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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12 02:54
[일본] [펌] 3조작된 역사로 억지 부리다 처참하게 깨진 어느 원숭이3(스압있으나 읽어볼만한 가치있음)
 글쓴이 : 아드
조회 : 5,887  

이어집니다~
 
Mimesis
아이누 문제는 물론 쉽지는 않은 문제이나 이제 어느정도 정리되는 단계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적되는 사항중 하나가 그렇게 첨단인 집단이었다면 왜 그렇게 늦은 시기까지 발전이 없었는가 하는 점 아닙니까.
이는 반도인의 유입후 올라가던 열도 평균신장이 백제인의 대량유입이 끝난 이후로 다시 내려갔다는 것을 보더라도
고립된 문화는 발전없이 고착화되어 머무른다는 특성을 그대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님이 제시하는 바는 윗글의 지적에 대해서는 아무 내용이 없군요.
antijap
쪽바리가 반론이라고 늘어 놓는게 논거나 근거는 없고 모두 환타지만 쓰고 있으니 쯧쯧
400ha와 40ha도 구분 못하는 지적 기저를 가지고 무슨 역사를 논하니 saru야 그냥 주는 바나나나 먹고 있어라.

니가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오류는 도대체가 문화사적 방법론이나 고고학적 연혁론등과는 전혀 거리가 먼
야마토 이찌방주의라는 니뽕 극우들과 생각의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이지 그게 니 꽉 막힌 사고의 한계야.
그러니 엉터리 fact를 들이대고 제대로 맞지도 않는 사실들을 나열하다가 어제처럼 개망신이나 당하지.
그게 니뽕 saru들의 비극이라는 거야.

여하튼 그렇게 살다 되지든 말든 그건 내가 신경 쓸일 아니구
오늘도 또 구질 구질하게 되지도 않는 소리 주절대서 자근 자근 짚어 주마

니말만 들으면 흑요석산지가 세계에서 니뽕에만 집중되어 잇는 듯한 뉴앙스를 풍긴다. ㅎ 어제 니글 보고 하구 어이가 없어서
니가 쓴 글들 읽어 봤다만 모두 그런 식이더구만 일단 주장하구 논거에 밀려 깨지면 '아니면 말구..'식으로 뒤로 빠지구 말이야..
원래 니뽕 극우들이 하는 방식이 니뽕근대교육의 핵심이 된 건 알았다만 니가 그 전형적인 수혜자(피해자라 해야 맞지)더구만

그 예로서 말이다 어제까지만해도 13000년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가 죠몽토기라고 여기 쥔장에게 방방뜨더니
오늘은 '토기의 연대에는 많은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라는 구리구리한 변명으로 꼬랑지를 말고 쌩깔 준비하냐
이 원숭아. ㅋ 왜 계속 13000년 토기라고 마르고 닳도록 우기지.ㅎㅎ

흑요석 세석기등의 뗀석기 문화는 니뽕에서만 고유한 것도 아니고 용암이 분출되는 화산지대를 끼고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자연발생적으로 고고학적 연혁의 진행과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형식의 중석기내지는 신석기 초기문화인데
그것을 만세일계 황국사관에 의해 니뽕에서 연해주로 넘어 왔다고라? ㅎㅎ 그러니까 니가 경멸을 받는 거야

흑요석 세석기는 말이다. 터키 아라라트산(아 무식한 너니까 노아의 방주산이라고 하면 알기 쉬울 것이다)으로부터
중앙아시아 바이칼 시베리아 만주 백두산등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서 분포하고 발견되어지는 문화유형이지
그런데 이 날카로운 천연유리라 할 수 있는 흑요석석기가 왜 필요했을까

그건 수렵문화와 밀접한거지 시베리아의 거친 풍토에서 얼어 터진 고기를 자르려면 당시로서는
화산 용암이 굳어서 형성된 흑요석을 떼어내서 그 날카로운 부분을 사용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거든..
흑요석 세석기는 동북아에서는 바이칼을 깃점으로 만주 특히 흑요석 생산지가 있는
백두산 부근(한반도에서는 함경도)-강원도 양구 파로호 상류 부근 600여점의 세석기-부산 동삼동 패총-충무 상노내도 패총
등에서 무쟈게 많이출토되며 연결되지.

세계 고고학계에서 만주시베리아 문화권이 만들어 낸 가장 최첨단의 신식문명이라고 정의한 흑요석 세석기가
니뽕의 죠몽인들이 발명해서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연해주로 넘어갔다고? 그러니까 개가 웃는게야
너는 니 망상과 주관을 타자화하거나 객관화하려는 오류를 범하니까 니 소리가 닭이나 개소리로 들린다는 거지.

이 흑요석 세석기가 빙하기 이후 바이칼을 넘어 고아시아족인 아이누에게 영향을 주고
이 세석기와 토기기술을 전수받은 아이누들은 연해주-홋카이도-니뽕 동북으로 진출한 것이 현대 고고학계의 정설인데
너는 혐한류풍의 국수주의적인 환타지만 읽었는지 세계 어느곳에서도 생산되는 흑요석 산지만 늘어 놓고
그 발생학적 연혁적 기반에 대해서는 쌩까고 니가 보구 싶은것만 보냐 ㅎ

니뽕 속담에 그런게 있다지 '뻥도 100번 우기면 진실이 된다'는
너두 전형적인 한국 컴플렉스에 걸려있는 원숭이라는게 딱 증명된다 그 부분에서ㅎㅎ

거기다가 말이다 보통 흑요석 세석기는 타제의 뗀석기라서 구석기시대의 유물로 오인한적도 있었지만
가공한 세석의 흑요석기는 신석기 전기 것으로 보통 분류하지. 하지만 그 전단계인 구석기 후기나 중석기에서도
흑요석 석기는 출토된단다. 특히 공주의 구석기 유물터인 석장리에선 흑요석 석기가 발굴되지
그 년대는 후기구석기문화층에서 석기제작터·집터·살림터가 드러나는데 이 문화층에서 나온 나무숯을 방사성탄소연대측정에 의해
분석한 결과 2만 830±1,888BP(집터), 3만 690±3,000 BP(집터 아래층)라는 연대가 나왔단다.

하지만 말이다, 북한의 일부 고고학자들 빼고는 이 구석기인들이 한국인의 직접적 조상이라고 하지 않는단다.
그게 기본적인 학자적 양식이거나 학문하는 자세이고 일반인들도 역사를 보는 객관적인 시선이지.
아마 니뽕같으면 후지무라라는 사기꾼같은 놈들과 극우들이 짬뽕해서 야마토의 기원은 위대했다'어쩌구 하면서
개 설레발을 쳤을걸 ㅎ

그런데 너는 니뽕에만 특유한 것도 아닌 흑요석 세석기의 산지와 흑요석 세석기가 죠몽에게서 발굴된다는 사실만가지고
연해주로 건너갔다고 그 과정이나 분석에 대한 검증자료 없이 개뻥을 치고 있으니
그걸 지켜 보는 나같은 고수가 얼마나 답답하겄냐 이 원숭이 년인지 놈인지 쪽바라 ㅋ

거기다 하나 어제도 제주도 고산리 융기문 토기와 원시무문토기의 사례에서도 말했지만
신석기 조기나 전기엔 토기가 있든 뭐가 있든 기본적으로 수렵경제라고 고고학에서는 규정한단다.
그건 고고학에서도 아주 기본이지 수렵경제가 원칙이고 거기에 부가적으로 열매를 따먹은 채집경제라는 게야
그 열매를 담기 위해선 원고토기도 필요하지 제주도 고산리 토기도 농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채집을 위한 것이거든.

즉 신석기 초기에 제주도 고산리인들이나 그보다 별로 상한년대도 안되는 센부쿠지 토기를 제작한 죠몽인들이나
해안가 수렵경제 내지는 채집경제를 영위했다는 게지 토기가 있다고 해서 정주생활을 했다는 것은 니 쌩오버란다.

그 자칭 12000년전에 두립문 토기를 제작했다는 센부쿠지인들이 그래서 고대 한국인들이던 가야계 야요이인들이
대한해협을 건너갈 때 까지 겨우 7만명 내외의 인구를 유지했나? 정주와 농경을 했다는 것은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수반하지
그런데 거의 센푸쿠지로부터 11700년이 지나도록 인구가 그 모양으로 정체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농경이 아닌 채집과 해변가 수렵으로 근근이 목숨만 부지했다는 고고학적 증거일세나 이 saru야

아주 원시적 농경과 정주를 이야기하려고 해도 적어도 BC 5-6000의 신석기 중기는 되어야 한다는 게지
중기는 동삼동 제 3층, 수가리 제 3-5층, 암사동 상층, 궁산리, 지탑리 후기ㅣ층 등이 해당되며 이때의 특징을 살펴보면
비로소 농경의 근거로 탄화된 피[稗]가 있고 서해안에서는 점열무늬가 허리 전체에 시문되거나 아가리 무늬가 없어지고
사격선, 삿자리무늬가 시문되기도 한다. 이게 농경과 정주가 시작된다는 증거란다.

그러니 니 말은 학자들 이야기 아니라 니 머릿속의 상상이라는 것을 그대로 토설하는 것과 진배없다.

아울러 죠몽토기가 보정연대를 취했다고 니 혼자 소설쓰냐? 왜 니가 어제 주장한대로 13000년을 밀고 나가지 그러냐
어제 내 글에서 12700년이라고 말한 것은 후쿠이 지층의 년대라고 했다는 것을 못 보고 지금 헛소리 하냐? 난독증까지 있나 보네

세계 고고학계에서 보정치를 취하여 보고된 죠몽의 두립문토기는 12000년일세나 니가 주장하는 엉터리 13000년보다
훨씬 후의 시대지 그래야 아무르에서 -연해주- 홋카이도루트나, 아무르-한국동해안-동삼동-남해안-규슈루트로 이어지는
시차에 맞지.

거기다가 후쿠이 지층의 상한을 12700년으로 쓴 것은 니가 허구적으로 주장하는 13000년보다도 300년이나 후시대라는 것을
명쾌하게 비교하기 위한 차원이란다.

그리고 내가 분명히 후쿠이 지층을 설명하면서 상한 12700년으로 포스팅하고 어제 글 말미에

"일본 구주지방을 중심으로 후쿠이(福井)유적에서는 세석기와 함께 융기문토기가 출토됐다.
이 층의 절대연대는 12,700±500B.P.로 나타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지 토기가 아니라 그 지층을 말하는게야 잘 들어라
토기 자체가 13000년이라고 우기지 말고 말이다."라고 분명히 포스팅했는데 그것도 못읽을 정도의 난독증이 심하구나.

또 일일이 고고학적 기초까지 내가 너에게 설명해줘야 하니 참 피곤한 원숭이로군..ㅋ 모 보시 한번 하지
한 지층에서는 여러 지층이 년대순으로 축적 되어 있고 그 지층중 가장 고고학적으로 의미있는 오래된 지층의 절대년대가
12700년이 상한이라는 것이란다.

현재 세계 고고학계에 보고된 일본 최고의 토기는 두립문(니뽕말로 도류문)으로 12000년으로 년대가 나타나고 있다
(이것도 솔직히 믿음이 안가지만) 그리고 여수 안도 C14걱정같은 오지랍 넓은 짓거리 하지 말고
사세보군항을 끼고 있는 센푸쿠지 동굴의 c14나 먼저 걱정하셔 ㅋ

마지막으로 주접 떨지 말고 잘들어라 죠몽은 문화적인 동시에 혈연적 개념 모두를 말하는 것이란다.
특히 니뽕 우익들은 만세일계라는 허구를 주창하면서 죠몽 자생진화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 자체가
혈연적으로 이미 의식하고 있다는 것 아니냐
그리고 실제 죠몽은 한반도를 거쳐 간 남방계나 한국 동해안과 홋카이도를 거쳐 들어간 고아시아계 아이누등을 통칭하는 말로
실제 이들 두 그룹간에는 인종적 형질적으로 별 차이 없다
아이누적 외형이나 특징은 오스트로이드등의 오스레일리아 애보리진 계열과 유사하고
한반도를 거쳐 들어 간 죠몽도 실제 동남아의 오스트로-말레이계열과 별 차이가 없다.

즉 고고학적으로 아이누를 북방계 구몽골리안으로 분류하지만 실제는 남방계적 형질이라는 것이다.
역시 한반도에서도 오랜 세월에 걸쳐 고아시아계 아이누나 남방계 몽골리안들은 존재했지만
이들은 빙하기 이후 남하한 한국인의 직접적 조상인 신몽골리안들에게 완벽히 흡수되어
지금은 한국인의 모습에서 남방계나 아이누적 징표는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니뽕의 죠몽들은 신석기인들이 남하하기 전에 이미 일부는 홋카이도쪽으로 해서 니뽕 열도로 동북으로 진출하고
한반도를 거친 남방계 죠몽 일부는 신몽골리안에게 동화되기 전에 니뽕열도로 건너 갔기 때문에 피의 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죠몽계 아이누나 죠몽계남방계 몽골리안들의 편차가 니뽕에서는 굉장히 두드러지는 것이다.
니뽕에서 융기문등의 신석기 토기등은 야요이이전에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무문토기가 발견되지 않는 것은
이런 피의 융합을 죠몽들이 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야요이가 없이 그대로 니뽕이 방치됐더라면 이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애보리진처럼 됐을 확률이 높다.
즉 니뽕의 아이누 죠몽이든 한국을 거쳐 들어 간 남방계 죠몽이든 현대일본인과는 관계 not이라는 거다.

다시 말해서 죠몽이나 야요이는 문화적인 개념인 동시에 인류학적 인종적 개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석기적 원시적 생활에 머물러 있던 죠몽시대에 인구가 극도로 정체되었다는 것은
이들이 정주내지는 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BC3세기경 야요이인들인 한국의 변한인들이 새로운 농경지를 찾아 니뽕 열도에 진주했을 때
실제 남방계 죠몽인들은 규슈 남단에 극히 일부가 있었고
혼슈 동북방과 홋카이도나 사할린에 죠몽아이누들 일부를 모두 합쳐 봤자 7만 5천도 안된 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당시 한반도 남단에는 고인돌 분포도수와 유적지등을 고려해서 계산했을 때 250만 정도의 인구로서
당시의 농업 생산력으로서는 포화상태였다.
즉 이들은 벼농사와 정주생활이 완벽하게 정착된 신몽골리안들로서 인구는 증가된 농업생산력으로 늘어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포화상태를 타개하고자 이들은 신천지인 열도로 엑소도스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야요이시대에 진공상태인 규슈와 혼슈에서 어떤 저항을 받은 흔적이 잇는가 전혀 없다. 그대로 접수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후에 죠몽 그 자체로 해도 무방한 아이누를 정벌하며 아오모리로 아오모리로 동북진한 역사가 바로 일본사이다.
즉 동족으로 하이족인 죠몽 아이누를 취급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고대 한국인이던 야요이인이 아이누를 동족 취급할 이유도 할 근거도 없었다.
야요이시대를 거쳐 나라시대까지 인구가 폭증한것은 거의 9대 1의 비율로 도래인의 유입에 의한 그리고
벼농사의 완벽한 확산에 의한 인구증가의 결과이다.
이는 도류문 토기가 발견된 12000년전부터 야요이시대까지 인구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연히 입증된다.

니뽕인들이 아이누와 피를 융합하기 시작한 것은 백제가 망하고 대륙으로부터 인종유입이 사라지자
어쩔 수 없이 동북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실제 야요이 나라시대 구간에서 니뽕인의 평균신장은 증가하다가 이후에는 다시 줄어 들다가 근대에 와서야 겨우 회복한다.

이럴진대 에도시대 이후 발흥한 황국사관으로 조잡하게 역사를 조작하여 인디언 취급한 죠몽아이누의 역사나 그들의 문화사를
일본사로 억지로 편입시키는 안쓰러움이 근대 일본사의 자화상이니 얼마나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허망하겠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앵글로 색슨인 미국인들이 인디언 역사를 미국사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넌센스가
지금 니뽕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발해유물이 러시아에서 무지하게 발견되지만 러시아인들은 발해사를 러시아역사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쪽바리들은 러시아도 하지 않는 짓을 눈하나 깜짝 안하고 하고 있다.

더구나 그 조악하고 역사적 혈연적으로도 전혀 관계가 없는 죠몽 아이누들의 역사를
황국사관의 편년을 위한 단 한가지 목적으로 말이다. 그러니 개가 웃는 것이다.
antijap
誤記정정-위에서 3번 째 문단
'여하튼 그렇게 살다 되지든 말든 그건 내가 신경 쓸일 아니구 오늘도 또 구질 구질하게 되지도 않는 소리 주절대서
자근 자근 짚어 주마 '를-'여하튼 그렇게 살다 되지든 말든 그건 내가 신경 쓸일 아니지만
오늘도 니가 또 구질 구질하게 되지도 않는 소리 주절대니 그걸 하나 하나 자근 자근 짚어 주마'로 정정

밑에서 위로 6번째 문단
' 그런데 이들이 야요이시대에 진공상태인 규슈와 혼슈에서 어떤 저항을 받은 흔적이 잇는가 전혀 없다.
그대로 접수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후에 죠몽 그 자체로 해도 무방한 아이누를 정벌하며 아오모리로 아오모리로 동북진한 역사가 바로 일본사이다.
즉 동족으로 하이족인 죠몽 아이누를 취급했다는 것이다'를- '
즉 오랑캐로(동족으로가 아니라) 하이족인 죠몽 아이누를 취급했다는 것이다.'로 정정
夏と松と海
역시 기원론에 민감한 한국인 답군요. 님의 비매너에 고개를 흔들게 됩니다.
먼저, 세계최초의 토기가 죠몬토기라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 지나치게 민감하신 것 같은데
그것은 일본인학자에 의해 주장된 것도 아니며 외국인 학자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던 것으로
처음에는 일본인학자들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먼저 토기를 발명한 나라라는 일본의 타이틀은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요지부동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 아닌가요?
영어판 위키디피아 사전에서도, 확인해보았지만 일본의 죠몬토기가 세계에서 사장 오래된 토기임을 분명히 기술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일본이 가진 기록이 깨지고 그 타이틀을 물려주게 될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요.
실제로, 최근 일본의 기록을 깨기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본이외의 지역에서도 최초 토기제작 연대가 비약적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추세에 대해서 한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현재 많이 쓰고 있는 방사성탄소연대법에서 중요한 대기중의 c14의 양은 변동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계측결과에 오차를 발생시키는데, 일본에서의 예를 들면, 大平山元I遺跡에서 발견된 토기의 경우 통설보다
무려 3500년이 더 오래된 결과가 나와 16,500년전의 것이란 결과가 나왔습니다.
따라서, 국지적으로 나온 최고연대를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럼 이번엔 흑요석에 대해서 말씀드리죠. 님은 흑요석이 일반적으로 산출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님도 언급하였듯이
흑요석은 화산암이기에 특정한 곳이 아니면 산출되지 않습니다.
화산이 많은 일본에서도 60개소에서 흑요석이 산출되기는 하지만 양질의 흑요석이 산출되는 곳은 몇군데 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꼽아보자면 信州八ヶ岳주변과 和田峠、北海道白滝村、伊豆諸島의 神津島・恩馳島、山陰의 隠岐島、大分県姫島
등을 말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흑요석 석기를 말할?, 일본열도는 공급처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일본열도를 제외한다면 백두산 부근을 거론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일본산 흑요석으로 제작한 석기는 동북아지역에 폭넓게 발견되는데, 조선반도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토기와 정주사회와의 상관관계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학계에서 인정해온 것이고,
또 죠몬인들이 정주생활을 했던 것은 반드시 토기때문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1992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던 青森県青森市의 三内丸山유적의 조사에 의하면 장기간에 걸쳐서
정주생활을 했던 것이 드러났으며 밤, 박, 우엉, 쌀등을 재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三内丸山유적을 상징하는 거대목조건물도 확인되었구요.
인구면에서도, 줄곧 죠몬인구가 7만명정도로 유지된 것으로 말씀하시는데, 죠몬인구는 최대 25만명 정도의 수준이었습니다.
죠몬인구의 유동적인 면은, 환경적 요인도 있었겠지만 외부로의 이주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산 흑요석이 널리 확산된 것을 통해, 바다를 통한 교역이 존재했음을 상정해 볼수 있는데요. 흑요석의 분포를 따르면
조선반도 동해안, 토기 제작연대가 느린 조선반도남부의 즐문시대 거주지들이 일본열도를 면한 동남해안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면, 죠몬인들이 조선반도로 이주해 갔음을 상정해 볼수도 있을 겁니다.
수작농경을 가지고 일본열도로 들어온 됴래인들이 큐슈에서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았다는 지적은 맞습니다.
왜냐하면 죠몬시대 큐슈는 인구희박지역이었기 때문이죠. 제가 보았을 때,
큐슈지역과 조선반도 남부(후 변한지역)을 비교해보자면 조선반도 남부지역이 훨씬 생활환경이 좋았을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조선반도남부 해안지역에는 즐문토기 사용인들의 거주지역이 밀집해서 나타납니다.
일본열도의 죠몬인들의 주요 거주지는 큐슈가 아니었습니다.
야요이시대를 연 도래인들이 큐슈지역에서 가장 강한 자취를 남기고(하지만 큐슈에서조차도 죠몬적 요소가 나타나죠.)
혼슈지역으로 들어갈수록 그 영향은 줄어듭니다.
일본인의 신장이 다시 작아지는 역행현상을, 님은 아이누인과의 혼혈로 말씀하시지만
실제 이것이야말로 야요이인의 영향이 큐슈를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희미해져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죠.
혈연적으로도 한국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만일 완벽하게 압도적인 인구로 야요인들이 죠몬인을 대체했다면
그와 같은 역행현상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즈노 ?페이
위키디피아 사전은 믿을 게 못 되는데...
일반인들의 짧은 지식으로 올린 것이라 그것이 거짓으로 드러나 숱하게 고치고 하는 것이 많은 것이 현실......
antijap님이 말은 험하게 했어도 논리타당한 역사적 근거를 내세웠고,
이와는 달리 夏と松と海는 말은 곱게 한 것처럼 비꼬면서 논리는 저 안드로메다로 보낸 버린 무개념탑재로 똘똘 뭉쳐 있으니....
사실 antijap님에게 욕 먹어도 당연한 것이다.
antijap
야 미친 쪽바리야 니가 지금 매너를 따져 아주 주접에 꼴갑을 있는대로 떨어요 xx년인지 xx놈인지
여기가 그래도 니 인격을 그나마 존중해주는 민주화된 한국이니까 이정도지
니네 니뽕이라면 니가 이따구로 후안무치하게 했던 이야기 또하고 또하는 쳇바퀴식 논법이나
니뽕 이찌방식의 프로파간다했다면 벌써 나가사키 시장처럼 야쿠쟈 총에 맞아 향냄새 맡고 있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모두 여기 쥔장처럼 맘 좋다구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이 쪽바뤼새퀴야
이렇게 함부로 근거도 없는 이야기 떠들고 한국에서 싸돌아 다니면 어느 순간 아주 난자당 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라
어디서 이게 지 무경우는 안 따지고 주제에 주접을 더블로 떨어요 카악 퉤엣~!

여튼 욕한건 욕하는 거고 오늘도 니가 캐주접과 노가리와 뻥을 한무데기 설사처럼 뿌리고 갔으니까 또 이 ?아가 한 수 갈쳐 주마
근데 분명히 해두마 이거 공짜로 갈쳐 주는 거 아니다 쪽바라 언젠가 니가 헛소리 계속 떠들고 다니면
언젠가 만날 기회가 있으면 아주 내가 왜 한국에 왔던가라고 진저리치도록 후회하게 만들어 준다는 전제에서
니 좃도 모르는 썩은 뇌에 신선한 한줄기 지적 바람을 불어 넣어 준다는 것을 명심해라 쪽바라 ㅎ

먼저 이 개 쪽바라 전제를 니가 선점하면 그게 면피되냐? 역시 기원론에 민감하다니?
이 블로그에서 여기 쥔장이 기원론을 주장하대 니가 먼저 기원론을 주장하대? 니 가심팍에다 손을 얹고 냉정하게 생각해봐라
더구나 이 토기포스팅만 국한해두 쪽바리 니가 주구장창 13000년 13000년 우긴거 생각 안나냐
요시노가리 유적도 400ha 400ha뻥치던게 누구냐 오히려 여기 쥔장은 점잖게 너를 그래도 대화가 가능한 쪽바리라도 되는 것으로
대접해줬지만 날이 갈수록 적반하장에 우기기에 니뽕 이찌방을 외친건 누구냐 이 개호새퀴야
그러니까 내가 보다 못해서 니 싸가쥐 없는 무식함을 응징하고자 나타난 것이다 이 쉬밤바야 왜 꼽냐 확~

환언해서 이 댓글의 전제가 엉터리라는 거다. 되지도 않는 어거지 기원론을 먼저 끄집어 낸건 내가 아니라 바로 너 쪽바리다.
이 사실을 가슴에 잘 새겨라 함부로 입 째졌다고 내뱉지 말고 난 여기 쥔장하고 달라서 쪽바리는 인간 취급 안해
쪽바리는 단지 원숭이일뿐이라는 게 내 지론이다. 그러니 여기 쥔장과같은 자비를 구하지 마라 saru야

고고학계의 공이노딘 노문도 아니고 니입으로 설을 옮기면 그게 진실이 된다더냐 싸가지야
그리고 개인이 들어 가서 얼마든지 포스팅할 수 있는 위키디피아를 왜 자꾸 고고학적 역사적 토론에 인용을 하는데?
위키디피아 할일 없는 황국사관에 쩌든 니뽕 오타쿠들이 제일 많이 드나들면서 혐한과 왜곡된 니뽕 역사 퍼뜨리는 주범이라는 거
이미 세계인들도 다 아는데 그게 무신 논거의 전범이라도 되는양 인용하면 내가 '오냐 그래 일리있어'라고 호응해줄'줄 아냐
이 병진아 위키디피아는 단순한 개인적 희망사항의 포스팅이라고 정의되는게 이미 일반론으로 승인 받고 있단다
그런 위키피디아를 논거랍시고 인용하는 꼬락서니하고는 쯧쯧..

1960년대 이후 공인받고 있다니? 니 희망사항이냐?
솔직히 말해서 1960년대 이후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니뽕의 홍보덕택이지
그게 과학적으로 또는 비교사학적으로 검증된 건 아니지 철학사적으로 '이론미결정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세워진 가설은
검증에 의해 깨지게 되어있으니까 황국사관에 물들어 對 한국 컴플렉스에 걸려서
자랑할 게 없는 역사적 유산을 가진 니뽕은 그렇게 라도 건진 토기에 대한 프로파간다에 전력을 다할 수 밖에 없는 거지.

역사적으로 니뽕은 유물 조작이라든지 니뽕서기조작등을 통해 황국사관에 대한 오나니즘을 키워왔으니까
토기에 대한 홍보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지 따라서 1960년대 이후 편집적으로 토기에 집착한 니뽕인들과는 달리
자연적으로 유물발굴과 조사를 통해서 니뽕토기에 대한 기원의 선후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예측한 고고학자들이
굳이 거기에 호응하거나 집착할 이유는 없었던게지

그냥 니뽕인들의 절규일 뿐이야 단지 니뽕인들 자위로 1960년대부터 2000년대초반까지 니뽕 토기가 이찌방이라고 주장하며
욜심히 자위행위 한 폭이지ㅋ '1960년부터 지금까지는 최고 아니었나요'? 하는 니 반문에서
웬지 페이소스가 묻어 나는 것 같아 안스럽다. 니뽕의 패배주의를 보는 것같애 ㅋㅋ

니 말은 이거 아냐 그나마 1960년대에서 200년대 초반까지라도 1등했으면 되지 않았느냐 하는..그 말은
니 스스로 한국인이 기원론에 민감하지 않는가 질문하면서 니들 니뽕인들의 역사 컴플렉스에 걸린 혼네인 '니뽕 이찌방주의'를
스스로 자백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이 쪽바라ㅋ
고고학이나 역사학이 무신 한종족의 영광과 한종족의 수장을 위해 바쳐진 송가냐?
'1960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1등아니었나요?'하고 묻게..
너는 이 블로그에서 아주 비열하게 역사를 도구로 몰고 가고 있어 물론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지만 말이다 ㅋ

그러니까 후쿠이지층의 절대지층을 혼동해서 13000년 토기설을 혼자 떠들다가 개망신이나 당하지 미친 쪽바리.
그리고 니가 말하는 C14에 대한 우려는 역사 조작 전과자인 니뽕에 해당되는 거지 양심적인 사학자들이나
아무르강유역의 신석기인들의 출토품에 대해서 니뽕처럼 역사적으로 이용할 생각이 별로 없는 러시아 고고학자들과는
강께나이니까 니 오지랍 넓은 c14타령은 조용히 낫토에다 밥 비벼먹어라.
세계 고고학계가 니뽕의 후지무라 신이치처럼 썩은 사이패스들이 있는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메구미 유골을 가짜로 감정해서 외신으로부터도 개망신 당한 니뽕의 방사성탄소년대 측정법이나 먼저 돌아 보고
주접 떨어라

따라서 니가 후안치하게 주장한 니뽕 13000년 토기설은 후쿠이 지층년대를 니가 뻥친거라고 지적했듯이 근거 없는 것이다.
이미 아무르강유역의 13000년 상한 토기발굴과 아무르강 중류 가샤유적의 식물성 섬유질토기의 절대연대에-12,960±120B.P.-
따라 세계 최초의 고토기로 인정되고 있고
가샤토기 이전 일반적으로 세계 최고의 고토기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던 센푸쿠지 도류문 토기도
여수 안도의 도류문토기의 발굴로 인해 니뽕이 자칭 1960년대부터 우려먹던 현대 니뽕인들과 별 관계도 없는
죠몽인들이 만든 도류문 토기의 기원론은 깨박살이 난거지
즉 아무르- 동해안-남해안-여수-규슈로 이어진다는 기존 고고학계의 학설이 거듭 확인 된것이지.

그리고 두번째로 흑요석 ?니가 산출되는 곳은 화산지대이다.
따라서 내가 위에서도 말했지만 흑요석은 지리적으로 판과 판이 만나는 화산대에서는
어디에서든 그 산지가 발견된다는 일반론이 틀린 것이 아니다. 즉 지구는 판으로 이루어져있고 그 판이 부딪치는 곳에서는
일반적으로 흑요석이 생성될 확률과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내가 제시했던 터키로부터 중앙아시아 바이칼 캄차카 백두산 북미의 옐로스톤 잉카문명의 안데스등에 걸쳐
흑요석산지는 광범위하게 존재하는데 그럼 이정도가 일반적이 아니란 말이냐 이saru야

더구나 인디아 대륙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중앙아시아와 그 부딪치는 응력이 뭉치는 바이칼리아 산맥 주변에는
자연적인 흑요석 산지가 형성되고 바이칼 만주로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지역에서
당연히 흑요석을 이용한 세석기가 만들어 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게 어떻게 년대적으로도 양구 파로호의 흑요석석기나
공주 석장리의 흑요석 석기보다도 훨씬 후인 니뽕의 흑요석이 공급처 역할을 하고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견강부회로 이어진다고 후안무치를 떠는가 이 개뻥쟁이 saru야.

고고학계에서 바이칼 만주 백두산지역에서 발원한 문명이라고 공인한 흑요석석기 문화를 근거도 없이
니 입으로만 니뽕이 기원이라고 개뻥을 친다고 코라도 찡끗 할둘 알았더냐 이 무뇌 원숭아!

위에서도 말했지만 특히 공주의 구석기 유물터인 석장리에선 흑요석 석기가 발굴되지 그 년대는 후기구석기문화층에서
석기제작터·집터·살림터가 드러나는데 이 문화층에서 나온 나무숯을 방사성탄소연대측정에 의해 분석한 결과
2만 830±1,888BP(집터), 3만 690±3,000 BP(집터 아래층)라는 연대가 나왔단다.
또 파로호에서 발굴된 600여점의 흑요석 세석기도 신석기 바로 직전의 후기구석기와 신석기에 걸쳐있는 유물이지
즉 년대기적으로 니뽕에서 발견되는 흑요석보다 훨씬 상한인데 지금 뻔데기 앞에서 주름 짓냐.
하지만 한국인들은 학자적 양심으로 이것을 프로파간다 하지 않아 이 구석기인들이 한국인의 직접적 조상이라고도 하지 않고
이들은 즐문토기와 융기문 토기를 쓰는 신석기인들에 의해 대체되겠지만 인간의 문화적 연쇄는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서
그 흑요석문화는 당연히 신석기인들에게 전승된 것이고 바이칼 시베리아의 흑요석 세석기 문화에 의해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발전 된 것이다.
즉 흑요석의 기원론에서 니뽕이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뻥쟁이 사루야.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어떻게 문화사적으로 공인된 경로인 대륙-섬 경로를 무시하고
단지 흑요석의 산지가 있다는 이유로 그 역의 루트를 주장하는 저 멍청한 짓거리하고는 쯧쯧 연민을 느낀다 . saru zz
그리고 니가 죽으려고 무덤을 파는 구나ㅋ겨우 인용한다는 게 니들 야요이인인 현대 일본인과 강께도 없는
죠몽인들의 산나이 유적지를 인용하는 걸보니 몰려도 한참 쥐구멍에 몰린 니 꼬락서니가 아주 우습게 보인다 쥐존만아 ㅋ

야 너 개쪽팔리지도 않냐 니 블로그 가보니까 느 스스로 '영원한 구다라의 자손이라며' 스스로 신몽골리안의 후손임을 자임하면서
신몽골리안과 강께나이인 죠몽만 필요에 의해 갖다 붙이게 ㅋㅋ
관념적으로는 야요이인의 후손이며 평상시에는 죠몽을 무시하다가 니들의 모국에 대한 컴플렉스로
야요이인과 별관계도 없는 죠몽인을 역사 논쟁에만 끌어 들이는 그 비열하고 구역질 나오는 작태말이다 ㅋㅋ 에라이 이 쪽바라

각설하고 이제 어디 니 상습적인 구라뻥이 진짠가 이제 부터 검증 들어가보자꾸나 우선 산나이 유적이
몇년전 거라는 년대기적 연혁부터 확인해야지 안그냐 사루 ㅋㅋ 일본측 자료로 부터 검증해야 사루가 찍 소리 안하지 ㅋ

우선 산나이 유적은 지금까지의 발굴조사로 조몬시대 전기에서 중기(약5500년 전∼4000년 전)의 유적이나
헤이안(平安)시대의 집단 취락 유적(약1000년 전), 중세 말(약400년 전)의 성곽 유적의 일부가 같이 발견되지.
즉 죠몽과 헤이안 에도시대의 유적까지 혼재되어 있다는 거지

그리고 죠몽시대의 유적만 국한해서 보면 지금까지의 발굴조사로 칠엽수, 호두, 밤 등의 견과류, 딱총나무, 원숭이배, 산뽕나무,
산포도, 나무딸기등이 발견 되네 ㅋㅋ 어디 쌀이 발견되? 니 상상 속의 썩은 대뇌에서?
죠몽과 헤이안 에도까지 뒤범벅이 된 유적지에서 그럼 당연히 쌀이 안나오냐 너는 산나이 유적의 이런 중층적 구조는 싹 쌩깐 채
쌀이 나온다고 개뻥을 까요 전형적인 왜구들의 물타기 수법이지 아오모리현의 안내 책자에서 조차 죠몽유적에만 국한하면
위에서 열거한 채집경제의 산과일이들 뿐이란다 이 철딱서니 없는 극우 왜놈아.

이 놈이 어제는 토기가 정주 문명을 이야기한다고 뻥을 치더니 오늘은 또 '토기만으로 정주문명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식으로 말꼬리 흐리며 빠져 나가네 싸가지 없는 쪽바뤼 ㅋㅋ

그래서 산나이에서 수혈식 주거나 굴립식 창고형태의 지상건물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게 정주를 상징하나?
풋 이 초보 쪽바리의 궤변을 언제까지 들어 줘야 하는지 어이가 가출하네..

내가 어제도 분명히 니 귀에다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만 도류문 토기로 대표되는 신석기 전기인 12000년전에는 농경이란 없고
채집경제이며 적어도 농경이라고 부를 만한 흔적이 나타나는 것은 한반도로 보자면
아주 원시적 농경과 정주를 이야기하려고 해도 적어도지금부터 8000년전인 BC 5-6000의 신석기 중기는 되어야 한다는 게지
중기는고성 문암리(BC-6C) 양양 오산리(BC-5C) 동삼동 제 3층, 수가리 제 3-5층, 암사동 상층, 궁산리, 지탑리 후기ㅣ층 등이
해당되며 이때의 특징을 살펴보면 비로소 농경의 근거로 탄화된 피[稗]가 있고 서해안에서는 점열무늬가 허리 전체에 시문되거나
아가리 무늬가 없어지고 사격선, 삿자리무늬가 시문되기도 한다. 이게 농경과 정주가 시작된다는 증거란다.

즉 년대기적으로도 산나이보다 2500년이나 빠른 시기에 이미 한국에서는 수혈집 움집이나 즐문토기등이 발견되고
농경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탄화된 피가 발견되는 거지
비록 산나이 유적은 시베리아-한국 동해안-남해안-니뽕으로 이어지는 루트는 아니고
시베리아-연해주-사할린-홋카이도-니뽕동북부로 이어지는 루트라 할지라도 한반도 루트보다 훨 뒤의 년대이지
그런데 그 후기의 죠몽 헤이안 에도의 지층이 뒤섞인 곳에서 나온 박과 우엉과 쌀을
은근슬쩍 채집경제의 소산인 밤과 등치시키며 정주와 농경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뉴앙스를 풍기며 쌩을까 ㅋㅋ

니뽕보다 빠른 한반도 신석기 유적에서 조차 신석기 중기에 농경이 일부 시작되었다고 하고 일부분 정주가 시작되었다고
기술하지만 그것은 신석기 후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농경과 정주와 같은 형식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즉 신석기 중기에 농경과 정주의 흔적이라 부를만한 것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그 시기의 대표적인 삶의 방식은
여전히 채집과 수렵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겨우 5500년이 상한인 죠몽의 산나이 유적에서 쌀이 발견되고 정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궤변을 늘어 놓다니
역시 화산대로 이루어진 석회암 지층의 물과 산물이 니뽕 원숭이들의 뇌수를 파괴해서 사이코패스가 많다는 항간의 속설이
맞긴 맞나보다 ㅋㅋ 탄화피나 탄화미도 아닌 쌀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니 지적 기저가 얼마나 천박한지 말해주는 대목이라
한참 웃는다 ㅋㅋㅋ
그리고 내가 언제 죠몽인구의 최대치를 언급했냐 니가 이 토론에서 뻥을 깐 니뽕 토기 13000년을 주장하면서
그 13000년 토기를 만든 사람들이 10700년 후인 야요이초기인 BC3세기까지 고작 7만5천의 인구밖에 유지 하지 못했느냐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한거지

죠몽시대는 당연히 이동 채집 수렵경제시대이기때문에 기후나 사냥감이나 그해의 산열매 생산량에 따라
거기에 목 매는 죠몽인들의 생사가 좌우되지 만일 죠몽이 일정하게 정주하고
지속적으로 농경을 통해서 생산량을 배가 시켜왔다면 죠몽인구는 야요이 초기에 7만 5천이 될 수가 없지

즉 13000년전 죠몽 초기로부터 야요이초기까지의 11000여년동안 왜열도의 기후가 좋으면 최고 25만이고 기후가 나쁘면
그 이하로 떨어 졌다는 것,즉 니가 변명이랍시고 내놓은 죠몽 인구 최대치 25만은 역설적으로
죠몽 사회가 전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자연의 생산량에 의존하는 원시 수렵및 채집경제라는 것을 스스로 토설하는 거란다
이 쪽바라.

그리고 년대기적으로 산나이 유적에서 보듯이 니뽕의 신석기 문명이나 융기문토기나 즐문토기는 한국보다 훨씬 늦지
니가 뻥까듯이 니뽕 열도와 면한 한국의 동 남해안에 소위 죠몽 토기인들이 건너 와서 즐문토기나 융기문 토기를 만든게 아니라
거꾸로 시베리아-동해안-남서해안-규슈-니뽕 열도 동해연안으로 확산된것이 고고학적 루트에 맞지 이 븅삼아
어디서 개구라에 개뻥을 밥먹듯이 하고 있나.

즉 아무르-동해안-남해안-여수 안도 도류문 토기-니뽕으로 이어지는 루트가 고고학적 루트로 정합성을 띄지 계통도 다르고
년대기도 한국의 오산리나 문암리의 8000-7000년보다 훨씬 느린 5500년정도의 홋카이도루트의 산나이 유적내지는
토기를 들어서 죠몽인들이 한국에 건너 왔다는 뉴앙스로 거짓 개구라를 치냐 이 개쪽바라 !!
어이가 삼중으로 가출한거야 이 개 쪽바리 ㅋ

여수 도립문 토기에서 보듯이 열도와 빙하기로 연결된 12000년전부터 여수 안도 신석기인들과
해수면이 상승하기 시작한 9000내지 8000년경에 강원도 문암리 융기문 즐문토기인들이 아직 열도와 연결된 남해안 루트를 따라
열도에 신석기 문명을 전파시킨 것이지 이 쪽바리는 이런 연혁적 고고학적 기반을 쌩깐채
죠몽인들이 한반도 남부로 이동했다고 개뻥을 쳐요 뗏목타고 아니면 헤엄쳐서 ㅋㅋ
그러니까 니가 경멸을 당하는 거야 이 쉬방 삼세 개쪽바라.
그리고 이 캐병진은 혼동의 귀재야 ㅋㅋ 백제가 멸망한 서기 660년이면
이미 왜 열도는 부분적으로 삼국의 분국들의 영향력이 건재 한 곳이 있긴 하겟지만 완벽하게 야요이인들의 후손인 고대한국인
즉 인종적으로는 신몽골리안 역사적으로는 고대 한국인이며 정치적으로는 백제인들이 거의 완벽하게 통제 했는데 머라고라?
규슈외에는 야요이인들의 영향력이 희박하다고라? ㅋㅋ

에그머니나 이 쪽바리는 뇌를 사람으로서 달고 있는 건지 아니면 원숭이 대표로서 달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가네 ㅋㅋ
그래두 어쩌나 이 무미몽매한 원숭이 뇌수를 파먹기전에 신선한 지적 바람을 불어 넣어 줘서 진실은 알고 향내 맡게 해야지
그게 니뽕의 모국인인 한국인들의 숙명 아니겠어 ㅋㅋ

자 보자 니뽕 고고학자나 역사학자들도 분석하듯이 야요이부터 백제 멸망까지의 소위 니뽕식대로
도래인 대 죠몽의 비율은 최대 9대 1 보수적으로 잡아서 8.5대 1이다
이 비율은 한국인에게서 발견되는 북방계 남방계 비율치 최대 8대 1보다도 훨씬 상회하는 수치라는 거다.

즉 다시 말하면 죠몽 말기 7만 5천이던 인구가 나라시대에 오면 거의 수백만으로 증가하고 신장의 평균치도
죠몽 말기의 남자 157센티미터에서 야요이 초기에 급작스레 남자 164센티미터로 증가하고
이 수치는 고분시기의 말기인 나라시대까지 변하지 않는다

즉 고대 한국인인 야요이인이자 삼국인이자 백제인들의 형질은 죠몽인들과 섞이지 않았으며 그들의 유전적 형질을 유지하며
야요이부터 나라시대까지 거의 1000년간을 본국인 한국으로부터의 도래인과 생산력의 증대로 증가한 열도의 야요이인만으로
인구 증가를 이루어 왔다는 것이다.

즉 죠몽은 그때 저기 아오모리 근처에서 살면서 야요이인들의 번영과는 관게가 없었던 것은 당연한거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백제가 멸망하고 나라시대를 거쳐 가마쿠라 막부시대에 들어 오면 니뽕인의 평균신장이 159정도로 뚜욱 떨어 진다.

이게 무엇을 의미 하느냐?
이건 본토인 한국으로부터 7세기 말부터 인종유입이 단절됨과 동시에 그 이후 가마쿠라 막부까지 거의 500년간
니뽕인인 고립되면서 생물학적으로 고립된 종은 왜소화를 초래하는 생물학적 법칙에 따라 왜소화는 필연적이었다는 것이지.

가마쿠라 이후 고립되었지만 열도는 본국으로 부터 전래받은 벼농사와 문화적 인프라를 기반으로 생산력을 증강시키고
증가된 인구를 먹여 살릴 경작지나 토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지 그래서 기나이나 간토지방의 토지만으로는
지방 호족과 불어난 인구를 감당할 수 밖에 없으니까 당시 하이로 치부하던 아이누의 땅을 노리게 되면서
아오모리쪽으로 동북진을 본격적으로 꿈꾸지 이 과정에서 생물학적 고립의 결과 초래된 하향평준화의 신장이 더 작아지지 왜?
가마쿠라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누와 혼혈이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한반도에서는 남방계와 북방계의 피의 융합이 빙하기 이후인 12000내지 13000년부터 송국리 유적 전까지
거의 13,000여년에 걸쳐서 이루어져 아주 고르게 믹싱되지만
열도에서는 북방계와 남방계의 피의 혼혈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건 가마쿠라 이후 불과 1000년내에 급격히 이루어지다 보니까
니뽕열도에서는 남방계와 북방계의 편차가 극단적으로 크게 나타나는 게지 ㅋ
이러한 고고학적 역사적 사실을 이 멍청한 사루가 알리가 있나.

그래서 가마쿠라 이후 니뽕인의 평균신장은 더욱 하강하여 무로마치 막부때는 158까지 하강한다.
바로 이것이 아이누 믹싱의 효과지 ㅋㅋ
이효과는 홋카이도등의 동북 영토를 더욱 확장하는 시기인 에도막부에는 157정도로 더 떨어지고
심지어 메이지시절에는 156까지도 평균신장이 관측된다.

위에서 보듯이 달래 왜놈이겠어 ㅋㅋ 즉 가마쿠라 전 시기까지는 생물학적 종의 고립에 따른 왜소화가 이루어지고
가마쿠라 이후에는 아이누와의 혼혈이 누적되어 현대 일본인이 생성되었지만
여전히 니뽕인의 북방계 남방계 비율치는 한국의 비율치인 8대 2와 거의 근사하다.
즉 아이누와의 혼혈이 현대 왜놈들에게 끼친 영향은 미미하다는 것이다.

즉 빙하기 이후 한반도내에사 12000년정도의 기간을 거쳐 완벽하게 융함된 북방과 남방계의 형딜을
완벽하게 물려 받은 야요이인이 2300년부터 니뽕 열도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진화하다가
본국인 한반도로부터 백제 멸망이후 고립되자 종의 왜소화를 초래하고
이후 지금부터 고작 1000내지 900년전인 가마쿠라 시기부터 동북방면으로 북상하며 아이누와 급격하게 혼혈을 했다고 해봤자
아이누의 피가 가마쿠라인에 끼친 영향은 한강에 배지나간 격이라는 거다 이 쪽바라
니가 아무리 깝쳐봤자 너는 한국의 초딩들에게도 깨지는 수준이야 그런 수준으로 여기서 나발대지 말고
사쿠라 피는 야마토 니고향으로 돌아 가든지 아니면 여기서 하라키리 해서 되져 이 개 쪽바라 ㅋㅋ
방숭.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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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er 12-11-12 14:19
   
전체를 정독은 못하고 대략 읽었는데...
antijaps님...분명 고고학 전공하는 교수님급이신거 같은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리고,,,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쪽바리 군....ㅋㅋㅋ
아주 얌전하고 고상한 척 설레발 치다가 개작살나는 군요...ㅋㅋㅋ
하여간 이 놈들은 무조건 잘근잘근 씹어줘야 하는 종족임은 틀림없는 듯....
낭만저씨 12-11-12 23:27
   
어휴~~~ 너무길어서 겨우 다읽었습니다;;;;;;
지네가 신화처럼 떠받들던 조상들의 뿌리가 한반도였다는것을 인정하는게
그리도 힘들까요????;;;;;
변방에 섬이였던 왜를 개화시키고 발전시킨 조상들이 불쌍할 따름입니다......
바보곰 12-11-13 02:33
   
다, 다읽었다/

역사도 모르는 이과출신 공대생이지만 뭔가 재밌어서 다 읽어버렸네요...
끄으랏차 12-11-13 08:29
   
초반 근거 타령하던 쪽바리가
방대한 양의 근거를 바탕으로 지적하는 사람을 만나니
"~~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있습니다", "~~ 인정받고 있습니다"

라는 카더라 를 근거랍시고 논리전개 해나가는군요 ㅋㅋㅋㅋ
굿잡스 12-11-13 12:54
   
덕분에 잘봤습니다. 간만에 열도의 우리 고고학 유적들 보니 새삼 반갑네 ㅋㅋ



저기 사루라는 잽인은

세계 보편적 인류의 탄생과 이동 및 문화의 로드를 동북방 섬나라 열도에서 서대륙쪽으로 이어졌

다는 경천동지할 초견해를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캐무식하게 열심히 떠들면서 무슨 우리보고 전형적 민족주의에

입각한 사관 어쩌고 캐구라에 근거마저도 전범 잽 극우들의 아마추어 난입으로 무작위로

작성된 카더라 위키를 근거 마냥 ㅋㅋ


진짜 일제시대 똘라이 정신병자 수준의 황국사관이 무섭긴 하군요. ㄷㄷㄷㄷ



 후지무라 신이치 ˝일본 구석기 유적 날조 20곳 이상˝

http://blog.daum.net/vmfkdzh/285
굿잡스 12-11-13 14:10
   
열도 잽 놈들은 지들이 뭐라고.. 역사를 저딴식으로 배우게 하고 보편적 인류사의 문명
흐름마저 왜곡 캐소리질 하는..

산업 혁명의 원지요 해가지지 않는 제국을 세운 영국도 과거 로마의 속주로 현재의 런던도

로마의 론디니움 식민지 도시에서 출발했고 이후 바이킹,노르만 왕조등

섬나라 로서 외세의 선진 문명과 정치 세력에 의해 점철되면서 오늘날 영국사가 있음을

가감없이 피력하는데 뭔 또라이 짓거리.. 그것도 과학적 데이타가 부실한 일제시대

지들 꼴리는 식의 실증 캐소리 시대도 아닌 상황에서.

저런 소리는 서구 학자들에게 가서 했다가는 캐쪽발리는 수준이 아니라 잽 자체가

3류 아류 국가와 국민 수준임을 스스로 밝히는 꼴로 상대도 안해줄거임.

안티 잽님이 저보다 더 심하게  욕해도 솔직히 할말없는 빙쉰 정신병자 수준의 잽하군.
서라벌 12-11-14 01:01
   
아이고~ 잘 봤습니다. 어제부터 읽다가 길어서 오늘 다시 읽었는데 전부 정독했습니다. 역시 쪽발이들의 망상이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군요. 그에 반박해 주시는 안티잽 님의 풍부하고 방대한 지식과 훌륭한 말빨에 감탄을 금치 못할 지경입니다. 정말 말빨이 후덜덜하군요.. 생각 같아선 욕 좀 더 처먹어도 할말 없을듯 합니다. 오늘 번역에 일본이 세계최고국가라는 어이없는 개망상 날조 번역물이 올라왔는데 그 쪽발이 놈들이 이 글을 봐야 정신을 차릴텐데요. 물론 날조라고 열폭하겠지만.. 안티잽님이 어떤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수묵 12-11-15 00:45
   
아끝까지 읽었네요
니뽕 이치방 이라니 어이가 가출하겠네ㅋ역시과거를모르면발전이없다는말이맞는듯 한국전쟁으로돈벌었다지?잽스
그런피묻은돈으로 에라이 고딴 이미지형성에가따바친게야?얼마나열등하다고생각햇으면ㅉㅉ
니들이외국인들을차별할자격이나되냐? 아차별당할까왕따당할까 걱정한게냐?ㅋ 안티잽님 존경스럽네요
권커니 16-09-14 22:23
   
가생이에 상주하는 비열하고 음습한 쪽뽕 쪽파리들이 여기엔 못 날라오네요 ~~~

*축 ! "쪽파리 청정지역"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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