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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3-13 14:54
[북한] 김구김일성 만남, 몰랐던 이야기들 03편. 마지막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1,155  

김구의 폭탄발언




김구의 완강한 태도에 1948년 7월 11일 중국 공사 유어만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지지하기 바란다는 장개석 총통의 뜻을 전하기 위해 김구와 단 둘만의 비밀회동을 했다.


 


이 회동에서 김구는 “내가 요인회담에 갔던 동기의 하나는,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보려고 한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앞으로 3년간 조선인 붉은 군대의 확장을 중지한다고 해도, 남한이 전력을 다해서 붉은 군대의 현재 병력만한 군대를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러시아인들은 책잡힐 일 없이 쉽게 남쪽에 급습을 할 것이며 당장 남한에 인민공화국이 선포될 것이다.“라는 폭탄발언을 했다.



김구는 남한에 정부가 수립되어도 소련에 의해 곧 인민공화국이 될 터이니 대한민국을 건국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피력한 셈이다.


 


다시 말해 김구의 통일정부 수립 주장은, 군사력이 우월한 북한의 인민공화국에 남한이 편입되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그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고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대한민국 유엔승인 반대운동


 


김구와 김규식은 5·10선거 무효화 운동을 효과적으로 펼치기 위해 48년 6월 7일, 김구의 한독당과 김규식의 민족자주연맹 등의 동조세력을 통합하여 통일독립촉성회를 결성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식을 앞둔 8월 11일, 이승만은 장면, 장기영, 김활란등을 파리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의 승인 운동을 펼칠 한국대표단으로 파견했다.


 

이보다 앞선 8월 1일, 통일독립촉성회는 부주석 김규식을 수석대표로 하는  파리 유엔총회에 파견할 대표단을 선정했다.


 


분단정권을 승인하지 말고, 상해 임시정부를 승인해 주도록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서영해는 선발대로 파리에 가 있었다. 그러나 김규식이 수석대표직 수락을 거부하는 등 통촉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정부수립 선포식이 있던 8월 15일에도 김구는 “비분과 실망이 있을 뿐이다. 새로운 결심과 용기를 가지고 강력한 통일운동을 추진해야 되겠다.”라고 말했다.


 


김구와 국회프락치 사건




1949년 5월, 국회부의장 김약수 등 15명의 소장파 의원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건이 이른바 ‘국회 프락치사건’이다.


 


친북좌익세력과 김구추종세력은 생명의 위협을 느낀 친일세력이 이승만과 합작으로 반민특위 와해를 위해 펼친 방해공작이 ‘국회 프락치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친북좌익세력과 김구 추종세력의 주장에 의하면, 구속된 국회의원들은 김구와 뜻을 같이 하던 反이승만 계열 의원들로, 반민특위법 시행 강경론자라고 한다.


 


의원들의 구속 사유인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내용 또한 남로당의 지시를 따른 행위라고 하나 실증할 만한 근거자료가 하나도 없으며, 단지 ‘외국군 철수’와 ‘평화통일’ 그리고 남로당 7원칙과 일치한다는 이유를 들어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런데 1997년 5월 26일자 북한 ‘로동신문’에는


 


성시백이 1948년 가을부터 국회를 대상으로 공작을 펼쳤으며, 그 결과 국회부의장과 수십 명의 국회의원들을 포섭하는데 성공했다는 내용과, 성시백이 그들을 이용해 ‘외군철회요청안’과 ‘남북화평통일안’을 발표하게 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북한은 그동안 ‘국회프락치사건’의 실체를 철저하게 부인해 왔다. 그러나  ‘로동신문’과 2002년 북한의 대남선전매체인 통일여명 편집국 특집보도(181호)에서 이를 스스로 인정했다.  


 



성시백이 국회의원 포섭공작을 벌였다는 북한 ‘로동신문’ 기술 내용과, 신경완의 증언 내용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통일정부를 주장하며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고 방해했던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미화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당시 상황에 정말 통일정부가 정말 불가능한 것었는가?  현실적으로..  아니면 어떤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나는 후자를 믿고 싶고,  혹시 김구도 그렇지 않았을까.??



김구가 호언장담했던, 미군이 철수해도 공산군이 남침하지 않는다는 북한의 약속은 여지없이 깨어졌다.


 


아마도 김구 생전에 6·25사변이 발발했더라면 결코 오늘날과 같은 ‘백범 추앙’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김구는 해방전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던 독립운동가로 족하다.


 


이번엔 김구 선생에 대해서 좀 부정적으로 썼다.


 


 끝..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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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좀발 20-03-22 12:16
   
겉으로 나타나 보이는것과
속에서 짜여져 흘렀던 것이 별개 일 수 있습니다.
역사는 당대, 어느 한족 편의 시야에서 쓰인다면 소설일 뿐..

정신이 손상된 자들(박*순 이런자)은 사실도 왜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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