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게 13세기초 대흥안령 산맥 부근에서 수렵생활을 하던
몽골의 치엔부족과 관련된 신화와 징기스칸의 정복기록을 보면
우리민족의 뿌리인 고구려 시조 추모성왕과 관련된 부족명들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가령, 테무친의 아버지 에수가이를 독살한 부족인 메르키트는
삼국사기 동명왕조 초기 계루부가 정복한 말갈과 같은 족속으로 보이고,
동명왕이 엄리대수를 건너 송화강 이남으로 도주해 오기전
있었던 부여가 바로 부리야트로 추측가능하고
그리고 부여가 본래 망명민들의 나라라고 하는데
송화강 유역에 정착하기전 그들이 있던 곳이 바로 '고리'였다고 나옴.
그런데 '고리'는 다름아닌 13세기 징기스칸의 정복사업을 도왔던
바이칼호 부근의 대부족 '커레이트'로 비정.
흑룡강 부근 종족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부족 내지 종족명 뒤에
'~이트'를 붙이는데 이는 일종의 방언으로 여겨지고
이 '~이트'를 제거하면 커레이트는 '고리' 부리야트는 '부여'
메르키트는 '말갈'
물론 메르키트는 전형적인 퉁구스계 민족으로서
흑룡강 일대와 송화강 유역 사이에 살던 동쪽의 흑수말갈 중 일부가
동명왕때보다 훨씬 이후인 5세기 이후에 이지역으로 이주했을 가능성도 높지만
동명성왕의 시조신화에 등장하는 이들 부족들이
그대로 몽골 역사 태동기인 13세기에서 보이기 시작하고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자체가 신기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