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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18 17:14
[북한] 6.25전쟁은 정치적 초점에서 역사적 관점으로 변해야 한다.
 글쓴이 : 돌통
조회 : 390  

종래 한국전쟁에 대한 한국 사회의 평가는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었다. 지금은 물론 이견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제까지 상당수의 한국 국민들은 이 전쟁을 '적화통일을 위한 김일성의 남침'으로 이해하여 왔다. 다시 말해, '김일성의 적화야욕'이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의 기본 골격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전 주석이 한반도 전역을 지배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이 같은 시각은 기본적으로 김일성의 개인적인 정치적 동기를 부각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화야욕을 위한 남침'은 정치적 관점의 소산물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관점은 이제 극복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크게 3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



첫째, 정치적 관점에 매몰되면, 김일성의 정치적 동기만큼은 철저히 해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당시 북한 지도부가 어떤 배경하에서 전쟁을 결의했는지를 간과할 위험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전쟁 발발의 객관적 조건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김일성의 주관적 동기를 해부하는 연구는 별다른 의미를 갖기가 힘들다. 김일성이 아무리 항일혁명가였다고 하더라도, 그도 정치인인 이상 정치적 '욕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정치인이 정치적 욕심을 갖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배 영역을 최대한 넓히고 싶어하는 것은 비단 김일성뿐만 아니라 대부분 정치인이 공유하는 심리적 특성일 것이다. 남 보기엔 그저 하찮게만 보일 수 있는 '3류 정치 건달'도 그 마음속에서만큼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종래에 해왔던 것처럼 김일성의 '적화야욕'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평가하려고 하면, 그것은 김일성의 심리에 대한 연구에 불과할 뿐 한국전쟁에 대한 객관적 연구라고는 보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전쟁을 잉태한 객관적 조건은 간과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전쟁 연구가 김일성 심리 연구가 되어서는 곤란



 둘째, 현재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젊고 새로운 세력은 과거의 이해관계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한국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과거 세대가 이 사건에 대해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그 같은 과거의 이해관계에 휘말릴 필요가 전혀 없다.



만약 이 문제가 외세와의 관계에서 생긴 일이라면 모르겠지만, '집안' 내에서 벌어진 과거사를 두고 그 후손들까지 두고두고 감정에 휘말릴 이유는 없을 것이다.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한바탕 크게 싸움을 한 후로 오랫동안 등진 채로 살아왔다 하더라도, 이미 성인이 된 마당에 그 일 때문에 사촌 형제들과 반목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아버지 대(代)의 문제를 그냥 덮어두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사촌들끼리라도 아버지들끼리의 문제를 명확히 해명하고 서로간의 감정을 정리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문제를 해명하는 목적은 '죄인'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집안의 단결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부모 세대의 묵은 감정에서 해방되어, 당시 그분들이 서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던 원인 등에 대해 인식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자식 세대인 사촌들 간의 오해와 불신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오랫동안 갈등과 대립을 반복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두 분은 한 할아버지의 자식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부모 세대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셋째, 한국전쟁은 이미 정치적 사건의 범주를 떠나 역사적 사건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한국전쟁의 정치적 성격은 1950년 6월 25일에 가장 극명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경과함에 따라 한국전쟁은 서서히 역사적 사건의 범주로 들어서게 되었다. 정치적 사건에서 역사적 사건으로의 성격 변화는 한국전쟁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건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나타날 것이다.

 

한국전쟁이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사건이 단순히 오래된 사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전쟁이 기반을 두고 있던 '역사적인 한 시대'가 이미 종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기본적으로 냉전구도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1990년대 이래로 전세계적 범주는 물론 동북아에서도 냉전은 현저하게 해체되어 왔다. 물론 미국이 냉전시대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테러 전쟁 등을 통해 신냉전 구도를 정착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는 있지만, 세계는 이미 냉전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향해 급속도로 달려가고 있다.



이처럼 한국전쟁을 규정하던 냉전질서가 사실상 해체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건을 비교적 객관적 관점에서 인식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당대의 이해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이 사건의 역사적 성격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역사학계에서 한국전쟁 이후에 출현한 박정희 정권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점을 본다면, 한국전쟁도 얼마든지 역사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의 토대인 냉전구도가 이미 사실상 해체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가 한국전쟁에 대한 정치적 관점을 극복하고, 역사적 관점을 취해야 할 이유는 크게 3가지 정도다.



▲'적화야욕'이라는 김일성의 정치적 동기를 해부하는 데에 치중하면 한국전쟁 발발의 객관적 조건을 규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세대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우리 세대까지 한국전쟁에 대해 감정적 평가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규정하던 냉전질서가 이미 해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한국전쟁에 대한 종래의 정치적 평가를 극복하고 이 사건을 역사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을 역사적 관점으로 인식한다 하여 그것이 곧바로 김일성에게 유리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 이후에 그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나올 수도 있고 긍정적 평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시도할 것인가? 다른 논의는 차후의 기회로 미루고, 이 글에서는 김일성을 포함한 당시 북한 지도부가 한국전쟁을 개시한 이유가 무엇인지 하는 점만을 다루기로 한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어떤 결론을 도출하기보다는 결론 도출에 필요한 팩트(사실관계)만을 제시하기로 한다.

 

어느 행위자가 특정 행위를 한 이유를 역사적 관점에서 규명하려면, 행위자의 정체성을 분석함은 물론 그 행위자가 처해 있던 객관적 조건을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지도부가 왜 한국전쟁을 개시했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팩트들을 판단 자료로 선정할 것인가? 기본적인 판단 자료는 다음과 같이 4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한국전쟁을 일으킨 당시 북한 지도부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북한 지도부는 미국과의 전쟁을 위해 급조된 '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해 급조된 '팀'도 아니었다. 이 팀은 '가나'나 '노르웨이'와의 '평가전'을 위해 급조된 팀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월드컵'을 위해 오래전부터 꾸려진 팀이었다.

 

그럼, 북한 지도부의 모티브는 무엇이었는가? 일제 패망 이전에 형성된 이 그룹의 모티브는 기본적으로 '반외세'였다. 1945년 이전에는 일본이 우리 민족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그룹은 일본을 반외세 투쟁의 대상으로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점은 한국전쟁의 또 다른 당사자인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오쩌둥(모택동) 그룹 역시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이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위해 급조된 '팀'이 아니었다. 이미 그 이전부터 반외세 투쟁을 위해서 결성된 그룹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전쟁 당시 '한 팀'을 이루었던 북한과 중국은 모두 반외세 투쟁조직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이들이 휴전협정(1953년)의 당사자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휴전협정에서 북한·중국의 카운트파트가 한국이 아닌 미국이었다는 점 역시 의미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것은 북한이나 중국이 한국과 싸운 게 아니라, 미국이라는 공동의 외세와 싸운 것이었음을 보여 주는 유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북한이 목표로 한 주적이 이승만 정권이 아니라 미국이었다는 점은 그리 어렵지 않게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반외세 투쟁을 모티브로 하는 북한과 중국이 한국전쟁에서 미국에 맞서 공동으로 투쟁을 벌였다는 점은, 북한이 왜 전쟁을 개시했는지를 판단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타깃은 이승만 정권이 아니라 미국



둘째, 1945년 이전까지 항일투쟁을 벌이던 북한이, 미국에게 승리를 빼앗긴 적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 점은 중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941년 진주만 기습 당시, 동아시아의 대립구도는 기본적으로 한민족·중국 대 일본이었다. 비록 진주만 기습 이후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이기는 하였지만, 동아시아의 대립구도만큼은 여전히 한민족·중국 대 일본이었다. 이러한 대립 구도 속에서 북한 지도부는 한민족 항일투쟁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1945년 이전까지의 항일전쟁에서 일본은 한·중 연합세력에게 기본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사실 일본이 진주만 기습을 감행한 것 역시 물론 미국의 대일 압박이 그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항일전쟁의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일본군 100만 대군은 중국 대륙에서 발이 묶인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렇게 일본이 한·중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2방의 원폭으로 일본을 타격했다. 그리고 미국이 '전리품'을 독차지했다. 미국이 항복선언을 받아내고 또 미국이 이후 동북아 질서를 주도하게 되었다.

1919년 3·1운동 및 5·4운동 이래로 항일투쟁 무대에서 수십 년간 싸워온 한·중 반외세 그룹의 입장에서는 뒤늦게 불쑥 나타나서 '전리품'을 독차지한 미국이 곱게 보였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한·중과 미국 중 어느 쪽이 더 잘 싸웠든지 간에, 미국보다 훨씬 오랫동안 대일전쟁을 벌여온 두 민족으로서는 승리를 독차지한 미국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미국에게 승리를 빼앗긴 북한과 중국이 한국전쟁에서 미국에 맞서 공동으로 투쟁을 벌였다는 점은, 북한이 왜 전쟁을 개시했는지를 판단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미국에게 항일전 승리를 빼앗겼다



 셋째, 항일전쟁의 당사자인 북한이, 승리를 빼앗긴데다가 더 나아가 미국에게 국토의 일부까지 장악당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일제 패망 이후에 대만을 미국에 내주어야만 했다. 물론 미국이 대만을 직접 지배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일부인 대만이 한국·일본과 함께 미국의 영향권 하에 들어가고 말았다.

 

북한이나 중국이 항일투쟁을 한 목적은 국토의 일부를 회복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전 국토를 외세의 지배 혹은 영향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그 점은 한국측 항일투사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외세를 몰아내기 위해 독립투쟁을 벌인 북한의 입장에서는 일제 패망 이후에 미국이 국토의 일부분을 장악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자신들의 반외세 투쟁이 아직 덜 끝났다고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 입장에서는 여전히 반외세 투쟁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남측 사람들이 전 한반도를 우리 민족의 국토로 인식하고 있듯이, 북측 사람들도 한반도 전체를 민족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미국에 의해 국토의 일부분을 장악당한 북한과 중국이 한국전쟁에서 미국에 맞서 공동으로 투쟁을 벌였다는 점은, 북한이 왜 전쟁을 개시했는지를 판단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에게 국토 일부를 장악당한 것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 지도부가 왜 한국전쟁을 일으켰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이 그룹의 정체성이 반외세 독립투쟁 그룹이었다는 점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이 그룹이 미국에게 승리를 빼앗긴 적이 있다는 점


▲항일투쟁 이후 미국이 국토의 일부를 장악함에 따라 반외세 투쟁의 목표가 종결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 지도부가 처한 이러한 상황이 중국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이 두 나라가 한국전쟁에서도 미국에 맞서 공동전선을 폈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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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ak 20-09-19 12:56
   
항일전쟁의 당사자인 북한이, 승리를 빼앗긴데다가 더 나아가 미국에게 국토의 일부까지 장악당했다는 점을 고려??

개소리를 쳐하네.  진짜 빨갱이 새끼들이 있구만.



북한의 타깃은 이승만 정권이 아니라 미국 ??    ㅈㄹ 하네.
미국은 오히려 에치슨라인 으로 한국 상관 안하겠다고 했고 미국이 빠지니 
김일성이 이승만 정권과 남한 사람을 상대로 타깃을 한거다.




북한이 반외세?  소련 바지사장이 김일성인데.
un에서 남북한 같이 선거 하자는 것도 막았는데.
이미 소련군이 북한 장악하고 나라 세우고.




휴전 협정 당사자에서 한국이 빠진걸 봐서 북한이 목표로 한 주적이 이승만 정권이 아니라 미국이었다는 점??
ㅈㄹ 하네.


그냥 휴전하면 미군이 한국에서 나갈까봐
이승만이 통일전쟁 해야 한다고 하며 휴전 반대하다
대신에 미국과 상호방위조약 맺은거지.




1941년 진주만 기습 당시, 동아시아의 대립구도는 기본적으로 한민족·중국 대 일본??
북한 새끼들이 임시정부 부정하는 개논리네.

김구 임시정부는 미국 특수부대와 연계해서 같이 훈련도 하고 연결되어 있었는데.
안창호 등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조선인들도 미국 등에서 여러가지 활동했고.
이승만도 미국 명문대 연줄로 여러가지 외교 활동 하고.




외세 외세 ㅈㄹ 하는데 북한 새끼들이야 말로 소련군 장교, 물자 등에
지배 당하고 명령 따르던 새끼들.

현재도 자주와 민족을 외치지만 짱깨에 사대주의 하는게 실체.
ssak 20-09-19 13:20
   
소련, 러시아가 만든  바지국가 북한.


러 대사관의 광복절 기념사.."소련군이 한민족 日 식민지배에서 해방"
https://news.v.daum.net/v/20200813083417805



태평양 전쟁 때 소련은 일본하고 싸우지도 않고,
오히려 한국인들,  독립군과 연해주 이주민을 탄압하고 죽인게 러시아 새끼들.


미국이 다 싸웠는데,  태평양전쟁 끝날무렵인 1945년 8월,  한국 광복 2주전에 참전에서
소련이 한반도로 내려오니까 미국이 38선 아래로 못내려오게 막았고.


소련은 영토 차지한 북한에 김일성을 바지로 내세워 소련 위성 국가 세우고.


일본과의 전쟁은 99프로 미국의 공인데 일본과의 전쟁에서 아무런 공이 없는 소련의 숟가락얹기.
소련 때문에 한반도가 분단되고,  김일성과 소련이 한국을 침략해 전쟁 일으키고.
서해 20-09-19 14:41
   
글쓴이 저번에도 이상한 소리 하다가 욕 드시던데 왜 자꾸 이런 글을 올리시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진지하게 님 역사관에 문제 있어 보입니다. 마치 북한이 피해국인 것처럼 묘사하시네.
감방친구 20-09-19 18:41
   
북한은 전범국가이자 우리의 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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