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까지 민족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유전자' 즉 DNA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허나, 아래 도올선생의 중화질서 편입 인지 중화주의적인 늬앙스의 발언이라 퍼온 것을 보면서
'역시 민족이란 혈통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얼, 정신, 문화'가 더 중요한것인가?' 하는
일면 두렵기까지한 생각이 드는군요.
이와 함께, 과거 16세기말 두만강 바로 건너 길림성에서 모든 여진부족들을 규합하여
후금을 건국했던 만주족의 영웅 '누르하치'가 조선에 대해 남긴말이 기억이 났습니다
후금에 대한 기록문서 중에 누르하치가 조선에 대해 남긴 평가가 있다고 합니다.
"조선은 생김새는 우리와 닮았지만 풍습은 중국과 거의 비슷하다"
누르하치가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죽인 명나라에 복수하기 위해
정말 한줌도 안되는 건주여진 해서여진 등의 인구를 보충할 동맹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동분서주할때 남긴 말입니다.
그당시 조선은 스스로를 소중화를 자처할 정도로 조선의 문화 풍속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새끼중국인 그 자체였던게 사실이죠.
누르하치는 조선으로부터는 기대할게 없다고 판단한데 반해,
몽골은 자신들처럼 말타고 활쏘는 것이 생활 그 자체이고 풍습도 비슷하여
몽골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 때 만주족과 몽골족이 가깝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누르하치가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중국과 조선은 말이 달라도 의복과 생활양식이 비슷하고, 만주족과 몽골족은 말이 달라도 의복과 생활양식이 비슷하다.”
만주족의 눈에는 조선이 한화(漢化)가 상당히 진행된 나라로 보였던 것 이고,
다시 말해 그들의 눈에는 조선은 한족이 된 오랑캐쯤 되었던 것이죠.
이는 문화가 혈통보다도 더 각각의 민족의 정체성을 심어주는데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시사해주는것이라 생각됩니다.
여진족들은 고구려, 발해의 후손으로서 남쪽으로 이주해온 지금의 한민족보다
고구려 피를 여진족들이 더 많이 물려받았으리라고 짐작하시는 분들에게
아마 이런말하면 놀라실 수도 있겠지만,
2010년 중공 동북공정의 사령탑이라 할 수 있는 길림대 주홍교수가 발표한
'만주 라마동 지역에서 발견된 수백점의 고인골들의 형질인류학적인 특성에 관한 논문'
에서 2천년전 라마동에 묻힌 수백명의 부여인들과 형질인류학적으로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현대민족은 지금의 몽골족, 내몽골족이나 나나이,우데게와 같은 남퉁구스 만주족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북지방의 한족도 아닌 바로 한반도의 현대 한국인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이렇듯 혈통적으로는 한민족이 고구려 발해 이후 만주에 살던 여진족들보다도
훨씬 더 고구려의 피를 많이 물러받았다는 사실은 일면 자랑스럽고 뿌득하다 하지 않을수
없다 하겠죠.
허나 부여, 고구려의 직계후손인 한민족들이 중국문화에 젖어들어
자신들의 뿌리와 문화, 정신을 잊어가면서 고구려의 기백과 얼과 말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은 바로 조선이 오랑캐라 멸시하던 여진족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그당시 여진족들은 고구려의 문화를 백퍼센트 간직하고 있었느냐?
사실 그것도 전혀 아니올씨다죠
우리가 여진족,만주족을 떠올리면서 착각하지 말아야될게
조선시대의 여진족들보다 당시 조선사람들이 혈통적으로 고구려의 피를 훨씬더 많이 물려받은게 사실이고
뿐만 아니라, 그당시의 여진족들의 문화가 고구려 문화를 있는그대로 보존하고 있던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진족들은 사실상 고구려시대에는 흑수말갈로 예맥인들로 이루어져있던 고구려사람들의
눈에 미개한 피정복민일뿐이었고
발해시대에는 틈만나면 발해의 지배를 벗어나려했던 골치아픈 사나운 부족들일 뿐이었습니다.
발해인들마저 흑수말갈을 멸시했는데 훗날 왕건의 고려가 발해인들은 우대하고
흑수말갈이 주축이된 여진족들을 멸시한건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흑수말갈은 발해멸망후 거란인들에 의해 여진족이라 불리는데
(거란인들은 발해유민들에 대해서는 여진족이라 부르지 않음. 그대로 발해인이라 부름.
또한, 몽골, 거란족들은 발해인과 고려인에 대해서는 똑같이 솔롱고스라 부르는데 반해,
여진족들은 주르첸이라 불렀음. 여진족들도 고려와 조선사람들을 솔호라 불렀으니
가히 북방민족들은 발해와 한반도의 고려를 동일한 종족으로 이해하여 똑같은 민족명인
솔롱고스라 불렀던 것임)
여진족들의 문화는 거란의 것을 상당히 따르게 됩니다.
본래 여진족들은 거란족처럼 변발?풍습이 없었으나 거란의 지배를 받으며 머리를 밀고
일부만 남겨두는 풍습을 따르게 되는 등 상당히 초원의 부족들의 문화가 유입되죠.
허나 북위 물길전, 북사 물길전 수서 구당서 신당서 등에 보면
본래 흑수말갈은 변발 풍습이 없고 고구려사람들처럼 머리에 꿩깃털을 달고
여자들은 고구려여인들이 쓰던 권귁이란 이름의 머릿수건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르하치가 몽골에 보낸 편지처럼
발해 멸망후 흑수말갈계통의 후손들은 거의가 변발에 몽골풍습과 흡사한 문화를
이어오게 되니 이들 여진족, 만주족들이 고구려의 정신과 문화를 잘 간직했다고
말할수는 없다는 소립니다.
아무튼 얘기가 좀 빗겨간거 같은데
도올선생이 중화사대주의자냐 아니냐 논쟁글 보면서
한민족을 규정함에 있어서 '얼, 문화, 언어'와 같은 무형적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