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기장에서 함북 경흥까지 3,600리이며,
전남 해남에서 경남 기장까지 1,000리이며 ,
함북 경흥에서 평북 의주까지 2,900리 이고,
전남 해남에서 평북 의주까지 3,300리 이니
출처 심제님 운영하시는 카페 대동여지도 해석판에서
조선의 거리에 대해 10리는 5km이다 4km이다 말들이 많다. 어떤 사람이 조선의 기록에 나온 특정한 성의 둘레와 본인이 실측한 둘레를 비교하니 조선초 10리는 6.2km가 나온다고 한다. 아마도 명과 조선은 같은 단위를 썻을 것이다. 조선초기록에 명나라길이는 어떠하고 조선의 길이로는 어떠하다는 기록이 없더라 그런데 지금 중국은 10리에 5km이고 한국은 10리에 4km이다. 이것이 조선말기에 이르러 되었다는 것을 김정호의 기록에서 알수있다.
동쪽은 삭주부(朔州府) 경계까지 1백 16리, 귀성부(龜城府) 경계까지 82리이고, 남쪽은 용천군(龍川郡) 경계까지 60리, 같은 군의 경계에 있는 양책관(良策館)까지 66리, 철산군(鐵山郡)경계까지 79리이고, 서쪽은 압록강(鴨綠江)까지 14리이고, 북쪽은 같은 강까지 2리이며, 서울에서는 1천 1백 86리 떨어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주목(義州牧
대명일통지에는 조선의 압록강은 한성에서 1450리라고 기록되어 있고 대청일통지에는 압록은 750리이다라고했다. 즉 명때는 압록은 요하인데 청떄는 지금 북한의 압록강임을 알수있다. 명나라때 작성된 우리의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광해군때 작성된것으로 천진앞에서 요하까지의 영토가 대부분 청에 넘어갔을때 우리의 경계가 현재의 요하일대일때이다. 의주근처의 철산은 청나라지도에 현재의 요동반도서북지방으로 나온다. 그러니 의주가 요하동쪽임을 알수있고 조선과 명은 10리의 길이를 공유한것으로 이해할수있다. 오히려 조선이 10리가 6km 명이 5km일수도 있는 것이다. 의주부의 동서가 약 2백리라고 하면 대략 서울에서 압록(요하)까지 1400리가 되니 명나라기록과 조선의 기록이 비슷하여 둘다 같은 길이를 공유했다고 볼수있다.
봉경(封境)동쪽으로 양양(襄陽)에 이르기 5백 40리, 서쪽으로 풍천(豐川)에 이르기 6백 리, 남쪽으로 에 이르기 9백 80리, 북쪽으로 에 이르기 1천 4백 70리, 동북쪽으로 경원(慶源)에 이르기 2천 1백 90리, 동남쪽으로 동래(東萊)에 이르기 8백 70리, 서남쪽으로 태안(泰安)에 이르기 3백 90리, 서북쪽으로 의주(義州)에 이르기 1천 1백 40리이다.
동쪽으로 기장현(機張縣)의 경계까지 21리, 남쪽으로 해안까지 15리, 서쪽으로 양산군(梁山郡)의 경계까지 8리, 북쪽으로 양산군의 경계까지 29리이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9백 62리이다
동쪽은 강진현 경계까지 19리, 서쪽은 진도군 경계 벽파진(碧波津)까지 53리, 남쪽은 바다까지 66리, 북쪽은 영암군 경계까지 16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1천 7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해남에서 서울은 1007리 서울에서 의주는 1186리 즉 2193리인데 대동여지도는 무려
3300리라고 한다. 여지승람의 10리를 6.2km 대동여지도의 10리를 4km로 계산하면 얼추 1300km로 양자가 비슷하다.
그럼 두기록이 같은 의주를 기준으로 한것인가?
그렇다면 김정호가 간 의주는 요동반도에 있는 곳이란 말인데!!!
심제님은 일제가 대동여지도의 목판본중 만주부분을 삭제했다고 한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태조,세조시기 조선
청초 조선(고지도에는 조선과 명사이의 경계가 지금의 난하일대이고 명나라시기고지도에 청나라의 근원인 건주여진을 난하상류로 표기합니다. 즉 청나라는 난하상류에서 출발한 부족국가로 서쪽으로 몽골을 치고 동쪽으로 조선을 쳐서 영토를 확장한뒤 명을 정복한것임)
숙종시대 조선
고종때 조선영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