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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4-06 22:25
[북한] (하얼빈 특종) 조선족 이민 여사의 증언. 05편..
 글쓴이 : 돌통
조회 : 1,014  

사범학교 졸업반 때 共産黨(공산당) 입당


 
 
  ―중국 공산당에 入黨(입당)한 것은 언제입니까? 그 당시 동북의 상황은 어떠했나요.

 


 
  중국 공산당 입당은 1935년, 아직 사범학교 졸업반 학생 때였지요. 졸업 후 중국 공산당 가목사 지하당 조직위원을 맡았고, 1937년 가목사 市(시)위원회 서기로 활동했습니다. 市委(시위) 서기로 약 반년 일했지요.

 

1938년 3월15일 가목사에서 中共(중공) 지하당 당원들이 日帝(일제)에 대거 검거되었습니다. 이 「3·15 사건」으로 많은 동지들과 나를 이끌어주던 선생님까지 체포되는 바람에 지하당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남은 동지들은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빨치산으로 활동하고 있는 東北抗日軍(동북항일연군)을 찾아 나서야 했지요.


 
  일제의 검거 소식을 듣고 나는 그 길로 松花江(송화강)을 건너 북쪽으로 갔습니다. 東北抗日軍(동북항일연군)이 강북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抗日軍(항일연군)은 일본군의 토벌을 피하여 이미 강북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기차 편으로 가목사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기차 안에서 수상한 사람이 나를 계속 주시하고 있는 거예요. 아무래도 일제의 끄나풀 같았어요.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기차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송화강 다리를 지나느라고 마침 기차가 속력을 줄여 느린 속도로 가는 틈을 이용한 거지요. 풀밭에 숨어 가면서 가목사로 돌아왔지만 집으로 가지 못하고 무슬림 교회당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한적하고 외딴 곳이라 안전했습니다. 아침에 몰래 집에 들러 식구들과 작별하고 고향 화룡구로 가서 숨었습니다.
 
  고향 친척집에 한동안 숨어 살았습니다. 사람의 눈을 피하여 낮에는 밀짚더미에 가서 종일 몸을 숨기다가 밤이면 친척집에 들어가 잤지요. 화룡구 지하당 조직이 아직 살아 있어서 기회를 보아 나를 抗日軍(항일연군)에 데려다 주기로 약속했어요.

 

과연 봄비가 내리는 어느 날 抗日軍(항일연군) 연락병이 말을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그 말을 타고 抗日軍(항일연군)의 주둔지 後石山(후석산) 기슭의 吳小號屯(오소호둔)으로 갔지요. 이곳 부대는 6군 4사 23대대였어요. 淸剛(이청강) 정치위원은 환영하면서 내가 黨(당)신분 회복을 위해 北滿省共産黨委員會(북만성공산당위원회)로 찾아가야 한다니까 도와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십여 일간 그 부대에 머무는 동안 세 차례의 전투를 치렀습니다. 그 중 한 번은 일본군과 우리 軍(군)이 모두 말을 타고 싸운 騎兵戰(기병전)이었지요. 나는 이 전투에서 말이 수렁에 빠져 죽을 뻔했습니다.

 

그 후 또 한 차례의 전투에서는 23대대 정치부 주임이 말을 탄 채 敵彈(적탄)에 맞아 희생되었어요. 우리는 후석산 동쪽 기슭에 그를 묻었습니다. 아, 그 어렵고 참혹한 항일 투쟁에서 얼마나 많은 士(열사)들이 그렇게 귀한 생명을 바쳤는지요』
 
  ―송화강을 건넌 뒤의 여러 가지 활동을 들려주세요.


 
  『가목사市 서쪽 교외에서 23대대장을 만나 함께 송화강을 건넜습니다. 그 때 이미 再建(재건)된 가목사市 黨 지하조직이 돛배 세 척으로 우리 부대를 渡江(도강)시켜 주었지요. 부대와 함께 湯原縣(탕원현)으로 나가니 그곳에서 抗日軍(항일연군) 6군 4사 정치위원으로 있던 조선족 출신의 吳玉光(오옥광)을 만났습니다.

 

1939년 4월 늦은 눈이 내리는 어느 날 黑河(흑금하)로 가서 6군 정치위원 장수천, 곧 兆麟(이조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兆麟(이조린)은 抗日軍(항일연군)의 중요한 영도자이며 해방 후 하얼빈 市委(시위) 제1서기가 되었던 인물입니다.

 

장수천 동지도 북만성위에 갈 일이 있다고 나와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敵(적)의 점령지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말을 버리고 도보로 보름 걸려서 마침내 북만성위에 도착했지요.
 
  당시 북만성위 秘書長(비서장) 馮中雲(풍중운)은 내가 가목사 서기직에 있을 때 자주 만나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가 증명해주어서 나의 黨(당) 신분은 곧 회복되었지요. 북만성위는 나를 抗日軍9항일연군) 제6군에 배치했고 군부 조직과장 일을 맡겼습니다. 함께 갔던 장수천(兆麟)은 정식으로 6군 정치위원에 임명되었구요

 
 
 
金策(김책)이 抗日聯軍(항일연군) 정치위원으로 임명
 
 
  ―敏(이민) 여사를 처음 만난 것은 언제입니까? 첫눈에 반했습니까? 그때 두 분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나요.
 
  『1939년 여름, 우리 부대가 梧桐河(오동하) 강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 나는 부대의 정치교육을 책임지면서 문화 지식도 가르쳤습니다. 敏(이민)을 처음 만난 것은 바로 이때였습니다. 그러나 겨우 십사오 세 된 어린 소녀와 스물한 살 난 청년 사이에 사랑을 운운할 형편은 아니었지요. 우선 敏(이민)은 너무 어렸고, 서로 민족이 달라서 언어 소통도 잘 안되었으니까요.


 
  1939년 7월, 나는 6군 군부를 떠나 6군 조직과장 신분으로 2사 정치사업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西征軍(서정군)과 함께 海倫(해륜)으로 진격했습니다. 1939년 말 북만성위의 당시 조선족 출신 省委(성위) 서기 金策(김책)과 장수천 동지가 나를 抗日軍(항일연군) 3로군 1지대 정치위원으로 임명한 것입니다.


 
  金策(김책)(金日成(김일성)과 함께 북한정권을 세운 뒤 6·25 때 전사)은 노련한 혁명가이며 남을 끄는 힘이 있는 영도자였습니다. 점잖고 온화하며 후덕하고 친절하여 내게는 좋은 인상을 남겼지요.

 

동북抗日軍(항일연군)은 사실상 중국인과 조선인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부대인 만큼 金策(김책)이야말로 중요한 영도자의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해방 후 周恩來(주은래) 총리가 동북에 와서 「동북抗日軍(항일연군)은 中朝(중조)연합 抗日軍(항일연군)이다」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어렵고 참혹했던 항일 투쟁에서 우리는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친형제와 같은 혁명적 우정을 나눈 것입니다. 그때 배운 몇 마디 조선말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물이 있소?」 「담배 있소?」


 
  조선족 마을에 가든가, 조선족 戰友(전우)들과 가장 자주 쓰게 되는 말이지요. 조선인은 동북의 항일투쟁을 위해 큰 몫을 해냈다는 데 異論(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梧桐河(오동하)에서 敏(이민)을 처음 만났다가 헤어진 후 다시 만나게 된 사연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서로 사랑하게 되었나요.
 
  『오동하에서 헤어진 후 敏(이민)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오빠 雲鳳(이운봉)과는 함께 西征(서정)에 참여하면서 무슨 말이나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한 사이가 되었지요.

 

雲鳳(이운봉)은 당시 6사 1대대 정위를 담임하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둘이서 한담을 나누다가 雲鳳(이운봉)이 농담으로 「내동생 네게 시집 보내주마」고 말하지 않겠어요? 뜻밖에 몇년 후 이 농담이 진담이 되었지요.
 
  나와 敏(이민)이 진정으로 사랑을 약속하게 된 것은 소련에서였습니다. 抗日軍(항일연군)이 하바로프스크에서 70여㎞ 떨어진 野營(야영)에 주둔하고 있을 때였어요. 거기서 敏(이민)은 무선전신 교육을 받고 나는 부대원들에게 정치과목과 문화과목을 가르치고 있었지요.

 

내가 그때 문화를 알고 공부를 열심히 한 점이 敏(이민)의 호감을 사게 된 것 같습니다. 프로포즈는 남자인 제가 했지요. 敏(이민)이 이를 받아들여서 우리들은 사랑을 약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날 나는 장수천 동지와 함께 중국 동북지방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내가 떠난 후 敏(이민)은 괴로움을 당했답니다. 조선족 동지들이 우리의 결합을 반대하고 심지어 黨(당)의 小組長(소조장) 직무도 빼앗아버렸다는 것입니다. 그후 우리는 몇년 동안 서로 못 만났습니다.


 
  1942년 우리 부대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크게 패했습니다. 나는 중상을 입어 정신을 잃고 소련의 야영으로 호송되었지요. 정신이 깨어나서 보니 나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敏(이민)이 아닙니까! 몇년 만에 다시 만남이 이렇게 이루어질 줄이야.

 

나의 상처를 보고 敏(이민)은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야 그동안 敏(이민)이 우리의 사랑 때문에 억울함을 당한 사실을 알았지요. 무엇보다도 그렇게 당하면서도 그의 마음이 변하지 않은 사실에 나의 사랑은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1943년 겨울 우리는 소련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 무렵 나는 抗日軍(항일연군) 3로군 총사령 趙尙志(조상지)의 편이라 하여 黨(당)의 배척을 받았을 때였지요.

 

많은 동지들은 敏(이민)에게 前途(전도)가 밝지 못한 나와 관계를 끊으라고 충고했습니다. 특히 조선족 동지들은 더욱 강경하게 말렸습니다. 조선족 여인이 중국 남자에게 시집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민족적 이기주의를 나타낸 것이지요.

 

당시 모든 조선족 동지들이 다 반대하는데 오직 金策(김책), 金日成(김일성) 두 사람만이 우리들의 결합에 찬동했습니다. 결국 敏(이민)은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아서 우리의 결혼이 이루어졌지요. 1946년 우리는 동북에 돌아와 첫아이를 낳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고 손녀가 셋입니다 

  

 

이상..  06편에서 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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