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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1-19 22:29
[중국] 고구려·발해사가 중국 역사라면 왜 1000년 동안 압록·두만강 이북 방치했겠나
 글쓴이 : 똥파리
조회 : 3,920  

1. 지난 회에 청(淸)과 조선의 국경제도에 관해 살펴보았다. 청과 조선의 국경 사이에 일종의 비무장지대인 무인공광지역이 존재했다는 점, 이러한 무인공광지역이 1627년 정묘호란의 결과물인 강도회맹에 의해 처음 설정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최광의의 간도라고 할 수 있는 이 무인공광지역이 전쟁에 패한 조선의 영토에서 할양되었을 것이라고 추론해 보았다. 이러한 추론은 간도영유권과 관련하여 중국에 불리한 내용이다. 무인공광지역인 간도가 원래 조선의 영토였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에 반발할 것이다. 과연 중국은 어떤 논리로 반박해 올 것인가?

2.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동북공정이다. 중국 길림성 집안(集安)에 있는 고구려 28대 왕 박람관 앞에 2012년 6월 28일자로 세워진 한글 안내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맞춤법이나 어투가 다소 어색하지만 원문을 있는 그대로 옮겨 보기로 한다.

‘고구려는 조기 중국 북방의 소수민족 정권입니다. 고구려 나라가 그의 건립 및 발전 과정 중에 혈액 및 불, 영혼 및 육체 간의 싸움을 거쳤습니다. 또한 많은 전기적인 색채 짙고 신화 같은 이야기를 가졌습니다. 고구려 28대 임금의 집권 책략, 평생 전적 및 신기적인 인생이 고구려 역사에 낯내게 보탰습니다.

기원전 37년, 북부여의 왕자 주몽이 죽본천(현 랴오닝성 행인현의 안)에서 수도를 세우고 나라를 고구려로 명명했습니다. 단지 22살 나이로서 주몽이 고구려 나라의 창조자가 되었습니다. 고구려 28대 임금 중 대부분이 지덕을 겸비한 사람입니다. 모본왕, 차대왕, 봉상왕, 민중왕과 안장왕 등 소수 임금은 평범하고 포부가 없지만 대부분 임금이 나라 강성, 영토 확장 면에서 많이 발전시켰습니다. 추목왕, 유류왕, 대주류왕, 태조대왕, 광개토왕과 장수왕 같은 임금 등이 고구려 나라를 점점 강성하게 만들고 아주 뛰어납니다. 그들은 ‘원교근공’ 책략을 시행하고 주변 부여, 백제 등 많은 강국을 전승했습니다. 심지어 동한, 위, 연 등 강국까지도 맞서서 랴오닝 동부 등 지역을 빼앗았습니다. 19대 임금(즉 광개토왕)이 정권을 잡은 기간에 고구려가 남쪽에 백제를 공격하고 북쪽에서 부여를 침범하고 서쪽에서 비려를 정토하고 여러 번에 왜구와 전쟁했습니다. 압록강 양안 및 한강 이북 넓은 지역에서 군림했습니다. 나라는 북쪽으로 송화강, 동쪽으로 신라, 남쪽으로 한강, 서쪽으로 랴오허강, 동서 길이 2000여리, 남북 넓이 천여리, 350여만의 인구(주로 고구려 사람) 수를 가진 북방 새로 일어난 강국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이때는 고구려 나라 최고 전성기였습니다.

고구려 정권은 28대 임금 전승을 경과하여 역사의 길고 긴 과정에서 705년을 넘어 동북아 문명사의 눈부신 문장을 창조했습니다. 기원 668년 당나라에서 일어난 국내 전쟁으로 고구려 정권이 철저히 소멸했습니다. 고구려 정권의 발생이 필연적이고 그의 소망도 필연적입니다. 지금 고구려 역사의 베일을 벗겨도 신비로웁니다. 그러고 나서 고구려 나라의 역사와 고구려 28대 임금의 인생 전기가 역사책을 통해 영원히 전해집니다.

고구려 28대 임금 소개하는 목적은 사람들이 역사를 이해하고 파악하고 전승하시기를 바라며 고구려 세계문화유산이 영원히 빛나게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중국이 굳이 이런 한글 안내문을 세워둔 이유가 무엇일까? 동북공정의 핵심은 고구려가 중국 소수민족 정권이라는 것이다. 위 안내문이 ‘고구려는 조기 중국 북방의 소수민족 정권입니다’라고 시작하는 것은 그런 연유이다. 우리가 안내문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668년 당나라에서 일어난 국내 전쟁으로 고구려 정권이 철저히 소멸했습니다’라는 문장이다. 당과 고구려의 패권경쟁을 국내 전쟁으로 묘사한 것은 고구려가 중국의 소수민족 국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고, 고구려 정권이 철저히 소멸했다는 것은 발해와의 연관성을 차단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동북공정의 또 다른 산물들을 살펴보자. 2004년 7월 1일 제2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을 기념하여 중국이 발행한 기념패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다.

‘朱蒙 公元前三十七年在五女山建立中國少數民族高句麗第一都城(주몽 공원전삼십칠년재오녀산건립중국소수민족고구려제일도성)

주몽 기원전 37년 오녀산에서 중국 소수 민족 고구려 제1도읍을 건립하다.’

또 길림성 길림시에 있는 용담산성 입구에 세워진 4개의 안내판 중 하나에는 ‘高句麗人幷非朝鮮人(고구려인병비조선인, 고구려인은 결코 조선인이 아니다)’이라는 제목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고대 동북에는 상(商), 동호(東胡), 숙신(肅愼), 맥예(貊穢) 같은 4개의 큰 종족이 있었다. 고구려는 과연 어떤 종족에서 비롯되었는가? 많은 연구자들의 관점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최근 연구에서 고구려는 은(殷) 또는 상(商) 계통으로 확정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옛 조상이 남긴 단순한 말귀가 아니고 수많은 발굴 가운데서 찾아낸 것으로 문헌과 유물을 아울러서 나온 인식이다. 몇몇 학자들은 이미 고구려 문화와 은상 문화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 주목했으며, 아울러 저작과 논문에서 거듭 주장하였다. 길림성 집안 경내 고구려 무덤벽화 가운데 용과 뱀의 그림, 기악비천, 복희여왜, 신농황제 및 4신 같은 그림과 형상은 염황(炎黃)문화의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많은 역사 문화의 구성 요소들이 고구려인은 상인에서 나왔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고구려는 상인이 건국하거나 상인이 중원으로 들어가기 전후 동북방으로 옮겨온 한 종족일 수 있다. 고구려의 근원은 상인으로 오제(五帝)계통이고 염황문화의 후예이다.…’

3. 이처럼 중국의 동북공정은 단순한 이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어엿한 현실이다. 중국 당국은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에게 ‘조선족의 조국은 중국이다. 조선족은 중국 민족이다. 조선족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다’라는 3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쓰인 현재의 중국 역사책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실려 있는 것일까? 중국 변강사지연구중심(邊彊史地硏究中心)에서 변강총서로 린룽구이(林榮貴)가 주편하여 발행한 ‘중국고대강역사’에 실려 있는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진한시기의 전국강역은 중앙정부가 개창한 통일관할구역을 주체로 하고, 통일관할구 둘레에 다시 기타 민족관할구와 민족지구가 있어 중국 역사상 통일적 다민족국가 초기 판도의 구조와 격식을 세우고 다졌다.

통일된 진조(秦朝) 관할구역 주변 동북지구에 조선·고구려·옥저·숙신·부여·동호, 서북지구에 흉노·정령·격곤·호갈·월씨·오손·서역 성곽제국, 서북청장고원지구에 강(羌), 서남지구에 진월 등의 민족정권 관할구와 민족분포구가 진대 전국 기본판도를 구성하였다.

서한 시기의 전국강역은 서한왕조 관할구역, 북부에서 서북에 이르는 선비, 흉노, 정령, 호갈, 견곤 등 민족정권의 통제구역 및 동북의 읍루(숙신), 옥저, 부여 등 민족활동지구, 서부 청장고원 당모, 발강 및 기타 제강의 활동지구를 포함한다.

한이 기원전 108년에 조선을 멸망시키고 진번·임둔·현도·낙랑 4군을 두었는데, 4군은 한반도 대부분을 포함하였다. 낙랑군은 경내의 옥저, 예족을 관할하고 현도군 관할의 고구려는 북쪽 경계가 부여, 숙신 등과 서로 접하였고, 숙신은 부여에 신속하였고, 부여는 현도군의 관할에 속하였다.

발해는 당대에 변강민족정권의 관할구역 중에 동북지구의 속말말갈 등이 세운 정권으로 남쪽으로 조선반도 용흥강과 대동강에 이르러 신라와 경계를 삼았다.’

4. 우리가 세계사 교과서에서 배우는 중국 역사와는 완전히 다른 관점이다. 이러한 중국의 역사 서술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관점에 기초한 것이다.

2008년 7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의 리성 주임은 ‘한반도 사람들도 중국이 역사상 하나의 통일적 다민족국가이고 중화민족(中華民族)이 다원일체(多元一體)라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것은 중국이 한족(漢族)만의 국가가 아닌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국가로서 56개 민족이 어우러져 하나의 중화민족을 형성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독특한 역사관에 기초한 것이다.

한족이 세운 국가를 중국과 동일시하는 것은 봉건정통주의 사상으로 일종의 대한족주의(大漢族主義)적 표현으로 척결되어야 한다. 중국 역사는 중화인민공화국 경내 각 민족의 역사이다. 여기서 말하는 경내(境內)는 중국 현재의 강역을 가리킨다. 중국은 하나의 통일적 다민족국가이다. 중국의 역사는 중화인민공화국 경내의 각 민족이 공동으로 창조한 역사로서 일찍이 광대한 영토상에 생존·번영하였으나 현재는 소멸된 민족의 역사도 포함된다.

1949년 10월 1일 공산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사회주의를 사상적 기반으로 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은 나라와 민족이라는 개념이 계급 착취를 위한 도구 개념으로서 종국적으로 철폐되어야 한다는 이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이념은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 내에 존재하는 모든 인민을 평등하게 다루는 역사서술을 요구하게 된다.

중화인민공화국 이전의 중국 역사서술은 오로지 한족 중심의 역사서술이었다. 이러한 한족 중심의 역사서술 방식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새로운 국가 이념을 반영할 수 없었다. 한족과 여타 민족을 구분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우할 수 있는 개념이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다. 한족을 비롯한 55개 소수민족이 하나로 총화되어 중화민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중화민족이라는 개념 안에서는 56개 민족이 대등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이므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 또한 한족을 중심으로 서술되어서는 안 된다.

5. 하지만 기존 한족 중심의 역사서술 방식을 중화민족을 매개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관점에서 새로 서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 새로운 역사서술 방식이 대두되는데 크게 두 가지 방식이었다. 

하나는 중국은 자고 이래로 통일적 다민족국가였다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영토가 기나긴 역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관점이었다. 전자를 ‘자고이래설(自古以來說)’, 후자를 ‘점진형성설(漸進形成說)’이라고도 한다. 자고이래설이나 점진형성설 모두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기초하고 있으며 현재의 중국 영토를 중심으로 역사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다.

6. 이러한 역사서술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중국의 변강사지연구중심이다. 변강사지연구중심은 1983년 중국 사회과학원 직속으로 설립되어 서북공정, 서남공정, 동북공정, 대만공정 등을 벌여온 기관이다. 이들 공정들 모두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관점에 기초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고구려사를 한국사(韓國史)가 아닌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로 보는 동북공정은 고구려를 고조선과 분리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앞에서 본 용담산성 안내판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몇 년 전에 나온 ‘중국동북사’ 1권 6장에는 여러 문헌자료를 인용하여 ‘고구려는 고조선이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한서(漢書) 지리지에는 ‘현도, 낙랑은 한나라 무제 때 설치되었는데 모두 조선, 예맥, 구려 같은 오랑캐이다’라고 되어 있다. 조선과 구려를 함께 쓴 것은 고조선과 고구려가 당시 두 개의 서로 다른 부족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후한서’ 고구려전에는 고구려 남쪽과 조선이 맞닿아 있다고 나와 있어 고구려는 당시 조선을 영유하지 않았고 조선도 고구려를 포함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앞 세대 사람들이 일찍이 한 번 위씨조선에 예속된 적이 있지만 그것은 기원전 128년까지로 60∼70년 정도밖에 안 된다. 중원 정권에 신복한 600∼700년이란 시간에 비하면 차이가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학자들은 모두 고구려족과 그 조상들은 고조선과 지리상으로 보나 정치상으로 모두 연대와 종속관계가 확실하지 않다고 인정한다.

고구려가 고조선을 계승한 나라가 아니라 고조선과 별개 병렬관계에 있던 나라라는 취지이다. 동북공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층 더 발전하여 고구려를 세운 민족의 뿌리를 한족(漢族)과 동일시하는 것으로 발전하고 있다. 동북사범대학의 리더산(李德山) 교수의 주장이다.

구(句)와 갈(葛), 개(介)와 고(高) 등이 다 같은 쌍성자로 구(句)는 곧 고(高)이며, 개(介)는 중국 상고시대 강(姜)씨 성인 염제의 후손이다.

그는 고구려가 산동반도에서 건너왔으며, 상(은)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의 한 부락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집안시에 있는 환도산성 전시관에서 판매되고 있는 겅톄화(耿鐵華)가 저술한 ‘중국고구려사’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요서지방에서 발생한 홍산문화가 서쪽으로 가서 은나라를 세우고, 동쪽으로 옮겨와 고구려와 부여 같은 나라의 기원이 되었다.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로서 중국 문명의 기원으로 일컬어진 황하문명보다 무려 1000년이나 앞선 홍산문화가 발굴되면서 중국 상고사에 일대 혼란이 초래되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홍산문화는 중국 만리장성 밖 북동부에 존재했던 신석기시대의 문명이다.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관점에서 볼 때 홍산문화를 포괄하는 역사서술이 불가피하게 되는데, 겅톄화의 위와 같은 역사 서술은 홍산문화를 중국 문명의 원류로 보면서 동시에 고구려를 중국 역사로 포괄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사에 한정되지 않고 또한 발해가 말갈족이 세운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은 고구려의 유민이 아니라 말갈 출신이며 나아가 말갈족 또한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라는 것이다.

7.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중국의 동북공정은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 역사로 둔갑시키는 작업이다. 이러한 동북공정과 간도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우리는 조선과 청 사이에 존재하던 무인공광지역이 정묘호란에 패한 조선의 영토에서 할양되었을 것이라고 추론한 바 있다. 이러한 추론은 동북공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동북공정에 의할 경우 이 지역은 원래 중국 영토라는 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그 논리구조는 다음과 같다.

8. 고구려의 최대판도는 한강 이북까지였고 발해와 통일신라의 국경은 대동강과 용흥강이었다.

이는 중국 영토가 고구려 때에는 한강 이북까지, 발해 때에는 용흥강과 대동강까지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당연합을 통해 고구려를 멸하고 한민족(韓民族)을 통일한 통일신라는 당을 배신하고 몰아내지만 중국의 소수민족국가인 발해가 건국되면서 대동강과 용흥강을 국경으로 삼게 된다.

이후 한민족은 점차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우선 고려의 천리장성이 그것이다. 고려 덕종 2년 1033년부터 정종 10년 1044년까지 축성된 천리장성은 한반도 서쪽 압록강 어귀로부터 동해안의 도련포를 잇는 것이었다. 발해가 쇠한 틈을 타 신라의 뒤를 이은 고려가 영토를 북쪽으로 확장해 온 것이다.

한민족의 북방정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조선조에 이르러 압록강, 두만강까지 진출하게 된다. 1443년 압록강 상류지역에 설치된 4군과 1449년 두만강 하류지역에 설치된 6진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 비로소 한민족(韓民族)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북방한계선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정약용의 다산시문집 제15권 ‘강계고서(疆界考序)’는 이러한 사실을 잘 기록하고 있다.

조선조가 일어나서는 함경의 남쪽과 마천령의 북쪽을 차츰 우리의 판도로 끌어들였고, 세종 때에는 두만강 남쪽을 모두 개척하여 육진을 설치하였으며, 선조 때에는 다시 삼봉평에 무산부를 설치하여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을 삼았다.

두만강 북쪽은 곧 옛 숙신(肅愼)의 땅으로서, 삼한 이래로 우리의 소유가 아니었다. 두만강과 압록강이 모두 장백산에서 발원하고, 장백산의 남맥이 뻗쳐 우리나라가 되었는데, 봉우리가 연하고 산마루가 겹겹이 솟아 경계가 분명치 않으므로 강희 만년에 오라총관 목극등이 명을 받들어 정계비를 세우니, 드디어 두 강의 경계가 분명해졌다.

지금 저들의 땅과 우리 땅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곳을 상고해 보면, 연하 지방에 군·현·보·위가 있지는 않으나 두만강 북쪽은 바로 저들의 영고탑부내 혼춘 와이객이고, 압록강 북쪽은 바로 저들의 길림부내 책외 번지로서 흥경과 서로 마주보고 있다.

9. 우리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다. 중국의 이러한 논리에 대해 우리는 뭐라고 반박해야 할까? 무엇보다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가 아닌 한민족(韓民族)의 역사라고 반박해야 할 것이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맥을 이은 한민족의 역사이며, 발해는 고구려의 유민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나라로서 한민족(韓民族)의 국가라는 것이 우리가 배운 역사이기 때문이다.

10. 이에 대해 중국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되받아치고 있다. 

첫째, 나당연합 당시 당과 신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대동강 이남은 신라에, 그 이북은 당에 귀속시키기로 합의하였다. 만일 고구려가 한민족(韓民族)의 국가였다면 신라가 대동강 이북을 당에 귀속시키기로 합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만일 발해가 한민족의 역사라면 발해가 멸망한 이후에도 이 지역에서 한민족이 활동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 고려의 북방한계선인 천리장성은 압록강 하구에서 도련포에 이르는 것이었고, 조선의 최대 판도는 압록강과 두만강이었다. 926년 발해 멸망 이후 지금까지 한민족의 북방 최대 영토 판도는 압록강·두만강 선인 것이다. 무려 1000년이 넘는 세월이다. 발해의 영토가 한민족의 영토였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11.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중국의 주장처럼 고려와 조선은 압록강 두만강 이북 지역에 별 관심이 없었다. 압록강·두만강에서도 수백 리 남쪽에 군사방어선을 구축하고 더 이상 북진하지 않았다. 그나마 윤관의 9성 개척, 고려 우왕의 요동정벌 추진, 조선 세종의 4군 6진 개척이 전부였다. 더군다나 4군은 개척하자마지 폐지되고 말았다. 고구려와 발해로 이어지는 역사는 과연 한민족의 역사가 맞는 것일까? 발해 멸망 이후 1000년의 세월 동안 한민족은 왜 압록강·두만강 이북 지역을 방치한 것일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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