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몽연합군의 일본침공에 대해묘사한 그림이나, 글들을 본적있는데.. 거의대부분 거대한몸집의
괴물과 여린일본인 식으로 많이 서술했더군요.. 실제 전투에서도 당시 일본전사들은 도저히 당
해낼수없었다 고 합니다..가장큰 이유가 체격차이..당시 왜군들은 여몽연합군의 체격만보구도
사기가 많이꺽였었 다고 합니다. 여몽연합군은
크게 몽고,고려 주축의 4만과,,
중국남부에서 차출된 10만으로 인데..
당시 왜군들은 중국출신들과 교전시엔 나름성과도있었구, 열심히 임했지만. 여-몽군을 본순
간 사기전의가 많이꺽였다고 합니다.. 가장큰이유가 체격차와.. 그로인한 강력한 전투력의차이
과거 칼싸움은 사실상 무기류와 아려진전술은 이미 어는정도 평준화되었기에 이런 전투술을
수행하는 병사들의 전투력이 매우큰변수가 되었죠 ..
우선 당시 여-몽군이 화살은 더잘쐈기에..활로 큰체격의 여-몽군을 제압한다는건 힘들었구,
나름 전국내전으로 익히왜군의 전술과, 대륙의 전술도 전체적으로 평준화되었구..결국 전투
의핵심은 역시 근접전인데.. 체격차이땜에 왜군들은 도저히 여몽군 의 상대가 못되었다더
군요.. 겨우 4만의 여-몽군 땜에 당시 1000만에 달하던 일본이 그렇게 벌벌떨구
난리가 났던거죠..
당시 여-몽군의 전투력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일본의 전래구화, 구전등에도, "대륙에서온
거대한 몸집의괴물"로 서사되어 있구, 카미카제라는 아름다운 여신형상의 태풍이 이런
괴물들을 물리친다는 컨셉이 종종 발굴됩니다.
정말 태풍만 없었으면 당시 일본은 확실히 정복되었읍니다. 쿠빌라이가 2차전을 감행한것두
너무 억울해서구요..
쿠빌라이는 일본점령후, 고려를통해 일부지역을 간접통치내지 활양할 계획을 가지고있었던
걸로 알려져있죠.. 당시 고려가 몽고에 항복했지만. 몽고는 이후 고려를 최고의 조력자로
활용합니다. 반항하면 씨를 말리던 몽고가 60년이나 항쟁하구, 칭키즈카최고 신하를 죽인
고려에 보복은 커녕.. 중요직채에 등용하구, 소수몽고인 다음의 지배계층으로 인정했죠.
그래서 당시 30만의 몽고가 최고계층을, 400만의 고려와, 중앙아시아계열이 2번째계층을
1억2천만의 한족은 최하위계층으로 일정이상 관직에 등용되지 못합니다.
사실 이런걸 본다면, 우린 송,명 같은 한족왕조시대보다. 몽고때가 더낳았던 셈이죠..
글구 당시몽고는 문화적으로 한족보단 고려걸 많이 차용하구, 몽고에서 고려문화가
대유행했었죠. 물론 고려에도 원문화가 조금 돌았구요. .아마 원이 지속되었다면, 당시
고려와 원상류층이 문화적으로 융합되었을 가능성도 높읍니다.
문법이 같아 언어를 배우기도 중국어보다 훨씬쉬웠구요.
다만 공민왕 - 기황후(고려출신 몽고황후)간의 알량한 권력투쟁과, 원내부의 기강헤이
만 없었다면.. 조선시대가 되었어도 500만 조선인은 1억5천 한족보단 상류계층에 목에
힘주고 다녔을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