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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11 18:48
[한국사] 요동(遼東)의 개념에 대한 이해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861  

제가 그동안 강역사 연구를 하면서 중국 역대 사서를 분석하고 강역사의 여러 쟁점을 고찰하는 과정에서 얻은 요동의 개념을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지도를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 - 

중국의 본격적 역사시대는 동주 시대부터이며 역사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춘추시대 말기부터이며
대체로 전국시대를 거쳐 전한 시대에 가서야 인식 체계가 수립됩니다.

동주라 함은 서안(장안)에서 낙양으로 천도한 때부터를 가리킵니다.

요(遼)는 '멀다'는 뜻으로서 일반적으로 북쪽을 가리킵니다. 어느 시대고, 특히 고대의 지리관념은 왕경과 경기를 기준으로 합니다. 춘추시대 초기까지는 현 산서성 북부와 하북 일부를 북적 세력이 차지하고서 권세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춘추전국시대에, 낙양을 기준으로 북쪽에 해당하는 곳은 지금의 산서성 지역, 또는 지금의 하북성 석가장시 일대에 해당합니다.

춘추시대 말기부터 중국 세력의 영역이 북쪽으로 크게 확장되면서 요(遼)의 대체 개념으로서 역시 북쪽을 뜻하는 삭(朔)으로써 당시 북방 세력의 중심지인 현 오르도스 일대를 가리키게 됩니다.

https://i.imgur.com/8w9oNLr.jpg


또한 하북지역에서도 요(遼)로 지칭되는 지역이 현 석가장시 일대에서 보정시 일대로 진출하는 양상을 모습을 보입니다.

고대사서와 지도에서 요(潦)와 요(遼)는 혼용돼 쓰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요수가 비교적 처음 등장하는 사서는 산해경으로서, 산해경의 해내동경에 기술돼 있습니다. 그런데 산해경에 주석을 단 서진 사람 곽박(276-324)은 같은 것으로서 인식하고 있으며, 또한 전한 시대 상흠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수경의 대요수 기술에서도 산해경의 요수 기술을 받아서 적으면서 요(潦)와 요(遼)를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潦(요) - 遼(요) - 朔(삭) - 遠(원) - 北(북)

산해경에서 말하는 요수는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어느 강인지 알 수 없지만 해내동경에 기술된 점으로 볼 때에 현 하북성과 산동성 사이에 존재했던 어떤 강인 것은 분명합니다. 

潦水出衛臯東東南注渤海入潦陽

그런데 潦가 물웅덩이를 뜻하는 글자이고, 현 하북성 보정시 동쪽에서 고대의 황하가 바다로 들어가면서 이 일대에 수 많은 물줄기가 나고, 곳곳에 늪이 형성되었던 사실, 또한 송나라 시대까지도 현 천진시 서북쪽의 패주시 일대가 늪이었다고 한 무경총요의 기록 등을 볼 때에 지금의 대청하에 해당하는 고대 이수(역수), 또는 영정하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것이 아니라면 이 두 강의 사이에 위치한 어느 강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요동과 요서는 애초에 요수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요 지역, 즉 중국 세력이 보는 북쪽의 어느 지역을 기준으로 나눈 개념일 가능성이 더 있으며 요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차차 요수가 요동과 요서를 나누는 기준이 됩니다.

https://i.imgur.com/TNs8Mzu.jpg


중국 역사에서 당산과 진황도 남쪽, 산동 북쪽, 현 천진시 일대와 그 연안의 바다를 요해라고 불렀으며, 이 요해로 흘러드는 강을 요수라 하였습니다. 

역사서에서 확실히 그 위치가 확인 가능한 강은 현 란하입니다. 그러나 이수(현 대청하), 영정하 역시 요수로 불렸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명-청 시대에도 현 천진시 정해구의 북쪽을 요동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제가 예전에 이곳 동아게에 소개한 바 있습니다. 정해구의 북쪽에는 지금 독류감하가 지납니다. 이 강이 기준이 되는 것인데 애초 이 지역이 바다였던 점을 고려할 때에 대청하, 또는 영정하가 요동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을 것이 확실합니다.

이 때에 대청하(옛 이수), 또는 영정하가 요수, 
그리고 이들 강의 동북쪽이 요동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현 당산시를 중심한 그 주변 일대가 가장 전통적인 요동입니다. 

https://i.imgur.com/AEyG6Qm.jpg


중국역사, 혹은 우리의 대외관계사에서 나타나는 요동은 크게 다음과 같습니다

① 현 당산시를 중심한 그 주변

② 현 보정시 일대

③ 난하, 또는 임유관, 또는 산해관 동쪽

④ 요동군

⑤ 요동국

애초에 공손씨는 현 하북성 보정시와 당산시, 진황도 일대에서 활동한 족속입니다. 저는 고구려 초기 태조대왕을 위시한 1~2세기에 확보한 현 난하 동쪽, 요하 서쪽의 영역을 2세기 말 발기의 란으로 인해 상실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기의 연왕 한광(韓廣)이 요동왕으로 좌천된 후 무종(현 계현)에서 살해당한 기사를 검토할 때에 서기전 206년 당시의 요동이 여전히 현 당산시 일대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강단 사학자 가운데에 권오중 박사는 매우 전향적 인식을 보여주는데 이 지역이 줄곧 요동이었다가 서기전 128년 경에 대릉하 유역으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위만조선 멸망 후에 한사군이 설치되는 때가 되어서야 요동군이 옮겨졌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요동군이 옮겨졌다 하여도 당산 지역은 여전히 요동으로 인식되었습니다.

https://i.imgur.com/zVooxI1.jpg


잘 보고 가세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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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auder 20-09-11 19:00
   
마침 요동때문에 궁금해져서 찾아보고있었는데 글 올리셨네요. 명초의 요동의 위치가 관건이 되겠네요.
     
감방친구 20-09-11 19:06
   
명나라 때에는 이미 지금의 요심 지역, 즉 우리가 익히 요동이라고 습관적으로 부르는 그 지역을 요동으로 인식했습니다

물론

전통적 개녕의 요동인 현 당산시 일대 역시 요동으로 인식했고,
또한 아예 장성 바깥, 즉 산해관 바깥은 요동으로 통칭했습니다
Marauder 20-09-11 19:13
   
일단 천진시 위쪽이라고 한다면, 감방친구님 말이 맞고, 요양부근을 요동이라고 한다면 촐라롱콘님 말이 맞는거같네요. 물론 촐라롱콘님이 제시하신 부분만 봤을때 말입니다.
KilLoB 20-09-11 19:24
   
고구려 당태종당시 원정 집결지가 현재 베이징인근이었다고 하더군요. 탁수, 탁현?
상식적으로 그정도 병력물자를 적의 영토에서 집결시킬리는 만무하고...
적에 가장가까운 우리측영토에 집결시켰을것으로 보고


고려의 영토는 서로는 고구려에 미치지 못하지만, 동으로는 고구려를 넘는다는 어떤사서 기록..
요사지리지?를 보면 당시 고려의 최전방기록을 바탕으로 요나라 국경수비병력 위치를 추측한게 있다던데..
그 위치는 요하(현재 실세변 압록이 아닌 물수변 압록)라고 보는게
여러모로(강남6주가 아닌 강동6주라는 명칭이나,
요나라 영토마다 있는 요탑이 거기기점 없어진다는것,
주원장의 조선에 대한 철령에 관한 협박외교문을 봐도 요하=물수변압록은 인정하고,
다만 지류의 위치로 내려가라고 다투는거 같던) 맞다고 보면,

또...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물리친후 잡으러 내려온곳이 화북성 어디마을이였는데.. 마을에 숨어 겨우 살아남았다. 그게 경극의 형태로 아직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걸 봐도.

고구려의 전성기 서쪽영토는 더 서/남쪽이었을것으로 봅니다.

아마 베이징 어디쯤 강이 고구려와 수당의 경계가 아니었을까

훗날 고려의 경계는 요하인 물수변 압록이고(몽골간섭기 이전 // 고려말 요동수복의 의미는 예전 고구려발해가 아닌, 100년전 자기들 영토수복이란 의미가 될것이고)
현재 압록강으로 아는 실세변압록은 조선에서... 존화주의던, 실력부족으로 능력이 않되던 어쨌든 포기한거 같던

요하란건 맨첨엔 특정이 아니고 그냥 대충~~중국서 멀다..
어느시점 특정될때 즈음 어리버리하게 구렁이 담넘듯이? 동진됬을것이다..
따라서 요서,요동.. 지금과 과거는 같지않다...

그럴거 같습니다.
     
감방친구 20-09-11 19:39
   
요사지리지?를 보면 당시 고려의 최전방기록을 바탕으로 요나라 국경수비병력 위치를 추측한게 있다던데//

이거는 제가 연구해서 동아게에 몇 차례 게시하여 공유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저 이전에 윤한택 교수가 이 내용을 먼저 언급한 바 있습니다
     
스파게티 20-09-11 19:43
   
또...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물리친후 잡으러 내려온곳이 화북성 어디마을이였는데.. 마을에 숨어 겨우 살아남았다. 그게 경극의 형태로 아직도 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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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소성입니다  몽룡탑
KilLoB 20-09-11 19:31
   
그리고 동으로 고려의 영토가 고구려를 넘는다는건...

아마 동북여진족에 대한 회유 귀부정책이 한때 성공거뒀다는 의미가 아닐지.

요나라와 전쟁승리후 이들 여진부족들에 대한 귀부정책...
거기에 반대했던게 아골타고,
아골타등에 지기전까지

현실은 아니지만
어쨌든 명목상 영토는 더 동북방향으로 잠시나마 나갔"었"다.란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금나라 개국, 몽골이후는 뭐 말하나마나이나..
     
감방친구 20-09-11 19:37
   
회유가 아니라 자기들이 알아서 주ㆍ군ㆍ현을 설치해달라 고려백성으로 살게 해달라 애걸했습니다

실질영역은 연해주 남부까지 제한적으로 미쳤겠지만
이들이 연해주 족속들이었던 점에서
고려는 연해주 전체를 자기 관할이라고 한 때나마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좀와라 20-09-12 04:09
   
고려시대에 시집온 몽골공주의 휘호를 보면 제국 노국 계국 공주 등등 인데 저 지역이 어는 지역이에요?

몽골제국은 공주에게도 영지를 주었습니다. 당연히 몽골의 풍습을 물려받은 근세조선의 왕실도 영지를 주었고요. 말죽거리 같은 경우 공주가 시집 올 때 상씨 집안이 받은 영지 입니다. 주로 서울에 있다보니 지방 사람들은 모르죠. 저 같은 반 이상의 서울 토박이나 알까?

고려 그렇고 몽골도 그렇고 둘다 봉건체제의 나라 입니다. 당연히 몽골공주들이 시집 오면서 자신들이 몽골황실에 하사 받은 영지도 같이 가지고 온 거죠.

심양왕에 대한 것도 사실 몽골공주의 영지 상속에서 온 거에요. 당연히 심양지역은 왕씨 집안의 땅인데 몽골공주가 자신의 양자에게 주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싸움 이거든요.

그럼 고려왕실의 영토은 어디 까지 이었을 까를 본다면 지금의 요동반도와 산동반도는 고려 황제가 아닌 고려왕실의 봉토로 당연히 고려영토라는 말입니다.

이런 시스템은 세계 역사를 보면은 굉장히 많아요. 영국의 왕이 노르만디의 공의 직을 겸한다거나 오스트리아 황제가 사실상 오스트리아 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를 다스리는 것 이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정략결혼 때문에 벌어지는 것인데 고려와 원나라의 관계가 그렇다는 거죠.

고려의 체제가 5주 양계인가 그런데 주나 현은 직할령에 붙이는 이름이고 양계는 아마도 지방인데 그것도 약간은 독립적인 봉건영주가 지배하는 지역 이란 말입니다.

보통 양계는 정군사(? 아마도 맞을 꺼요?) 하여간 통치조직이 조금 틀려요. 이게 고려가 봉건체제라 그런 것이고 이것을 외왕내제라 하는 거에요.

고려는 처음부터 누구의 신하로 시작 하는데 그렇다고 자주적인 집단은 아니고 영토를 얻기 위한 것이라 보는 것이 맞는데 소수의 의견이긴 하지만 남당을 세운 왕건이 나중에 하남 절도사가 되고 절도사는 사실상 독립적인 존재라 종주권만 인정하고 자기들 끼리 싸우고 죽이는 데다 수틀리면 장안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하는 그런 존재 들이죠.

여기서 소수의 의견이라고 하는 것은 남당을 세운 왕건과 고려를 세운 왕건이 동일 인물 인지 여부에 대한 것이고 부여 태비의 존재를 인정하면 남당을 세운 왕건과 고려를 세운 왕건이 동일인물이고 사실상 고려는 하남성에서 시작 했다는 가설이 성립되는 거죠.
          
영종햇살 20-09-12 11:12
   
중국 5대10국 시대에 오월국(907년-978년)이 있었는데 위치는 지금 항주(상해 밑에 위치)
지역이었다. 고려사에 보면 오월국 사람이 투항해 오는 기록이 있다.
919년 오월국 추언규가 투항해 오다.
923년 오월국 박암이 투항해 오다.

바다 건너 고려에 투항하는 것이 이상하죠.
지누짱 20-09-12 12:16
   
윤내현 교수의 한국고대사신론을 보면 요동과 요서의 유래와 변천에 대한 논증이 자세히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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