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 해방과 함께 소련은 김일성 등 북만주 연해주 등의 한국 독립세력과 함께 한반도에 내려 옵니다...
서울을 포함 한강 이남까지 내려오다 미국의 제지를 받고 38도선 이북으로 다시 돌아가고 미국과의 협상을 기다립니다...
당시 미국은 한반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일본을 상대로 전승국으로서의 전리품을 얻어내기 바빴습니다...그러다 소련이 한반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보고 급히 제동을 건 것이지요...
사실 미국의 가장 뼈아픈 실책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의 관동군과의 전쟁을 시뮬로 돌려본 결과 1년의 시간과 연인원 100만명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하였고 그걸 소련에 넘깁니다 소련은 일본이 패망하기 일주일 전에 일소 동맹을 깨고, 대일본 선전포고 후 관동군을 쉽게 제압하고 전승국으로서의 막대한 지위를 얻게 됩니다...머 피해는 있었지만, 미국이 태평양 동남아 등지에서 개고생한 거에 비하면 거의 거져먹기였져.(미국이 8월6일 이미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했고, 소련이 대일 선전포고한 8월 9일 나가시키에 2차 투하를 하면서 사실상 이 전쟁을 매조지합니다...)
소련니 순순히 38선 이북으로 다시 돌아간건 일본에 대한 전승국 지위를 얻기위해서 그다지 쓸모 없는 한반도에서의 마찰을 피한 것이지요...
44년에 이미 일본의 패배의 기운은 감지되었고, 45년 일본의 패망은 누구에게도 예상된 것이었습니다...광복군은 1년이나 오판한 것이지요...하긴 원폭은 그리고 그 위력은 예상하기 힘들었을테니...
해방 전부터 일본의 아베 총독은 여운형 등의 건준위 세력에 제안을 합니다...
너네 다 가져라 대신 우리 좀 안전하게 나갈수 있게 도와다오...
여운형은 수락하고 건준위 활동은 순탄하게 돌아가다가 미국이 태클을 겁니다...
미군은 일본에서 단물 빨고 있다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판단해 조선총독부 세력에게 다시 한반도를 맏기죠...총독부에 일장기가 날리다 해방과 동시에 태극기를 걸었는데 하지중장의 명령으로 다시 일장기가 걸리게 되는 희대의 개그가 발생합니다...하지중장이 한반도에 상륙한건 해방 후 3주가 지난 9월 7일 경입니다...그로부터 3년간의 미 군정기간동안 미 군정이 신뢰하는, 그리고 미군정에 붙어 먹는 친일세력이 다시금 한반도 지배세력으로 커가는 토양이 마련된 것이지요...
그만큼 미국은 한반도와 조선인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소련에게 한반도를 다 내어주기는 싫었을 겁니다...
공산세력 확산에 대한 경계도 당연한 것이겠지요...
유럽에서의 전승국 최대 지위를 소련이 가져갔기에, 동아시아쪽에서만큼은 양보하지 않았을껍니다...
당시까지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을 때입니다...그로부터 4년 후 1949년 중국은 공산화가 되었지만, 미국의 어마어마한 물적 지원을 받는 국민당이 질거라고는 예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소련의 완전한 동쪽 확장을 막기위해선 중국과 일본 뿐만 아니라, 한반도까지 필요했던 것이죠...
공부한지 오래된거라 가물가물한데, 아까 밑에 궁금해하신 분이 있으셔서 아는대로 끄적여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