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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8-04 14:15
[기타] 고구려태왕의 뺨을 때린 중국의 용자 '최유'를 아십니까?^^
 글쓴이 : 예맥사냥꾼
조회 : 7,248  


북사 열전 고구려전을 보면
7세기까지 동북아를 호령했던 천하강국 고구려를 참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우리에게 낯뜨거운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게 사실일까?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는 기록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천보(天保) 3년(552년)에 문선(文宣)[제(帝)]는 영주(營州)에 이르러,

박릉(搏陵) 최유(崔柳)를 고려(高麗)에 사신으로 보내어 위(魏)나라 말(末)에

[고구려(高句麗)로] 흘러 들어간 백성들의 [송환을] 요구케 하면서,

[최(崔)]유(柳)에게 조칙(詔勑)하기를, “[고구려(高句麗)가] 만약 순종하지 않으면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응하라.” 고 하였다. [고구려(高句麗)에] 이르러 허락을 받지 못하자, [최(崔)]유(柳)는 눈을 부릅뜨고, 나무라면서 주먹으로 성(成)을 쳐

용상(龍床) 밑으로 떨어 뜨렸다. 성(成)의 좌우 [신하들은] 숨을 죽이고 감히 꼼짝도 못한 채 사죄하고 복종하였다.

그리하여 [최(崔)]유(柳)는 5천호(戶)를 돌려받아 복명(復命)하였다. 성(成)이 사(死)하고 아들 탕(湯)이 즉위하였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성(成)은 안원왕 이후 추군과 세군이라는 고구려 역사상 전대미문의 내란 직후 즉위한 양원왕의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북제의 사신 최유가 고구려의 태왕이었던 양원왕이 고구려에 흘러들어온 위나라 시대 중국인 5천호의 반환을 거부하자 고구려 조정에서 태왕의 얼굴에 주먹질을 하여 굴복시켰다는 소립니다.
뿐만 아니라, 그상황에서 조정에 있던 고구려의 수많은 대신들과 문무백관들이 그 무엄의 도를 넘은
외국사신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최유 한사람의 기에 눌러 꼼짝도 못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입니다.

ㅎㅎㅎ 지금의 중국인들이 보면, 중국을 그토록 괴롭히고 수치를 안겨주었던 고구려 태왕을 고구려 조정에서 주먹으로 구타했다고 하니 참으로 통쾌한 일이 아닐수 없겠죠...-_-

더구나 이 기록은 중국왕조의 공식 역사서인 25사 중 하나인 북사 열전편에 엄연히 수록되어 있는거이니만큼 야사도 아니고 정사로서 사료적 가치를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하여, 현재 우리나라 사학자들 중 상당수도 우리로서는 수치와 분노를 유발할수 밖에 없는
해당 기록을 겸허히 받아들여 자신들의 고구려관련 논문이나 저서에 버젓이 사실이라 기술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신라기원론이라며 현대 한국인의 직계조상은 신라이고 고구려와 백제는 우리에게 희미한 핏줄과 문화밖에 전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서강대 이모 박사님도 자신의 고구려통사에서 고대로 받아 적고 계시고

고구려역사에 나름 상당한 학문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서영* 박사도 자신의 저서에
보란듯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에 좀 관심이 많거나 안다는 국내 일반인들은 대담무쌍한 최유의 거사를 분하지만
믿을 수 밖에 없다고 여기는 분들이 꽤 많은게 현실입니다.

심지어 당시나 지금의 상식의 잣대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최유의 행동에 대해
최유가 강호의 무림고수여서 막강한 군사강국 고구려의 심장부인 평양성의 조정에서
그것도 고구려 태왕을 그토록 무참히 구타할 수 있었다는 사실무근의 추측성 글도 보았습니다.ㅎㅎ;;

그러나, 이 기록을 곧이곧대로 믿을수 없는것이
아무리 양원왕이 544년 발생한 추군과 세군의 피비린내나는 내전으로 옹립된 나약한 태왕이었다해도,
양원왕이 태왕으로 있던 551~3년 시기에 북주와 북제를 속국으로 삼다시피했던 투르크와 백암성과
신성에서 싸워 승리하고 또한 고흘이 이끄는 1만의 기병이 투르크군을 패배시켜 고구려 군사력이
변함없이 강성함을 과시하던 시기였습니다.

 이시기의 정황이 이러한데도, 북사 열전에 나온대로 북제의 사신이 고구려의 태왕의 면상에 주먹질을 하여 옛 북위의 유민들을 다시 북제로 데리고 왔다는 기록이 사실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오랫동안 고대 한국관련 중국사서 기록의 아킬레스건인 중국 특유의 '춘추필법'을
염두에 두고 해당 기록의 진실을 규명해 나가야 합니다.

이는 제1차 고수전쟁에서 수나라 30만 대군이 고구려군과 전투도 벌여보기전에
전염병과 태풍, 장마를 만나 요하를 건너보기도 전에 스스로 궤멸되어 열명중 하나만 살아돌아왔다는
수서의 기록을 비판적 시각으로 들여다 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 그럼 고구려태왕의 뺨을 때린 북사란 책이 어떤책인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합시다.

북사는 당나라때인 이연수가 지은 중국 25사 중 하나인 정사라고 합니다.

당나라... 일단 북사가 쓰여진 시기부터가 무언가 슬슬 구린내가 풍겨오기 시작합니다.
당나라는 잘 알다시피 고구려와 수십년간 운명을 건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바로 그 당사국입니다.

이연수는 바로 645년에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무참하게 깨지고 목숨만 겨우 건지고 돌아온 이세민의
명으로 북사를 집필했던 인물인 것입니다.

 고구려와 적대적이었던 시국에 쓰여진 당나라 관찬 사서라... 과연 고구려 관련 기록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지.. ㅋㅋㅋ

아무튼, 북사가 쓰여진 시기가 이렇다는 정도만 알아두시고
그럼 이연수는 백년전쯤의 북제 역사를 집필함에 있어서 그당시 어떤 사료를 바탕으로 북사를
썼을까요?

바로 북제서를 보고 베낀것으로 특히 최유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파견됬을때는 북제의 황제였던
문선제의 시기로서 북제서 문선제편에 분명히 북사에 실린 최유의 거사가 실려있어야할 것인데
북제서나 북제서 해제(설명문) 어디에도 최유가 평양에서 양원왕을 구타한 업적ㅋㅋ은 전혀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이미 오래전에 확인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허무맹랑한 타국사신의 고구려태왕 구타사건을
이연수는 중국의 관찬사서라는 정사 '북사'에 올려놀 수 있었던 걸까요?

무언가 북제시대 관련 기록에 이러한 정황을 풍길만한 최소한의 꺼리, 즉 고구려를 그토록
증오했던 이세민의 명으로 편찬된 이연수가 고구려를 깔아 뭉갤만한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영감이라도 줄만한 소스가 있지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북제관련 중국측 기록에 신하가 황제의 얼굴을 심하게 구타하고 모욕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 자치통감에 실린 해당 기록을 보시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자치통감 양기 권160 무제 태청 원년(547년)

8월

무자일(24일)

황제가 일찍이 업(鄴)의 동쪽에서 사냥을 하는데 말을 달리는 것이 마치 나는 것과 같아

감위도독 오나라수공벌이 뒤따라오며 불렀다.

“천자께서는 말을 달리지 마십시오. 대장군이 성을 냅니다.”

고징이 일찍이 모시고 술을 마시다가 커다란 술잔을 들어 황제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신 고징이 폐하에게 술을 권합니다.”

황제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말하였다.

“자고로 망하지 않는 나라가 없었지만, 짐 역시 이렇게 살아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고징이 화를 내며 말하였다.

“짐? 짐이라고? 이 개다리 짐아!”

최계서로 하여금 황제를 주먹으로 세 번 치도록하고 옷을 떨치며 나갔다.

다음날, 고징이 최계서로 하여금 들어가 황제를 위로하자 황제 역시 사과하고

최계서에게 비단 백필을 내렸다.

帝嘗獵於鄴東,馳逐如飛,監衛都督烏那羅受工伐從後呼曰:「天子勿走馬,大將軍嗔!」

澄嘗侍飲酒,舉大觴屬帝曰:「臣澄勸陛下酒。」

帝不勝忿,曰:「自古無不亡之國,朕亦何用此生為!」

澄怒曰:「朕,朕,狗腳朕!」使崔季舒毆帝三拳,奮衣而出。

明日,澄使季舒入勞帝。帝亦謝焉,賜季舒絹百匹。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북제의 사신 최유가 평양에서 고구려태왕의 얼굴을 주먹으로 구타했다는 기록이 있기전
불과 몇년 전의 일이 북제의 조정내에서 벌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북제란 나라와 황제를 구타한 고징이라는 인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드려야할듯 싶네요.

북제는 북위가 멸망하면서 내륙지방의 북주와 함께 화북 산동지방을 차지한 나라로
고징, 고환같은 고씨일가에 의해 세워져씁니다.

북위 멸망 직전 이미 북위 조정은 왕족과 귀족들의 갈등과 내분으로 사실상 황제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권력가들에 의해 하루가 지나면 황제가 바뀌는 시기였습니다.

화북지방에서 북제를 창업한 고환이라는 인물의 내력에 대하여
북제서에는 보면,

"북제서 권1 보제기 제1 신무제 고환, 상(卷一 補帝紀第一 神武帝 高歡上)편을 보면 다음과 같다.
『북제의 고조 신무황제는 성이 고씨이며 이름이 환인데 자가 하육혼이고 발해 수(현) 사람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고환을‘발해 수(현) 사람이다’라고 한 것은

중국 사서에서 고구려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상투적인 수법으로, 이미 북위시절
고구려인 고양이 같은 마을사람, 韓씨와 기씨집안 사람들과 함께 북위로 이주해오는데
이들의 출신에 대하여도 북위 기록에는 '발해 수(현) 출신'이라고 적으면서
북위의 귀족들이 고양과 그아들 고조 등을 고구려 오랑캐출신이라며 멸시했다고 합니다.

(참고, 북위의 권력자 고조에 대한 기록 :
해동역사/ 제67권/ 인물고1/ 고조(高肇) 열전
"고조(高肇)는 자가 수문(首文)이며, 문소황후(文昭皇后)의 오빠이다. 스스로 이르기를 발해(渤海)의 수(蓚) 사람이라고 하였다. 5대조인 고고(高顧)가 진(晉)나라 영가(永嘉) 연간(307년 ~ 312년)에 난리를 피하여 고구려로 들어갔다.")



허나, 고양의 아들 고조는 자신의 조카가 북위 황제의 정부인이 되고 그아들이 황제에 오르면서
고씨 일족이 북위의 권세를 독차지하게 됬던 사실은 유명하지요.

그러니까 아직도 고징,고환 등 고씨일족의 출신에 대하여는 이견이 없는것은 아니나,
북제서의 해당 기록으로 볼때 분명히 고환은 고구려계, 즉 요동사람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는 겁니다.

더구나 고환이 세운 북제는 고구려와 별다른 마찰없이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했었고
북제가 북주에 멸망하고 수나라에 화북지역이 넘어간 이후에도 고환의 후손들은 고구려와 돌궐의
군사적 도움을 받아 북제부흥을 끊임없이 일으킵니다.

훗날 수문제와 수양제가 고구려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이유도
고구려가 말갈과 거란을 이용하여 북제부흥군을 배후에서 조종했기 때문일 가능성도 큰것이죠.

아무튼, 만일 고환을 고구려계로 결론짓는다면,
이세민 당시의 당나라 사람 눈에 요동사람이었던 고징이 중국의 황제의 얼굴을 구타하면서
욕보인 사실에 분개했을 것이고 이미 북위시절부터 고구려 고씨들이 북위에 넘어와
북중국의 정사를 농단했던 사실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북사의 저자인 이연수였든 아니면 후세의 다른 누구였든
요동사람 고징이 자신의 수하 최씨를 시켜 중국의 황제의 얼굴을 구타하여 욕보인것을
반대로  북제의 신하 최유가 고구려의 고씨 태왕을 구타한 것으로 바꾸면 얼마나 통쾌할까 여기지
않았을까요?ㅎㅎ

그래서 정작 북사의 원전인 북제서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은 북제사신 최유가 고구려태왕의 얼굴을
구타하여 중국인들을 구출해 내었다는 소설을 백년이 지나 당나라 이세민 때 집필된 북사에다
끼워넣은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동사람 고징이 자신의 수하 최씨를 시켜 중국의 꼭두각시 황제를 욕보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인데,

너무나 절묘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똑같은 최씨 성을 가진 최유가 이번에는 고구려의 고씨 태왕을
똑같이 욕보였다는 설정..

우리는 중국인들이 너무나도 오랫동안 북방민족들에게 시달리면서
무력으로는 그들을 당하지 못하니 오로지 붓하나 놀려서 자신들의 상처받은 자존감을 만회코자
흉노가 한나라에 조공해왔다, 탁발선비족의 북위는 나라도 아닌 색로부족의 원시상태로 그리는둥
바다로 아득히 먼거리에 있던 고구려가 북위에 시달려 오늘 내일하던 남쪽의 중국왕조들에게
속국을 자처했다는 식의 환타지 소설을 써댔던 관행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이는 19세기 들어서도, 아편전쟁에 의해 영국에 무참한 패배를 당했음에도
영국상인들이 청나라와 교역했던 것을 영국의 여왕이 속국을 자처하며 조공을 보내왔다는 식으로
기록했던 최근의 일들과 하등 다를게 없는 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본 글은 블로거 상상님의 중국관련 기록들을 많이 참고했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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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헬쓰 12-08-04 15:00
   
그 유명한 짱개의 정신승리법이군요
선수님 12-08-04 15:34
   
애 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맥사냥꾼 12-08-04 17:14
   
넌 뭐냐 잆아
          
선수님 12-08-04 17:48
   
이건 뭐 하는 ㅄ종자인가.
중국한테 애쓴다고 한 건데 지한테 하는 줄 아나보제 ㅋㅋ
이런 종자들이 앞 뒤 문맥을 살필줄은 몰라요
국어부터 제대로 떼고 이런거 올려라
               
예맥사냥꾼 12-08-04 17:55
   
ㅄ육갑떨고 앉았네.
주어도 쓸줄몰라 다짜고짜 애쓴다하는 너같은 ㅄㅅㅋ가
주댕이에 문맥타령 똥싸고 앉았네.ㅎㅎㅎ
진짜 국어 문법도 모르는 ㅄ종자야
이런글 봐도 이해도 못하는 돌대가리 ㅅㅋ ㅋㅋㅋ
                    
선수님 12-08-04 17:58
   
누가 이해못한다고 하대 ㅄ종자야 ㅋ
잘 알아보지도 않고 지한테 ㅈㄹ하는줄 알고 써재끼는데
이런 ㅄ새끼가 다 있냐
ㅈㄹ육갑 떨지 말고 너야말로 똥꼬나 긁으면서 앉아 있어라.
이해를 하니까 중국한테 애쓴다고 했지 또라이 새ㄲㅑ ㅋㅋ
하여튼 됬다.. 그러고 그냥 살아라.
                         
예맥사냥꾼 12-08-04 18:08
   
ㅎㅎㅎ 그 나이 쳐묵고 문법도 제대로 몰라 주어 빠뜨리고 지혼자 뜻 통하게 잘썼다고 우기는 ㅄ 중에 상등신아 ㅋㅋ

 애초에 지가 잘못써놓고 누구한테 개거품무냐.

 누구라도 느같이 문법개떡같이 애쓴다고 그라면 니넘새끼 받아쳐묵는건 욕바가지말고
더있간디? ㅎㅎ

대갈통도 등신이고 정신상태도 또라이고 더럽게 똥꼬타령하고 자빠졌네

니놈 안봐도 비됴다 이 ㅄ아 ㅋㅋㅋ
작은아버지 12-08-04 20:02
   
느금마 너 이러고 다니는거 아냐??
얼마나 슬퍼하시겠냐.. 빨리 집에 들어가라 이놈아
     
예맥사냥꾼 12-08-04 20:46
   
ㅎㅎ 여기 ㅄ육갑 팔랭이 한넘 더있네.

 나이 오십처묵고 집나온 이놈아 어여 집에 겨들어가라 애들 보기 쪽팔리지도 않냐 ㅋㅋㅋㅋ
          
NiceGuy 12-08-05 00:59
   
댓글이 딱 수준을 반영하는군요..    뭔 댓글 하나에 광분해서 분을 삭이지 못하는..
서라벌 12-08-04 23:26
   
잘봤습니다. 짱깨 전통의 춘추필법! 요즘말로 하면 정신승리라고 해야 되나요? 근데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한국 학자들이 많다니..
굿잡스 12-08-05 00:32
   
좋은 글 잘봤습니다. 남북조 시대 북조사야 뭐 강력한 고구려를 등에 업은 고구려인들의 활약상이
두드려졌죠.  북위에 고구려계 황제가 옹립되면서 노골화 되고 이후 북위가 분열되면서 거의 고구려의 위성국? 마냥. 뭐 지들은 자칭 황제니 하지만. ㅋ

남조도 북위의 대군을 막아낸게 백제 군사력이였으니 ㅋ
브로드쏘드 12-08-05 01:49
   
우리나라는 왤캐 기록을 못남겼을까요?
     
자기자신 12-08-05 02:12
   
우리나라가 기록이 못남긴이유는 외적으로부터 수많은침략을 받아왔기때문입니다 삼국시대때 고구려.백제가 멸망하고나서 당나라가 많은고구려.백제고서.기록물들을 없애버리거나 훔쳐가고 고려시대의거란요나라.몽골군침략 조선시대때 일본의침략 대표적인예 임진왜란.정유재란 그리고 청나라의침공 병자호란과19세기에 프랑스와미국의침략 병인양요.신미양요 그리고 일제강점기등등 우리에 많은기록물과 역사서가 약탈.강탈당하거나 훼손되서 없어졌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시절에 일본쪽바리놈들이 문화말살정책를 내세워서 우리한민족의역사기록물들을 강제로 빼앗거나 없애버려죠
열도원숭이 12-08-05 20:29
   
ㅈㅅㅈ ㅋㅋㅋㅋㅋㅋㅋ
6시내고환 12-12-29 00:36
   
아나 ㅋㅋㅋㅋ이건 그냥 중국측의 날조임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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