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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9-24 17:06
[중국] 중국에게 한국이 흡수되지않은이유
 글쓴이 : 레드헷
조회 : 7,259  

중국에게 한국이 흡수되지않고
끝까지 살아남을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중원에도 많은 나라가 있었지만
흡수되었는데. .
중국이 흡수를 않한건지 못한건지 궁금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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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phan 14-09-24 17:14
   
저는 문화라고 봅니다.

고유의 문화가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이므로 동화시키지 못한거죠.
사실 북방에 수많은 기마민족들과 몽고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물 흐르듯 흐르는게 문화인데 ...

물론 이것만 가지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우리고유의 문화(언어 철학 시대정신등등)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네요.
디노 14-09-24 18:11
   
흡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황당하네요...
왜 우리 역사를 그렇게 과소평가하세요?
흡수되지 않은 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흘려 싸웠던 선조들 덕분이죠...
그리고 우리 뿐만이 아니라 베트남이나 몽골도 흡수되지 않았죠....
안타깝게도 드넓었던 영토가 줄어들긴 했지만
흡수되어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한 님의 글은 어처구니가 없네요...

중국이라고 다 강성한 게 아니에요.
이웃나라를 집어 삼킬 수 있는 힘이 되는 건 통일 왕조인데...
한나라 때 고조선이 패해 한사군이 설치되었지요..
수나라는 고구려에 패해 망했고, 당나라는 신라의 도움으로 고구려, 백제를 이겼지만 결국 신라군에 패해 도망갔어요...
요나라도 강감찬 장군에게 패했고...
몽굴족이었던 원나라만 우릴 이길 수 있었죠...그것도 30년 동안 전쟁을 해서 말이죠...
중국의 왕조들도 이러한 역사를 알기에 함부로 공격해 오지 못한 겁니다.
청나라는 만주에 살다보니 우릴 워낙 잘 알아서 이긴 것이지만,
만주족이라고 늘 우리보다 강했던 게 아니고, 고려 땐 우리보다 약했죠.
나라는 강할 때도 있고, 약할 때도 있으니 만주족이 우리보다 늘 강하다고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역대 중국의 한족 왕조가 자력으로 우릴 이긴 건 한나라때 뿐이에요...
그 이후, 명나라가 들어서자 이성계가 싸워보지도 않고 사대를 하는 바람에 님과 같은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생겨난 모양이네요.
하지만 우린 중국이 함부로 넘볼 정도로 그렇게 나약했던 나라가 아닙니다.
     
원전이 14-09-24 19:35
   
질문자는 우리나라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에 독자문화를 유지하고 흡수되지 않았다는 의도로 질문한거 같은데요..  .. 뭘 잘모르는듯
          
디노 14-09-25 03:41
   
저 말이 왜 이상한지 정말 모르겠어요?

중국은 왜 한국한테 안 먹혔나요?
우리는 왜 중국을 먹지 않았을까...그런 상상은 왜 안하세요?
이런 상상은 하지 않으면서 왜 반대의 상상만 하세요?

중국에 흡수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라니...
이 말에 정말 이상하지 않다고 느꼈다면 님들도 참 어처구니가 없네요.
     
정크푸드 14-09-24 22:50
   
중국이 흡수를 안한건지 못한건지 궁금하다 한것을 보면 '흡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어떤 이유로 흡수되지 않았는지 그저 그 이유를 묻고 있는걸로 보이며, '흡수되어야 한다는 걸 전제로' 말하고 있지도 않은 것 같은데요.
대박행운 14-09-24 18:14
   
자기정체성이 강하면 흡수되지 않습니다..
일차원적으로 북한이 중국에 흡수될것 같지만
남한이 흡수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자기정체성은 상대방이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 우월성을
극복합니다...아무리 강해도 전국민을  죽일수 없기때문입니다..
민족주의 애국심 으로 똘똘 뭉친나라에게는 이길수없습니다..
굿잡스 14-09-24 18:44
   
서토를 보면 도리어 기마문화권에
탈탈 털린 역사죠. 흉노제국 외에 남북조시대를 연 선비족 북위, 거란 요, 신라계 여진족과 발해인 연합의 대금
, 후금이고 이들 정복왕조는 만주일대에서 뻗어나가
대국을 세운 정복왕조사죠. 몽골도 고구려시대 실위로 만주일대에서 살다
서진해서 이후 서토를 털고 원제국을 세웠고.

이런 만주일대 세력은 우리 부여,고구려시대에
휘하부용세력이거나 신민들이였고 그에 앞선 고조선문명권시대에는 뿌리에서 갈라진 지파들이나 상당한 친여성과 교류를 보이던 족명들이죠.
mymiky 14-09-24 18:53
   
1.지리적인 요인(우리가 산동반도에 있었다면, 이미 중국땅이 되었겠죠.. 근데,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상
중원과는 일단 서해바다가 막아주며, 위로는 만주와 요동땅이 어느정도 중간 완충지 역활을 해주었습니다)

2. 조공(대부분의 경우엔 중국왕조와 조공으로 양국의 안정적인 기반을 단단히 쌓아두는 외교노선를 펼쳤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3.계륵(우리나라는 안 먹자니 아깝고, 먹자니 골때리는 지형과 민족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중국으로써도 우리나라는 일개 소국이고 먹는게 쉬울거 같으면서도, 끝내 못 먹은건 그때문입니다.
일단 우리나라에 침입해오면, 온통 산지에 의병 게릴라들이 들어차있고, 그들로써도 식량이나 보급물자 운반선도 길어지는등.. 생각외로 만만한게 아니였거든요. )

그러니깐, 걍..현실적으로 조공관례에 따라 퉁-치는게 그들로써도 체면서고, 우리도 그편이 훨씬 편하고,,
양국간의 효율적이고 장기적으로 안정된 방법이였다고 봐야죠.
아비요 14-09-24 19:03
   
요동과 만주자체가 천연의 방어막이었죠. 애초에 중국은 바다에 쥐약이라 바다쪽으로는 별로 뻗어나가지 못한 상태였고 만주는 커녕 요동만해도 이성량이 아니었으면 제대로된 행정조직이 되기 힘들었죠. 요동이 그런데 만주나 한반도를 노릴수가 없었죠.
그리고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만주지방을 봉금시켰는데 그러면서 이 곳이 조선과 청나라가 섞이는 것을 막는 지형적인 방어막이 된것임. 그래서 지금도 간도라고 부르는 것이고..
그 외에도 조선은 이미 충분한 인구와 문화를 가진 독자적인 지역이었으니, 사실 어느나라라도 함부로 합병하기 힘든 지역이었지요.
동북3성을 이미 차지했던 중국입장에서는 한국(난ㅁ한이든 북한이든)을 굳이 공격해서 오히려 동북3성의 영토를 잃을 가능성도 생기는데 지금이야 1억 인구의 동북3성이지만 그당시만해도 조선인구보다 훨씬 작은 인구에 황량한 지역이었던걸 감안하면 공격할 여력이 안된것임.
굿잡스 14-09-24 19:04
   
이전에도 몇번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중국이라는 게 뭔지부터 정의를 제대로

하고 봐야 할 것입니다.

요순 조차도 동이족 어쩌고 하는 마당에 동서양 문화

교류를 촉진시킨 원은 누구의 역사이고

도리어 명나라 시절에는 수학은 조선보다 퇴보했습니

다. 특히나 명은 주판등 너무 단순한 산술적

계산에 치우치다보니 도리어 조선에서 보이는 독창적

수학저서나 과학의 발달보다 정체,퇴보된 시기였고.

그기에 기원전 2세기경 한나라 시대에 서서히 발전한

비단길에 비해 이미 북방의 초원길은 유라시아와

동북아 고조선 선대 만주일대로 더 빠르게 촉진 교류

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고 이는 채색토기만

봐도 이미 만리장성밖 요하 발해일대의 토기가 서토

내륙의 황하 앙소문화보다 500여년을 앞서 나오죠.

그기에 고조선의 비파형 동검은 매우 정교한 구리, 주

석, 아연등 합금조합이지만 서토의 경우는

형태도 다르지만 단순한 청동제로 발달에서도 미치지

못하는 기술력을 보여줍니다.

이외에 실제 하남 박물관의 동이족 관련 기록만 봐도

<깃털달린 활과 화살 발명, 문자창조, 청동기제조, 철

을 단련하였으며, 배(舟)와 수레(車)를 만들고, 농업

발전과 치수(治水)를 이루었다>고 말하고 있거든요.

(봉황등 새를 토템신앙으로 하거나 실제 수레의 경우

도 진시황의 마차의 원형이 서토 내륙이 아니라 장도

라는 발해만 일대에서 발견되었음)

만리장성밖 만주 요하일대에 세계 4대문명에 버금가

는 도리어 황하 앙소문화보다 더 앞선 신석기

후기에 이미 정교한 직업의 분화와 신분제를 알 수 있

는 다량의 옥기류부터 대규모의 인력 동원을

알 수 있는 100여미터의 거대제단이나 지중해 도시국

가처럼 신전을 중심으로 하는 여신상과 신전및

여기저기 상당한 크기의 도시형 촌락등이 발견되는

요하 발해문명을 봐도 이미 고조선 선대 문명지는 독



적 원시문명과 이후 빠른 정치체의 국가단계로의 진

입을 알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게 뭘 말하냐 하면 우

리가 아는 단순히 일방적 서토문화 수용이나 서토에

서 일방적 문화가 우리에게 전파되었다는 식은 대단



왜곡된 고정관념이라는 것이죠.>

이미 중국이라는 자체가 추상적, 모호한 개념의 역사

와 공간성에 문화도 여기 저기 짬뽕이지 이런 상황에



일방적 쭝국문명 우위론이나 태동론도 전혀 맞지 않

는 다원적 문명관과 교류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gagengi 14-09-24 20:12
   
한민족이 갈라져 중국을 정복하고 식민지배해왔기 때문입니다. 원래 한국사였던 금청사를 한국사로 복구해야 저런 시덥지 않은 질문이 나오지 않습니다. 중국이 한국에 흡수되지 않고 살아남은 이유는 뭘까요?

금청사 한국사복원에 대한 식민빠들의 주장과 반박 1: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62706
금청사 한국사복원에 대한 식민빠들의 주장과 반박 2: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65399
전략설계 14-09-24 21:14
   
참 좋은 질문이네요..
역시 '힘'이죠. 무력입니다.
먹을꺼리는 별루 없는데 힘만 든다면 포기할 것이고..
먹을꺼에 비해 따먹기 쉽다면 치는 것이죠.

고구려 치다가 수나라 망한건 다 아실거고.
당태종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고..
당고종때 신라의 도움과 고구려 내분으로 간신히 고구려를 쳤지만.
참 어렵게 어렵게 고구려를 멸망시켰지만, 그땅은 그대로 발해로 넘어가고 거란으로 넘어가,
한반도 흡수하고는 관련이 없었죠.

당이 한번 한반도를 먹을라고 했지만,
5호16국시대를 정리한 수당이 고구려를 친 가장 큰 목적은,
중원 주변에 위협이 되는 고구려를 정리함이라, 한반도 자체가 목적은 아니어서,
고구려 치듯이 당이 온 국력을 다한 나당 전쟁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신라가 이겨서 중국에 흡수되는 첫번째 위기는 넘겼죠.

고려시대때 요성종의 침입은..
한반도를 먹자는 것이 아니라, 남송을 지대로 먹기 위해 불안정한 배후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는데..
고려도 이기지 못해서 지풀에 꺾여서, 힘으로 중원세력을 막아내,
먹을 것도 없는 한반도 치다가는 국력이 쇠해진다는 것을 보여줬죠.

금은 세워지기 직전에 윤관한테 디지게 맞고..
전성기 요나라가 고려 침략하다가 국력이 쇠해진 것을 알고,
고려에게는 군신관계란 말도 못 꺼내고 형제관계니 머니해서 몸 사립니다.

몽고도 주전력을 고려에 거의 투입한 적이 없고, 중원의 송이 목적이긴 했으나..
작은 나라가 수도을 섬으로 옮기고 총력전을 할라는 통에..
수나라의 전철, 요나라의 전철을 밟기 싫어서 힘으로 정복한다기 보다는,
소수 기병 보내서 찝적대는 수준이었죠.
그래서 교과서에 몽고가 몇만 쳐들왔단 소리가 없죠. 병력규모도 잘 안나오고.

명은 고려의 요동정벌에 깜놀했을겁니다.
한족 국가 주제에 몽골애들 했던거 그대로 따다한다고 고려에 철령위 요구하다가..
고려가 맞불로 최영이 요동정벌로 나오니까..
그뒤에 철령위 요구 조용해지고.. 한반도 영토욕은 알아서 찌그러집니다.
우리 입장에서도 한번 잃어버린 땅을 원 위치하는 데에는 깡과 용기와 피가 필요합니다.
이성계식으로 여름이라 안돼 어째서 안돼 그 정신이면, 지금 평안도 함경도는 중국땅일겁니다.
되든안되는 깡이 필요할 시기가 있지요.
그래서 '최영장군'을 좋아합니다.

청이 조선 쳐들어오긴 했지만, 영토요구나 이런건 없었고.. 갸들은 중원을 잡싸게 먹는통에..
조선전기 내내 조선눈치만 보고.. 좀 불쌍하게 명하고 사이에 껴서..
잊을만 하면 한번씩 조선에서 1만 정도 들어가서 여진마을 불지르고..
금나라 망한 이후로는 여진이 고려나 조선에 기죽고 살아서 그런건지.. 조선의 영토욕은 없었죠.
대신 이것들이 야금야금 지들 민족 기원이라고..
백두산 탐사하고 여진도 아니었으면 관심도 없을 백두산인데..
명나라와 조선의 국경도 압록강이 아닌 그 위에 수십킬로 위로..
완충지역으로 조선이 쓰지 않을뿐이었는데..
만주의 여진이 중원으로 들어간다음부터 조선도 몸 사리고..
강희제때 백두산으로 청 탐사대 들어와도 말 한마디 못하고,
숙종은 되려 탐사에 항의하는 조선인들만 처벌이나 쪽팔린 일이 있었죠..

둘러봐도..
우리가 무기력한 상태인 원나라때 합병 위기가 있었던 것 외에는..
고구려 조상들이 워낙 수나라, 당나라와 끈질기게 짤 싸웠고..
고려 조상님들이 기세등등한 요나라를 국력을 쇄하게 만들고,
몽골이 세계정복을 해도 그런대로 쉬이 보지 않을만큼 오래 버텨줬고..
한족 명나라가 몽골 따라해보려고 고려 영토 요구하는 상황에서 최영장군이 망해가는 왕조지만
마지막 끝발로 요동 정벌 나서는 기세에.. 명나라때 조선 영토에 대해 더 이상 찝적거리진 않았네요.

고구려, 고려 조상님들이 중원이나 변방 오랑캐 세력들 뇌리에 남을만큼..
쉽게 먹을 땅이 아니다는 인식을 준 덕이라고 봐지네요.
fininish 14-09-24 21:30
   
우리나라가 중국을 못먹어서입니다.
중국을 한번 통일했던 진나라도 원래 이민족이었고 선비니 어쩌니 하는 이민족도 다 중국 점령했다가 정체성을 잃었죠.
중국의 산타클로스 만주족도 그러죠. 중국을 집어먹고 영토 확장했는데 나중에는 자기들 고향을 들어 바친꼴이 된겁니다.
검은바바리 14-09-25 00:44
   
그딴
기분 나쁜 상상은 왜 하냐고?

짜증나는
글 이네
전략설계 14-09-25 07:29
   
원래 한족들이 살던 중원이라고 하면,
지금 중국영토에 절반도 안됩니다.
북경이 괜히 북경이 아닙니다. 북경 위 지역이 한족의 영토가 아니었습니다.
미련한 여진족이 한족들 좋은 일만 시켜놓고 사라졌습니다.

중원의 한족 주변에 있던..
토욕혼이니 서하니 티벳이니 거란이니 여진이니 타타르니 위구르니 돌궐이니,
다 없어졌습니다.
중원의 한족들에 다 예속이 되어버렸고,
우리만 남았습니다.

베트남이야 동남아로 지형적으로 기후적으로 한족들이 모기 물려가며
정글 들어가서 살기 어려운 곳이어서, 황제라고 큰 소리치고 살았던 것이지..
지형이나 기후의 덕을 많이 봤지, 여진 거란같이 군사적으로 뛰어나서 생존한 것은 아니었죠.

세계 최대 국력의 중원 한족들.. 세계 최강의 초원지대 기병 부족들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살아 남았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죠.
흉노시절부터 중국애들이 치를 떨던 몽골 하고 둘만 남았는데..

지정학적으로 본다면, 중원에서 먼 외퉁이로,
평원이 아닌 산이 많았던 덕이라고도 봐집니다.
베트남은 더운 기후와 정글이라면, 우리는 산이 많아서 성을 쌓으면 소수로도 적을 상대할 수 있었죠.
또 산이 많았기 때문에 점령해도 점령군이 가져갈게 별루 없죠.
산이 많아서 풍요롭다기 보다 점령해도 얻을게 별루 없다는 것도 한몫했죠.
seharu77777 14-09-25 08:40
   
제 생각에는 중국이 우리나라를 다른 민족과는 달리 동등한 문명권으로 수천년간 인정해왔기 때문에 함부로 정복을 도모하지 못했던게 아닌가 합니다~  고대 중세시절 그들이 어떤 역사관을 가졌는지 유추해보면 선비의나라 평생 한번 가고싶은 나라 문화수준과 의식수준이 높은나라 등등 많은 평가가 있었고~ 실제적으로 한족국가가 침략한 경우는 드물지 않았나요? 대부분 북방의 동이혈통의 국가들이 침략했던 듯 한족은 어떻게 보면 고대부터 우리를 높게 인정해 왔습니다~ 제가 중국에 좀 살았는데 중국사람들은 조선을  건드리면 나라가 망한다 이런 얘기들 한적 있었습니다 그만큼 쉽지않은 존재죠 지금도 고려봉자 까오리빵즈 ㅋㅋㅋ 천년이 지나도 핏속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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