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지 위서
진한辰韓 또한 진한秦韓이라고도 한다. 『후한서』에 이르기를, “진한의 늙은이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진나라 망명자들이 한국으로 오매 마한이 동쪽 지역 땅을 떼어 주었다. 서로를 부를 때 도徒라고 하니, 진나라 말과 비슷하였으므로 혹은 진한秦韓으로 이름 했다 하며 열두 개 작은 나라가 있어 각각 1만 호로써 나라를 일컬었다.”고 하였다.
연나라가 요동 반도의 중요 거점만 장악하고 중국의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킬때 연나라에서 사는 조선인이 연나라의 전성기 때 점령당한 조선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라면, 이들을 ‘진나라의 망명인’ 이나 ‘연나라의 망명인’으로 부를 수도 있으며, 동시에 ‘조선의 유민’ 또는 ‘낙랑의 유민’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지역의 소국들은 주변의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 중 고조선 유민들과 함께 고조선 문화를 받아들였다. 경주 인근에서 발견되는 고조선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유적지로 영천 어은동 유적, 영천 용전리 널무덤, 경주 사라리 유적 등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