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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2-21 14:20
[중국] 고조선이 중국사면 청나라는 한국사
 글쓴이 : 래알
조회 : 4,759  

고조선이 중국사면 청나라는 한국사

중국의 방식으로 중국을 친다 


조용한 재판장 안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 젊은이를 주목하고 있다. 판사가 젊은이에게 묻는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젊은이는 대답한다. "아이신지료 푸이(愛新覺羅 傅儀)." 판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한다. "참 이상한 성이구나."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 중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가 모택동에게 재판을 받는 장면이다. 아이신지료…, 아이신지료…. 한족(漢族)인 판사가 듣기엔 이상하기만 했던 청나라 황제의 성 애신각라(愛新覺羅). 애신각라에 (고국인) 신라를 사랑하고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애신각라의 비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 정권일 뿐이라는 중국의 억지가 10년만의 폭염으로 열이 오를 대로 오른 한국의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현재의 중국 영토에서 부흥했던 나라는 모두 중국의 지방 정권일 뿐이다? 그들의 논리는 이토록 가볍다. 그러나 섬뜩하게 위험하다. 섬뜩하게 위험한 이유는 그들이 노리는 것이 단지 고구려사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고구려는 고조선을 계승한 국가이다. 그리고 고조선의 강역은 상당 부분 한반도 북부와 동북아시아로 고구려와 비슷하다.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면 고조선도 중국사인 것이다.

실제로 중국 사학자들은 이미 이 같은 논리를 펼치고 있다. 고조선은 기자 조선과 위만 조선인데, 기자는 은나라 사람이고 위만은 연나라 사람이므로 결국 기자-위만 조선은 중국사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엔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이어지는 고조선(삼조선이라고도 불린다) 역사에서 단군조선 부분을 공식적 한국사에서 사실상 배제하고 신화로만 치부해온 국내 사학계의 책임이 크다. 고조선과 고구려를 박탈당한다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신라 건국 이후 2천년으로, 강역은 한강 이남으로 좁혀질 것이다. 심지어 중국의 현재 논리를 그대로 밀고 나간다면 백제도 한국사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백제를 건국한 온조는 중국인이라는, 고구려 시조 추모(주몽)왕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는 중국의 논리를 중국 측에 그대로 되돌려 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보니까 예상대로(!) 중국의 공식 역사는 뒤죽박죽이 되었다. 한족(漢族) 국가인 송나라를 강남으로 몰아내고 대륙을 지배했던 금나라와 중국 역사상 최강대국인 청나라가 저절로 한국사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조선이 중국사라면, 금나라와 청나라는 한국사에 속해야 한다. 그 건국자들의 뿌리가 한반도 남부라는 믿을만한 사료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중국 흉내내기1 : 금(金), 청(淸)은 시조가 신라인이므로 한국사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권세를 떨쳤던 나라를 묻는 질문에 4위를 차지한 국가가 청나라이다. 그 대단했던 청나라를-엄격히 말하면 후금(후금은 청나라의 전신이다)-세운 사람은 누루하치. 그런데 그의 성은 애신각라이다. 이 신기한 조합의 한자를 분석해보기로 하자.

애신각라(愛新覺羅)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고국인)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청나라를 세운 만주인들의 근원을 살펴 보면 신라와 관련된 성이라는 해석은 상당히 신빙성을 가진다.(뒤에 서술)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지료인데,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뜻한다. (신라 왕실의 성인) 김씨의 겨레 혹은 금, 밝음을 숭상하는 겨레라는 말이다. 청나라라면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는 오랑캐의 나라로 불리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나라이다. 그런데 왜 청나라 왕조의 성에 신라와, 신라 왕족의 성 인 금(金)이 포함되어있는 것일까?

"청나라는 우리나라를 어버이의 나라로 섬겼습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때 청태조 누르하치가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었지요. 또 유명한 삼전도 항복 때는 친명배금을 외치는 조선에 와서 원래 우리는 고려인의 후손으로 그대들과 같은 나라였다는 취지로 그대는 왜 동족을 따르지 않고 명나라를 돕는가?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청은 조선에 번번이 형제의 도리를 강조했습니다. 조선은 명분론에 매여 끝까지 청을 형제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말이죠."

역사연구단체 한배달의 오정윤 연구원은 먼저 청나라가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섬긴 예를 들었다. 그는 누르하치가 백두산 지역에서 태어난 것을 지적하며, 당시 백두산 지역에는 만주계 조선인이 많았고 그들 중 상당수가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고려인 또는 조선인으로 귀화했다고 설명했다. 한 때, 누르하치도 평안도 지방관현에 벼슬을 수차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나서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왜 청나라가 끝까지 조선에 호의적이었을까요? 바로 청나라가 금나라로부터 나왔고 금나라는 신라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 이덕일 씨도 오 연구원과 의견을 같이 했다.
"중원을 복속하고 한족을 지배했던 곳이 청나라입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 때 조선은 몹시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청은 충분히 조선을 복속하고도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청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자신들의 조상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죠."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 "우리 시조는 신라인"

역사학자들의 말처럼 여진족 추장 누르하치는 금나라를 기리며 나라 이름을 후금이라 지었다. 그리고 누르하치가 금나라 태조와 정확히 어떤 혈연관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누르하치가 계승한 금나라의 태조 아골타가 신라인이라는 문헌들은 많이 존재한다. 먼저 금나라의 역사서인 금사(金史)를 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金之始祖諱函普 (금나라 시조는 이름이 함보이다), 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처음 고려에서 나올 때 60세가 넘었다) 兄阿古好佛,留高麗不肯從 (형 아고호볼은 따라가지 않고 고려에 남았다)

금나라의 시조인 함보가 60세가 넘은 나이에 고려에서 왔는데, 그의 형제는 고려에 남고 혼자만 금나라로 왔다는 이야기다.

청나라 황실의 역사서 만주원류고(滿洲原流考)에도 금나라의 태조에 대해 "신라왕의 성을 따라 국호를 금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松漠紀聞)은 "금나라가 건국되기 이전 여진족이 부족의 형태일 때, 그 추장은 신라인이었다"고 전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비단 중국의 사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부안 김씨들은 그들의 족보를 내세워 금사, 만주원류고, 송막기문 등의 내용을 이렇게 뒷받침한다.

"함보는 법명이고 그의 본명은 김행 (혹은 김준)으로 마의태자 김일의 아들이자 경순왕 김부의 손자이다. 김행은 여진으로 갔지만 다른 두 형제는 고려에 남아 부안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금나라의 역사서 금사와 거의 대부분 일치하는 주장이다. 다만 금나라를 세운 아골타가 김준의 직계 아들인지 몇 대를 거친 손자인지는 의견이 다양하다. 어느 것이 옳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인데,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의 유민이라는 점만은 어느 이야기도 부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예를 더 보자면,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안정복 역시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김준은 삼형제인데 김준이 여진으로 망명할 때 두 형제를 두고 혼자서 갔다.고 밝히고 있어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인 김함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기자는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의 왕족이라는 주장을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 흉내내기2 : 민족개념 새로 짜기

중화민족은 사실 비교적 최근(중국공산당 집권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개념이다. 현재 중국의 영토에 사는 모든 민족은 모두 중화 민족이란 것. 이 중화 민족은 역사학이라기 보다 대륙의 다양한 소수 민족을 포섭하려는 중국공산당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만들어진 개념인 것이다. 이런 우악스러운 중화민족 개념에 대항하려면 우리도 본래의 단일 민족 개념을 새로 짜야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여진, 거란 등의 북방 민족을 한민족(韓民族)의 테두리와 융화시키는 것일 터이다. 더욱이 이런 방식은 중화 민족 개념 보다는 문화, 인종, 생활방식의 유사성 등에서 훨씬 타당성이 크다.

그럼 여진 등의 기마 민족과 한민족(韓民族)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역사학자 이덕일씨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서 공을 세운 부하의 4대 후손이 누르하치라고 밝히면서 여진족, 몽골족 등과 조선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정립한다.

"이제 단일 민족 국가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성공적으로 감행할 수 있었던 원천은 바로 여진, 몽골 등의 기마 민족 덕분이었습니다. 동이족이라 불리던 유라시아 반도 동북부는 그렇게 서로 뒤섞여 살았던 것입니다. 고구려 영양왕은 거란족, 말갈족을 거느리고 수나라에 대항해 싸웠고 발해에서는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들이 함께 살았습니다. 또한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준 기마 부대원들도 거란, 여진족들이었지요. 심지어 여진족은 조선에 귀화하면 벼슬을 주고 조선인으로 인정해 주기도 했습니다. 혈통이 어찌 되었든 함께 어우러져 살았으니 우리 민족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배달회 오정윤씨는 민족개념에 대해 훨씬 급진적인 주장을 펼친다. 동이족(東夷族)에 거란, 여진, 몽골 등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거란은 알을 의미하는데 부화하기 전 알의 색상은 황금색입니다. 즉, 밝음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배달 민족의 배달, 박달(밝은 들)의 의미와 같습니다. 또한 여진은 고려의 려와 발해의 원래 이름인 진을 합해 여진이라고 한 것으로 몽골어로 밝은 온누리라는 의미에요. 또 몽골인들은 지배자를 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칸은 삼한의 한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동이족들은 똑같이 밝음을 숭배하고 하늘의 자손과 땅의 자손이 만나 천지를 새로 만들 아이들 잉태하는 거의 비슷한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동이족에 포함된다는 민족들의 인류·신화학적 공통점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진지한 표정으로 고구려와 발해에 대해 말을 이었다.

"고구려는 전성기 때 몽골, 거란, 여진과 같은 여러 북방 민족을 통치했습니다. 고구려가 망한 이후에도 발해가 이들을 상당수 흡수해 서로 공동체가 되었고요. 교과서에는 발해의 지배층이 고구려인이고 피지배층이 말갈족, 즉 여진족이라고 나오지만 함께 오랜 세월을 지낸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민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한국인들은 발해를 민족사에 포함시키는 교육을 받고 있다. 물론 이렇게 된 것도 조선 후기 학자인 유득공이 발해고에서 발해를 우리 역사라고 주장한 이후부터였지만 말이다. 그 이전까지는 발해를 말갈의 나라로만 여긴 것이다. 그러나 발해가 민족사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려면, 발해를 구성했던 사람들, 특히 말갈인들도 한국인의 조상으로 보는 편이 훨씬 논리적일 것이다.



신채호와 박은식의 북방민족관

여기까지 쓰다 보니 재야 사학자들의 목소리만 너무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른바 정통주류의 질책이 우려된다. 그래서 현재 한국 사학계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물들이 북방 민족들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해 잠깐 살펴 보기로 한다.

단재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이렇게 썼다.

"동국, 즉 우리나라를 구성하는 민족은 선비족, 부여족, 지나족, 말갈족, 여진족, 토족의 여섯인데, 이 가운데 단군 자손인 부여족이 다른 5족을 정비하고 동국역사의 주류가 되었다."

단재의 대표작인 조선상고사 머리말도 읽어 보기로 하자.
"흉노와 몽골을 비롯한 거란. 여진족을 우리와 같은 민족으로 규정하고 그들이 우리민족에서 떨어져 나간 시기를 알아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로 신채호를 꼽지만 정작 그가 무엇을 주장했는지는 잊고 살기 일쑤다.

이번엔 역사학자이며 언론인이었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2대 대통령이기도 한 백암 박은식의 소설 몽배금태조(꿈 속에서 금 태조를 만나다)를 통해 그의 북방민족관을 살펴 보기로 하자. 이 소설은 일제 식민지 시절 무치생(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이란 의미심장한 이름을 가진 서생이 만주로 떠나갔다가 꿈 속에서 금 태조 아골타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내용이다.

"오호라. 우리 조선족과 만주족(滿洲族)은 모두 다 단군대황조의 자손으로 오랜 옛날에는 남북으로 나뉘어 서로 경쟁하기도 했고, 또 서로 통하기도 했는데 필경은 통일이 되지 못하고 분리(分離)되면서 두만(豆滿)과 압록(鴨綠)을 경계로 이루어 양쪽의 인민(人民)이 왕래도 하지 못하고 각기 살은 지가 천여년이 되었다. 이에 따라 풍속이 같지 않게 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서로 남같이 생각하면서 다른 종족처럼 되었다. … 대개 대금국의 태조황제는 우리나라의 평주(平州) 사람 김준(金俊)의 9세손이요, 그 발상지는 지금의 함경북도 회령군이고 그 민족의 역사로 말하면 여진족은 발해족의 다른 이름으로 발해족은 마한족(馬韓族)의 이주자가 많은지라 금국(金國)의 역사로 말하면 두만강변의 한 작은 부락으로 흥기하여 단숨에 요나라를 멸하고 다시금 북송(北宋)을 취하여 중국 천지의 주권을 장악하였으니…."

이렇게 한탄하는 무치생을 금 태조 아골타가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긴 하다.

"너는 조선의 유민(遺民)이 아닌가. 조선은 짐의 부모의 나라요, 그 민족은 짐의 동족이다. 짐은 지금 천국에 있는 고로 인간 세상의 일은 직접 간섭하지 않지만 하늘에서 오르 내리는 영명(靈明)이 인간 세상을 감찰하고 있으니 현재 조선민족이 떨어진 경우와 고통스런 정황을 보는 것이 매우 측은한 바가 있으나 하늘은 스스로 싸워 강한 자를 사랑하시고 자포자기한 자를 싫어하시니, 하늘의 뜻이로구나."



민족주의와 국수주의 사이에서

기자는 개인적으로 최근 한·중·일 동북아 삼국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민족주의 열풍을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아시아컵 축구대회 결승전에서 중국의 관객들이 보여준 국수주의적 반응과 이에 맞선 일본의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의 발언("중국인은 민도가 낮아 어쩔 수 없다")은 민족주의가 얼마나 끔찍하고 좀스러우며 혐오스러울 수 있는지 보여 준다.

기자는 또한 이후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통일)한국이 거란, 여진은 우리 민족이므로 그들의 역사적 강역 또한 우리 것이란 식의 대민족주의로 무장하고 새로운 국가분쟁을 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감당하기 어려운 중국 같은 이웃이 한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이 현실적 대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고려하다 보면 저항적 민족주의가 다시 필요한 시기라고 느끼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족주의는 나쁜 것이라는 주장만 고집하는 것은 발톱까지 무장한 패권주의 앞에서 무장을 해제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출처 지식인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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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알 12-02-21 15:24
   
뎃글을 아무도 안다네...ㅠㅠ
     
해달수달 12-02-21 20:01
   
천사와 악마?
DarkMarin 12-02-21 15:42
   
발상의 전환 인가?
어리별이 12-02-21 15:49
   
잡게에서 댓글 달았었는데........
지우는 통에....
뭐라 했는지 다 까묵었음... ㅋㅋㅋ
     
래알 12-02-21 16:12
   
운영자분?에게 객님인가 그분에게 혼낫음.ㅎㅎ

경고먹을뻔햇어요.
          
어리별이 12-02-21 18:09
   
아, 그랬었나요? 난.. 내가 달은 댓글에 래알님이 충격먹고 삐친 줄 알았어여 ㅋㅋㅋ
               
래알 12-02-21 20:26
   
아.ㅋㅋ아님요..ㅋㅋ 게시물 중복으로 달아서

객님에게 바로 지워지는 바람에 읽지도 못햇어염^^ㅎㅎ
체험살해현… 12-02-21 16:16
   
청이 끝가지 호의적이였다는 건 또 뭔소린지.. 우릴 침략했었는데..
     
81mOP 12-02-21 19:20
   
청 병자호란 때까진 후금이죠 후금은 애초 임진왜란 때부터 친조선을 표방했습니다.
임진왜란때 조선조정에다가 왜군을 무찌르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했으나 조선은 거절하죠.
후금의 목적은 중원정복이었기 때문에 친조선 정책을 취하면서도 임진왜란으로
국력을 크게 상실한 명과의 대립은 계속 됩니다.

그리고 선조 사후 조선은 광해군이 집권하면서 쇠퇴하는 명과 새롭게 일어나는 후금과의 사이에서
실리외교 노선을 취합니다.
얼마전 개봉한 한국영화 혈투의 시대적 배경이 바로 명과 후금사이에서의 실리외교를 피던  광해군의 집권시기입니다.

그러나 광해군의 정치입지는 약했던데다, 서인들의 반발로 폐위되고(인조반정) 인조가 등극합니다만 인조는 광해군의 실리외교를 버리고 친명노선을 취하게 됩니다.

이에 후금은 중원정벌 이전에 후방안정화를 위해 조선을 침략하게 되는데 이것이 정묘호란입니다
이후 강성한 후금이 조선에 대한 전쟁물자 조달과 함께 형제국에서 군신국으로의 관계를 강요하게되고
이를 인조와 조선조정이 거부하여 후금황제가 친정하게 되는데 이것이 병자호란입니다.

사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조선조정이 광해군을 몰아내면서 명에대한 의리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이는 광해군 축출해 대한 당위성을 포장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당시 조정은 국제정세에 어둡고 외교에한 중요성 몰랐던 지라 친명정책을 고수하다 그런일이 일어났지요.

즉 조선은 국제정세를 읽지 못하고 제대로된 외교를 펴지 못한 것이 이후 청나라와 조선과의
관계를 군신국의 지위에 놓이도록 만든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후금(청)이 명이나 다른 민족 및 국가를 침략하여 정벌할 때는
수많은 학살이 일어나고 그나라는 청나라에 편입되어 나라가 망했으나 유독 조선만은 두번에
걸친 전쟁이후에도 비교적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지위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윗글의 내용처럼 후금과 청의 조선을 대한 태도로 봤을 때 유독 조선에만 그랬는지
의문이 남는 다는 것이죠. 다른 나라나 민족처럼 나라를 멸망시키고 한족처럼 노예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 말입니다. 후금이 명나라를 정복할 당시 학살당한 한족은 몇백만이 넘으니까 말입니다.
          
래알 12-02-21 20:33
   
그러게요.
2%의 만주족이 98%의 한족을 지배햇던 나라가 청나라로 알고잇습니다.

역사란게 많이 아쉬운점이 많네요
sba7336 12-02-21 18:32
   
중공의 논리라면, 청도 오늘날의 중국도 우리 역사다.

몽골제국도 우리 역사다. 당시 송나라는 몽골에 복속당하고 한족은 노예였지만, 고려는 형제국이었다가 부마국으로 된 엄연한 몽골제국의 제후 국가중 하나다. 당시 몽골제국은 킵차크 한국과 차가타이 한국 등 제후국으로 형성된 연합국이었다. 따라서, 혈연적인 제후국이였던 우리는 당연히 몽골의 역사를 우리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몽골제국의 역사가 우리것이기 때문에 당연의 원나라의 역사도 우리 것이다.

중공의 역사관으로 보자면, 일본 또한 우리의 역사다. 결국 일본 또한 우리것이 되는 것이지 ...


원 개같은 논리로 깡패짓거리 하려고 하는데, 조만간 중국놈들은 다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할거야
EKim 12-02-21 19:35
   
고조선이 중국사면, 인류사는 영장류역사.
고전프라 12-02-21 21:28
   
멀리 떨어져 있는 조선을 복속하는건 쉬운 일이 아님.
역사상 최강 몽고도 그리는 못 했음.
쌍령땅 좀 떼먹고, 왕만 바꿔치기 하는 수준이었지, 직접 통치는 못한 땅이 한반도임.
왜냐 직영을 해서 나올거에 비해, 지킬 군사력 낭비로 잃는게 더 많음.

중원에서 몇십만이 온다고 해서, 그 병력은 금방 오다가 가는 병력임.
상주는 얘기가 다름.
임란때, 수년간 5-8만 정도 보냈다고, 나자빠진게 명나라임.

5만 주둔시켜서는 이 나라가 청나라 직영으로 돌아가지 않음.
그 정도로는 경기도 지키다 판남.
1-2만으로는 전라도땅 하나 뚫지 못한게 임란임.
단 한번도 외세에 직영체제로 넘어간 적이 없는 역사인데, 5만으로 이 나라를 지킬 수 있겠음.

역사가 이모씨는 티비서 보면 많이 아는듯 한데, 전쟁쪽은 문외한인듯 함.
이 분야는 임용한님이 최고임.

청나라 시작하자마자, 얼마뒤에 오삼계가 반란을 일으킴.
청나라도 초기에 문제가 많았는데, 조선에 10만 병력 상주 못 시킴.
어떤 중원을 통일한 국가도, 한반도에 10만을 영구히 상주시킬 수는 없음.

백제를 친 소배압의 10만도, 신라 쌀부대가 있으니까, 바다를 넘어온거고..
운송수단이 들 떨어진 그 시절에 10만을 멀리 떨어진 한반도에 배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임.

그럼.. 소수 상주시켰다가, 기회봐서 대군으로 한번씩 와서 때린다..
때리러 오기전에 직영체제 날라감.. 봉기하기가 쉽기에..
고전프라 12-02-21 21:33
   
청이 조선에 호의적인거는 하나도 없음.

명하고 일전을 앞두고, 뒤에 우환을 미리 없앤다고 조선을 친거고, 목적을 이뤘으니까, 돌아간거지.

명나라 대군을 앞에 두고, 조선을 직영한다고, 조선에 주둔해서 의병하고 쌈질나서 소모당할 일 있나?
기사가 뭔소린가 싶네요.

삼전도 당시 청은 조선을 직영할 군사적 능력이 없었음.
전쟁할 시간도 줄인다고, 기존 성들 다 점령도 안하고 기병으로 냅다 한양으로 달려왔고,
황해도를 와서 왕한테 침략사실이 보고되서, 멍청한 인조가 강화도로 빨리 튀지를 못해서,
그 수모를 당한거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작전을 보더라도, 직영 통합 흡수하고는 젤 거리가 먼 전쟁패턴이었음.
나락k 12-02-21 22:50
   
게시물고ㅏ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밑에 젓족에에 어그로당하는
대한국인들을 보며 짤막하게 조언으 아뢰겠오

중공짱게= 바퀴짱게
좆족 = 곱등이

좆족이 딱 맞는 이미지라오 여기저기 기생해서 숙주에게
단물 쏵 빨아먹고 필요없음 뒤통수치고 다른데붙어서
빨대꼽는 색귀들
심청이 12-02-22 19:11
   
18세기 청나라 지도를 놓고 보면 신기하다 못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그 거대한 청나라 제국이 쥐꼬리 만한 조선반도만 달랑 하나 남겨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알고 보면 청나라 라는 나라는 원래 왕족이 신라에서 나왔을 뿐만이 아니라
금나라 시초에서 청초기 까지 고려나 조선으로 부터 군사적으로나 경제적(교역)으로 많은 영향을
받고 큰나라다.  말하자면 금나라 초창기에 고려나 조선은 마치 부모와 같은 나라 였다는 거다.
물자가 모자르면 교역을 했고 군사적으로 고려때 금나라의 적 거란을 물리쳐서 세력을 확장 시킬수 있었다.
또 조선초기에 여진족을 회유 하기 위해 벼슬을 주기도 했는데 그중 하나가 누루하치의 직접적인
조상이 었다고 함..
  다만 국지적으로 서로 전투를 하거나 영토 분쟁을 했지만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비하면 두나라의 사활을 걸고 전투를 하진 않았다.
병자 호란 같은 경우도 같이 힘을 합쳐서 중국 명나라를 치자고 하자 말을 안들어서 쳐 들어 온거지
기본적으로 조선을 멸망 시키기 위해서 온것은 아니다. 원래 여진족은 혈연적으로 조선과 가까울뿐만 아니라
 명나라 정벌에서도 임경업과 유림 두장수에게 120척이나 되는 선박과
 수천명의 조총병과 살수 등을 파견해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단 너무 소극적으로 전투를 함
나선정벌에서도 청나라에 군대를 파견해 러시아 군대(약 500명)를 물리치기도 함
청나라는  위그르나 티벳 이민족을 병합 하고
심지어 대만의 정성공 왕국도 아무 고민 없이 정벌했던 나라다.
다시말해 내가 출세 했다고 약간의 타툼이 있는 형제나 부모 같은 조선을 멸망시킬수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런 혈연적인 역사적인 관계 이외에는 청나라가 조선을 멸망 시키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수 없다.
여진이라는 말도 원래는 고려할때의 려와 대진국(발해)의 합성어 인데 중국 한족들이 이를 비하 하기위해 계집여자를 넣은 것이라고 한다.
모택동시기 주은래도 북한에 가서 양심선언을 했는데
명나라의 두배나 되는 영토를 물려준 조선 같은 동이족에 감사 하다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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