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8년 평양성 함락이후 평양 등지에 유력한 고구려인들 20만명을
당나라로 끌고 갔다는 기록때문에
지금 동북공정의 논리처럼 고구려인들 대부분은 중국인으로 흡수되고
현대한국인에 흡수된 숫자는 얼마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거 같다.
근데 엄밀히 말하자면 고구려 멸망이후 당나라로 끌려갔다는 20만명은
주로 평양성의 국인들이었고 이들이 최종적으로 당나라 내지로 사민된것은
668년이 아니라 보장왕이 조선왕으로 책봉되어 말갈인들과 함께 고구려부흥을
모의하다 발각된 이후의 일이다.
근데,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의 핵심은
고구려인 20만명이 당나라로 강제사민되어 한반도에 고구려인들 숫자가 얼마 남지않았고
이때문에 신라사회에 통합된 고구려인 숫자가 얼마되지 않았다는 통념이 과연 사실이냐 하는
것이다.
중공학자들은 당시 고구려인구가 약 60~70만호였다는 당나라 기록을 戶에서 名으로 이해하여
고구려 인구가 60만명쯤이었다고 개소리를 정설인양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코메디가 아닐 수 없는게 당시 고구려 군사력이 30만명에 달하고 있었는데
고구려 총 인구가 60~70만이라니 ㅋㅋㅋ 이게 동북공정에 참여하는 어느 중공학자들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근데 고구려 후기 고구려의 중심지였던 평양 황해도 지방의 인구가 얼마였을까?
평안도에는 평양이 있었고 황해도에는 한성이라는 이름의 고구려 다섯손가락에 드는 큰 성이 있었고
지금 학자들의 추정인데 황해도 한성말고 경기북부에 남평양이라는 이름의 큰성이 또하나 있었다고
한다.
진실로 중공놈들의 주장처럼 고구려 멸망후 20만명이 당나라로 강제사민되어 임진강 이북의
황해 평안도에는 고구려인 씨가 말라버렸을까?
근데 얼마전 신문으로도 보도된 한나라시대 낙랑지역 인구를 알수 있는 유물이 발견된 기사가
있다.
기원전 45년 한나라시대 낙랑군의 인구가 28만명 가량 되었고,
특기할 것은 낙랑지역의 작은 마을의 인구부터 합산한 수치임과 동시에 중국인 즉 한족과 조선인을
명확히 구분하여 인구를 통계내었다는 사실이다.
(한사군 대륙설을 신봉하는 분들께 확실히 해둘 사실이 있는데 여기서의 낙랑은 중국대륙이 아니라
평안도에서 발견된 유물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기원전 45년전의 평안도 지역의 인구에 대한
유물이니까 헛소리 늘어놓지는 말길 바란다)
따라서 기원전 45년 당시의 매우 신뢰도가 높은 낙랑지역 인구조사 결과가 아닐수 없다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족들과 조선인들이 서로 섞여 살지 않고 인구비율또한 8:2 혹은 9:1 정도로
조선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이다.
그럼, 고구려 멸망하기 700년전에 작성된 낙랑지역 인구가 28만명이라면
고구려 멸망까지의 인구증가를 고려할 경우, 고구려유민 20만명의 당나라 강제사민으로
한반도에 고구려인 씨가 말랐다는 동북공정의 주장은 허무맹랑한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를수 밖에 없게 된다.
사실상 낙랑 대방에 토착하여 살던 조선인들이나 압록강 유역에 살던 졸본부여족 즉 예맥족이나
민족적으로 같은 족속이었다. 고구려의 평양천도 이후 많은수의 고구려5나부 세력들이
평양으로 흘러들어왔다는 사실도 고려해볼때, 고구려 멸망당시에는 고구려 진퉁 혈통들이
한반도 서북부 즉 평안도 황해도 등지에 최소 팔십만에서 백만가량이 살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또한, 당나라군의 폭압과 이에 대한 저항 그리고 나당전쟁의 격화로 평안도 황해도 등지에 살던
고구려인들 중 대부분은 한수 이남으로 내려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와 함께, 천칠백년전 만주 라마동에 묻힌 부여인의 고인골과 현대한국인이 형질인류학적으로
매우 흡사하다는 중공측의 연구결과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