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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7-22 07:11
[중국] 여진인들은 백두산에 올라 단군에 제사를 지내다..
 글쓴이 : 심청이
조회 : 3,724  



금청사가 한국사냐  아니냐를 따지기 이전에 이들의 역사를 먼저 바로아는 것이 우선입니다.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알고있는 것이 너무나 잘  못됀  것이 많아서 씁니다.

만주의 대부분은  중국영토라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현재의 만주는  중국과 러시아가 찢어나눠점령하고 있을 뿐입니다. 러시아가 점령한  만주땅도  어마어마하게 큰데 그럼  만주의 역사가 러시아역사의 일부도 됩니까?  금나라  청나라가 러시아  역사도 됍니까?

중국인이 된  만주족들은 더이상 만주족이 아닙니다. 중국인일 뿐입니다.  미국인이된  멕시칸들의 수는  그보다 더 많습니다.  그렇다고 멕시코역사가 미국역사의 일부가 됩니까? 

여진족은 우리민족에 융화된  민족이  아니라 우리민족에서 갈라진 민족입니다.  여진족이라는 것은 신라의 김함보이전엔  존재하지도 않던 민족입니다. 최초의 여진인은 김함보의 아들이고,  여진이라는 민족은 신라인  김함보일파와 말갈 발해족이 섞이면서 형성됐습니다.  그리고 말갈족은 고구려인이었고  발해인이었고 또 고조선인이었습니다.  마지 중국의 소수민족처럼  여진족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진족은 한민족과 다른 소수민족이 아니라 과거 한민족이 갈라진  민족입니다. 

만주족이 정통성에 대한 뿌리가 약해져서 우리민족을 끌여들여 역사를 편찬한  것이 아닙니다. 최초의 여진의 역사는 중국인에 의해  기록됐습니다. 송막기문은 송나라인이 당시 금나라에 10여년간  체류하면서 기록한  여진의 역사입니다. 여기에 여진의 지도자가 신라인이라  기록했습니다.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이다", 송막기문, 중국기록 (1156년)
女真酋長乃新羅人 

그 뿐  아니라 고려사,  몽고사,  금사 모두 여진이  원래 신라(고려)에서 왔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모두 여진인들 스스로의 기록이 아닙니다.  모든  아시아 주변국들의 기록이 다 일치하고 여진인스스로 역사를 쓰기 수백년전 기록입니다. 금사도 원나라때 몽골치하에서 기록됀  역사로 여진인스스로의 기록이 아닙니다. 

"금나라의 근본은  우리나라 평주사람이다. 나(고려)를  일컬어 부모의 나라라했다. "(고려사 1392
"金則本我國平州之人, 稱我爲父母之國。" 
"여진의  초기지도자는 신라인이다." (몽골편찬,  금지(金志)) 
"其初酋長本新羅人" 
"금의 시조  함보는 처음에 고려에서왔을 때  60세였다." (원나라 몽골편찬, 금사 (金史), 1261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 

여진과 만주인들이 스스로 역사를 남긴 것은 그로부터 수백년  후 청나라 때  만주원류고(1777년)입니다. 만주원류고가 만주인들이  정통성때문에 역사를 왜곡해  창작해썼다는 것은 헛소리일  뿐아니라 연대상으로 불가능합니다. 만주원류고 수백년  이전에 이미 여진의 역사는 편찬됐고  만주원류고는 그것을 종합한 최종판일  뿐입니다.

만주어는 원래 고대  한민족들이 썼던 여러가지 방언중  하나가 갈라진 것입니다.  만주어나 지금의 한국어나 같은 알타이계이고,  만주족이나 한민족이나 둘다 씨름도 똑같고 집안에 온돌들여놓는 것도 똑같습니다.    게다가 만주족들이 원래 단군을 시조로 제사까지 지낸  것까지도 똑같습니다.  만주족의 역사가 금나라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금나라자체가 신라인  김함보무리가 시작한  것입니다. 한명이 아니라 그  사람을 따르는 무리가 함께 이동했고,  왕족은 신라계  왕비족은 발해계로 집권세력도 한민족입니다.  이들을 한민족과 다르다고 나누는건  엄청난  무리일 뿐아니라 그것이 바로 우리손으로 제살깍아먹는 동북공정이죠. 

중국  다렌대학교수:  "고려와  금나라는  동일한  언어,  동일한  지역,  동일한 문화를 공유했습니다. ...여진인과 조선반도의 신라인(후의 고려인)들은 민족공동체가 됐습니다. "
http://www.youtube.com/watch?v=e0Hm-SRD9CQ&feature=player_detailpage#t=271s

여진인들은 백두산에 올라 단군에 제사를 지냈던  단군에 후손입니다. 우리나라  단군이 개국한  날을  "개천(開天)절"이라고  하는 것 아시죠?  금나라  여진인들도 개천절때  백두산에 올라  단군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홍익(弘益)인간사상을  이념으로 하는 단군을  "개천홍성제(開天弘聖帝)"라 기록했습니다. 금나라가 단군에 제사를 지냈다는 금사의 기록입니다: 

"冊長白山之神為開天弘聖帝" (금사  10장 (金史), 1261) 
(장백산(백두산)의 개천홍성제(단군)를  신으로 삼아...)
"明昌四年十月 ... 行仗五百人,複冊為開天弘聖帝。" (금사  35장 (金史), 1261 )
(명창사년십월...  오백명의  의장들이 동행하여,  개천홍성제를 거듭  세워다스렸다.)

몽골군에 멸망 당한 후에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나라를 일으켜 대륙을 통치한 여진족
현재의 한국인과 닮아 있다고 본다.

혈통이나 민족 동족이라는 개념이 뭐그리 중요 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역사에서 그런 개념이 없었다면 왜 미국이 영국을 돕기 위해 독일과 싸웠을 것이며
왜 오스트리아가 독일과 합병하고 러시아와 전쟁을 했을 것이며
왜 1400년전 왜가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당시의 국력을 총동원해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왔겠는가? 또 고려가 거란과 적대 관계를 표명한 이유도 발해를 멸망시킨 적이라는 개념이었다.
(거란의 사신 귀향보내고 낙타를 굶겨 죽인것)
즉 발해를 고려의 형제국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며 거란이 고려와의 27년간 3차에 걸친 침략에서
 패배하자 고려보다 더 좋아했던 나라는
거란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만주의 여진족들이었다. 철리국이 사신을 보내고  속국이 돼기를 청하고
흑수말갈의  여진족 추장이 직접고려에 와서 속국이 돼기를 청했다.
또 여진추장을 데리고 송나라에가서 승전 축하연을 했다고 나온다.
이게 이런 동족 의식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인가?

단 여기서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지도자가 띨방하면
국민이 고생한다는 것이다. 인조가 친명배금 정책을 했다고 해도
인조가 잘만 했다면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조반정의 일등공신이던 이괄을 여진 방어의 최전방에 좌천 보내다 시피 하고
반란을 의심해 이괄의 아들을 잡아 들이려 하자 이괄군이 반란을  일으키게 된것이다.
이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국력소모로 인해 청나라의 침략에 대항 할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괄의 부하들이 청나라에 투항하면서 이 사실이 알려 지게 되고 청의 침입을 불러 왔다.
만일 당시 여진 방어용 최정예 부대(임진왜란때 투항한 조총부대까지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약2만명)를 보유하고 있던 이괄이 난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패륵 아민이 이끄는 청나라 36000의 8기군도 쉽게 한양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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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벌 12-07-22 12:48
   
금.청은 반드시 한국사에 편입되어야한다.
gagengi 12-07-22 14:18
   
금나라 청나라는 원래 한국사였습니다.  김구임시정부때 금청사를 한국사로  가르쳤습니다.
우리역사인 금나라 청나라를  원래대로 복구시켜야합니다.

제1장 려요시대
제2장 고려와 금나라 때
제3장 고려시대
제4장 종교
제5장 제도
제6장 문학과 기예
제7장 풍속

제4편 근세(近世)
제1장 조선시대
제2장 조선과 청나라 시대
http://www.yes24.com/24/goods/1978304
이스탄벌 12-07-22 14:42
   
그책 가지고 있습니다. 신단민사
역사 12-07-22 15:18
   
제일 먼저 예전에도 말했듯이 송막기문이든 금사이든 간에 거기서 나오는 여진족이나 건국자의 시조는 신라인 혹은 고려인이라는 데에 대해서는 인구이동과 문화전파성의 방향으로 해석하지 그것이 여진족의 모든 정체성으로 확대해석하는 사학자는 극히 드뭅니다.

이러한 확대해석의 맹점은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거죠. 건국자에 대한 사서의 서술은 거의 대부분이 토착민이 아니라 이주민이었습니다. 즉 외부에서 온 사람이 건국자가 되는 것이죠. 우리나라 사서에서도 그러한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한 해석방식은 위만이 연나라에서 왔다는 서술을 보고 위만조선은 연나라와 같은 역사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학자나 고려세계에 왕건이 당나라 황제의 후손이라는 서술을 보고 고려는 당나라와 같은 역사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학자들에게 이익만 될 뿐입니다.

만주원류고에 대해서는 지지난 게시물에 어떤 사람이 만주원류고는 왜 못믿는데 춘추나 사기는 왜 믿냐면서 주장하시는 분을 위해서 제가 만주원류고가 왜 큰 틀부터 잘못된 두찬서인지는 앞서 말한 적이 있는 바 생략합니다.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것은 오히려 당신이 지난 게시물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데 그것이 왜 다시 같은 문화 같은 언어가 됐는지 영 이해가 안갑니다.

모든 종족이 주변종족의 영향을 받지 않고 혼자 독자적으로 살아간 종족은 거의 드뭅니다. 마찬가지로 주변 종족의 언어나 문화가 일부 전파되어 그 종족과 동질적인 문화를 향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도 율령, 한자, 불교, 유교 등의 같은 문화를 향유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동아시아인들이 같은 민족이라 주장하지 않을 뿐더러 처음에는 같은 뿌리로부터 시작했지만 그것이 분열되면서 서로다른 문화와 아이덴티티를 띤다면 뿌리로서 판단해서 같은 민족으로 넣자고 대담하게 발언하는 학자들도 없습니다.

그리고 개천홍성제도 제가 분명 금사 예지를 통해서 말해드렸지만 아직도 저러는 걸 보면 제가 당신에게 사과한 것이 너무나 허무맹랑한 것이였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단군에 관련된 서술을 일부 발췌해드리지요. 그게 과연 금사예지에 나와있는 장백산신과 같은 것인지 말이지요.

현존하는 사서중에서 단군고기를 가장 먼저 인용한 사서는 삼국유사로서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서술되어있냐면

"그 후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 (周)의 호왕(虎王-武王-) [譯註 005] 이 즉위한 기묘(己卯)에 기자 (箕子)를 조선 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 (藏唐京) [譯註 006] 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 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으니 수(壽)가 1,908세다.”라고 하였다. "

라고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고 나와있습니다. 지금의 아사달은 현재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 부분입니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 에 옮겼는데, 궁(弓) 혹은 방(方)이라고 한다. 홀산 (忽山)이라고도 하며 또는 금미달 (今彌達)이라고도 한다."

라 하여 아사달이 지금의 백악산이라고 나와있고 또 하나의 설은 제왕운기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권42 문화현 산천 구월산조에 "구월산이 즉 아사달산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또한 고려사 권58 지12 지리3 유주조에는 주 내에 "아사달산으로 전하는 구월산"라 하여 두가지 설을 들어봤자 단군은 백악산신 혹은 구월산신이지 장백산신이 되진 않습니다^^

즉 금사예지에 나오는 장백산신이라 불리는 개천홍성제는 단군이 아니라는 것이죠.

또한 세조 3권, 2년 3월 28일 3번째 기사를 보면 "묘향산(妙香山)에 이르러서는 단군(檀君)이 일어난 곳이며, 구월산(九月山)에는 단군사(檀君祠)가 있고"라고 나와있습니다.

또한 고대 중세에서 나오는 국가와의 친선관계와 대립관계를 오로지 동족이냐 동족이 아니냐라고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고 해석하시는 것부터가 상당히 의문이고요. 동족의식을 단순히 명분과 아이덴티티 측면으로만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공동체의식으로 확장해서 생각하시는지에 따라서 당신히 말한 백강전투에서 동족의식을 느낄 수 있다고 하신 부분에 대한 저의 평가를 달라질 겁니다.

그리고 위에 어떤 님이 임시정부가 금청사를 우리역사로 받아드렸다면서 신단민사를 들고나오시는데 저는 이때까지 신단민사를 임시정부가 편찬했다 혹은 임시정부가 교과서로 지정했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임시정부가 편찬한 것이 아닌 지정한 교과서는 배달족역사라고 대종교주 김교헌이 항일투쟁을 위한 방어적 기제로서 편찬한 책이며 그것을 지정한 것은 그러한 역사관이 식민사관을 막을 수 있는 기제로 생각했기에 지정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증적으로 지금의 관점으로 봤을 때 독립운동 당시 대종교의 역사관에 대해서 단순히 독립운동가의 대표적 역사인식을 알 수 있다고 말하지 그 역사관이 구구절절이 맞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순히 이 역사관의 본질은 종교교리이니깐요.
우국충정 12-07-23 03:55
   
신단민사 참 좋은책이군요 오늘 처음알았음

그런좋은 역사서있으면 어여어여 국사책에 참조를해야지

역사학계가 친일넘들이라 참 한탄스럽습니다..

자고로 역사란 유리하고 좋은것만 골라서 서도 모자라는건데 어떻게 않좋은거 불리한거만

억지로 찾아서 가르칠려고하는지 참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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