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경의 열도 유적으로 고분시대 가장 선진적인 유적.(다른 위정자의
유적들 보면 그냥 과수원 원두막 수준임 ㅋ)
이게 얼마나 발전했는지 땅속에 기어 들어가는
수혈식 움집. ㅋㅋ 시망임.
그리고 위의 사진(첫번째)은 유적 전체를 복원시킨 것으로
제대로된 흔한 도시 취락도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으며
이정도 번듯한? 모습도 고분시대 후기의 인프라 수준임.
고분시대(3~6세기) 열도의 문화 수준은
도시 인프라에서 낙후되었다는 바이킹보다 훨 낮고
고분시대(3~6세기) 열도에서는 헤데비보다 큰 취락지는 발생되지 않음.
당시는 열도를 개척하던 우리 가야 백제계의 소규모 집단의 호족들이 300개의 지역에서 분포하면서 세력 확장하느라 정신없던 시기임.
이런 캐막장 미개 열도 수준으로 도리어 무슨 4세기경에 철의 왕국 가야를 지배하고 나아가 우리 남부쪽을 경영했다는 캐망발 환타지 임라일본부설의
누렁국 사관질을 아직도 쳐하남?
그기에 동아시아 해상무역을 장악하던 신라와 당과 맞먹는
거대 도시 영토 인프라를 구축한 발해의 남북국시대에
도리어 열도로 백제귀족들이 다 빠져 나가 우리가 문명 공동화?? ㅋㅋ
아래 보니 무슨 천부경까지 들고 와서 그게 왜구들 꺼내하는 병질놀이도 하던데 ㅋㅋ. 참. 요즘 누렁이국 사관 놀이도 진화를 거듭하니 신선하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