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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08 01:10
[기타] 조선시대 단군제사 기록...
 글쓴이 : 도마
조회 : 2,050  

 조선때의 단군제사를 살펴보자

[성종 3년]

황해도 관찰사 이예(李芮)가 보고하기를


“단군(檀君)께서 신(神)이 되어 구월산(九月山)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사당은 패엽사(貝葉寺)의 서쪽 대증산(大甑山)의 불찰(佛刹)에 임하여 있었다가

... 또 다시 소증산(小甑山)으로 옮겼다 하는데,

곧 지금의 삼성당(三聖堂)입니다...

단군(檀君)과 아버지 환웅(桓雄), 할아버지 환인(桓因)을 일컬어 삼성(三聖)이라 하고...


삼성당의 제사 그릇은 옛날에는 금·은(金銀)을 사용하였는데...



기우제 지내는 제단이 삼성당(三聖堂) 아래 있으나, 설치한 날짜는 알지 못하고...




삼성당(三聖堂)에 환인 천왕(桓因天王)은 남향(南向)하고,

환웅 천왕(桓雄天王)은 서향(西向)하고,

단군 천왕(檀君天王)은 동향(東向)하여 다 위패가 있습니다.

《관서승람(關西勝覽)》에 문화현(文化縣)의 옛 유적을 말하기를,

‘구월산(九月山) 아래 성당리(聖堂里)에 소증산(小甑山)이 있는데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의 삼성사(三聖祠)가 있고...’ 하였습니다."




[성종 19년]


원접사 허종이 중국 사신에게 베푼 일을 보고하다.

" 중국 사신 대표가
단군묘(檀君廟)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는 무슨 사당입니까?’ 하므로
‘단군묘(檀君廟)입니다.’ 대답 하니...
중국 사신 대표가 말하기를, ‘(단군에 대하여) 나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고,
사당에 들어가 절했습니다.
사당 안에 들어가 동명왕(東明王)의 신주(神主)를 보고 이르기를,
‘이 분은 또 누구입니까?’고 하기에,
‘이 분은 고구려 시조(高句麗始祖) 고주몽(高朱蒙)입니다.’고 하니..."



[선조 30년]


예조가 아뢰기를,

"《여지승람(輿地勝覽)》에 보면
‘삼성사 역시 문화현 구월산(九月山)에 있는데 바로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의 사당이다.
봄·가을로 임금이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하는데,
홍수,가뭄이 들었을 때 기도를 하면 응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효종 7년]

영돈녕부사 김육(金堉)이 글을 올리기를,
"단군(檀君)은 동방에서 맨 먼저 출현했던 임금입니다.
세상에 전해지기로는 중국의 요(堯)임금과 함께 왕위에 올라
태백산(太白山)으로 내려와 철옹(鐵甕)에 도읍을 정했다가
패수(浿水) 가로 옮겨 아사달(阿斯達)로 들어갔었는데
인문(人文)을 밝게 편 기초가 여기에서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현종 1년]

윤강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해서(海西) 삼성묘(三聖廟)의 단군(檀君)·환인(桓因)·환웅(桓雄)의 묘를 수리하는 일은 이미 결정됐습니다.
그런데 예관이 와서 제사를 지내어 제사의 격을 높였으면 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예조의 낭관을 보내 일을 하게 하라.”



[숙종 3년]

우의정 허목(許穆)이 글을 올리기를,

"동방(東方) 역사책 22가지를 지었습니다.
대개 동방 구역(九域)은 상고(上古 - 태초.아주 오래전.) 때부터 임금을 두고 나라를 세워
중국 바깥의 딴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단군(檀君)은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리고..."



[숙종 5년]

정유악이 아뢰기를,
“단군(檀君)과 동명왕(東明王)의 사당도 기자의 사당 옆에 있어,
세종(世宗) 때부터 봄가을에 제사를 올렸습니다.
여기에도 전부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좋다고 하였다.



[숙종 21/06/06]

예조(禮曹)에서
황해도(黃海道) 삼성사(三聖祠)에 있는 단군(檀君)의 축문(祝文)을
평양(平壤) 단군사(檀君祠)의 예에 의거하여 ‘전조선(前朝鮮) 단군’이라 쓸 것을 청하니,
임금이 허락 하였다.





[숙종 23년]


이인엽이 해마다 강동(江東)의 단군묘(檀君墓)와 평양(平壤)의 동명왕묘(東明王墓)를 손질하여 가다듬도록 청하자,

임금이 모두 허락하였다.

[영조 15년]

단군(檀君)·기자(箕子) 이하 여러 왕의 능묘(陵墓)를 보수하라고 명하였다.


[영조 16년]


임금이 말하기를,
“우리 동방은 단군(檀君) 이후 기성(箕聖)이 팔조(八條)의 가르침을 폈으므로,

예로부터 예의의 나라로 일컬어져 왔다..."



[영조 22년]

임금이 말하기를,
“단군(檀君)에서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왕조의 능을 매년 가을에 보수하게 하라.
향(香)을 내려주고 제사를 지내라.”
하였다.


[영조 41년]

예조 판서 심수가 임금에게 아뢰기를,
“황해도 구월산(九月山) 삼성묘(三聖廟)의 위판(位版)의 흙으로 만든 것이 많이 훼손되었으니, 마땅히 개조(改造)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부제학 서명응(徐命膺)을 불러 삼성(三聖)에 대하여 물으니,
서명응이 말하기를,
“삼성은 곧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이며,
역사에서 말하는 바 아사달산(阿斯達山)은 곧 지금의 구월산입니다.”
하고, 그 고사(故事)를 심히 상세하게 아뢰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환웅은 곧 단군의 아버지이고, 환인은 곧 단군의 할아버지이다.”
하였다.
서명응이 말하기를,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이 개국한 것이 을유년이었고, 지금 또 삼성묘의 일이 있으니, 마땅히 제사 지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동명왕묘(東明王廟)의 제문(祭文)을 몸소 짓고, 향과 축문을 보내며,

삼성묘의 토판(土版)을 나무 독(?)으로 만들어 덮으라 하고는

독제(?制)를 몸소 그려서 그것을 덮도록 하였다.



[영조 44년]


임금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에도 단군사(檀君祠)·기자전(箕子殿)·삼국의 시조릉(始祖陵)이 있고,
고려에는 숭의전(崇義殿)이 있으니, 아름답고 거룩하다."




[정조 2년]


(서자 차별을 없애자는 집단 상소)

유생 황경헌(黃景憲) 등 3천 2백 72인이 상소하기를,

" ... 이것(서자 차별)은...단군(檀君)·기자(箕子)와 우리 나라 국초(國初 - 조선 초기)의 법도 아닙니다..."


[정조 5년]

단군(檀君)·기자(箕子)와 신라(新羅)·고구려(高句麗)·백제(百濟)·고려(高麗) 시조(始祖)의 왕릉(王陵)들을 보수하는 절차에 대해 지시하였다.



[정조 7년]

단군묘(檀君廟)와 고려의 충신 정몽주(鄭夢周)에게 제사하였다.



[정조 10년]

단군(檀君)의 묘소를 수리하고 무덤 관리인들을 두었다.
승지 서형수(徐瀅修)가 아뢰기를,
“단군은 우리 동방의 맨 먼저 나온 성인으로서...
단군은 동방에 있어서 사실 세상이 끝나도록 잊지 못할 은택이 있는 것이니, 모든 것을 극도로 갖추어 높이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신이 강동(江東)에 벼슬할 때에 보았는데,
고을 서쪽 3리쯤 되는 곳에 둘레가 4백 10척쯤 되는 무덤이 있었습니다.
옛 노인들이 서로 단군의 묘소라고 전하고 있었으며,
유형원(柳馨遠)의 《여지지(輿地誌)》에 기록되어 있으니..."




[정조 13년]

삼성사(三聖祠)를 수리하고 제사 의식을 다시 정하였다.

삼성사는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을 제사하는 사당으로 문화현(文化縣) 구월산(九月山)에 있는데,

(임금이) 친히 제문을 지어 가까운 신하를 보내어 제사하였다.



[정조 16년]

임금이 말하기를

“...우리 동방은 나라를 세운 것이 단군(檀君)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역사책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와 돌을 쌓아 제천(祭天 - 하늘에 제사 지냄)의 예를 행하였다고 하였다..."




[정조 19년]

백제(百濟) 시조(始祖)의 묘이름을 숭렬전(崇烈殿)이라 하였다.

광주 판관(廣州判官) 이시원(李始源)이 아뢰기를,
“본부(本府)에 백제 시조의 사당이 있는데 아직도 그 이름이 없으니...현판을 거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예컨대 기자(箕子)의 숭인전(崇仁殿)이나
단군(檀君)과 동명왕(東明王)의 숭령전(崇靈殿)이나
신라(新羅) 시조의 숭덕전(崇德殿)이나
고려(高麗) 시조의 숭의전(崇義殿)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유독 백제 시조의 사당에만 아직껏 이름이 없다니...
숭렬전(崇烈殿) 이라는 칭호로...
현판을 거는 날에는 고울 수령을 보내어 제사지내도록 하라.
제문(祭文- 제사때 읽는 글)은 내가 직접 짓겠다.”

하였다.



[정조 23년]

지중추부사 홍양호(洪良浩)가 아뢰기를,

“우리 동방에 나라가 있게 된 것은 상고 시대로부터인데
단군(檀君)이 맨 먼저 나오시고...군자(君子)의 나라라고 불리기도 하였으니...

...유구(琉球 - 오키나와)에서 우리 조선에 조공을 바쳐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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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말살정책중에 중요한 행위가 ... 제사금지 /창씨개명 /역사교육금지 /열등 우매화 ...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
 
제국주의 중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온갖 만행을 저질러온 일본이 한 나라의 역사저서를
말살 왜곡 약탈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지도 모른다 ...
문자는 저항이 없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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