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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18 05:47
[한국사] 요서와 황룡, 황수와 로합하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2,036  

1. 사서 교차


1) 위서

經數十年, 稍滋蔓, 有部落, 於和龍之北數百里, 多爲寇盜. 《魏書 列傳第八十八 高句麗百濟勿吉失韋豆莫婁地豆於庫莫奚契丹烏洛侯》

수십년이 지나 점차 번성하여 부락이 생겼으며, 화룡(和龍)의 북쪽 수백리에서 대부분이 도둑질을 하였다.

# 화룡(和龍) 북쪽 수백 리

2) 수서

契丹之先, 與庫莫奚異種而同類, 並爲慕容氏所破, 俱竄於松·漠之間. 其後稍大, 居黃龍之北數百里. 《隋書 卷八十四列傳第四十九》

거란(契丹)의 선조는 고막해와 다른 부족이나 같은 종족이며, 모두 모용씨에게 격파당하여 송막(松漠)의 사이로 모두 달아났다. 그 후 점차 강대해졌으며 황룡(黃龍)의 북쪽 수백리에서 살았다.

部落漸衆, 遂北徙逐水草, 當遼西正北二百里, 依託紇臣水而居. 東西亘五百里, 南北三百里, 分爲十部. 兵多者三千, 少者千餘, 逐寒暑, 隨水草畜牧. 《隋書 卷八十四列傳第四十九》

부락이 점점 많아지자 마침내 북쪽으로 옮겨가 물과 풀을 좇아 요서 정북쪽으로 2백 리에 있는 탁흘신수(託紇臣水)에 의지하여 살았다. 동서로 5백 리, 남북으로는 3백 리에 걸쳐 있었고, 10부로 나뉘었다. 병사는 많은 경우 3천, 적은 경우는 천여 명이었으며, 춥고 더움을 좇고, 물과 풀을 따라 목축을 했다.

# 황룡(黃龍) 북쪽 수백 리
# 요서 정북쪽 2백 리에 있는 탁흘신수(託紇臣水), 동서로 5백 리, 남북으로는 3백 리

3) 통전

當遼西正北二百里依廻紇臨水而居東西亘五百里南北三百里亦鮮卑故地分為十部多者三千少者千餘隨水草畜牧《通典 卷二百》
 
요서 정북 200 리에 있으며, 동서 500리, 남북 200리 되는 옛 선비의 땅에서 (사람 수가) 많으면 3천, 적으면 1천 되는 10개 부락이 나누어 방목을 하며 산다.

# 요서 정북쪽으로 2백 리, 동서 5백 리, 남북 3백 리

4) 구당서

契丹, 居潢水之南, 黃龍之北, 鮮卑之故地, 在京城東北五千三百里. 東與高麗鄰, 西與奚國接, 南至營州, 北至室韋. 冷陘山在其國南, 與奚西山相崎, 地方二千里. 《舊唐書 卷二百一十二 鐵勒契丹奚室韋靺鞨渤海靺鞨霫烏羅渾》

거란(契丹)은 황수(潢水)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에 살았는데, (이 곳은) 선비(鮮卑)의 옛 땅으로 (당나라) 경성(京城)에서는 동북으로 5,300 리 (떨어) 있다. 동쪽으로는 고려(高麗)와 이웃하였고 서쪽으로는 해국(奚國)과 접했고 남으로는 (당나라) 영주(營州)에(까지) 도달하고 북쪽으로는 실위(室韋)에 도달했다. 냉형산(冷陘山)은 그 나라의 남쪽에 있었는데 해의 서산(西山)과 서로 (이어져 있어) 산길이 험준하였고 (그 길이 지나는) 지방은 이천 리였다.

# 황수(潢水)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

5) 신당서

契丹, 本東胡種, 其先爲匈奴所破, 保鮮卑山. 魏靑龍中, 部酋比能稍桀驁, 爲幽州刺史王雄所殺, 衆遂微, 逃潢水之南, 黃龍之北. 至元魏, 自號曰契丹. 地直京師東北五千里而贏, 東距高麗, 西奚, 南營州, 北靺鞨·室韋, 阻冷陘山以自固. 《新唐書 列傳第一百四十四 北狄》

거란(契丹)은 본래 동호(東胡)의 (한) 종류로 그 선조가 흉노(匈奴)에게 격파되어 선비산(鮮卑山)에 의지하여 살았다. 조위(魏) 청룡(靑龍) 연간(233~237), 부족의 우두머리(部酋)인 비능(比能)이 조금 사납고 교만했으나 (조위의) 유주자사(幽州刺史) 왕웅(王雄)에게 살해되자 무리는 마침내 쇠잔해져 황수(潢水)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으로 도망쳤다. 원위(元魏) 때에 이르러 스스로를 거란이라 불렀다. (그들이 살던) 땅은 (당나라) 경사(京師)에서 동북쪽으로 오천 리에 뻗어 있었고, 동쪽으로는 고려(高麗)와 떨어져 있었고, 서쪽으로는 해(奚), 남쪽으로는 영주(營州), 북쪽으로는 말갈(靺鞨)·실위(室韋)와 (인접해 있었고), 냉형산(冷陘山)이 가로막고 있어 스스로를 굳건하(게 지킬 수 있었)다.

# 황수(潢水)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 당나라 영주(營州)의 북쪽

6) 신오대사

契丹自後魏以來,名見中國。或曰與庫莫奚同類而異種。其居曰梟羅個沒里。沒里者,河也。是謂黃水之南,黃龍之北,得鮮卑之故地,故又以為鮮卑之遺種。當唐之世,其地北接室韋,東鄰高麗,西界奚國,而南至營州。《新五代史 卷七十二四夷附錄第一》

거란(契丹)은 후위(後魏) 이래로 이름이 중국(측 사서)에 보인다. 때로 고막해(庫莫奚)와는 같은 (이적(夷狄)의) 부류(同類)이나 (혈연적으로는) 다른 종족(異種)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살던 곳을 효라개몰리(梟羅箇沒里)라고 말한다. 몰리(沒里)는 강(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황수(黃水)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을 이르는 것으로 선비(鮮卑)의 옛 땅을 획득한 것이라 예로부터 또한 선비(鮮卑)의 남겨진 무리(遺種)라고 말했다. 당대(唐代)에 그(들이 살던) 땅은 북쪽으로 실위(室韋)와 접했고 동쪽으로는 고려(高麗)와 인접했고 서쪽으로는 해국(奚國)과 이웃했고 남쪽으로는 (당의) 영주(營州)에 이르렀다.

# 효라개몰리(梟羅箇沒里)
# 황수(黃水)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
# 당나라 영주(營州)의 북쪽

7) 거란국지

本其風物,地有二水。曰北乜裡沒里,複名陶猥思沒里者,是其一也,其源流出自中京西馬盂山,東北流,華言所謂土河是也。曰裊羅個沒里,複名女古沒里者,又其一也,源出饒州西南平地松林,直東流,華言所謂潢河是也。至木葉山,合流為一。《契丹國志 序》

본래 그(거란의) 풍물(자연환경)에 (그 사는) 땅에 강이 2 개가 있다.

하나는 북먀리(배먀리/북먀이)몰리인데 다른 말로 도외사(요외새/도외새/요외사)몰리라고도 하며 그 물은 중경 서쪽 마우산(본인은 마수산으로 추정)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흐르는데 중국(인들)이 일컫는 토하(土河)가 이 강이다.

다른 또 하나는 요나개(요라개/뇨라개/뇨나개)몰리로 다른 말로 여고(녀고)몰리라고도 하며 그 물은 요주 서남쪽 평지송림(대흥안령 남단 남서쪽, 연산산맥 북단 서북쪽의, 경상남북도 넓이에 필적하는 넓이의 고평원 지대)에서 발원하여 곧장 동쪽으로 흐르니 중국에서 일컫는 황하(潢河 : 시라무렌강)가 이 강이다. 이 두 강은 목엽산(木葉山)에 이르러 합쳐져 하나(서요하)가 된다.

# 요나개몰리(여고몰리)와 북먀리몰리(도외새몰리)

거란어와 우리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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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리


1) 교차

ㅡ 화룡(和龍) 북쪽 수백 리 <위서>

ㅡ 황룡(黃龍) 북쪽 수백 리, 요서 정북쪽 2백 리에 있는 탁흘신수(託紇臣水, 현 로합하), 동서로 5백 리, 남북으로는 3백 리 <수서>

ㅡ 요서 정북쪽으로 2백 리, 동서 5백 리, 남북 3백 리 <통전>

ㅡ 황수(潢水, 현 시라무렌강)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 <구당서>

ㅡ 황수(潢水, 현 시라무렌강)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 당나라 영주(營州)의 북쪽 <신당서>

ㅡ 효라개몰리(梟羅箇沒里, 현 시라무렌강), 황수(黃水, 현 시라무렌강)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 당나라 영주(營州)의 북쪽 <신오대사>

ㅡ 요나개몰리(여고몰리, 현 시라무렌강)와 북먀리몰리(도외새몰리, 현 로합하) 사이 <거란국지>


2) 부가

ㆍ탁흘신수 = 토호진수 = 토하 = 현 로합하
ㆍ약락수 = 요락수 = 효라개몰리 = 요나개몰리 = 녀고몰리 = 황수(黃水) = 황수(潢水) = 황하(潢河) = 현 시라무렌강
ㆍ황룡 = 화룡 = 유성의 북쪽, 용산의 남쪽
ㆍ요서 = 한 요서군 비여현 일대에서 현 노룡현의 북쪽 청룡만주족자치현 일대
ㆍ요서 정북쪽 200 리경 = 현 녕성현 지역, 로합하 상류



3. 결

: 북위 ~ 수 시기 거란의 주 활동 및 거주 지역은 현 시라무렌강과 로합하 중하류 사이의 초원

시라무렌강(시라무룬허, Xar Moron)과 로합하(Laoha)의 수계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9/9f/Liaorivermap.png





ㅡ 영주(營州)와 고구려 서계(西界)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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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9-01-18 08:49
   
수서의 "요서 정북쪽 200 리의 탁흘신수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기술에서 '요서 정북쪽 200 리'는

탁흘신수, 즉 현 로합하의 상류 수계를 가리키는 말이지 거란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거란은 '황수(시라무렌) 남쪽, 황룡(화룡) 북쪽 수백 리'에 있었다

여기에서 거란이라 함은 북위에서 수당에 이르는 중국계 왕조의 변방과 접촉한 거란의 일부세력을 가리킨다.

즉 거란의 본진은 4세기 이래 어디까지나 황수 북쪽의 현 파람좌기 일대였다

그런데
수서의 이 기록을 받은 통전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며 사실이 왜곡된다.

"마땅히 요서 정북쪽 200리, 동서 500리, 남북 300리"
감방친구 19-01-18 09:03
   
따라서 이러한 왜곡의 실타래를 풀어서 진실에 가 닿으려면
사서 교차 분석만 답인 것이다.

비근한 사례로

404년 고구려 원정 관련 기사에서
자치통감과 삼국사기는 모두 "고구려가 연나라를 침략했다/자치 高句麗侵燕 / 삼국 出師侵燕  "라고 적고 있어서

후연을 침략한 것으로 독해되는데

이들 사서보다 400~600여 년 전에 씌인
진서에서는

" 고구려가 연군을 침략해 약 100여 명을 죽였다 會高句麗寇燕郡 殺略百餘人" 라고 적고 있어서

자치통감과 삼국사기의 기록에서의 그 燕은 후연이 아니라 연군, 즉 현 북경시인 것이드러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402년의 고구려에 의한 평주 함락, 407년 광개토대왕이 전하는 '사방합진'에 의한 후연의 초토화, 407년 모용희의 죽음, 408년 고구려계 인물인 고운을 천왕에 옹립한 북연의 성립, 432년 북위가 북연을 침략해 성을 함락시켰음에도 그 땅을 차지하지 않고 낙랑, 요동 등의 백성들(3만 호, 약 15만 명)을 유주로 데려간 사실, 435년에 북위가 장수왕을 도독요해제군사에 임명해 요해지역에 대한 실질 지배권을 인정한 사실, 436년 북위가 화룡성 공격 전에 고구려에 이 사실을 먼저 알린 사실, 고구려가 먼저 화룡성에 들어가 성안의 재물을 다 싹쓸이 하고 지배층과 주민들을 모두 고구려로 데려갈 때까지 북위가 공격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사실, 고구려가 풍홍을 북위에 돌려주지 않았음에도 군사행동을 하지 않은 사실, 위서가 436년 북연 멸망을 "요해를 열었다"라고 표현한 사실, 덕흥리 고분 벽서에 나타난, 408년에 죽은 후연 사람 유주자사 진이 고구려의 오늘날 차관급에 해당하는 국소대형을 역임한 사실 등에 비추어

고구려의 404년 연군(현 북경시) 침략이 단순히 습격하여 100여 명을 죽이고 만 것이 아니라는 추정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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