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춘추 시대에 접어들면서 천자의 권위가 쇠락하고 제후들이 제각기 영토를 분할하여 서로 패권을 다투는 '군웅할거'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극도의 혼란 상태가 지속되었는데도 이를 바로잡을 영웅은 출현하지 않았다. 이때 공자가 『춘추』를 지어 난신적자에게 '필주(筆誅)'를 가해 세상을 도와 사람들의 마음을 채우는 공을 세웠다.
공자는 "나를 알아줄 것도 오직 『춘추』뿐이고, 나를 벌하는 것도 오직 『춘추』일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공자의 이 말은 일개 신하의 신분으로 천자의 사업을 대신하여 난신적자가 두려움에 떨게 한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나, 참람함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감회를 말한 것이다. 후대 유가는 공자가 『춘추』를 지어 '소왕(素王)', 즉 무관의 제왕으로서의 업적을 이룩하였다고 칭송하였다. 단지 붓 한 자루를 가지고 천자와 마찬가지로 충신효자를 상주고 난신적자를 벌해 도의를 밝게 하고 질서의 엄격함을 드러내었다는 의미이다.
춘추필법은 중원 사서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법으로 '바르게' 적는것이다.
하지만 흔히 착각하는게 이 바르게 적는다는게 객관성이 있다는것은 절대 아니다.
대의명분에 맞게 적는것.
쉽게 말하자면 동양 고전에 자주 나오는 권선징악에 맞게 적는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옳을것이다.
예를 들자면,
나라가 망했으면 그왕이 신하들의 충언을 무시하고 방탕한 생활을 해서 망했다고 교훈적인 내용을 적는것이다.
실제 우리 고대국가와 관련있는 내용의 예를 하나들면,
고구려 수나라 전쟁때 수나라에서 전국의 죄수를 동원했다고 기록했다.
상식적으로 죄수들에게 무기를 들려서 전쟁에 끌고나가도 지휘가 될지 모를일이고,
아무리 중원이 인구가 많아도 수십만명의 죄수가 있을리가 없다.
그럼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얘기를 적었나?
황제가 직접일으킨 수나라군이 참혹하게 패배하고 수많은 자국민이 전사한 전쟁이었다.
황제가 외국군대에게 참패했으니,
이치에 맞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것이다.
그래서 찾은 변명이 병사들이 죄수들 즉, 악한 사람들이었으니,
이 악한들에게 하늘이 벌을 준것이다.
그런 이유로 무고한 수나라 수십만의 장정들을 죄수로 몬것이다.
흉노와의 조공관련 기록에도 포위된 황제가 지혜를 발휘해 아녀자의 질투를 유발해 벗어났다고 적어놨지만,
그후 기록에 매년 흉노에 공물을 바친걸 알수있다.
실제로는 포위된후 금품을 바치는 조건으로 항복해 목숨만 건진것으로 볼수있다.
포위되서 탈출도 못하는 상황에서 흉노 내지까지 편지를 보낼수 있을리가 있을까?
그럴 여력이면 황제가 포위를 뚫고 탈출하는게 나을것이다.
즉, 이 기록은 전투는 야만인들에게 졌지만 우리는 지혜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했다는 식의 꾸며낸 얘기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