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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31 09:09
[북한] 박정희 대통령과 남로당
 글쓴이 : 돌통
조회 : 349  

박정희 (朴正熙) 는 언제, 어떻게 좌익세력과 연계됐을까.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김*신 (金*信.69.전 **문화방송 사장) 씨는 69년초 군시절 상관이자 朴(박)대통령의 육사 동기인 정* (鄭*.육군 준장 예편.작고) 장군을 만난 적이 있다.





鄭(정)씨는 평소 박정희의 좌익 전력에 의혹을 품어오던중 5.16이 나자 '빨갱이가 나라를 뒤엎는' 줄 알고 진압에 나섰던 인물이다.



돌아와 박정희에게 鄭(정)씨 얘기를 하던중 金(김)비서관은 당돌한 질문을 했다.



"정*장군 말로는 각하께서 한때 빨갱이를 했다고 하던데요. " 박정희는 의외로 담담했다.



잠시후 이어진 그의 설명. "해방후 만주에서 구미 친가로 돌아왔더니 형님 (朴相熙)(박상희) 이 '그동안 어디서 뭘 했느냐' 고 묻더군. '만주에서 광복군에 있었다' 고 했더니 형님이 '그런 데를 왜 갔느냐' 며 못마땅해 하시는 눈치였어. 나는 그때 형님이 좀 불그스름하다고 생각했지"



​박정희의 얘기는 계속된다.



"내가 육사 교관 (대위) 으로 있을 때야. 하루는 대구에서 형님 친구 (李在福.(리재복)남로당 군사부 총책.숙군때 처형됨)가 찾아와 '이번 일요일에 향우회가 있는데 같이 가자' 고 하더군. 육사 교관생활이 따분하기도 한데다 그 분이 '자네를 위한 모임이니 꼭 나오라' 고 해서 참석했지.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날 모였던 형님 친구들이 모두 빨갱이였어. 나는 거기서 (입당원서에) 사인하거나 도장을 찍은 적은 없지만 그 모임에 참석한 것이 화근이 된 것같아. 그일로 김창룡 (金昌龍.자유당시절 특무대장) 한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재판도 받았지. " 이 얘기가 사실이라면 박정희는 억울하다.



​남로당에 가입한 적도 없는데 모임에 한번 참석한 이유로 고문당하고 재판을 받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연 박정희는 억울한가.



​숙군작업 실무책임자 김안일 (金安一.80.예비역 육군 준장) 특무과장은 조사과정에서 박정희 소령의 자술서를 직접 읽어본 몇 안되는 사람이다.



"朴(박)소령은 김창룡에게 붙들리자마자 '이럴 때가 올줄 알았다' 면서 순순히 자술서를 쫙 써내려 갔다고 합니다.



​육사 재학시절 형 박상희가 대구 10.1사건에 연루돼 구미에서 경찰의 총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내려가 보니 형 친구인 이재복이 유족들을 잘 보살펴주고 있더랍니다.



​이재복은 박정희에게 '공산당 선언' 등 불온책자를 건네주면서 남로당 가입을 권유했고, 또 형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부추기더랍니다.



자술서 내용으로 보면 박정희는 인간관계에다 형님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남로당에 가입한 것같았습니다." 金(김)씨의 증언대로라면 박정희가 남로당에 가입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박정희는 사상적인 좌익이라기보다 인간관계에 얽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언제, 어디서 남로당에 가입했는가.



​얘기는 그의 춘천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이듬해 5월 만주에서 돌아온 박정희는 그해 9월 조선경비사관학교 (육사 전신) 2기로 입학, 12월14일 소위로 임관했다.



​첫 부임지는 춘천 8연대 예하 경비중대. 중대장은 1기 선배인 김*곤 (金*坤.74.예비역 육군 소장.현 평화연구원장) 중위로, 그는 金(김)중위 밑에서 제4경비초소장을 맡았다.



​이듬해 (47년) 봄 박정희는 연대 작전주임 (대리) 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9월26일 육사 중대장으로 전보됐다.



​임관후 그는 9개월 정도 춘천 8연대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육군본부에 보관돼 있는 그의 '장교자력표' 엔 이때의 기록이 없다.



​이 공백을 8연대에서 박정희와 같이 근무했던 3기생 염정태 (廉貞泰.73.육군 대령 예편) 씨가 메워준다.





廉(염)씨의 증언. "사관학교 다닐 때부터 朴(박)전대통령의 명성을 들었습니다.



수재에다 인품도 훌륭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죠. 그래서 나는 첫 부임지가 8연대란 얘기를 듣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당시 8연대는 빨갱이 소굴이었습니다.



​연대내 좌익총책이자 부연대장인 이상진 (李尙鎭.신경 2기.당시 소령).정보주임 김종국 (당시 소위) 등이 주동자였는데 모두 만군 출신으로 朴(박)전대통령과 친했습니다.



​朴(박)전대통령도 이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포섭됐다고 봅니다."



​김*곤씨는 박정희의 '춘천시절 가입설' 을 확신하고 있다.



​그의 증언. "박정희의 춘천 8연대 근무시절 남로당 군사부 총책 이재복이 춘천까지 찾아가 그를 만나곤 했습니다.



​그때 박정희는 나에게 이재복을 '숙부' 라고 소개했습니다.



​나중에 숙군때 박정희의 조서를 봤더니 그를 통해 입당했다고 돼 있더군요. 당시 박정희는 우수한 자질에다 빈농 출신, 그리고 친형에 대한 원한 등으로 좌익의 포섭대상 1호였다고 봅니다."



​육사 3기생중에는 좌익 연루자가 많았다.



​동해안 일대의 좌익총책이었던 강문영 (康文榮) , 여순사건의 주모자 김지회 (金智會).홍순석 (洪淳錫) 등이 모두 3기생이었다.



​이들은 생도시절 생도대장 오일균 (吳一均.당시 소령) 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박정희도 오일균과 친했다.





오일균과 관련한 박정희의 일화 한 토막. 60년대 중반 朴(박)대통령이 지방순시차 충북 청원을 지날 때였다.



​동승했던 이 지역 출신 신범식 (申範植.작고)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각하, 저기가 오일균이 살던 동네입니다" 라고 설명하자 갑자기 박정희가 "어디, 어디" 하더니 그 마을을 한참동안 멍하게 쳐다보더라는 것이다.



​박정희의 가슴속에 오일균의 그림자가 아직 남아 있는 것같았다고 申(신)씨가 한 후배 언론인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申(신)씨의 부친은 일제때 좌익항일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의 주변엔 숙군때 좌익활동 혐의로 처형 또는 처벌된 인사들이 많았다.



​일본 육사 출신 오일균 (61기).김종석 (金鍾碩.56기).조병건 (趙炳乾.60기).김학림 (金鶴林.60기) , 만군 출신 최남근 (崔楠根.봉천 5기).이상진 (李尙鎭.신경 2기).이병주 (李丙胄.신경 2기) 등이다.



​이들은 해방 전부터 박정희 (신경 2기.일본 육사 57기) 와 선.후배로 연결돼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가 실제 좌익활동을 한 흔적은 없다.



​그래서 숙군 태풍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때의 좌익 연루 혐의는 박정희의 군시절은 물론 대통령이 된 후에까지 그를 괴롭혔다.



​한국보다 미국쪽에서 더 심했다.



​5.16은 박정희가 '좌익콤플렉스' 의 벼랑에서 탈출구로 시도한 일대모험이었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5.16 직전 박정희는 미군측으로부터 요시찰 인물로 지목돼 감시를 받고 있었다.



​김*곤씨의 증언. "5.16전에 미 8군 댄스턴 정보국장이 매그루더 사령관의 친필 메모를 들고 나를 찾아왔더군요. 그는 20여명의 한국군 장교 명단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그들의 좌익 관련 여부를 물었습니다.



​그 속에 박정희 장군도 들어 있었습니다.





'朴(박)장군은 과거에 공산당을 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별을 두 개나 단 사람이 기득권을 버리고 공산당으로 가지 않을 것' 이라고 대답했지요."



​한무협 (韓武協.74.육군 소장 예편) 씨의 증언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 시절 이종찬 (李鍾贊) 장군이 장면 (張勉) 총리에게 박정희장군의 중용을 건의한 적이 있습니다.





張(장)총리가 이 문제를 매그루더와 논의했습니다.



​얼마 후 매그루더가 육본으로 朴(박)장군의 신원조회를 요청했는데 당시 육본 고위 당국자가 '朴(박)장군은 좌익' 이라고 답변했지요. 이에 매그루더가 '그런 사람을 어떻게 그런 요직 (육본 작전참모부장)에 앉혔느냐' 며 육본측에 항의했고 며칠 후 朴(박)장군은 2군 부사령관으로 전보됐습니다."



​당시 박정희 밑에서 육본 작전참모부 차장으로 있었던 김안일씨는 "당시 朴(박)장군은 군에서 추방되기 전에 거사해야 한다는 쫓기는 기분에서 거사를 계획한 것같다" 고 증언했다.



​5.16 직후에도 미국은 박정희의 사상에 대한 의혹을 버리지 못했다.



​군사정권 초기 미국과 일본의 관심사는 이 문제였다.



​말년에까지 이어진 박정희와 미국의 갈등은 오랜 연원을 가진 셈이다.



​63년 5대 대통령선거 투표일 전날 윤보선 (尹潽善) 후보는 박정희후보의 좌익 연루설을 제기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 문제는 그러나 선거 직후 尹(윤)후보가 朴(박)당선자에게 축하전화를 하면서 유야무야됐다.



​박정희가 재임기간중 좌익문제에 유별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인 저변에는 좌익 콤플렉스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박정희를 좌익과 연계시키는 이는 없다.

 

군내 좌익세포를 숙정하는 수사과정에서 박정희의 제보 어느정도였던가, 박정희의 역할과 위상은 어느 정도였던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수사-재판기록이 없어진 현재,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하고 검토해야 한다.

 

숙군수사본부였던 육군정보국 첩보과장 겸 전투정보과장 김*곤(육군소장 예편·평화연구원장)은 이 무렵 박정희 소령과 인간적으로나 업무적으로 무척 가까웠다.

 

육사 1기 선배인 김*곤은 또 1연대 정보주임으로서 숙군수사를 사실상 주도하고 있던 김창룡 소령의 보고상선에 있었다. 숙군수사에 시동이 걸린 어느 날 김창룡 소령이 전화로 '이재복이를 잡았습니다'고 보고해 왔다.


'이재복이 누군데?' '남로당 거물입니다.'.


한 시간쯤 뒤 김창룡이 나타나더니 김*곤 과장에게 흑백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김(김) 과장은 '잘 모르겠는데 어디서 본듯하기도 하고'라고 했다. 김창룡은 '이 놈이 이재복인데 김 과장과 춘천에서 저녁 을 같이 했다는데요'라고 했다. 그제서야 어떤 회식자리가 생각났다. 김*곤은 '박정희가 숙형라며 데리고 온 사람과 저녁을 먹은 것이 기억 난다'고 했다.

 

김창룡은 '이 놈이 그날 박정희의 숙형이라 위장하고 그 자리에 나타난 겁니다'라고 했다. 1년반 전 8연대 시절 그 회식 자리가 마련된 것은 작전참모 박정희 소위가 김*곤 중위에게 '시골에서 산판을 하여 돈을 좀번 숙형(삼촌)이 계시는데 저녁을 사겠답니다'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원용덕 연대장을 모시고 술을 함께 마시는데 서로 인사가 끝나고 잔이 몇 바퀴 돌고나서 원용덕이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정희야, 너 아주 쌍놈이구나.'.

 

박정희는 '예?'하고 묻더니 '저는 가난하게는 살았어도 쌍놈은 아닙니다'라고 했다.

 

'이놈아, 숙질간에 성이 다르니 쌍놈일 수밖에.'.

 

그 순간 김*곤과 박정희의 눈길이 마주쳤다. 김*곤의 눈은 '어떻게 된거야?'라고 묻고 있었고, 박정희의 눈은 '어떻게 하지?'라고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김점곤의 반응이 없자 잠시 머뭇거리다가 '저의 외숙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원용덕은 기다리던 대답이란 듯이 '그러면 그렇지'라고 하여 웃음을 터뜨려 분위기는 정상화되었다. 그때 박정희의 외숙이 사실은 남로당 군사부 책임자 이재복이었다는 사실에 경악한 김*곤은 다음날 일어나 생각하니 박정희도 붙들려 들어가 있을 것이라는 직감을 했다. 전화로 김창룡을 불렀다.

 

'박정희는 고문하지 말아요. 몸이 약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다루면 죽을 가능성이 있어.'.

 

그때 박정희는 자신을 좀 혹사하고 있었다. 무슨 고민이 있는지 말 술을 퍼마시는데 체력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곤이 김창룡으로부터들은 보고에 따르면 박정희는 남로당의 군사부책인 이재복의 직속인물로서 군내 남로당 조직도에선 최상층부에 위치하고 있었다.'여 수 14연대 반란사건 직전에 이재복이 박정희를 군내조직 책임자로 임명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적으로 자신과 직접 연결되고 두뇌와 인격이 뛰어난 박정희로 하여금 조직을 관리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때 남로당의 군내세포 관리체계는 엉망이었습니다. 박헌영은 빨치산 출신인 김일성과는 달리 군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육사 3기생부터 군내당을 건설하기로 한 것 같은데 지휘체계의 혼선이 컸습니다. 여수 14연대 반란사건도 중앙당의 이재복이 지시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고 도당이 관리하던 하사관들이 멋대로 주동하여 일으킨 것입니다.

 

중앙당은 장교들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김지회 중위가 뒤늦게 지창수상사로부터 지휘권을 인수하여 반란군의 두목이 된 것입니다. 지창수는 같은 부대에 있던 김지회가 남로당 세포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김창룡이 박정희를 통해서 군내 남로당 조직의 윤곽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도 큰 수확이었습니다. 저는 김창룡에게 박정희로부터 자술서를 받되 그 내용이 우리가 후에 조사한 것과 다르게 나오면 용서할 수없다고 못을 박고 이 점을 말해두라고 했습니다.'.

 

박정희가 조직을 털어놓기 전에도 김창룡은 이재복보다 먼저 붙든 그의 비서 김영식을 통해서 군내 조직원 수백명의 명단을 입수하였다. 수사책임자 백선엽 육군 정보국장에 따르면 경찰로부터도 군내의좌익명단이 넘어왔다고 한다.

 

김태선 서울시경국장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한 명단이었다. 군정시대 경찰은 좌익소탕에 앞장 선 때문에 체계적으로 정보를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대통령은 미군사고문단장 로버츠를 불러 그 자료를 내놓으면서 '그동안 미군은 뭘하고 있었는가. 이런 군대를 대한민국 정부에 인계했는가. 책임지고 숙청하라'고 다그쳤다.

 

이 명단은 이응준 육군총참모장에게 건네졌고 숙군수사 때 기초자료로 쓰여졌다. 이 경찰자료와 이재복 비서로부터 압수한 명단 중에 박정희의 이름이 끼여 있어 그의 체포로 연결되었던 것 같다. 박정희가 털어놓은 명단 때문에 군내의 좌익들이 몽땅 체포되었다는 주장은 과장이다.

 

좌익세포가 가장 많이 들어가 있었던 곳은 육군사관학교였다. 1중 대장 박정희 소령에 이어 1중대 2구대장 황택림 중위, 4구대장 장구섭 소위, 2중대장 강창선 대위가 체포되었다. 그 이전에 사관학교에서 간부로 근무했던 오일균, 조병건, 김학림도 제거되었다.

 

박정희의 만주군 관학교 2기 동기 출신들 가운데서도 이병주, 안영길, 강창선, 이상진이 숙청되었다. 혈연, 학연, 군맥에 의해 좌익인맥과 이중삼중으로 얽혀 있었던 것이 박정희였다.

 

김*곤의 관사는 박정희의 용산 관사와 길 하 나를 두고 대각선으로 마주보고 있었다. 박정희가 구속된 뒤에는 혼자 있는 이현란을 총각의 몸으로 찾아가기가 뭣했다. 옆집에 살고 있던 군 악대장 이종태 부부와 함께 들러 쌀도 갖다주곤 했다.

 

1949년 1월말,박정희가 풀려나온 것을 김창룡의 전화를 받고 알게 된 김점곤은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침상을 받아놓고 밥숟가락에 김을 막 얹으려던 박정희가 김*곤을 보더니 달려나와 와락 끌어안았다. 그는 '김형, 고맙습니다'라면서 엉엉 울었다.

 

'빈틈없는 용장' 김*곤 … 6·25 전세 뒤집은 다부동 전투 영웅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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