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 20대 여성 살인사건을 대하는 대중의 반응을 보면 현재 한국 사회가 성숙한 다문화 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성장통을 심하게 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질성이 부딪칠 때 나타나는 적당한 긴장감은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최근의 현상은 적당한 긴장감 수준을 넘어선 심한 질병 수준으로,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히 필요하다.
원인에 대한 진단이 정확해야 해결이 가능하다. 문제는 우리 국민의 다문화감수성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다문화 공존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36%뿐이라는 여성가족부 발표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폐쇄성과 혈연 중심의 배타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결국 나 자신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갉아먹는 질병이므로 가급적 빨리 치료해야 한다.
정보지식과 더불어 미래의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창의성은 다양성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따라서 다문화를 포용하지 못하는 사회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한국인으로서 스스로의 의식을 점검하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때다. 동화가 아니라 공존을 모색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다문화가족지원정책도 초기에는 이주민들에게 한국 생활에 일방적으로 적응할 것을 강조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문화를 장려하고 소통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결혼이주민의 일방적 동화를 요구하는 교육이나 프로그램보다는 양쪽 나라 문화의 상호 이해를 권하고 있다. 이주여성의 한국어 교육도 중요하지만 한국 배우자도 상대방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고 배우자의 문화를 이해하도록 장려하며, 특히 자라나는 아동에게는 이중언어 교육을 권장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범죄에서 나타나는 한국인의 반응을 보면 성숙한 다문화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아직 먼 듯싶다.
상호공존의 다문화사회정책을 위해서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비(非)다문화가족의 인식 개선으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우선 우리가 지닌 이중적인 잣대와 시선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재외동포에게는 찬사를 보내면서 이주민에 대해서는 출신국의 문화를 버리고 동화될 것을 강요하는 이중성을 성찰해야 한다. 특히 외모에 바탕을 둔 편견을 수정해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한국 국적을 가진 다문화 아동을 향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너 어느 나라에서 왔니?’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주민들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상처를 주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우리 사회가 다양성이 공존하는 성숙한 다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문화감수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 인식뿐만 아니라 대응을 위한 체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어린 시기부터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창의성을 발현해야 한다. 피부색이 다르거나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은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또 사회 전반의 다문화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교사와 공무원을 비롯해 경찰, 법조인이나 의료인 양성과정 등에 다문화 이해 교육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다문화 이해 교육을 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다문화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전체 시스템을 정비하고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하는 진입 단계에 있다. 다문화감수성을 높인다는 것은 결혼이주여성이나 외국인 근로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삶을 함께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수원 살인사건의 여파로 쏟아지는 인종차별적 비난을 보면 ‘다름’을 불편하게 여기고 비난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의 문제를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결혼이주여성은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에 대해 오히려 대한민국의 포용력을 보았다며 비난을 끌어안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여성이 다문화의 장점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사례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