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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31 15:32
[기타] 신라 황금 보검이 왜 카자흐스탄에서?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3,505  


기원전 3세기로 시점을 고정시키고, 중국 동북지방과 한반도 서북에 걸쳐 있던 고조선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면 우선 흉노가 나타난다. 흉노에서 다시 서남쪽으로 돌아가면 월지, 오손, 강거가 등장하는데, 지금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땅이 이들의 활동무대였다. 계속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현재의 티베트로 가면 강(羌), 윈난(운남)성으로 가면 전(?), 구이저우(귀주)성으로 가면 야랑(夜郞), 광둥(광동)성으로 가면 남월, 푸젠(복건)성으로 가면 민월(?越)이 나타난다. 이렇게 수많은 세력이 한을 둘러싸고 때로는 평화적으로, 때로는 긴장 속에서 복잡한 상호 관계를 맺어 나갔다. 한국사를 동북아시아의 범주에 가두면 당시의 역사는 한나라와 고조선의 관계만으로 축소되며 이렇게 다양한 집단의 움직임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유라시아적인 시각에서 한국사를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2천㎞를 달려 카자흐스탄 남부와 키르기스스탄으로 뻗어내린 톈산(천산)산맥은 만년설로 뒤덮인 높은 산, 깊은 계곡, 수많은 강과 연못을 형성하였다. 제티수, 혹은 세미레치예라고 불리는 톈산산맥 일대는 목축과 농업에 유리한 혜택받은 땅이었다. 현재는 카자흐스탄과 중국,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으로 나뉘어 있으나 고대에는 국경선 없이, 사카(Saka), 오손(Wusun, 우순), 훈(Hun)과 투르크(Turk)가 차례로 이 지역을 차지하였다. 사카는 기원전 8~7세기부터, 오손은 기원전 4세기부터, 훈은 기원전 1세기부터 이곳에 등장하여 선행 종족을 교체하였고, 투르크족은 5세기 이후 현재까지 이 땅의 주인으로 살고 있다.

별이 된 초원 연구의 영웅들

사카는 스키타이와 유사한 기마민족으로서 인종적으로는 이란 계통의 백인과 황인종이 혼합된 것으로 보인다. 오손의 인종적인 실체는 분명치 않은데 초기에는 사카, 후기에는 훈과 공존하다가 5세기 전반이 되면 역사에서 사라진다. 훈은 러시아와 서양 학자들이 사용하는 개념인데, 좁은 의미로는 흉노의 일부가 떨어져 나온 집단, 넓은 의미로는 3~5세기 유라시아에서 활동하던 다양한 기마민에 대한 통칭이다. 사카와 오손의 전성기는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과 시간적으로 평행하고, 훈과 투르크는 삼국시대에 해당된다.

이들이 발전시킨 황금문화는 한국 고대사와 무관하지 않다. 사카족의 쿠르간(유라시아에 분포하는 대형 무덤)은 시신을 안치한 목관을 통나무로 결구한 덧널(목곽)로 감싸고, 다시 그 위에 강돌을 덮은 뒤에 흙으로 밀봉하는 구조이다. 4~6세기에 신라의 왕릉으로 채택된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과 흡사하다. 훈의 금제 장신구나 무기에는 보석을 박아 넣는 감옥기법, 작은 금알갱이를 붙이는 누금기법이 특징인데, 역시 신라의 그것과 아주 흡사하다. 이런 까닭에 많은 연구자들이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러시아 남부에 널리 분포하는 쿠르간과 황금문화에 주목하였던 것이다.

필자 역시 유라시아의 황금문화에 주목하였으나 막상 접근할 방법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수소문 끝에 2012년 가을, 드디어 중앙유라시아 전문가인 장준희 박사를 만나게 되었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유학한 장 박사를 만난 필자는 비로소 학문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으며, 우리 둘은 오랜 친구처럼 의기투합하였다. 마침내 2013년 1월에 대규모 답사단을 꾸려서 제티수로 떠났다. 60대의 노학자부터 20대의 젊은 학생을 망라한 답사단은 톈산산맥의 매서운 눈보라를 뚫고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중요 유적을 밟아나갔다. 키르기스스탄의 촐폰아타 암각화, 이식쿨 호수 주변의 사카 쿠르간, 정략결혼으로 오손의 왕에게 시집간 한나라 공주의 비극이 서려 있는 적곡성, 웅장함과 부유함으로 삼장법사 현장을 놀라게 했던 서돌궐의 쇄엽성, 부라나의 미나레트(이슬람식 탑)까지 선사에서 중세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을 보면서 답사단은 탄성을 연발하였다.

최대의 성과는 누르무한베토프 박사와의 만남이었다. 그는 소비에트 시절에 알마티시 인근의 이식지역(키르기스스탄의 이식쿨 호수와는 별개의 지역임)에서 사카 왕자의 무덤을 발굴조사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고고학자이다. 황금인간이라고 불리게 되는 이 무덤을 발굴한 이후에도 여전히 발굴 현장을 지키면서 학계의 원로로서 많은 존경을 받고 있었다. 장 박사와 친분이 깊던 누르무한베토프 박사는 우리 답사단을 오랜 친구처럼 살갑게 맞아주었고, 이식 쿠르간 박물관장이자 자신의 제자인 굴미라 여사에게 양국의 상호 협력을 당부하였다. 답사단은 이식 쿠르간 박물관과 사카 시기 쿠르간을 공동조사하기로 정식 협약을 맺었다.

예상치도 못한 뜻밖의 성과를 안고 귀국한 장 박사와 필자는 제티수 답사 성과를 함께 소개하였다(<한겨레> 2013년 2월18일치). 그런데 한창나이인 장 박사가 갑자기 지병으로 타계하면서,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충격을 가라앉힐 시간을 보내고 2015년 봄, 이식 박물관을 다시 방문하였다. 누르무한베토프 박사는 장 박사의 부재를 애통해하면서도 우리를 따뜻이 대해주었고, 양국의 공동조사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거듭 약속하였다.

황금인간이 된 사카 왕자

다시 용기를 얻은 필자는 귀국 후, 주변의 연구자들과 함께 ‘유라시아유적발굴조사단’(단장 조상기)을 결성하였고, 이 조직의 카자흐스탄팀(마한문화연구원, 대한문화재연구원 주축)은 마침내 2016년 6월11일 알마티시 인근의 오르닉 쿠르간 조사에 착수하였다. 한국팀을 반갑게 맞이한 누르무한베토프 박사는 공동조사의 성사를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면서 환영만찬을 베풀어 주었다. 배낭을 머리맡에 챙긴 뒤 잠자리에 든 박사는 편안히 주무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양국 발굴단의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고인의 뜻을 받들어 발굴조사를 예정대로 진행하였다. 공동조사의 두 주역은 비록 고인이 되었으나, 그 유지를 받들어 2018년까지 사카 쿠르간에 대한 조사는 지속되었다. 국적은 다르지만 양국의 우호협력과 공동조사의 초석을 놓으신 초원의 영웅, 두 분의 명복을 빈다.

이식 유적은 지름 20~120m에 이르는 쿠르간 150기로 구성되어 있다. 경주에서 작은 고분이 지름 20m, 단독분으로 가장 큰 봉황대고분이 지름 82m, 두 기가 합쳐져서 가장 크게 된 황남대총의 길이가 120m란 사실과 비교된다. 경주평야에서 지상에 봉분이 남아 있는 것이 158기란 점도 우연이지만 비슷하다. 따라서 이식 쿠르간과 경주 고분군은 매우 흡사한 경관을 보이고 있다.

1969년에 이식 유적의 동남쪽 모퉁이에 위치한 중형급 쿠르간의 조사가 진행되었다. 봉토를 걷어내고 중앙에 있는 목곽을 조사하니 이미 오래전에 깡그리 도굴당한 상태였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하게 남쪽에서 전혀 도굴되지 않은 또 하나의 목곽이 발견되었다. 목곽 내부에는 키 165㎝, 연령 15~18살 정도 되는 남성이 묻혀 있었는데 모자와 상의, 허리띠와 신발은 온통 순금제 장식으로 뒤덮여 있었고, 허리춤에는 금으로 장식한 철제 단검을 차고 있었다. 모자의 높이가 무려 60㎝가 넘을 정도로 길고 뾰족하였는데, 이런 모자야말로 스키타이와 사카 등 유목기마민족의 상징이다. 이란의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유적에서도 뾰족한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사카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황금인간’이라고 명명된 이 왕자는 카자흐스탄의 국가적 상징이 되었다.

‘신라 왕족=북방유목민’ 단정 말고
유라시아로 역사 시야 넓혀야


무덤의 구조와 황금문화라는 공통성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신라 왕릉이 떠오른다. 문제는 황금인간의 연대는 기원전 6~5세기 무렵이어서, 기원후 5세기에 전성기를 맞는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카보다 늦은 시기에 만들어진 오손과 훈의 무덤에 관심을 갖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오손의 쿠르간은 사카 쿠르간보다 규모가 작고 부장품이 적어서 현지 학자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하였고 비교할 만한 자료도 드물었다. 반면 훈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은 신라의 금제품과 비교할 만한 것이 많았다. 당나라 이태백이 태어난 키르기스스탄 토크마크 인근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훈의 황금 데스마스크에는 3개의 나뭇가지를 묘사한 무늬가 선명했고, 머리에 쓰는 관의 장식은 새가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이었다. 3개의 나뭇가지는 신라 금관의 솟을장식 그대로였고, 관 장식 역시 신라의 새날개형 장식의 판박이였다. 이 유물들은 3~4세기 제티수에 자리잡았던 훈이 남긴 것들이다. 경주 계림로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화려한 보검 역시 카자흐스탄의 보로보예란 곳에서 출토된 훈의 보검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삼국시대의 허리띠 중에서 유독 신라만 숫돌, 향주머니, 손칼 등을 주렁주렁 늘어뜨린 형태인데 이는 이동이 잦은 기마민족의 특징이다. 신라 고분에서 많이 출토되는 로만글라스 용기는 유라시아 초원길을 통해 들어온 것이 분명하며,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유리컵과 똑같은 것이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의 훈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다.

왜 신라만 유목지역 고분과 유사한가

무덤의 구조는 사카 쿠르간과 유사하고, 유물은 훈의 유물과 유사한 신라 고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은 왜 고구려, 백제, 가야가 아닌 제티수 지역의 고분문화를 닮았을까?

필자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은 사카와 훈 사이에 존재하였던 오손에 주목하여야 한다는 점, 쿠르간 문화의 시간적 하한이 훈에 의해 기원후까지 내려올 가능성이 있고, 그럴 경우 신라 고분과의 시간적 격차는 많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나아가 제티수 지역만이 아니라 유라시아 동부의 다양한 쿠르간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절감하게 되었다. 알타이 지역(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중국의 국경선이 교차하는 알타이산맥 주변)의 파지리크 쿠르간은 구조적으로 신라 고분과 가장 비슷한데 축조 세력을 월지로 보는 연구자가 많다. 신라 금관과 가장 비슷한 형태의 금관이 출토된 아프가니스탄의 틸리아 테페도 월지나 사카와 연결짓는 견해가 있다. 결국 신라의 돌무지덧널무덤과 금제 유물은 유라시아에 널리 분포하는 쿠르간과 황금문화에서 그 계보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신라 왕족이 흉노의 일파라느니, 북방 유목민이라느니 논란은 많지만 아직 실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유라시아의 쿠르간과 황금문화를 연구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도 2015년도부터 카자흐스탄과 몽골 일대의 쿠르간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그 성과를 모은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카자흐스탄 초원의 황금문화>라는 중요한 성과를 출간하였다. 마침 국립중앙박물관은 ‘황금인간의 땅, 카자흐스탄’ 특별전(2018년 11월27일~2019년 2월24일)을 개최하고 있다. 우리 역사와도 관련 있는 카자흐스탄의 문화에 흠뻑 취해볼 좋은 기회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878117.html#csidx701426da2b046bbbf69fa4de4a953d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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