 잔재인 친일파 청산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있다.

출처: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60812000887
스리랑 19-01-04 19:42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데 역사교과서를 이모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2016년부터 초등학교 6학년들이 배우게 될 국정 사회 교과서 실험본에서 무려 350개가 넘는 오류들이 발견됐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에 성공했다', '의병을 토벌했다'는 등 도대체 어느 나라의 역사 교과서인지, 황당한 표현들이 곳곳에 나옵니다.

출처: http://www.ytn.co.kr/_ln/0103_201412102203573684
     
스리랑 19-01-04 19:43
 
국사편찬위원회는 일본 역사를 설명하면서 ‘국왕 중심의 새로운 정부’라고 기술한 교과서 출판사에게 관련 대목을 '천황 중심의 새로운 정부’로 수정하라고 권고했다.


김태년 의원은 이를 두고 "국사편찬위가 근현대사 영역에서 일본 편향적 교과서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김태년 의원은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서울대 교수시절 누구보다 앞장서서 한일병합의 불법성을 이야기하고, 을사조약보다는 을사늑약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소신있는 학자였다"며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그런 학자의 소신도

무너뜨리고 반역사적 용어로 교과서 수정을 지시한 것은 통탄할 수준”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출처: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2100914095253368&nvr=Y

출처: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2100914095253368
          
스리랑 19-01-04 19:43
 
               
스리랑 19-01-04 19:44
 
교육부 주최 행사에서 '일본해' 지구본 배부


기자] 2016년 9월 22일부터 부산에서 교육부가 주최한 행사에서 일본해로 표기된 지구본을 나눠준 겁니다.

지구본을 자세히 보면 동해를 일본해, Sea of Japan으로 표시하고 괄호로 East Sea라고 적어놨습니다.
교육부가 주최한 행사에서 일본해로 표기된 지구본을 나눠준 겁니다.


학부모)

아이가 '이거 일본 바다야?' 묻는데 '아니야 잘못된 거야' 이렇게 넘어간 거에요.

이거 봐 왜 일본해라고 적힌 것을 줬지??….]

문제의 지구본을 배부한 곳은 방과후 학교 체험장에서였습니다.

YTN 최아영[cay24@ytn.co.kr]입니다.(2016년 9월 25일 YTN뉴스에서)
                    
스리랑 19-01-04 19:44
 
교육부 재외 한국교육기관 홈페이지, ‘일본해·다케시마’ 표기 지도 사용<2015년 10월 20일 뉴스>
 

교육부가 운영하는 일부 재외 한국교육원과 한국학교가 동해를 일본해로,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한 지도를 홈페이지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KBS 취재 결과 재외 한국교육원 40곳 가운데 15곳이, 한국학교는 32곳 가운데 9곳이 일본해나 다케시마 또는 리앙쿠르 암초로 표기된 지도를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습니다.

교육부는 이들 기관 홈페이지에 구글 지도를 연동하면서 생긴 문제 같다며 수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167689
신수무량 19-01-05 13:25
 
아주 정리가 잘된 글이군요...세상은 바뀌어도 역사계는 아직 식민노예들이 설치는 곳입니다..  근본부터 뿌리를 뽑지못한 결과...여기도 그 악취에 찌들은 몇몇 노예들이 있죠..역사매국노들.
위구르 19-01-06 10:25
 
명료한 정리 잘 보았습니다. 저런 친일세력은 뿌리를 뽑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세균처럼 번식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감방친구 19-01-07 11:48
 
뒤늦게 이제에 와서 읽었는데
잘 정리된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프란치스 19-01-07 13:34
 
일본넘들이  참  역사를 진실되게  만들었겠네요 ㅎㅎ 아주 호구 역사로 만들고 조작해놓은 현 역사를
배운  우리나라
진실된것을 찿는 역사학자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식빠

무조건 아니다 하지말고 제대로 된  역사찿기를 해야할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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