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고학계를 보면 과거에는 역사학계의 지리비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 고고학적 증거들을 해석해왔으나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서의 발굴이 쏟아져나오면서 난감한 입장인거 같습니다
얼마전에 찾아보니 한국사에서 청동기시대 개시연도가 기원전2600년까지 올라갔더군요. 기원전10세기로 봤던 역사학계의 주장이 뭉그러지고 드뎌 그간의 발굴성과를 기반으로 기원전30세기까지 끌어올릴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만주와 한반도에서 국가 출현시기를 최소한 기원전 20세기로 끌어올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신석기시대 후반기에 즉 기원전40-50세기에 출현한 추방사회(추장사회)에서 생산력이 발달하면서 많은 인구를 먹일수있게 되고 이에 따라 청동기로 만들어지는 사치품을 생산할 수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국가단계로 접어들은 것이죠.
고조선은 이런 배경하에 탄생한 흔히 말하는 고다국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와 그당시 국가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그때든 지금이든 광대한 영역이 하나의 통치체계로 들어오려면 교통수단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도로와 탈 것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죠
도로는 자연적인 길을 확장하면 됩니다. 반듯한 도로는 철기시대이후 벌목이 이뤄지면서 가능했지만 자연적인 도로의 확장은 인력으로도 가능했겠죠
탈것은 말 낙타 코끼리 나귀 등 포유류가 동원되었는데 특히 기원전40-30세기경 가축화된 말이 아시아 전역에서 이용되었습니다. 말이 도입되면서 통치영역이 확정된 것이죠.
그러므로 고조선은 탄생하면서부터 고대국가였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철기시대가 도래할때까지 동아시아는 거대한 밀림지역이 많았습니다. 이말은 결국 사람들이 모여살며 경작하는 곳 사이사이로 거대한 숲이 가로막고 있었다는 것이죠. 이 밀림은 철제도끼가 도입되기전까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결과 당시 국가들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읍을 크기별로 구분하여 읍이 누층적으로 결집된 누층적 읍제국가였습니다. 거기에 교통발달이 아직 미비하여 권력자의 친인척이 각지를 지배하는 혼인을 통한 동맹이 바탕을 이루는 누층적읍제봉건국가가 대세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고조선은 지나대륙의 은왕조와 주왕조와 비슷하게 누층적읍제봉건국가로 먼저 출발했고 본격적으로 철기가 도입되자 지나처럼 사회적경제적 모순으로 사라져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더 오래간 것은 철기도입이 늦어서가 아니라 문화와 성품이 온순해서라고 봅니다. 아무래도 산에 살던 사람들이 더 포악한 편이죠.
추가. 고조선이 지나쪽보다 먼저 국가가 성립했다고 보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조선이 위치했다고 여겨지는 곳은 북은 산맥으로 가로막혀있고 남은 바다로 가로막혀있고 동서는 큰강이 흐르는 천혜의 요새이자 평원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농사와 어로와 수렵이 골고루 발달해 생산력발전이 타지역보다 앞섰다고 봅니다. 비슷한 지역이 지금의 요서남서부와 요동남동부와 서북한평야지대인데 고조선은 이 벨트를 따라서 확장했습니다. 후대엔 기후가 더 온난해져 북만주까지 확장한 것이죠
추가2. 마지막빙하기시기 동남아시아까지 후퇴한 인류는 빙하기가 끝나자 다시 북상하였는데 동아시아에서는 한쪽은 중국해안을 따라 북상했습니다. 다른쪽은 버마쪽에서 사천지방으로 북상했고 이들 사이에는 거대한 밀림을 가지 산맥들이 남북으로 자리해서 상당기간 대규모접촉은 불가능했습니다.
중국동해안을 따라 북상한 인류는 양자강하류나 황하하류에 모여살았고 이들 중 일부가 다시 요하지역까지 북상하여 다시 사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한편 지금의 흑해방면에서 동진한 인류집단은 몽골초원을 넘어 만주로 들어왔는데 이들과 남쪽에서 올라온 인류의 교잡이 만주와 한반도일대에 살던 기원전70-50세기이전의 인류집단이라고 봅니다. 이들이 요하상류에서 홍산문화를 일으켰고 기후변화와 전염병으로 남하한게 고조선이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광범위한 의미에서 동이족은 중국동해안으로부터 만주 한반도에 살았던 인류집단이지만 서로 좀 차이가 있었고 그래서 고조선의 서쪽경계는 최전성기에도 북경인근이었다고 봅니다. 왜냐면 비슷한 족속인 동이족이 이미 살고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