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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3-10-15 08:11
[일본] 조선에 건너온 왜군이 대부분의 시간을 바닷가에 성 쌓고 허송세월 보낸 이유
 글쓴이 : 전략설계2
조회 : 1,620  

왜군은
임진왜란 당시 1592년 5월부터 1593년 3월 진주성 2차 전투까지.. 10개월
정유재란 당시 1597년 8월부터 10월 직산전투까지.. 2개월

싸우고,

남해안에 쌓은 왜성에서 전투를 하지 않고 시간만 보냈습니다.
6년 반 전쟁 중 1년만 싸웠습니다.

왜군이 남해안 왜성에서 허송세월을 보냈던 것은..


히데요시가 평민 출신으로 신분이 미천해 쇼군이 되어서 막부를 열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말로는 일본을 통일했다고 하나,
군사적으로 동쪽에 있는 250-300만석(자체 병력이 7만이 나옴) 규모의 이에야스를
제압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후계구도까지 불안하였습니다.

임진왜란 2년차인 1593년 아들 히데요리가 태어납니다.

아들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
1595년 이전까지 후계자 역할을 하던 조카 히데츠구를 할복시킵니다.

임진왜란 중 일본에서는 히데요시의 후계자가 바뀌는 국면이었습니다.
히데요시는 1597년 정유재란 때 환갑이 됩니다.
일본을 통일했다는 자가 환갑이 됐는데,
후계자 히데요리는 임진왜란 중 한짤, 두짤, 세짤, 네짤, 다섯짤, 여섯짤이었습니다.

동경에 있는 이에야스는 지도자로서 한창 경륜이 쌓이고, 일할 나이인 50대에 접어 든 시점이었고.

미천한 신분으로 막부를 열지 못하고,
나이 60을 향해 가던 늙은 히데요시의 후계체계가 불안한 상태로,
막대한 세력의 이에야스의 존재까지

이후 일본내 내전 가능성은 어느 정도 예견된 상태였습니다.

다이묘들이 군대를 크게 소모시키는
명군과 대규모 교전을 회피하고자 한 이유입니다.

잔머리 잘 굴리는 히데요시도 나이를 먹다보니,
이에야스를 견제하지 않고,
후계를 부탁하는 쪽이었습니다.

100만석 안팎의 마에다, 우에스기에 비해
모리가 규모는 더 컸지만, 가문이 구조적으로 나뉘어진 상태였고, 야심이 없어
일본 내에서 히데요시에 덤빌 세력은 동쪽의 이에야스뿐으로

결과론이지만
가문의 유지를 위해서는
히데요시는 임란을 일으킬 그 시점에,
이에야스와 일전을 벌려야 했습니다.

조선으로 출병한 다이묘들은
조선 농민들까지 의병으로 댐비는 상황에서
명군과 대규모 전투를 벌여봐야
바다 건너 영지라는 것이 얼마나 관리하기 어렵고 환상인지 절감하였습니다.
일본 내부 정세가 불안한 상태로
어떻게 돌아갈 지 몰라
조선에서 자기 병력 손실을 최대한 줄인 채 본국에 귀국할 생각이었습니다.

명군이 조선에 있는 한 조선정복은 불가능하기에,
명군과 큰 싸움은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임진왜란 때 10만 이상 왜군이 이여송의 4만 명군과 일전을 회피합니다.
조선군은 광교산 전투때 농민들 외에는
7년 전쟁 동안 1만 이상을 보기 힘든 군세였습니다.

벽제관 전투는 명나라가 패전한 전투였습니다.
이후 행주산성에서 왜군이 패하긴 하지만,
행주산성에 있던 조선군 수천이 한양을 향할 군세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1593년 3월 2차 진주성싸움 때 왜군이 9만입니다.
명군이 손을 못 쓰고 구경할 정도의 군세였습니다.

당시 명군은 다 합쳐도 4만이 안 될 때였고,
수적으로 명군을 2배 이상 압도하는 군세였지만,
명군과 대규모 전투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왜군이었습니다.

정유재란때도 남원성 거쳐 왜군이 파죽지세로 올라오자,
선조도 다시 피난가려고 했을 정도로,
명군 병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직산(천안)에서 교전 한번하고,
진 것도 아닌대 왜군이 후퇴합니다.

임진왜란 때 벽제관에서 명군과 교전 이후 후퇴,
정유재란 때 직산에서 명군과 교전 이후 후퇴 시기가
공교롭게 일치합니다.

명군만 만나면 남해안으로 내려 앉았던 왜군이었습니다.

임란 때 행주산성 전투가 있었지만 조선군이 한양을 공격할 군세가 전혀 아니었고,
정유재판 때 명량해전이 있긴 했지만,
조선 수군이 제해권을 갖는 해전이 아니었습니다.

이순신은 1597년 9월 명량해전 이후 군산 앞바다로 이동합니다.
겨울은 양쪽 수군이 작전하기 어려운 계절로
명량해전은 배로 한양을 직공하고 보급을 대는 왜군을 막았을 뿐이지,
당장 남해안의 제해권을 찾은 것은 아닙니다.

히데요시 명령이라 북진은 했는데,
명군하고 몇 만 대 몇 만으로 싸우기 싫었던 것입니다.

임란 후 일본에 돌아간

가토 기요마사,
후쿠시마 마사노리,
구로다 나가마사,
가토 요시아키,
도도 다카토라,
와키자카 야스하루,

바야카와 히데아키 등


자기를 다이묘로 만들어주고, 어떻게든 인연을 맺은 도요토미 가를 등지고,
이에야스에 줄 섰던 인간들입니다.
가토 기요마사는 히데요시와는 7촌, 히데요시 본처 오만도코르와는 5촌이 되는 일가 친척입니다.

이시다 미츠나리가 히데요시에게 안 좋게 보고한 것이
이에야스에 붙어야 할 이유는 못 돼죠.
상황봐서 이에야스 쪽에 붙어보려는 수작이지,

전국시대 일본에서 그만한 눈치없이 다이묘를 할 수는 없는 것이죠.

히데요시 양자인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세키가하라에서 토요토미가를 배신하였고,

모리는 싸우지도 않았죠.


저런 군상들이었기에..
조선에서 명군과 대규모 교전을 피하여 병력을 아끼려 하였던 것이죠.

전국시대 일본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히데요시 비위도 맞춰야 했고,
전쟁 이후도 생각해야 했습니다.

다이묘 각각이 자기 잇속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의 독립체(일본에서는 '국'이죠)라
집 나와서 바다 건너면 큰 전투를 회피하기 마련입니다.

이래서 임진왜란 때 일본은 세계적 강군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40년뒤 같은 조선을 상대한 청나라와 비교가 되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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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시윤 23-11-02 13:44
   
지적할 것 한가지.  왜군이 북상해서 전투하려면 해상을 통한 보급이 필수인데 그걸 무시하네요
전략설계2 23-11-07 17:11
   
역사상 해상으로 식량 보급받고 전진한 군대가 몇이나 되나요.

나폴레옹 시절에도 식량은 현지 징발이 원칙입니다.

병자호란때 청 군대가 해상 보급받고 전진했습니까..
압록강 건너서 한양 오는 거리나, 부산에서 한양오는 거리나 비슷해요.
조선 사신이 음식을 선물하니까,
조선 팔도의 것이 다 자기 것이라고 조롱하잖아요.
현지 징발을 얘기하는 것이죠.
 
노예로 조선 사람 수십만을 잡아 가는 판에 식량 하나 징발 못 하겠어요.

1592년
6월에 소서행장이 평양성에서 조선군이 버리고 간 쌀이 10만석이 창고에 쌓여있었고,
11월에 흑전장정이 황해도 일대에서 2만석의 군량을 모았다고 합니다.

식량이 여유 있었던 전쟁은 거의 없고요.

왜군의 평양성 퇴각은 식량문제가 아니었고.

임진왜란 때 왜군의 퇴각은 한양이었고,
정유재란 때 왜군의 퇴각은 천안이었습니다.

왜군이 기아에 시달려 남해안 왜성으로 퇴각한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히데요시 생각으로 한 전쟁이라
자신의 소중한 병력이 조선에서 소모되어야 할 이유가 없기에
싸울 의지가 없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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