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를 가장 믿지 않으려는 나라가 바로 일본입니다.
왜정때 식민사학의 체계를 잡아갔던 왜인학자들이 삼국사기는 근본적으로
4세기 이전 기록들은 전부 믿을 수 없다고 못박고 시작 합니다.
(고구려는 중국측 사서들의 기록이 일치하는 부분들이 많아 그것은 얘네가 건들지
못함)
그러니까 백제는 근초고왕 이전 기록은 전부 믿을 수 없고
신라는 내물왕 이전 기록은 전부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오로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기록된 왜인들의 신라 약탈 기록은 철썩같이
믿고 인용합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왜가 신라를 약탈한 것이 1대 임금인 박혁거세 거서간 때부터입니다.
박혁거세 거서간 시절이면 기원전후 무렵으로 이때만해도 자그만치 백척의 함선으로
신라의 수도 서라벌을 공격해 왔다고 합니다.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왜는 이미 신라 건국초부터 상당한 인구를 가지고 강력한 군사력과
조선술, 해상능력을 보유한 강력한 세력입니다.
헌데, 고고학적으로 보면 5세기 무렵까지 일본열도는 이렇다할 철기문화도 기마문화도
발달된 토기문화도 나오지 않습니다.
고대에 제아무리 야만스러운 종족이라 하더라도 중국같은 문명국을 군사적으로 털기 위해서는
용맹 하나로만은 불가능하고 문명국을 능가할 만한 무기제조술 및 군사능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합니다. 강력한 철기제조술과 활, 기마능력을 보유한 흉노처럼 말입니다.
허나 고고학이 증거하는 현실을 볼때, 5세기까지 일본 열도에는 철제조능력은 물론 기마문화도
발달된 해상능력도 존재하지 않았다는게 국내외 학자들의 거의 일치된 정설입니다.
일본 열도에 본격적으로 철기문화, 기마문화, 스에키토기와 같은 발달된 토기가 등장하는 시점은
바로 광개토태왕이 서기 400년을 기점으로 임나가야를 멸망시키다시피한 바로 그 때였습니다.
바로 이때에 비로소 김해 부산 복천동 고분 등지의 임나가야의 문화가 갑자기 주변의 고령, 합천
및 바다건너 규슈지방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는 고구려군에 의해 멸망하다시피한 임나세력이 경상도 고령 합천으로 도망치거나
일부는 바다건너 규슈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죠.
그럼 일부 임나가야인들의 규슈지방 이주로
5세기 이후에는 일본열도가 바로 한반도를 능가하거나 대등한 군사력을 확보하게 되었느냐?
그건 아닙니다. 일단의 임나가야사람들이 규슈지방에 이주해갔다고 해서 바로 문명이 발달하고
그 지방의 힘이 엄청나게 커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일본열도는 7세기 백제멸망 및 다이카개신때까지 요람 단계의 국가에 머물러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부여풍 등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왜의 야마토조정은
그당시 왜의 국력을 총동원해서 백제지원군을 보내는데
이때 왜가 총력을 다해서 백제에 파견한 왜군의 규모는 2만칠천의 보병과 30명 정도가 간당간당
탈수 있을까말까한 소규모 배들 천척정도 였습니다.
그러니까 일본열도세력이 한반도에 보낸 이정도의 원정군이 꾸려질수 있었던 시기가
바로 7세기 후반. 그것도 백제부흥군의 지원이 전제되어서 말입니다.
그럼 그 이전 1세기부터 6세기 전반기까지 신라를 줄기차게 괴롭혀온 왜군의 기록은 고고학적으로
상당히 의심스러울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등장한것이 '왜는 동일한 정치세력을 말하는게 아니라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에 분포되어 있던
세력들을 통틀어 일컫는 명칭'이라는 견해가 대두되게 된것이죠.
즉, 신라초기부터 오로지 신라만 괴롭혀온 왜는 바다건너 규슈지방의 왜가 아니라
바로 임나가야 및 변한의 소국들을 일컫는 것이라는 소립니다.
위지 동이전에도 왜인들이 변한과 마한 남쪽에 접경하여 삼한사람들과 섞여 살았다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영산강유역세력도 그렇고 경남지방의 여러 가야소국들에 왜인들이 상당히 섞여 살았다는
소립니다.
그런데 후한서에는 이런 기록도 있습니다.
"왜왕이 가야에 생구 150인을 받쳤다"
즉 일본 열도의 한 소국의 추장이 왜인 노예 150인을 가야에 받쳤다는 소립니다.
이건 그당시 가야와 왜간에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가야는 동북아에서 유명한 철생산지로서 철광산에서 철을 캐는 일은 굉장한 노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측 기록에도 가야의 철을 멀리는 중국과 낙랑, 동해안의 동예인들 그리고 바다건너
왜인들이 사갔다고 나와있는데 고고학적으로 일본열도에 수출된 가야의 철정은 수두룩하게 나오는데
반해 경남지방에서 철수출의 댓가로 받은 왜의 문물흔적은 전혀 발굴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부산대 신경철 교수님도 밝히셨다시피
당시 왜인들은 가야의 철을 사가는 대신, 가야에 노예를 팔았다는 것이죠.
가야인들이 규슈지방에 많이 건너가면서 거기에 분국을 많이 세우는데
거기서도 가야인들이 직접 왜의 현지인들을 잡아 가야 본국에 노예들을 팔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신라를 줄기차게 괴롭혔던 진짜 정체는 다름아닌 임나가야였던 것이고
후기에는 고령의 대가야 함안의 안라가야같은 세력들이었던 겁니다.
물론 5세기 이후 규슈지방으로 건너간 가야인들도 본국의 신라침공에 협조를 했겠죠.
고고학이 증명하는 역사적 진실앞에 더이상 임나일본부같은 망상은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된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