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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1-09 13:53
중국과 일본의 고구려 왕족 후손들
 글쓴이 : 짱깨척살
조회 : 9,591  

중국국적 장수왕 61대손 고붕씨 국내 대학서 석사과정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된장찌개에 질색했는데 이제는 청국장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됐어요.”

고구려 장수왕의 후손이 한국에서 4년째 유학생활 중이다. 10년 전인 1995년 2월 장수왕을 시조로 기록한 요양 고씨의 족보 ‘고씨가보(高氏家寶)’를 들고 한국을 찾아 화제가 됐던 고지겸(高之謙·의사) 씨의 맏손자인 고붕(高朋·28·사진) 씨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哈爾濱)에 살던 고 씨는 1999년 70세로 별세한 할아버지가 “두 손자(쌍둥이) 중 한 명이 한국으로 유학을 가면 좋겠다”고 한 유언에 따라 2001년 한국에 왔다. 연세대어학당을 거쳐 강남대 무역학과 3학년에 편입한 그는 현재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 석사과정 마지막 학기에 재학 중이다.

사실 처음에는 할아버지 조차 자신이 한족인줄 알고 살아왔다고 한다. 문화혁명 이후 뿌리찾기에 나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족보를 태워버려 어렵사리 옛날 족보를 구했다고 한다.

‘고씨가보’에 따르면 고 씨는 장수왕의 61대손. 1686년 작성돼 중국 학계에서 검증을 받은 이 족보에는 가문의 시조가 장수왕 고련(高璉)으로 기재돼 있다. 할아버지 고지겸 씨는 1989년 ‘고씨가보’를 들고 중국의 헤이룽장신문을 직접 찾아가 자신이 한족이 아니라 장수왕의 후손이라고 밝혔고, 아버지 고흥(高興·57) 씨도 조선족으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할 만큼 고구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중국에서 고구려 역사는 거의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오기 전만 해도 랴오닝(遼寧) 성 크기 정도의 나라인 줄 알았는데 영토가 그 몇 배는 됐다는 점에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에 와서 고구려 역사를 자세히 배우면서 예전엔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구려 사랑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고 씨는 한국의 고구려 왕실의 후손인 횡성 고씨 종친회와 고구려연구회의 후원으로 장학금 일부를 지원받았지만 편의점 종업원과 맥줏집 웨이터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해 왔다.

내년 2월 대학원 졸업 후 가능하면 한국에 남아 한중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박사과정까지 공부를 더하고 싶지만 취직이 여의치 않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는 한국에 대한 인상을 얘기해 달라는 말에 “한국인의 국산품 애용에 놀랐다. 중국인들에 비해 애국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고 씨는 경기 구리시에 세워진 광개토대왕 동상의 얼굴에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자신의 얼굴에 대한 조사도 반영됐다는 비화를 소개하며 “할아버지, 아버지보다는 외탁을 많이 한 얼굴”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일본의 고구려 후손 우린 보장왕의 60대후손

고구려 역사기념관 건립 구리시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홍도암, 최광민) 회원 99명이 일본에서 1300여년 동안 60대(代)를 이어 살아온 고구려 후손들을 만나기 위해 4일 대한해협을 건넌다.

일본 사이타마현 히타카시(市)에 살고 있는 고구려 후손들은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아들 약광(若光)의 자손들로 일본은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716년 무사시(武藏)지방에 고마군(高麗郡)을 설치하고 약광을 초대 군수로 임명해 같이 망명한 1799명을 옮겨 살도록 했다.

약광의 60대손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는 아버지 고마 스미오씨의 뒤를 이어 고마(고구려의 일본식 표기) 신사(高麗神社)의 궁사(宮司)로 대(代)를 이어 오고 있다.

14세기 무로마치 바쿠후(幕府) 때 정권의 반대편에 가담했다 해서 박해를 받아온 고구려 후손들은 명치유신 뒤부터 한층 더 고난을 겪었다.

일본 정부는 한국과 관련된 지명을 없애버리기로 하고 고마군을 이루마군(入間郡)에 편입시켜 히타카마치로 부르게 했고 약광에 대한 제사도 금지시켜 천황신에게 제사지내게 했다.

히타카마치는1991년 사이타마현 히타카시가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마 신사는 최근 일본 각계의 거물들이 이 신사를 참배를 하고 난 다음에 출세했다고 해, 일본인들에게는 출세 신사(出世神社)로 더 알려져 있으며 해마다 40만 명 이상의 참배객들이 찾아와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고구려역사기념관 건립 구리시추진위원회는 지난 2월 후미야스 궁사에게 편지를 보내 "구리시는 남한에서 가장 많은 고구려 유물이 출토된 곳으로 작년부터 벌인 범국민모금운동으로 세울 고구려역사기념관이 들어설 곳"이라고 설명했다. 또 "오는 5월 실물 크기의  광개토태왕비도 복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후미야스 궁사는 2월말 답장을 보내 "선조들의 영광을 재현할 역사기념관 건립에 도움이 되도록 서로 교류하고 싶다"라며 "우선 4월 고마신사 마쯔리(축제)에 와서 우의를 다지자"며 구리시민들을 초대했다.

이에 구리시추진위원회는 박영순 구리시장을 비롯한 방문단을 꾸려 일본을 방문하기로 결정해 양측이 만나게 됐다. 

이들 방문단은 오는 5일 히타카시청을 방문해 히타카시장과 면담한 후 고마신사까지 한-일우정의 걷기대회에 참석한 뒤 고마신사에서 벌어질 마쯔리 행사에 참가해 형제의 우의를 나누고 인근 쇼텐인(聖天院: 약광이 고구려에서 수호불로 가져온 성천존이 모셔져 있어서 절 이름을 성천원이라 부름) 입구에 있는 고구려 사당(廟:약광의 묘) 등 고구려 유적도 돌아볼 예정이다.

일본 속의 고구려인

한편 후미야스 궁사 일행은 오는 5월 구리시 광개토태왕 동상 옆에 세워질 광개토태왕비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구리시를 방문할 예정이다.

동아시아의 제국으로 군림했던 고구려는 668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그러나 고구려 왕조의 핏줄은 바다 건너 일본땅에서 1300여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국땅에 뿌리내린 고구려의 후예는 고려(高麗)란 국호를 성씨로 삼았다. 일본에선 고구려를 고려로 표기하고 고마라고 읽는 경우가 많다.

14일 고구려 왕족의 후손을 찾아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로 향했다. 고구려사를 둘러싼 한·중 간 갈등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쿄(東京)에서 전철로 한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고마가와(高麗川)에 내리자 역 앞 광장에 우뚝 선 한국식 장승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일본 고려씨의 총본산 고려신사(高麗神社)는 여기서 1.5㎞쯤 더 들어간 산기슭에 있다.

"잘 오셨습니다. 저는 고구려 왕족의 60대 후손입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고구려의 후예란 자부심을 갖고 살아 왔습니다. 저는 한국인을 외국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사진 : 고마 스미오 59대 고마신사 궁사. 현재는 후미야스씨가 대를 이어 60대 궁사로 봉직하고 있다. >

노환으로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가 맞아주었다. 그는 아버지 시즈오(澄雄·77)가 맡고 있는 신사의 대표직인 궁사(宮司)를 언젠가는 물려받아야 한다. 후미야스가 들려준 가문의 유래는 이랬다.

"고구려에서 건너온 왕족 약광(若光·일본명 잣코)이 간토(關東)지방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고구려 출신 1799명을 이끌고 이곳에 고려군장으로 부임해 왔습니다. 이 같은 내용은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속일본기』에 나옵니다. 일본에 왔다가 고구려가 망하자 돌아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후미야스는 별실로 기자를 데려가 고려씨계도(高麗氏系圖)를 보여주었다. 약광부터 60대 후손인 자신에 이르기까지 빼곡히 집안의 내력을 기록한 족보였다. "일본에서 이런 계도를 간직한 집안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 가문의 자부심은 여기서 나온 겁니다."

고마 가문에 위기가 온 것은 14세기 무로마치 막부 때였다. 정권과 반대편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자칫 멸문의 화를 당할 뻔했다. 고마 가문은 종가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분가해 다른 성씨를 쓰게 됐다. 다시는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는 가훈이 내려오는 것도 이때부터다.

고마 가문도 근대 이후 일본에서 행해진 한반도 출신에 대한 차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때 결혼 상대를 찾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집안 형편도 궁핍을 면치 못했고 대부분 다른 지방으로 떠났지요."

하지만 지금 고마씨는 제2의 융성기를 맞고 있다. 고마 신사가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시데하라 기주로(弊原喜重郞) 등 이 신사를 참배한 정치인들이 차례로 총리대신이 되자 약광이 출세의 신으로 떠받들어지게 된 것이다. 신사 입구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조부인 마타지로(又次郞) 전 체신장관의 기념식수도 눈에 띄었다. 최근엔 연간 40만명이 이곳을 찾을 정도로 번창하고 있다.

고마 가문은 자신의 혈통이 맞닿아 있는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매주 목요일엔 신사에서 한국어 강좌를 5년째 계속하고 있다. 후미야스 본인도 일곱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또 매년 10월엔 재일동포 조직인 민단과 함께 마을 축제를 열고 있다.

후미야스는 최근 고구려사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유적을 보러 중국 지안(集安)에 간 적은 있지만 우리 조상이 중국계란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며 "나는 한민족(조선민족)의 후예"라고 단언했다. 그는 한국민들에게 "고구려 역사를 잘 전승하고 유물·유적 보존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고구려계 일본인 고마 후미야스씨

광개토태왕비 복제비 제막식 참석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에 위치한 고려신사의 대표직인 궁사(宮司)를 맡고 있는 고마씨가 23일 경기도 구리시에서 열린 고구려 광개토태왕비의 복제비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668년 고구려의 멸망으로 돌아갈 땅을 잃어버린 약광에게 703년 야마토(大和)정권은 왕(王)이라는 성(姓)을 하사했다고 속일본기는 기록하고 있다. 716년 고구려인 1천799명이 무사시노(武藏野) 지방에 이주하면서 고려군(郡)이 새로 설치되자 약광은 초대군장으로 부임한다.

고려신사는 일본 땅에 뿌리를 내린 고구려인 약광을 기리는 곳이다.

"고구려인의 후손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조상 대대로 전해온 사실을 숨기거나 더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고려신사에 전해오는 고마씨의 족보인 고려씨계도(高麗氏系圖)에 따르면 고마 후미야스씨는 약광의 60대 후손으로 아버지에 이어 궁사로서 고려신사를 관리하며 제사를 주관해오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고구려의 후예라는 것은 알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어머니로부터 역사적 사실을 자세하게 듣게 됐다"고 말했다.

"사춘기 시절 정체성의 문제는 없었을까." 이 질문에 고마 후미야스씨는 "있었다"고 대답했다.

하나는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대목에서 일본에 살고 있으면서도 일본인이 아니고, 둘째는 고려신사의 후손으로 (대를 이어 궁사직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점에서 정체성의 갈등이 한때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고구려계 일본인으로서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 2016년 고려군 창설 1천300년 기념사업을 벌써부터 기획, 일부 행사를 실행하고 있을 정도다.

25일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인 고마 후미야스씨는 "구리시가 추진하는 고구려 역사기념관 건립에 관심이 많다"며 "이 박물관이 완공되면 꼭 다시 한국에 오고 싶다"고 말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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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마왕 11-01-12 03:17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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