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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05 05:40
[북한] 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5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1,057  

◎입북 조선의용군 무장해제 두번당했다/1차 선견종대/한청대장등 천명 신의주 집결하자/소군 사령부에서 “모든 무기 내놔라”

 

 

45년 10월12일 오후.



국경도시 신의주 동중학교엔 1천명 가까운 많은 병사들이 모여있었다. 긴 여행에 지친 그들의 그림자가 늦가을 빛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며칠전 압록강을 넘은 조선의용군 선견종대였다. 무장은 안된다는 소련군과 승강이 끝에 무기를 자진보관하기로 했던 한청대장은 무기보관소로 정해진 교실문을 열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에 꽉차게 들어온 것은 소련제 막심기관총 총신이었다. 선견종대 대원의 가슴을 겨눈 기관총과 보안대의 긴장된 눈길은 무기를 버릴 것을 강요하는 무언의 명령이었다.



첫번째 조선의용군 무장해제 사건은 그렇게 일어났다.



해외 공산세력의 양대산맥 가운데 하나인 연안파가 무장을 한채 입북하려 했다가 첫 시도에서 소군정이라는 벽에 걸려 좌초를 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최대의 조선인 무장세력인 연안파의 조선의용군이 무력을 가지고는 결코 북에 들어 올수 없음을 분명히 한 소군정의 차가운 경고였으며 또한 연안파의 정치적 장래에 대한 예고였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상과 경과는 세월이 가면서 거의 그대로 묻혀버렸다. 북한 문제연구소 소장 김창순씨의 「북한 15년사」를 통해 남한에 알려진 사건개요는 이렇다.



『45년 10월초 의용군의 김호·김강이 중심이 되어 조선의용군 압록강지대가 결성된뒤 곧 신의주로 넘어왔다.

 

그러다 해외무력은 북에 들어올 수가 없다는 소군정의 방침에 따라 야간기습을 당해 무기를 빼앗기고 쫓겨났다.』



○…무정과 상의안해



전북한 고위관료였던 서용규씨는 북한에선 이렇게 알려져 있다고 전한다.



『45년 12월 중국의 국경도시 안동(현 단동)에 와 있던 압록강지대가 소군정의 허락없이 국경을 넘어 신의주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 부대의 책임자는 김호·김강이었답니다.



그런데 참모장인 한모라는 인물이 중심이 돼서 불법시위를 하고 무장해제에도 응하지 않아 소련군 평북도 위수사령부가 보안대를 동원해서 신의주의 한 중학교 운동장에서 야영을 하던 이 부대를 강제로 무장해제 시켰다는 것입니다.』 압록강지대가 무장해제를 당했다는 것뿐이다.



최근 본지 특별취재반의 조사에 따르면 신의주 무장해제 사건은 한번이 아니라 두번에 걸쳐 일어난 것으로 확인돼 의용군 무장해제 사건과 관련,전반적인 재조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압록강지대가 들어오기전에 선견종대가 들어오다 무장해제를 당한 것이다.



지금까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1차 무장해제사건의 경위를 당시 이 부대의 대장이었던 한청씨(79·심양 거주)가 최초로 증언했다.

『심양에서 해방소식을 들은 나는 지하공작을 그만두고 조선에 들어갈 병사를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해방조선에 군대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죠. 대장을 내가 하고 정치주임으로 주연을 선발했습니다.



나는 중국 공산당원이었지만 당과 상의를 하지 않았고 의용군 사령관인 무정장군과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독자적인 행동이었어요. 의용군은 잠깐사이에 1천여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우리는 이 부대를 선견종대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선견종대는 곧 안동으로 이동했다.



○처음엔 환영법석



심양주둔 소련군 사령부는 중국 국민당의 요구라며 심양 80㎞ 밖으로 나가달라고 했고 조선으로 가려면 조금이라도 국경에 가까이 가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안동에 도착한 이 부대에 뜻밖의 전갈이 왔다.



한청씨의 증언



『도착 다음날 아침입니다. 신의주에 주둔한 소련군 평북도 사령관이 좀 만나자는 거예요. 정치주임 하고 즉시 사령부로 갔습니다(사령관 이름은 기억못함).



통역이 전하는 사령관의 첫마디가 「조선군대가 조선에 와야지 왜 다리를 건너오지 않느냐」는 거예요.

 

정말로 뜻밖이었습니다. 진짜냐고 또 물었죠. 사령관은 계속 「건너만 오면 된다. 붉은군대가 환영준비를 하고 있으니 당장 12시까지 넘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뛸듯이 기뻤던 한청 대장은 곧 병력을 신의주로 이동시켰다. 소련군이 군악을 울리며 환영했고 인민들은 조선인 군대를 기쁨의 눈물로 맞이했다.

 

1천명 정도 대규모 병력의 조선진입은 당시 소련군을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병력은 신의주 동중학교에 집합했다.



그런데 또 소련 군사령부에서 만나자는 전갈이 왔다.



계속되는 한씨의 증언.



『갔더니 소련군 정치위원(이름 기억안남)과 김일(후에 북한 부수상이 됨),평북도 보안부장 한웅(후에 신의주 학생시위사건의 원인이 된 인물로 사형당함)이 있습니다.

 

먼저 정치위원이 부대의 내력을 묻기에 자세히 설명해주었죠. 그러자 그는 무장을 해제해달라고 요구하는 거예요. 국제적인 약속 때문에 이북에는 소련군만이 무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무기 우리가 보관”



미·소 군외에 「조선군」이라는 것은 어떤 형식으로도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조국에 내 발로 들어오는데 무슨 말이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소련군이 해방군이라면 조선해방을 위해 투쟁한 조선인 군대에 무장해제를 요구할 수 있느냐고 따졌죠.



말을 하다보니 점점 더 화가 치밀어 나중에는 마구 고함까지 질렀습니다.』



그러자 김일·한웅이 거들었다.



한웅은 험악한 얼굴로 『무장해제 안하면 어떻게 하겠다는거요』라며 시비조로 나왔다.



두어시간 승강이 끝에 의견이 접근됐다.



한청씨의 증언.



『나는 결코 무장해제는 못한다고 버텼습니다. 그러다 내가 무기를 한곳에 모아놓고 해결이 날 때까지 우리 손으로 보관하겠다고 제안했죠.』



○대의원들에 총 겨눠



강제 무장해제를 피하기 위한 절충안이었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동중학교로 돌아간 것이 오후 2시정도.



한청 대장은 반발하는 대원들을 설득반 명령반으로 무기를 모으도록 시킨뒤 교실안으로 운반하라고 지시하고 앞장섰다.



그런데 사태가 이상하게 전개됐다.



한씨의 증언.



『교실로 가는데 느낌이 안좋아요. 교실문을 여는데 보안대원 하고 막심기관총이 눈에 확 들어옵디다. 보안대가 우리는 물론이고 운동장의 대원들한테도 총을 겨누고 여차하면 쏠 것 같은 자세로 서 있는 거예요.』



한씨는 순간적으로 판단을 해야했다.



『아차 싶더군요.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싸움을 할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반발하는 병사들과 전투가 벌어져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하겠나 하는 생각도 들고 언젠가는 들어올 의용군 본대를 위해서도 문제를 일으키지 말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대원들이 흥분하기 전에 일을 끝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대원들에게 무기를 놓고 나가라고 지시했습니다.』



속절없이 강제무장해제를 당한 것이었다. 부대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도망하는 대원도 생겼다. 그러는 사이 김일성이 측근인 안길을 보냈다. 좀 보자는 것이었다. 한씨는 즉시 혼자 평양으로 떠났다.



○중국으로 돌아가

 

계속되는 한씨의 증언.



『주연에게 부대를 맡기고 안길과 평양으로 갔습니다. 평양6호 초대소에서 김일성을 만났습니다.

 

후에 천도교 청우당 위원장이 된 김달현도 두루마기를 입고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김일성은 체격이 좋고 인상도 좋습니다.

 

김일성은 인사를 나눈뒤 식사부터 하라고 권하더군요. 잘차려진 음식을 한상 푸짐하게 받았습니다. 밥먹으면서는 별 얘기가 없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김달현이 나간 다음 김일성이 얘기를 시작했다.



한씨의 증언.



『김일성이 먼저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느냐고 묻습디다. 그래 「앞으로 조선에도 군대를 조직해야할 터이니 우리부대를 중심으로 군관학교를 조직해라. 38선을 경비하는 38경비대도 좋고 보안대에 소속이 돼도 좋다. 이도 저도 안되면 중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한참을 궁리하던 김일성이 얘기했다.



『동무,그러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원래 동북(만주)에서 하려던 일을 하시오. 내가 당에 있으니까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다 해주겠소.』



필요없으니 돌아가 달라는 얘기였다.



소군 사령부와 다시 토론했지만 똑같은 얘기의 반복이었다. 선경종대는 소 군정이 제공한 기차로 신의주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입북 20일만이었다.



한청씨는 46년 개인자격으로 입북,철도경비대 여단장·38경비대 연대장 등을 지내다 53년 중국으로 돌아갔다. 주연은 6·25때 사단장과 휴전회담 연락장 교단단장을 했다.)



◎2차 압록강지대/45년 김호·김강 주축으로 들어와/야밤 숙영지서 보안부대에 피습



선견종대가 떠난뒤 조선의용군 압록강지대가 들어왔다.



압록강지대는 지대상 김호,정치위원 김강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독립지대다(김강은 6·25때 인민군 7사 군사위원,후에 문화선전성 부상을 하다 56년 8월 종파사건과 관련,중국으로 망명,현재 산서성 태원시에 살고있다).



압록강지대의 무장해제 경과는 잘 알려져있다.



이 사건을 가장 먼저 구체적으로 언급했던 전평북 인민보 주필 김창순씨가 다시 증언했다.



『45년 언제인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만 아주 쌀쌀할 때였습니다. 안동에서 압록강지대의 결성식이 있었습니다. 지대장은 김호,정치위원은 김강 이었습니다. 결성식은 안동 상업학교에서 했는데 가서 축사를 했습니다.



지대가 결성되고 나서 얼마안돼 소 군사령부의 허가 없이 신의주로 들어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부대의 진입시기와 관련,한청씨는 『안동에 도착하니 압록강지대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넘어갈때까지 이 부대는 국경을 넘어가지는 않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이 들어 올 때는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치스차코프의 포고로 해외 무장력의 국내진입이 명백히 불가능할 때였다. 압록강 일대에는 「소련군 외에는 들어올 수 없다」 팻말도 있었다.



당연히 말썽이났다.



김씨의 증언

 

 


『넘어온 날 밤 압록강지대가 숙영지인 신의주 동중학교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한웅의 보안부대가 기습했습니다. 꼼짝없이 당했지요. 무기를 모두 빼앗겼습니다. 무장해제된 이들은 이튿날 단동으로 돌아갔습니다.』

모호한 것은 선견종대의 실패를 전해들었을 것이 분명한데도 왜 압록강지대가 국경을 넘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어쨌든 해외세력의 한쪽 기둥인 연안파가 무장력을 갖고 들어오려는 시도는 두번다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그것이 연안파의 앞날을 결정했다.
 


 

   제 16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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