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당나라 끌어들여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뒤
고작 평양도 아닌 대동강 이남의 한반도 반토막 먹은걸
비난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 사이에는 동족의식도 없고
일종의 공동체의식도 없는 그저 서로 죽이거나 정복해야할
적국일 뿐이었으므로 현재의 민족개념에 빗대어
외세를 끌어들여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고 민족의 영역을
한없이 쪼그라트린 신라를 비난해서는 안된다는 논립니다.
그런데 이런 논리로 외세를 끌어들이고 사대주의의 첫발을
내딘 신라를 비난하지 말라는 바로 그 사람들이
신라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으니
이얼마나 위대하고 가슴벅찬 일이냐고 합니다.
그러니까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인 부분에 대해서 비난할라치면
민족의 개념을 들이대지 말라고 훈계하다가도
신라가 삼한의 일통으로 민족융합의 기틀을 마련했다며
지극히 민족주의적인 측면에서 신라를 추켜세웁니다.
헌데, 이 얼마나 모순적입니까?
여러분들은 바로 이 신라가 당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후 고작 대동강 이남의 한반도 반토막 차지한 자칭 삼한일통에
대한 위의 견해에 대하여 너무 모순적이라는 생각 못해보셨습니까?
당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인 부분에 대해서는 근대 이후의 민족개념은
저당시엔 없었다.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당의 군사력으로 멸망시키도록 조장한 부분은
삼한일통이라며 민족통합의 기틀 운운...
만일 외세를 끌어들인 책임을 면피하고자 근대이후의 민족개념 운운
하지 말라는 주장대로라면,
응당 신라의 자칭 삼한일통은
신라가 더러운 오랑캐 고구려 백제를 상국인 당의 위력에 힘입어
멸망시켰고 그 상국인 당이 이제는 자국을 집어삼키려하니
고구려백제 유민인 오랑캐들을 포섭하여 자국을 지켜내고
과거 백제의 전영역과 고구려 땅 지극히 일부를 차지하게된
위대한 신라의 역사라고 얘기해야 모순이 없어지는 겁니다.
헌데, 정녕 저당시에 근대이후의 민족개념까지는 아니지만
일종의 공동체의식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419년 무렵 건립된 호태왕비에 보면
동부여, 백제 신라 등에 대해서는 광개토태왕 또는 고구려가 주어가 되어
이들을 자신의 신민 또는 속민으로 보았다고 하는 반면에
거란 숙신 후연 그리고 왜에 대해서는 고구려의 천하를 침입한 외세
물리쳐야할 오랑캐쯤으로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번째, 551년 백제가 가야 신라와의 연합군을 꾸려
한강유역에 대한 대대적인 수복전쟁을 벌일때,
성왕의 아들이자 후에 위덕왕이 되는 부여창이 고구려 남평양성 앞에서
고구려 장수와 통성명을 할때, 너나 나나 같은 부여씨고 한뿌리에서 나왔다고
밝힌 부분이나, 472년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청병국서에서
본디 백제와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온 한뿌리 형제의 나라라고 밝힌 부분에서
분명히 고구려 백제 사이에는 현대 개념의 민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종의 한뿌리관념에서 발전된 동일천하관, 공동체의식이 존재했다는겁니다.
이는 신라 가야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신라 경주의 바로 인근지역에서 삼한시대 유물이 발견된적이 있는데
바로 예맥지장이라는 도장입니다.
그러니까 바로 신라가 태동한 진한지역이 예맥족이 살던 지역이라는 소립니다.
한마디로 진한이니 변한이니 마한이니 그저 명칭일뿐 모두 예맥이라는 소립니다.
더구나, 고국원왕이 모용황의 침략을 피해 옥저로 달아다나가 그 중 일부가
신라땅에까지 피신하여 아예 눌러앉았다는 중국측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백제인들이 근초고왕 아신왕 등등 고구려 백제간 전쟁이 벌어질때마다
대규모로 신라로 도망갔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라는 이미 고대국가로 태동하기 전부터 많은 고구려 백제인들이
넘어가 살던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신라는 이미 4세기 중반 무렵부터 고구려의 강력한 영향하에 놓이게 되는데
사실상 신라의 중흥군주라 일컬어지는 진흥왕때에 나타나는 여러 관직명
군사, 지방통치, 문화 등등 상당수가 고구려에서 영향을 받은 것들입니다.
가령 진흥왕 순수비에 자신을 고구려처럼 태왕이라 칭한것이나
당주 군주 등등의 명칭 등은 그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진한시대 십여개 소국들의 하나였던 사로국으로서의 신라가 아니라
엄연한 고대국가로서의 신라는 그 인큐베이터에서부터 고구려에 의해
길러졌다는 얘기죠.
아마 이 얘기를 하면 속이 막 뒤틀려서 궤변을 늘어놓거나 험한소리 할 사람들
여기 한둘이 아닐 겁니다.
진한 변한 마한 백제 신라 고구려 동예 옥저 낙랑 등등
한반도라는 한정된 공간속에
처음엔 낙랑이 뒤에는 고구려와 백제가 그 중심이 되어
수백년을 함께 해오다가
7세기 고구려 백제 연합군의 맹공에 멸망 일보직전에 다다른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두나라를 멸망시킨것이
과연 민족사에 있어서 현대를 살아가는 팔천만 한민족이
모두 경축하고 위대하다 칭송할만한 사건인지
진짜 진지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신라가 당나라 끌어들여 고구려 백제 멸망시킨것을
위대한 삼국통일 삼한일통 민족통합의 기틀로 추켜세우고 싶다면,
먼저 고조선의 후예라 불린 예맥한의 자민족 통일전쟁에
당나라라는 완전 이질적인 이민족을 끌어들여 형제국을 멸망시키고
형제국들의 핵심왕족 귀족층들과 심지어 광대한 형제국의 영토와백성들을
당나라에 넘겨준 이 엄연한 사실을
어떻해서든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래야 앞뒤가 모순이 없어지는 거죠.
당시 중국의 경우도 5호16국 시대가 되면서
한족들이 북방오랑캐라 멸시했던 족속들이
양쯔강 이북을 석권하고 이합집산을 거듭하다가
타브가치(탁발씨) 선비족의 북위,
한족망명정권인 남조로 나뉜후
남조의 사서들은 하나같이 북위를 오랑캐의 나라로 멸시했으나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서로를 중원통일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전혀 뿌리가 다른 북중국과 남중국도 통일의 대의명분하에 서로에 대한
중원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었는데
하물며 고조선의 혈통과 문화를 뿌리로 하는 만주와 한반도의
나라들이 고대시대 이후에는 수백년간을 한강을 중심으로 아웅다웅하며
한발꿈치 넘어가면 어제는 백제인 오늘은 고구려인 내일은 신라인이
되며 살았던 그들에게 중원과 같은 공동체의식이 없었을까요?
고구려 멸망뒤 당나라에 끌려간 고현과 같은 고구려유민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묘비석에 스스로 '삼한인'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사실에서
당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인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킨 사건을 두고
무턱대고 앵무새마냥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룬 위대한 영웅 김춘추!!~
통일신라 만세 외쳐야만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