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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1-12 21:35
[일본] 조선은 일본보다 약소국desu!! 증거자료가 잇desu!
 글쓴이 : 크레신
조회 : 4,515  

◈세조 9년 계미(1463, 천순 7)
일본 국왕이 사인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며 올린 서계

일본 국왕(日本國王)이 사인(使人)을 보내 와서 토물(土物)을 바치니, 그 글[書]에 이르기를,
“보린(寶隣)이 근년에 음모(音耗)6179) 가 소활(疏闊)하오며, 하늘은 멀고 바다는 막혔으니, 어찌 목마르게 바라는 것을 이기겠습니까? 이제 천룡(天龍)6180) 의 준초 서당(俊超西堂)과 범고 수좌(梵高首座) 등을 정사(正使)·부사(副使)로 삼아, 차견(差遣)하여 전과 같은 호의(好意)를 닦으옵니다. 이에 수년 전에 사선(使船)을 귀국(貴國)에 보냈더니, 이르시기를, ‘가까운 장래에 마땅히 포궤(包?)6181) 를 명(明)나라 조정에 바쳐서 전년[前歲]을 사례하라.’고 하시었는데, 행사(行使)가 불궤(不軌)의 죄(罪)를 범하였습니다. 비록 그러나 누방(陋邦)은 근년에 동벌 남정(東伐南征)하느라고 군사(軍事)에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능히 그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고, 인순(因循)하여 지금까지 이르렀으니, 자못 돈어(豚魚)6182) 의 신(信)을 잃은 것과 같습니다. 폐하(陛下)께서 일찍이 일서(一書)를 오는 편에 전(傳)하여,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송처검(宋處儉)·대호군(大護軍) 이종실(李宗實)을 보빙 사자(報聘使者)로 삼아 보내었는데, 해상(海上)에서 홀연히 태풍[?風]을 만나, 두 배가 표몰(漂沒)하여, 글 속[書中]에 기재한 건건(件件)의 방물(方物)은 비록 이 지방에 도달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미 예의(禮意)의 두터움을 받았으며, 인하여 바닷가 제국(諸國)에 나아가 그 일을 다 찾았으나, 모두 연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표류한 배를 돌려보낼 수 없었으며, 또 그 나머지 시체를 장사지냈습니다.
우리 천룡선사(天龍禪寺)에 명하여, 수륙 대재회(水陸大齋會)를 베풀어 두 사람[二子]을 위하여 명복(冥福)을 자천(資薦)하였을 뿐입니다. 천룡선사(天龍禪寺)는 곧 조종(祖宗)이 창업(創業)하여 누방(陋邦)에서 복(福)을 심는 신령한 도량[靈場]입니다. 근자에 회록(回祿)의 변(變)을 만나서 구관(舊觀)을 회복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연곡(年穀)이 익지 않고 재앙(災殃)이 자주 이르러서 이제 장차 승당(僧堂)을 경영하려 하는데, 대방(大邦)의 도움을 빌지 않으면 즐겨 이루기가 어렵겠습니다.
그윽이 명하여 의염(義廉)·생관(生觀)·교직(敎直) 등에게 집사(執事)를 치의(致意)하게 하였습니다만, 무릇 우리 나라가 부처[佛]를 섬겨 착하게 된 것은 바로 귀국(貴國)의 비로 법보(毗盧法寶)를 얻은 소이(所以)이니, 대저 하나의 장서[一藏]를 얻은 것은 그 큰 것을 내려 줌입니다. 더구나 구(求)함을 따름으로써 상도[常]를 삼으시니, 누방(陋邦)이 엎드려 청(請)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인(仁)의 고찰(古刹)을 세우면서 1만 민(緡)을 주는 것을 얻어, 윤환(輪奐)을 아름답게 고치었으며, 이제 또 천룡 만당(天龍滿堂)의 해중(海衆)이 폐하의 비음(庇蔭)을 입으면 어찌 서북(西北)을 바라보며 만세(萬歲)의 축복이 이르지 않겠습니까? 토의(土宜)가 변변치 못하오나 별폭(別幅)과 같이 갖추었습니다. 봄추위가 아직 남았으니, 때를 따라 아끼어 보전하소서.”
하고, 별폭(別幅)은 채화선(綵?扇) 1백 파(把), 장도(長刀) 2자루[柄], 대도(大刀) 10파(把), 대홍칠 목거완(大紅漆木車椀) 대소 합하여 70사(事), 대홍칠 천방분(大紅漆淺方盆) 대소 합하여 20사(事), 홍칠 흑칠 잡색 목통(紅漆黑漆雜色木桶) 2개(箇)이었다.



*상국(上國) : 조선(朝鮮)을 말함
*폐하 : 세조를 말함
*대방(大邦) : 큰 나라를 의미함. 여기서는 조선을 가르킴
*누방(陋邦) : 일본을 말함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조공물품과 함께 조선에 보낸 서한에
조선의 세조를 폐하라고 부르면서, 일본 자신은 누방으로 조선은 대방(大邦)으로 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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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9년 계미(1463, 천순 7)
일본 국왕(日本國王)이 사인(使人)을 보내 와서 토물(土物)을 바치니,

그 글[書]에 이르기를,
“보린(寶隣)이 근년에 음모(音耗)가 소활(疏闊)하오며, 하늘은 멀고 바다는 막혔으니, 어찌 목마르게 바라는 것을 이기겠습니까? 이제 천룡(天龍)의 준초 서당(俊超西堂)과 범고 수좌(梵高首座) 등을 정사(正使)·부사(副使)로 삼아, 차견(差遣)하여 전과 같은 호의(好意)를 닦으옵니다.
폐하(陛下)께서 일찍이 일서(一書)를 오는 편에 전(傳)하여,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송처검(宋處儉)·대호군(大護軍) 이종실(李宗實)을 보빙 사자(報聘使者)로 삼아 보내었는데, 해상(海上)에서 홀연히 태풍[?風]을 만나, 두 배가 표몰(漂沒)하여, 글 속[書中]에 기재한 건건(件件)의 방물(方物)은 비록 이 지방에 도달하지는 못하였으나, 이미 예의(禮意)의 두터움을 받았으며, 인하여 바닷가 제국(諸國)에 나아가 그 일을 다 찾았으나, 모두 연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표류한 배를 돌려보낼 수 없었으며, 또 그 나머지 시체를 장사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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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1년 경인(1470, 성화 6)
일본 국왕이 보낸 입도 등이 와서 서계와 토산물을 바치다

일본 국왕(日本國王) 회수납정소(懷守納政所) 이세수(伊勢守) 정친(政親)이 보낸 입도(入道) 등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정친은 삼가 글을 조선국 의정부(議政府) 합하(閤下)에게 바칩니다. 공손히 바라건대 나라가 크게 평안해서 금상 황제(今上皇帝)의 어위(御位)가 오래도록 가소서! 폐하(陛下)께서는 공손히 덕(德)이 건곤(乾坤)과 일치하여 당우(唐虞)의 어질고 장수하는 지역(地域)을 보전하고, 현성(賢聖)을 신하로 모아서 이주(伊周)의 순수하고 소박한 기풍을 회복하도록 원하며, 성의를 다하여 축복합니다. 그런데 부상(扶桑) 전하의 높은 명령에 응하여 같은 날에 서계를 봉하여 조선(朝鮮)과 유구(琉球)의 두 나라에 사선(使船)을 보냅니다. 이는 나의 개인적인 의사가 아니니, 이와 같은 간절한 뜻을 폐하에게 주달(奏達)하여서 허락하여 주시면 오직 다행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귀국의 남은 힘을 입고자 하는데, 바라는 물건은 면주(綿紬) 3천 필, 면포(綿布) 5천 필, 백저포(白苧布) 1천 필, 쌀 5천 석이니, 자비로 살피소서. 오직 우리 나라의 태평을 거두고 더 나아가 번신(藩臣)으로서의 충성된 공훈을 세우기를 빕니다. 보잘것 없는 토산물을 별폭(別幅)에 갖추었습니다. 바야흐로 새 눈이 온 산을 뒤덮었으니 풍년이 들 길조(吉兆)입니다. 이만 그칩니다. 별폭은, 금(金) 2원(員) 21냥쭝[兩], 주(朱) 4포(包) 40냥쭝, 대도(大刀) 15파(把), 단자(段子) 1필, 수자(?子) 1필, 부채[扇子] 50본(本)입니다. 받아주시면 다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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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32권, 4년( 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일본국 인백단 삼주 태수 원교풍이 양영서당을 보내어 선물과 글을 올리다



일본국(日本國) 인백단 삼주 태수(因伯丹三州太守) 산명전(山名殿) 소필(少弼) 원교풍(源敎?)이 양영 서당(亮瑛西堂)을 보내어 와서 토의(土宜)를 바치고, 아울러 사서(四書) 각각 1건(件)씩을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는 이르기를,

“공경히 생각하건대, 황제 폐하(皇帝陛下)께서 보위(寶位)에 오르시어 천운(天運)을 이어받으시니, 구방(舊邦)이 유신(維新)하며, 덕(德)이 하(夏)나라·은(殷)나라의 초정(初政)보다 뛰어나시고 도(道)가 요(堯)임금·순(舜)임금보다 위에 짝하시니, 지극히 축하하고 지극히 축수합니다. 신은 선조(先祖) 이래로 가세(家世)에서 상국(上國)3198) 에 빙문(聘聞)을 통하지 아니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경인년3199) 가을에 일개 암자승(菴子僧)과 석도문(奭都聞) 등을 차견(差遣)하여서, 옛날의 맹세를 닦으며, 또 토의(土宜)의 미미한 정성을 바쳤습니다. 다행히 금상 황제(今上皇帝)3200) 께서 왕위(王位)를 이어받으시는 초정(初政)을 만나서, 눈으로는 한(漢)나라 관리의 위의(威儀)를 보겠고, 귀로는 주(周)나라 시(詩)의 가송(歌頌)을 듣겠으니, 아아, 성대(盛大)합니다. 실로 문무(文武)의 나라인지라 영우(榮遇)하기가 너무나 크옵니다. 전사(專使)3201) 가 일을 끝마치고 동쪽으로 돌아오게 되매, 화로 동반(火爐銅盤) 1개와 동경(銅磬) 1개를 더하여 내려 주시니, 이미 후한 은혜를 받았으므로, 감격하고 기쁜 마음이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만복사(萬福寺)의 주지(住持) 양영 서당(亮瑛西堂) 등을 보내어 바다를 건너가서 박(薄)한 폐물(幣物)을 바치어 오로지 황제께서 왕위를 이으신 것을 배하(拜賀)하게 합니다. 신은 비록 먼 하늘, 먼 바닷가의 땅에 있어서 위궐(魏闕)3202) 아래에 달려가 마음을 바치지는 못하나, 구구(區區)한 단성(丹誠)3203) 을 엎드려 예찰(睿察)하여 주시기를 빌며, 그리하여 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신의 봉지(封地) 안의 백주(伯州)에 만복 선사(萬福禪寺)라고 하는 옛 사찰(寺刹)이 있는데, 허물어져 무너진 지가 세월이 오래 되었으므로 장차 다시 영조(營造)하려고 하여, 저번 때에 상국(上國)에 조연(助緣)3204) 을 구(求)하였으나, 너그러이 용납하여 주심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바라는 바는 대왕께서 관인(寬仁)으로써 포금(布金)3205) 의 봉시를 속히 행하여 주시면, 불각(佛閣)과 승방(僧房)을 일시에 다시 옛날처럼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길이 성수(聖壽)가 만안(萬安)하시도록 봉축(奉祝)하는 일단이 될 것입니다. 하정(下情)3206) 은 지극히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여 변변치 않은 방물(方物)을 별폭(別幅)에 갖추었습니다.”


*상국(上國) : 조선(朝鮮)을 말함
*금상 황제(今上皇帝) : 성종(成宗)을 말함
*위궐(魏闕) : 임금의 궁궐
*단성(丹誠) : 진정에서 우러나는 정성
*하정(下情) : 윗사람에게 대하여 자기의 마음이나 뜻을 낮추어 이르는 말
*봉지 [封紙]: 제후의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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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4년 계사(1473, 성화 9)
일본국의 다다량정홍이 보낸 원주덕이 하직하니 인견하고 재물을 하사하다

신숙주(申叔舟)를 시켜서 원주덕(源周德)에게 말하기를,
“너희 대내전(大內殿)은 족계(族係)가 우리 나라에서 나갔으므로 서로 교호(交好)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이제 듣건대 편안하다고 하니 기쁘고 위로되나, 다만 너희 나라 전쟁이 어떠하냐?”
하니 원주덕이 대답하기를,
“우리 나연(那衍)은 특별히 성상의 은덕을 입어 무양(無恙)합니다. 본국은 전란이 그치지 아니하기 때문에 상국(上國)에 오래 통신(通信)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전란이 평정될 기한이 없어서 특별히 신(臣)을 보내어 성심으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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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33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일본국 방장섭천 4주 태수 다다량정홍이 원주덕을 보내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일본국(日本國) 방장섭천 4주 태수 대내 별가(大內別駕) 다다량정홍(多多良政弘)이 원주덕(源周德)을 보내어 와서 토산물을 바치었다.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근래에 우리 나라 사람으로서 상국(上國)에 조공(朝貢)하고 돌아온 자는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모두 축하하며 말하기를, ‘폐하의 용봉(龍鳳)과 같은 자태는 천일(天日)의 표상이라 성스러운 덕이 계속 일고, 인자한 교화(敎化)가 바야흐로 풍성하여 역시 중흥(中興)을 선광(宣光)할 것 같습니다.’ 하였으니, 누군들 서쪽을 향해 기꺼워하지 않을 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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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45권, 5년( 1474 갑오 / 명 성화(成化) 10년) 일본국 방장섭천 4주 태수가 사람을 보내 토의를 바치다

일본국(日本國) 방장섭천 4주 태수(防長攝泉四州太守) 대내 별가(大內別駕) 다다량 정홍(多多良政弘)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土宜)를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삼가 황제 폐하(皇帝陛下) 께서 명덕(明德)이 일월(日月)보다 빛나고 성수(聖壽)가 장래에 장구(長久)하시기를 빌고 빕니다. 상국(上國)4246) 과 우리 선조(先祖)가 통호(通好)한 지 정홍(政弘)까지 26대째입니다. 상국과 대주(對州)와 아직 동맹(同盟)하기 전에 자주 전쟁하였는데, 그 때에 신(臣)의 선인(先人)이 상국을 위하여 구원병을 보내어 사졸이 죄다 전사하고 한 사람도 귀국하지 못한 것이 이제 8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게다가 존명(尊命)4247) 을 받들어 수우(水牛) 암수를 바치기도 하였으니, 그렇다면 선인의 상국에 대한 충성이 적지 않았다 하겠습니다. 정홍은 그 후사(後嗣)로서 임진년4248) 에 처음 사자(使者)를 보내어 선인이 맺어 온 구호(舊好)를 닦았는데, 그때 구례(舊例)에 어그러지는 일을 당하여 아껴 주시는 뜻이 매우 없었습니다. 집사(執事)가 옛 맹약(盟約)을 잊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또 사자가 변변치 못하였기 때문입니까? 정말 모를 일입니다. 그렇기는 하나 존명에 따라 곧 거듭 사선(使船)을 보내어 명을 받고자 합니다. 따라서 유구국(琉球國)에서 보내 온 사향(麝香) 1필(匹)을 존명을 받들어 바칩니다. 정홍이 몇 해 전부터 산명 좌금오(山名左金吾)의 군사를 돕느라고 경사(京師)에 머문 지가 몇 해 되었는데, 지난해 3월 18일에 금오가 서거(逝去)하고 그달 28일에 세천 경조(細川京兆)도 서거함에 따라 두 집안의 자제들이 점점 화목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전하(殿下)가 대명국(大明國)에 사선(使船)을 보내고자 하매, 신이 명을 받들어 배를 꾸미는데, 공사간(公私間)에 그 비용이 매우 많습니다. 상국의 풍부한 재물의 나머지로 은사(恩賜)를 굽어 내리시기를 바라며 앞으로 갈수록 옛 맹약에 따라 충절(忠節)을 지키고자 합니다. 대명국과 유구국에서는 신에 대하여 은문(恩問)이 더욱 후한데, 상국만이 옛 맹약을 잊으신 듯합니다. 교맹(交盟)이 보탬이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보명(報命)에 따라 그 뜻을 알아서 엎드려 진정을 아뢰겠습니다. 변변치 않은 토의(土宜)나마 작은 뜻을 표합니다.”


*황제 폐하(皇帝陛下) : 조선 국왕을 가리킴.
*상국(上國) : 조선을 가리킴
*존명(尊命) : 일본 국왕의 명을 가리킴.
*임진년 : 1472 성종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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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8권, 4년(1404 갑신 / 명 영락(永樂) 2년) 7월 30일(기사) 1번째기사
일본 국왕 원도의가 사신을 보내 내빙하고 토산물을 바치다

일본에서 사신을 보내어 내빙(來聘)하고, 또 토물(土物)을 바쳤다. 일본 국왕은 원도의(源道義)였다. 일본국 방장 자사(防長刺史) 대내다다량성견(大內多多良盛見)도 또한 예물을 바쳤다.


▶ 원도의는 무로마치 바쿠후의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로가 대외적으로 사신을 보낼 때 쓰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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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종 6년 병술(1406, 영락 4) 일본국왕이 《대장경》을 청하고, 구주 절도사가 포로와 토물을 바치다

일본 국왕 원도의(源道義)가 사신을 보내어 내빙(來聘)하고, 《대장경(大藏經)》을 청하였고, 구주 절도사(九州節度使) 원도진(源道鎭)이 사람을 보내어 토물(土物)을 바치고 부로(?虜)를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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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5년 계묘(1423, 영락 21) 일본 국왕의 사신 규주·범령 등 135명이 토산물을 바치다

일본 국왕의 사신 규주(圭籌)·범령(梵齡)과 도선주(都船主) 구준(久俊) 등 1백 35인이 대궐에 나아가서 토산물을 바치니, 임금이 인정전에 나아가서 예를 받은 뒤에, 규주와 범령은 대궐 안에 들어오도록 명하고, 구준은 대궐 밖에 있도록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한자판은 조종조로부터 서로 전하는 것이 다만 1본뿐이다. 만약 겹쳐서 여러벌 있다면 국왕에 대하여 굳이 아끼어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겠느냐.”
하니, 규주 등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자상하시니 깊이 감사하고 깊이 감사하옵니다. 신들도 또한 잘 헤아려서 아뢰겠나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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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일본의 조공 기록


태조 2년 계유(1393) 6월 16일(경인) 일본 일기도의 중 건철이 포로 200여 인을 돌려보내고 방물을 바치다
태조 4년 을해(1395) 7월 1일(임진) 일본 구주 절도사 원요준이 중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치다
태조 4년 을해(1395) 7월 11일(임인) 일본 일향주 사람이 토산물을 바치다
태조 4년 을해(1395) 7월 16일(정미) 일본 살마주 사람이 토산물을 바치다
태조 4년 을해(1395) 12월 16일(을사) 일본 대내전의 다다량이 토산물을 바치다
태조 6년 정축(1397) 6월 21일(신축) 일본 구주 절도사 원요준이 사람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치다
태조 6년 정축(1397) 10월 1일(기묘) 일본 구주 절도사가 토산물을 바치다
태조 6년 정축(1397) 11월 14일(임술) 일본 육주목 의홍이 중 영범·영확 편에 토산물을 바치다
태조 7년 무인(1398) 7월 27일(경자) 일본 비전주 준주 태수 원경이 예물을 바치다

정종 1년 기묘(1399) 9월 10일(정축) 이달에 일본국의 절 주지가 사람을 시켜 예물을 바치다
정종 1년 기묘(1399) 11월 1일(정묘) 일본 서해도 준주 태수 정종(貞宗)이 사람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치다
정종 2년 경진(1400) 8월 1일(계사) 일본이 사신을 보내 방물과 감자, 매화를 각각 한 분씩 바치다

태종 1년 신사(1401) 6월 18일(을해) 일본국 비주 태수가 말과 약재를 바치다
태종 1년 신사(1401) 9월 29일(을묘) 일본의 대마도 임시 태수 종정무 등이 말·석고·백반을 바치다
태종 2년 임오(1402) 9월 29일(기유) 일본 살주 산성의 태수 원뇌수와 일기주 지주 원양희가 예물을 바치다
태종 3년 계미(1403) 2월 27일(갑술) 일본 사자가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태종 3년 계미(1403) 1월 23일(신축) 일본에서 사신 12명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태종 3년 계미(1403) 10월 8일(임자) 일본 사자가 잡혀 갔던 우리 나라 사람을 데리고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태종 4년 갑신(1404) 7월 30일(기사) 일본 국왕 원도의가 사신을 보내 내빙하고 토산물을 바치다
태종 4년 갑신(1404) 7월 17일(병진) 일본 전평전 원원규가 토물을 바치다
태종 5년 을유(1405) 6월 29일(계사) 일본 국왕 원도의가 사신을 보내 도적을 잡은 것을 보고하고 예물을 바치다
태종 5년 을유(1405) 6월 3일(정묘) 일본 지좌전이 중 도군 등을 보내 약재 등의 토산물을 바치다
태종 5년 을유(1405) 5월 24일(무오) 일본에서 예물을 바치다
태종 6년 병술(1406) 12월 21일(병오) 일본 단주 수와 비주 수가 사신을 보내 소목 등의 물품을 바치다
태종 6년 병술(1406) 8월 6일(임진) 일본 일기주 지주 원양희가 포로 76명을 소환하고 종정무도 토산물을 바치다
태종 6년 병술(1406) 4월 22일(임오) 일본 호자전 객인이 와서 토물을 바치다
태종 6년 병술(1406) 4월 16일(병자) 일본 서해도 단주 태수 원영이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태종 6년 병술(1406) 2월 27일(무자) 일본국왕이 《대장경》을 청하고, 구주 절도사가 포로와 토물을 바치다
태종 7년 정해(1407) 10월 26일(병오) 일본 살마주 등원뇌구가 예물을 바치다
태종 7년 정해(1407) 11월 26일(병자) 일본 대마도 수호 종정무가 예물을 바치다
태종 7년 정해(1407) 5월 6일(기미) 일본 지좌전, 호자전이 예물을 바치다
태종 7년 정해(1407) 7월 21일(임신) 일본국 대내 다다량 덕웅이 예물을 바치다
태종 7년 정해(1407) 8월 5일(병술) 일본 전평전이 사자를 보내어 예물을 바치다
태종 7년 정해(1407) 2월 1일(병술) 일본 살마주 태수가 사자를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태종 8년 무자(1408) 2월 27일(병오) 일본 진서탐제장군 원도진이 예물을 바치다
태종 8년 무자(1408) 6월 3일(경진) 일본의 지좌전·어주전이 예물을 바치다
태종 8년 무자(1408) 10월 28일(임인) 일본 국왕 원도의가 좀도적을 금지시켰다고 알리고 예물을 바치다
태종 8년 무자(1408) 4월 19일(정유) 일본 구사전이 사자를 보내어 예물을 바치다
태종 8년 무자(1408) 7월 6일(임자) 일본의 대내전이 옥교자·병풍·약재·기명·능견 등의 예물을 바치다
태종 8년 무자(1408) 7월 20일(병인) 일본 살마주 태수가 예물을 바치다
태종 8년 무자(1408) 8월 21일 (병,신) 일본국 구주 절도사가 토산물을 바치다
태종 8년 무자(1408) 9월 29일(갑술) 일본의 축주 태수가 예물을 바치다
태종 8년 무자(1408) 12월 6일(기묘) 일본 구주 목 원도진이 예물을 바치다
태종 8년 무자(1408) 1월 26일(을해) 일본의 원만직이 예물과, 불로원이라는 약 1백 개를 바치다
태종 9년 기축(1409) 3월 6일(기유) 일본의 지좌전이 사람을 보내 예물을 바치다
태종 9년 기축(1409) 3월 26일(기사) 일본 일기주와 비주전에서 진위하고 예물을 바치다
태종 9년 기축(1409) 11월 8일(병자) 일본 축전주 객인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태종 9년 기축(1409) 9월 6일(을해) 일본 일향주 사람이 토산물을 바치다
태종 9년 기축(1409) 윤 4월 11일(계축) 일본의 대내전 다다량덕웅이 중 주정을 보내 토산물과 관음화상을 바치다
태종 9년 기축(1409) 3월 26일(기사) 일본 하송포의 삼하 수 융군이 예물을 바치다

<중략>

세종 즉위년 무술(1418) 10월 14일(경인) 일본 일향주 태수가 표를 올려 신(臣)이라 칭하고 방물을 바치다
세종 즉위년 무술(1418) 10월 29일(을사) 일본 비전주 중·일향주 태수·관서도 축전주 석성 관부가 칼·향 등을 바치다
세종 즉위년 무술(1418) 10월 30일(병오) 일본 관서로 구주 도원수 원도진이 방물을 바치다
세종 즉위년 무술(1418) 11월 29일(을해) 일본 서해로 미작 태수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즉위년 무술(1418) 12월 6일(신사) 일본 대마도 종정성이 방물을 바치다
세종 즉위년 무술(1418) 10월 13일(기축) 일본 구주 총수와 서해로 미작 태수가 방물을 바치다
세종 즉위년 무술(1418) 8월 21일(무술) 일본 서해도 일향주 태수와 대마주 조율 산성수가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즉위년 무술(1418) 12월 29일(갑진) 일본 축전주 태수가 소목 백반 등을 바치다
세종 1년 기해(1419) 1월 3일(무신) 일본 대마도 만호가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1년 기해(1419) 3월 7일(신해) 일본 구주 도원수가 《대반야경》을 청구하고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1년 기해(1419) 4월 4일(무인) 일본국 비주 태수·장주 태수·대마도 화전포 도만호가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2년 경자(1420) 윤 1월 28일(정유) 일본 구주 총관 평종수가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2년 경자(1420) 12월 2일 (병,신) 일본 방장풍삼주 도호 다다량만세가 공물을 바치다
세종 2년 경자(1420) 11월 28일(임진) 일본 비주 태수 원창청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2년 경자(1420) 11월 25일(기축) 일본국 구주 총관 원의준이 공물과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2년 경자(1420) 10월 26일(신유) 일본국 구주 절도사 원도진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2년 경자(1420) 8월 9일(을사) 일본 전 서해도 구주 도원수가 사신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2년 경자(1420) 1월 5일(갑진) 일본국 경도·구주 등에서 사람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2년 경자(1420) 8월 2일(무술) 일본 서해도 비전주 평우진 준주목 원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2년 경자(1420) 12월 8일(임인) 일본국 구주 도원수 우무위 원도진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2년 경자(1420) 12월 9일(계묘) 일본국 구주 총관 원의준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3년 신축(1421) 9월 9일(기사) 일본 평만경이 조공을 바치다
세종 4년 임인(1422) 7월 5일(경신) 일본인 삼주 태수와 대마도 좌위문대랑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4년 임인(1422) 3월 27일(갑신) 일본국 대마주의 좌위문대랑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4년 임인(1422) 2월 26일(계축) 일본의 원의준·등원뢰·원성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4년 임인(1422) 윤 12월 23일(병자) 일본 구주 총관이 사람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4년 임인(1422) 7월 23일(무인) 일본 도영·평만경·웅수·평민소조천·입도상가 등이 방물을 바치다
세종 4년 임인(1422) 7월 22일(정축) 일본국 대내다다량도웅·원도진·원의준 등이 방물을 바치다
세종 4년 임인(1422) 3월 26일(계미) 일본국 구주 총관 원의준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4년 임인(1422) 3월 5일(임술) 일본의 전 구주 총관 원도진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4년 임인(1422) 3월 5일(임술) 일본의 원의준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5년 계묘(1423) 10월 18일(을축) 일본국 구주 원의준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5년 계묘(1423) 10월 25일(임신) 일본국 원의준·평만경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5년 계묘(1423) 11월 24일(신축) 일본국 원도진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5년 계묘(1423) 5월 19일(무술) 일본국 관서도 원준신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5년 계묘(1423) 1월 12일(갑오) 일본국 축주 관사 평만경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5년 계묘(1423) 12월 25일(임신) 일본 국왕의 사신 규주·범령 등 135명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종 5년 계묘(1423) 10월 15일(임술) 일본 구주 다다량덕웅·평만경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중략>

세조 1년 을해(1455) 10월 14일(병진) 일본국 오도 우구수 원승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10월 29일(신미) 일본국 상송포 구사도의 등원의영과 이세수 원문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11월 1일(임신) 일본국 살주 등희구·오도 우구수 원승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12월 9일(경술) 일본국 관제가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9월 20일(임진) 일본국 일기주 왜 호군 등구랑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8월 22일(을축) 일본국 비전주 상송포의 지좌원씨의 딸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8월 18일(신유) 일본국 대마주 왜 호군 정대랑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8월 17일(경신) 일본국 등원의영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12월 12일(계축) 일본국 비전주 전평우진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11월 27일(무술) 일본국 일기수 원고와 이세수 원문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11월 13일(갑신) 일본국 살주 등희구·오도 우구수 원승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11월 6일(정축) 일본국 오도 우구수 원승과 비전주 상송포 단후 태수 원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10월 8일(경술) 일본국 관서로 축전주 냉천가무가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9월 29일(신축) 일본국 살주 이집원 우진 우주 태수 등희구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9월 2일(갑술) 일본국 살주 이집원 우진 우주 태수 등희구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윤 6월 16일(경신) 일본국 대마도의 종성직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윤 6월 21일(을축) 일본국의 원지직·상송포의 중 원우·대마주의 종성직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윤 6월 29일(계유) 일본국 상송포 파다도의 원납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7월 3일(병자) 일본국 대마주의 종성직·종성가가 각각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7월 21일(갑오) 일본국 원고·원영과 대마주 종성직·종성홍·종호웅와가 각각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7월 30일(계묘) 일본국 석견주의 등원·주포화겸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12월 15일(병진) 일본국 오도 우구수 원승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7월 1일(갑술) 일본국 비전주 종상군 지수 종상조신씨정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8월 3일(병오) 일본국 오도 우구수 원승·비전주 단후 태수 원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1년 을해(1455) 7월 11일(갑신) 일본국 등원조신교뢰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세조 2년 병자(1456) 7월 28일(을미) 일본국 비전주의 진궁 병부 소보 원영이 사자를 보내 토물을 바치다
세조 2년 병자(1456) 6월 26일(갑자) 일본국 대마주 종성직이 사람을 보내와 토물을 바치다
세조 2년 병자(1456) 6월 2일(경자) 일본국에서 사람이 와서 토물을 바치다
세조 2년 병자(1456) 5월 24일(임진) 일본에서 사람이 와서 토물을 바치다
세조 2년 병자(1456) 4월 22일(신유) 일본국 대마주 호군 정대랑의 아들 사정 정가문수계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중략>

성종 즉위년 기축(1469) 12월 8일(정사) 일본국 구주 도원수 원교직이 사람을 보내와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1월 25일(갑진) 일본국 대마주의 종정국·종정수와 인위군의 종성가와 종성직이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4월 5일(계축) 일본국 축전주 종상군 지수 씨향이 사람을 보내와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6월 21일(무진) 일본국의 원승·종언팔랑무세·등희구·종정국 등이 사람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7월 19일(을미) 일본국의 종정국·종성가·종성홍·원만·등씨의 어미가 사람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7월 27일(계묘) 일본국 석견주의 등원주포좌근장감화겸과 귀해지국의 교공이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8월 24일(기사) 일본 국왕이 보낸 입도 등이 와서 서계와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10월 24일(무진) 일본국 관서도 구주 도원수 원교직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12월 18일(신유) 일본국과 올적합 등에서 사람을 보내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12월 27일(경오) 일본국 대마주 태수 종정국 등이 사람을 보내어 와서 토의를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7월 13일(기축) 일본국 주방주 산구 소사 대삼하수 원홍안이 사람을 보내와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3월 12일(신묘) 일본국 일기주 수호 대관 진궁 병부 소보 원무가 사람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6월 23일(경오) 일본국의 종정국·종성가·종성홍·종조육성준 등이 사람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7월 6일(임오) 일본국의 종정국·종성홍·종무차·원승·원중실 등이 사람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12월 8일(신해) 일본국 대마주 태수 종정국 등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11월 1일(을해) 일본국 구주 시소의 종언팔랑무세 등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10월 8일(임자) 일본국 풍주 태수 대우팔랑사능 등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9월 28일(계묘) 일본국에서 사람을 보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9월 19일(갑오) 일본국에서 서계와 함께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8월 28일(계유) 일본국 세천 좌오두 지현이 사람을 보내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8월 25일(경오) 일본국에서 사람을 보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8월 23일(무진) 일본국에서 사람을 보내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8월 7일(임자) 일본국 여러 태수들이 사람을 보내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7월 19일(을미) 일본국 경성 관령 전산전 좌경 대부 원의승이 중 향양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1년 경인(1470) 7월 12일(무자) 일본국 종정국·종정수·종성홍·종성가·원덕 등이 사람을 보내와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2년 신묘(1471) 2월 28일(신미) 일본국 대마주 태수 종정국 등이 사람을 보내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2년 신묘(1471) 5월 22일(갑오) 일본국 비전주 원덕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성종 2년 신묘(1471) 6월 11일(임자) 일본국 장문주 적간관진수 충수가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다
성종 2년 신묘(1471) 6월 27일(무진) 일본국에서 사람을 보내어 와서 토산물을 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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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아서 이하 생략한다>


는 조공왕 일본w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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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13 00:57
   
이거 대마도주가 보낸것임..국왕은 있지도 않았는데 천황이지..ㅋㅋㅋㅋ
je 12-01-13 06:00
   
조선실록에서의 일본국왕은 막부 쇼군을 지칭했죠. 
물론, 조선도 천황이라고 왕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워낙 안습이라--
실권도 없어서, 일본에서나 조선에서나 무시되는 존재였고,
대마도주가 조선-일본을 중계하며 조공받침,
조공이란게 당시로서 이상할게 없지만, 워낙에 이걸로 중국이나 일본애들이 오바하니까 문제인거죠 뭐.
ㅇㅇ 12-01-13 11:39
   
이거 막연하게 우리가 조공을 받았다는 식으로만 글을 쓰면 짱깨들 논리랑 다를 거 없음...정확히 짚고 넘어가야함. 일방적으로 조공을 받은게 아니라 조공무역한 거임. 오히려 조선이 싫어했지...조선에서는 조공을 허용하는 대신 세사미두를 일본에게 줘야했으니까...조선이 강제로 조공물을 내놔라고 한게 아니라 일본애들이 여기저기서 난리치면서 조공하게 해달라고 한거고 조선은 우는 애 달래듯이 그렇게 하라고 허용해 준거지...나중에는 일본한테 세사미두 주는게 버거워서 양을 줄였음...세종때 계해약조 광해군때 기유약죠 말그대로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약조임...조선과 명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조공무역이고 오히려 조선이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였고 특히 말 무역은 효자품목이였음 지금 짱깨들이 조공받쳐서 속국이라고 지랄하는데 명에 말을 조공할때는 선불제였음 명이 선불로 돈 안주면 조선에서 말 못준다고 어름장 놓았다는 기록도 있음. 어느 속국이 돈 안 준다고 조공 못하겠다고 하겠음...
자기자신 12-01-27 02:30
   
일빠들에게 대항할 아주 좋은자료네요 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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