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시대 초기 묘향산에 대한 기록과 현재의 묘향산에 대한 지명을 비교하였다.
조선 초에 지명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반도 북부의 지리가 조선 초에 큰 변화를 맞이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2.
조선시대 초기 서거정의 기록에 묘향산(妙香山)은 박천(博川)의 발원지라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박천강(博川江)의 다른 이름이 대령강(大寧江)이었다고 나와있다.
현재 대령강(大寧江)은 묘향산(妙香山)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발원지도 아니다.
천마산이 대령강(大寧江)의 발원지이다.
3.
묘향산의 동쪽에 성주(成州)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는 묘향산의 남쪽에 있다.
현재 묘향산의 동쪽에는 영원군이 있다. 영원군은 고려시대 영원진이었다.
성주(成州)는 현재의 성천이다. 이 성주에는 덕천, 개천, 맹산 등이 속해 있었다.
그러므로 조선초기의 기록과 현재의 지명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4.
묘향산의 남쪽에 평양부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는 남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평양이 있다.
5.
영주(寧州), 안주(安州), 운주(雲州), 가주(嘉州)가 묘향산 곁에 포열해있다고 했다.
운주(雲州)는 묘향산과 접경해있고 , 가주(嘉州)는 일부가 묘향산과 접경해있다.
그러나 영주(寧州), 안주(安州)는 묘향산과 멀리 떨어져 있다.
그 가운데 안주(安州)는 현재 지명에 대입해보면, 평안도 안주와 평안도 맹산, 황해도 재령이다.
지명이 동 떨어진 곳에 분산되어 있다. 조선시대 초기에 지명이 이동해서 왜곡되었음을 알게 된다.
(서거정의 기록을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찾아보면 운주(雲州)는 현재 운산군, 가주(嘉州)는 현재 영변군,박천군,태천군,운전군이다. 영주(寧州)는 현재 안주시이고, 안주(安州)는 현재 안주시,문덕군 그리고 황해도 재령, 평안도 맹산이다.)
6.
압록강의 남쪽에 묘향산이 있다고 했다.
지금 현재는 압록강의 남쪽에 숭적산이 자리잡아 있다.
묘향산 보다 더 크고 산맥이 더 길게 뻗어있다.
당시 묘향산 기록과 현재 지리가 안맞는다.
7.
조선시대 초기 서거정의 기록은 15c중후반의 기록이다. (1444년~1488년)
이 당시의 묘향산과 현재의 지명이 안맞는다.
지명 이동으로 인하여 왜곡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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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시점은 조선 태종시기에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는 다음 기회에.......
<사가문집> 제5권
묘향산(妙香山)에 유람하러 가는 준 상인(峻上人)을 보내는 서
그러나 내 나이가 어렸던 탓에 결국 가지 못하고 말았다. 내가 벼슬에 종사한 이래 여러 차례 관서(關西)를 다녔고, 올봄에도 두 번이나 사명(使命)을 받들고 압록강으로 가 살수(薩水)와 박천(博川) 두 강을 지났으니, 두 강의 발원이 이 묘향산이다. 배를 타고 가면서 이른바 묘향산이라는 곳을 찾아가 보고는 싶었으나 못하고 말았으니, 조축의 말이 내 마음속을 오가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내가 돌아와 며칠이 되었는데, 상인(上人) 설준(雪峻)이 묘향산을 유람하려 하면서 나에게 한마디 말을 부탁했다.
내가 일찍이 이 산의 웅대함을 보니, 수십 고을의 땅에 걸쳐 있어 동쪽으로 성천부(成川府)는 비류왕(沸流王) 송양(松壤)의 옛 도읍지이고, 남쪽으로 평양부(平壤府)는 삼조선(三朝鮮)과 고구려의 옛 도읍지이며, 영주(寧州), 안주(安州), 운주(雲州), 가주(嘉州) 여러 고을이 그 옆으로 포진해 있고, 서북쪽으로 요양(遼陽)과 여양(閭陽)에 인접해 있다.
<사가문집 제6권>
묘향산(妙香山)을 유람하러 가는 욱 상인(郁上人)을 보내는 서
지금 상인은 모습이 여위고 정신이 맑으며, 도가 높고 행실이 우뚝하니, 불가에서는 가장 우수한 사람이다. 그러나 법은 머물 수 있어도 상(相)은 머물 수 없으니, 명승지를 두루 찾아다니고 선지식(禪知識)을 참방하여 남으로는 고개를 넘어 신라의 본토를 찾아 산하의 영험한 자취를 보고, 동으로는 관동에 들어가 풍악산(楓嶽山)에 올라 푸른 바다를 보았다. 그런데 지금 다시 서쪽으로 유람하여 단군(檀君)과 기자(箕子)와 동명왕(東明王)과 송양왕(松壤王)의 유적을 찾아가고, 패강(浿江)을 건너고 살수(滻水)를 건너 마침내 묘향산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묘향산은 압록강(鴨綠江)의 남쪽 기슭에 있으니, 사실은 장백산(長白山)이 갈라져 나온 산이며, 요양(遼陽)을 마주하여 경계가 되는 산이다. 산에 향나무가 많아 겨울에 눈이 내려도 푸르고, 신선의 누대와 불가의 사찰에 신령스러운 자취가 아주 많이 남아 있으니, 우리나라의 큰 산치고 이와 비길 만한 산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