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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3-31 13:57
[한국사] 묘제로 본 고대 우리 민족과 이웃 민족
 글쓴이 : 윈도우폰
조회 : 639  

고대 내지 선사시대 동일 문화권으로 보는 지표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묘제.


묘제를 중심으로 볼 경우 고대 특히 고조선 시대 이전, 우리 민족은 지석묘를 묘제를 기본으로 하여왔다. 다른 묘제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유의미한 발굴과 연계되지 않는다고 보면 지석묘는 동시대 유물지표는 맞을 듯 하다. 이러한 지석묘의 분포는 요하강 동쪽에서 한반도 전역 그리고 일본의 큐슈 북부지역에 한정된다는 것도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단군조선이 지석묘 문화권을 형성하였다고 할 때 초기 단군조선이 요서의 적봉지역에 있었다는 것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적봉지역이나 요서지역에는 지석묘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지석묘 역시 요동지역에서 발견되는 북방식 지석묘(탁자식)는 흉노의 판석묘처럼 석판을 세운다. 석판이 없이 큰 돌로 덮기만 하는 남방식 지석묘(바둑판식 또는 개석식)은 한반도 남부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래서 과거에는 한강을 기준으로 요동에 이르는 권역과 한강 이남 한반도 중남부 지역을 다른 족속이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서면서 북방식이라고 하는게 한반도 중남부에서도 발견되고, 반대로 남방식이라고 하는게 한강 북쪽에서도 발견되어 이러한 구분에 의거하여 한민족의 족속이 다르다는 주장은 약화되었다.


북방식과 남방식이라는 두가지 지석묘의 분포에는 지역적 차이는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한반도 중남부 한인과 한반도 중북부 및 만주에 있어 족속의 차이는 있었을 것으로 보는게 보다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남방식과 북방식의 차이보다 더 가까운게 바로 지석묘라는 형식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큰 돌로 덮는 묘장이라는 점은 동양의 다른 문화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공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요하의 서쪽인 현 요서지역은 지석묘가 발견되지 않는다 것만을 기준으로 보면 요서지역 중심의 초기 단군조선과 요동 중심의 중기 단군조선 간에는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조금 다를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요서 지역에서는 지석을 세울 수 있는 돌을 못찾았나??? 


그러나 동시대 지석묘와 함께 발굴되기도 하는 비파형 동검은 요서지역 및 산동반도에서도 발굴된다. 즉, 묘제를 기준으로 하면 보면 요서지역(적봉지역)의 초기단군조선과 요동(현 요동반도)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중기 단군조선 간에는 차이가 있다. 그 기준은 바로 지석묘의 분포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고조선의 중후기에는 세형동검이 등장하기는 하지만...지석묘나 비파형동검의 분포 만을 보면 앞서 언급한 예맥족이나 한(韓)인, 왜인이 같은 계통일 수도 있다. 최소한 초기 고조선 시기에는 민족적 분화가 덜 이루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지석묘와 비슷한 묘제가 흉노의 판석묘이다. 흥안력산맥 이서의 내몽골지역에서 넓게 발견된다. 지석묘와 달리 돌로 뚜껑을 덮는게 아니라 판석을 사방으로 둘러 놓은 형태이다. 이 판석묘는 소위 판석묘 문화(slab grave culture)라 하여 우리 나라 지석묘보다 더 많이 알려져있고 더 넓게 분포되어 있다. 그렇다고 판석묘를 보고 거석문화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석묘의 덮개는 거석이 맞다. 그래서 지석묘를 거석(dolmen)으로 번역하여 유럽까지 같은 거석문화권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엄격히 말하여 지석(支石)은 거석이라고 얘기하는게 좀 그렇다. 그리고 소위 남방식 지석묘는 북방식과 달리 판석이 아닌 큰 돌을 고인다. 그래서 고인돌이라도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비록 지석묘의 덮개는 정말 거석이라고 할 수 있지만 흉노 판석묘의 판석은 넓적한 돌을 세우기만 하는 것다. 판석 즉, 넓적한 돌을 세워서 무덤을 만든다는 점에서 지석묘와 판석묘 간에는 일종의 친연성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때 중국 한나라에서는 고조선왕을 흉노의 좌현왕이라고 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물론 고조선 왕이 자신들이 직접 흉노의 좌현왕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중국 한나라에서는 고조선을 흉노의 좌현왕으로 보는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흉노의 좌현왕이란 흉노의 황제 격인 선우가 그 아래에 두는 왕제이다. 그래서 흉노는 선우와 좌현왕, 우현왕이라는 3개의 지배체제로 구성된 것인데 고조선을 동호 내지 흉노의 좌현왕이라고 중국 한나라 시대 때 불렀던 측면에서 볼 때 고조선과 흉노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좌현이란 흉노의 황제 격인 선우가 있는 흉노의 중심권에서 즉,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볼 때 서쪽지역이 왼쪽 즉, 좌현왕이 다스리는 지역인데 그 왼쪽 편에 고조선이 있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조선 시기 중국에서는 우리를 동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동호라고 불렀던 것이 더 많기도 하였(을 것이)다.



묘제에 의한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것은 지석묘 이후의 단계이다. 즉, 원삼국 시대에 들어서면서 지석묘 묘제가 적석묘 묘제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적석묘는 지석묘와 달리 땅위에서 엄청 큰 돌로 무덤을 덮는게 아니라 땅을 파고 옆에 작은 돌로 벽을 쌓는 방식(적석)이기 때문이다. 이 묘제부터 우리 나라는 시신을 땅 위로 묻었다가 땅 속으로 묻는 방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땅 위에 시신을 놓는 우리의 지석묘 방식은 땅속을 묻기 시작한 적석묘에 비해 흉노의 판석묘와의 유사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돌로 시신 위를 덮느냐 마느냐 보다 땅 위에 묘를 만드는 것과 땅 속으로 묘를 만드는 차이가 더 큰 것이기 때문이다. 


목곽적석묘처럼 적석묘 안에 나무관을 썼느냐 마느냐는 큰 차이가 아닐 수 있다. 적석묘는 시기가 지나면서 많은 배리에이션이 생긴다. 예를 들어 경주고분처럼 적석목곽묘는 땅을 파기보다는 땅 위에 목곽이나 목관을 놓고 이를 흙으로 덮는다는 점에서 혼용된 방식이다. 즉, 후대 신라의 방식이다. 그러나 신라 초기 사로국 시절에는 토광묘 형식이었다. 그냥 땅을 파서 적석하지 않고 그냥 묻는 방식이었다. 이런 것을 보면 신라는 묘제에 있어서도 한반도 다른 지역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남방식 지석묘가 많이 발견되는 영산강 유역의 후기 묘제이다. 후대에 들어와 영산강 일대와 남부해안가는 옹관묘를 사용하는 것이 등장하였다. 엄청 크게 만든 독에다 시신을 넣어 묻는 방식이라 독무덤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기존 다른 묘제에 비해 매우 독특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족속이 바뀌지 않는 한 갑자기 지석묘에서 옹관묘로 널뛰며 바뀌지는 않는다. 또한 아무리 우리 나라에 관련된 역사적 기록이 없다고 하더라도 한반도 외부에서 다른 족속이 통나무 배(그 시기는 우리 민족은 중대형 범선이라고 할 만큼 큰 배를 만들거나 사용하지 않았다)를 타고 대규모로 이주해 왔다는 증거도 없다. 그런 점에서 영산강 지역은 미스테리하기도 하다.


영산강 일대나 한반도 남부 해안가가 왜라고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바로 이러한 옹관묘 묘제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옹관묘는 일본의 큐슈 북부 지역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옹관묘 묘제를 통해서 한반도 남부와 큐슈 북쪽은 문화적으로나 혈통적으로 동일한 족속이라고 보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후대의 대화왜(야마토)와는 다른 초기'왜' 내지 한반도 '왜'인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지는 큐슈 북단이 아니라 영산강 일대이다. 큐슈의 옹관묘 분포는 북쪽 해안지대 일부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한반도 왜인이 큐슈 북단으로 넘어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한반도 남쪽 해안가라고 하더라도 가야 지역에는 옹관묘가 발견되지 않는다. 가야가 후대 들어 남원지역까지 확장되기는 하지만 이쪽의 일부 지역에서 발굴되는 옹관묘는 가야 것이 아니다. 어쨌든 영산강 일대는 지석묘에서 옹관묘까지 여러 묘제가 혼재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지역에 해당한다.


영산강 왜의 지역은 매우 독립적이었다. 기존의 역사책에서는 영산강 왜 지역이 백제에 속하지만 독립적으로 남아 있던 마한지역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초기의 마한은 한반도 중남부 전체였지만 그 후 마한은 백제에 밀려 영산강 쪽만 남아있었다. 백제의 정복왕 근초고왕 때도 영산강 왜 지역은 백제의 직할 통치지역이 아니었다.


한반도 왜는 백제가 확장될 때 큐슈 북단에서 혼슈우 지역으로 지역적 범위가 확대된다. 일본에서는 이들 한반도 왜인을 야요이인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야요인은 후대 대화왜(야마또) 때 말하는 도래인과는 또 다르다. 어쨌든 한반도 왜인 들이 큐슈로 넘어가 자리 잡으면서 옹광묘가 나타나고 이는 후대 대화왜의 지배층의 묘제인 전방후원분 즉, 앞 쪽은 방형 즉, 사각형이고 뒤쪽은 원형으로 무덤을 만드는 형식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전방후원분 역시 영산강 왜의 권역에서 나타난다. 비록 일본만큼은 많거나 엄청 큰 것은 없지만 ... 이러한 점을 볼 때 옹관묘를 사용하는 왜인은 옹관고분을 거쳐 전방후원분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러면서 일본은 소위 고분시대 즉, 아스카(비조)시대 바로 이전의 시대가 이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큐슈지역의 왜인과 한반도 왜인은 혈통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아니면 최소한 묘제에 있어서는 공통적이었다. 결국 묘제를 기준으로 볼 때 한반도 남부의 왜는 한인(진국)이나 맥인(예맥족)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문화적으로 뿐만 아니라 혈통적으로...이들은 분명 해류(쿠로시오)를 타고 중국남부해안이나 심지어는 동남아 등 한반도 남부해안가에 도착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기록은 또 없다. 만약 한반도 왜인이 한인이나 예맥족 계열이 아니라고 한다면 동남아나 태평양의 넓은 권역을 차지하고 있는 오스트로네시아 계통일 수도 있지만...


참고로....오스트로네시아의 북단 한계는 대만까지이다. 일본의 선주민인 죠몽인이 오스트로네시아 계통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설사 일본인 들의 조상이 오스트로네시아라고 하더라도 대만의 선주민 계열이라기 보다는 위치상 폴리네시아 쪽이 가깝지 않을까? 참고로 오스트로네시아는 대만 원주민 외에도 폴리네시아, 마이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이다. 인도네시아 계통은 북으로 필리핀까지 서로는 마다카스카르까지 진출한 해양민족이다. 그리고 베트남 남부의 챰파 왕국 또한 오스트로네시아 계통으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로네시아는 2만년전 중국 남부에서 시작되어 타이완에서 정착하며 분리되기 시작하여 필리핀을 거쳐 인도네시아, 마이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 순으로 확대되었는데 한반도 왜나 일본열도의 왜(죠몽인이나 아이누)가 이들과 친연성이 있는지는 사실 확인된게 없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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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시윤 24-03-31 14:29
   
억측이 좀있는게 몽골 만주 한반도에 걸쳐있던 나라는 지역마다 사용되는 재료가 다름. 이럴경우 다른 국가로 봐야함?
더군다나 고려나 조선 같은 중앙집권이 아니고 지역벌 강자가 존재하는 누층식읍제봉건국가인 고조선은 지배자의 무덤양식이 지역별로 다를 수 있슴. 그러므로 묘제라는 기준 하나로 판단하는건 무리라고 봄
     
윈도우폰 24-03-31 14:53
   
님이 말하는 식의 글의 내용이 아닌데...글을 좀더 제대로 읽어보삼...그리고 묘제 하나 만을 기준으로 얘기하는게 아님...단지 묘제의 변화 형식을 통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얘기하는 것인데...전혀 다른 맥락의 얘기를 하나 모르겠음...

그리고

누층식읍제봉건국가는 또 뭐임? 누가 만든 용어인지 모르지만 이 용어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자신도 어설프레 정리한 것을 그냥 용어 하나 만들어 땜빵하려는... 이렇게 막 만들어진 용어를 편의적으로 즐겨쓰게 되면 본질을 이해하기 힘들지 않나 모르겠네...어쨌뜬... 누층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쌓은 적층과 별 차이 없는 것 같고...반면에 봉건제에 맞는 용어라면 차라리 계층식은 조직적 내지 정치적 위계를 반영하는 것 같은데...누층식은 계층식의 또 다른 유사표현???...

동서양에 있어 봉(동양의封이나 서양의 feud)을 기반으로 하는 봉건제와 그에 따른 정치 및 경제체제의 의미를 좀더 알아보고 얘기하는게...더불어 묘제가 갖는 문화적 지속성과 그 특성에 대해서도...
     
구름위하늘 24-04-01 12:45
   
반례가 별로 타격이 없네요.

어떤 방식에서 재료가 다른 것이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형식과 내용이 중요하지 재료가 다른 것을 다른 문화로 볼 근거는 약합니다.

지배자의 무덤양식의 지배자 별로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이 믿는 종교에 영향을 더 많이 받습니다. 고대라고 하면 정치세력보다 종교세력이 더 영향을 많이 가지고 있고요.

반대로 설명한 사례가 잘못 제시된 것 같습니다.
위구르 24-04-01 04:35
   
잘 읽었습니다. 고조선의 임금이 흉노 제국의 좌현왕이라는 대목이 인상적인데 관련 사서 자료를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윈도우폰 24-04-01 10:38
   
아주 오래 전에 읽은 것인데 원전은 아닌 해석이었는지 인터넷을 찾아봐도 해당 글이 안 나오는 것을 봐서...아마도 사기의 조선열전 중 "동쪽으로 조선을 정벌하고 현도와 낙랑을 세워 흉노의 왼팔을 끊었다"라는 것과 관련된 논문 내지 아티클 아니었을까 하네요. 글에도 썼지만 고조선이 흉노좌현왕이라고 하지 않고 한무제가 조산 정벌 후 기뻐했다는 것과 함께 흉노좌현왕 또한 잡고 그러면서 나온 말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묘제 얘기에 신경쓰다가 출처가 명확하지 않고 기억도 다소 흐린 내용욜 제가 가볍게 쓴 것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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