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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12 16:08
[기타] 조선시대 초거대 저택의 위엄
 글쓴이 : shrekandy
조회 : 12,514  

주로 조선 시대 한옥 저택...이러면 걍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선 왜소한걸로 많이들 아시던데 언제나 처럼 반전이 있군요

좀 당대 비상식적으로 큰 저택이긴 하지만 하여간 대단한 건축물입니다

조선시대 초거대 저택 "선교당"!

무려 102칸짜리 저택이며 하인들 사는곳까지 합하면 무려 300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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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집이여 궁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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봊이 15-02-12 16:46
   
운치있고 좋네요. 나중에 꼭 한번 가봐야겠어요
     
shrekandy 15-02-12 16:47
   
ㅎㅎ 심지어 요즘은 숙박도 가능하다고 한것 같네요
봊이 15-02-12 16:48
   
검색에 선교당 치니까 잘안나오네요 강릉에 있는 선교장 맞는지요
     
shrekandy 15-02-12 17:03
   
아 네 선교장 맞습니다. 오타났네요 ㅈㅅ
햄돌 15-02-12 17:45
   
진짜 멋지네염

mymiky 15-02-12 18:52
   
하지원 주연의 [황진이]도 여기서 찰영했었죠.
없습니다 15-02-12 20:32
   
조선시대 민간의 집은 아무리커도 99칸을 넘을수 없습니다. 궁궐만 100칸을 넘을수 있었죠. 그래서 선교장도 99칸 저택입니다. 만약 100칸이 넘으면 반역죄로 집안이 몰살당합니다..
     
shrekandy 15-02-13 14:03
   
저도 그렇게 알고있었습니다만 제가 읽은 글에서 이 집만은 예외였다고 하더라고요
          
없습니다 15-02-13 18:08
   
선교장 홈페이지에 써있는 소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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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령대군(세종대왕의 형)의 11대손인 가선대부(嘉善大夫) 무경(茂卿) 이내번(李乃蕃)에 의해 처음 지어져 무려 10대에 이르도록 나날이 발전되어 증축 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상류주택으로서 1965년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 5호로 지정되어 개인소유의 국가 문화재로서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300여년동안 그 원형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전통가옥으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미를 활달하게 포용하여 조화를 이루고 돈후한 인정미를 지닌 후손들이 지금가지 거주하는 살아숨쉬는 공간이다.

따라서 한국의 유형 문화재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뿐 아니라 강릉문화를 대표하며 경포 호수권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에 전통문화 시범도시인 강릉시의 문화 관광 자원으로서 부각되었다.

하늘이 족제비 무리를 통해 점지 했다는 명당터인 선교장은 300여년전 안채 주옥을 시작으로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중사랑, 행랑채, 사당들이 지어졌고 큰대문을 비롯한 12대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대장원을 연상케 한다. 입구에는 인공 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어 활래정(活來亭)이라 이름을 짓고 연못과 함께 경포호수의 경관을 바라보며 관동팔경 유람하는 조선의 선비와 풍류들의 안식처가 되었다.만석꾼 곳간채에는 항상 곡식이 가득하여 흉년에는 창고를 열어 이웃에게 나누어주며 베푸는 집안의 표상이 되기도 하였다.

예전에는 경포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하여 선교장 이라고 지어진 이름 이지만 그 호수는 논이 되었고 대장원의 뒤 야산에 노송의 숲과 활래정의 연꽃 그리고 멀리보이는 백두대간 사계절 변화의 모습을 바라보는 운치는 한국 제일이라고 하겠다. 2000년을 기해 한국 방송공사에서 20세기 한국 TOP 10을 선정할 때 한국 전통가옥 분야에서 한국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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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nsgj.net/soge/soge1.php
               
shrekandy 15-02-14 12:57
   
호 그랬군요... 그럼 제가 읽은 글은 뭐였던걸까요? (소름). 어쨋든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굿잡스 15-02-13 14:38
   
예외없는 법칙이 없다는 말이 선교장을 두고 하는. 깐깐했던 조선시대 사대부등

민간의 사치를 금하긴 했지만 이 선교장을 짓은 사람이 세종대왕의 둘째 형인 효령대군의

11대 손인 이내번(李乃蕃)이라 어느 정도 용인되지 않았나 싶군요. 그리고 선교장(船橋莊)의

단어에서 보이듯 일반 99칸 고택들과는 다르게 장을 붙인 이유가 그만큼 자급자족이 가능한

고려시대 장원급 규모임을 말하고 있는.
철부지 15-02-12 21:24
   
건물 높이 지으면 면적이 줄어드는데 왜? 저렇게 불필요하게 방을 많이 만들었을까요...조선시대 왕궁도 다 저런것이죠 높게 못만들게 한것이 청 나라였죠 청국의 황궁만이 높을 수가 있었고 밑에 신하국은 왕궁을 높게 만들면 질책을 면할수가 없었죠 역사극을 보아도 건물을 이층구조로 지으면 실용적인데 왜? 1층만 지었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답이엿던 것이죠 서점에서 조선시대관한 책을 봤는데 이런 이유대문이였다 말하고 있었습니다.
     
굿잡스 15-02-12 21:35
   
건물 높이 지으면 면적이 줄어드는데 왜? 저렇게 불필요하게 방을 많이 만들었을까요...조선시대 왕궁도 다 저런것이죠 높게 못만들게 한것이 청 나라였죠 청국의 황궁만이 높을 수가 있었고 밑에 신하국은 왕궁을 높게 만들면 질책을 면할수가 없었죠 역사극을 보아도 건물을 이층구조로 지으면 실용적인데 왜? 1층만 지었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답이엿던 것이죠 서점에서 조선시대관한 책을 봤는데 이런 이유대문이였다 말하고 있었습니다. >?? ㅋ

님이 봤다는 그 조선시대 관련 책이 뭔가요?? 청나라 어쩌고 그래서 1층?? 뭔 소리임?

애초에 조선 궁궐은 이미 명의 자금성보다 앞서 경복궁이 지어졌구만(청은 명을 무너뜨리

고 세운 정복왕조이고. 혹 이런 것도 모르시는??)  그리고 후기로 갈수록 소빙기등으로

기온이 내려가면서 온돌 보급이 늘다보니 고려, 조선초의 흔하던 다층구조에서 1층 한옥

선호도가 높아진 것임.(그리고 고려시대에는 장원이라고 그 지역 호족들은

대장원이나 장원처럼 오늘날 웬만한 축구장 크기를 상회할 정도의 면적에

고층누각으로 으리 으리했군요)
     
mymiky 15-02-12 21:39
   
정말 철부지 같은 말이나 하고 앉았네요-.-

모르면, 입이나 좀 다물지 ㅉㅉㅉ
     
굿잡스 15-02-12 21:53
   
고려에서 조선시대로 오면서 왕 이하는 99칸 어쩌고 사대부들에게 사치를 금하도록 아예

건축물에 규격 법제화를 두었지만 고려시대 발굴되는 건축 위세나 면적을 보면 눈이 휘청

하군요.


공경들의 저택이 10여리에 뻗쳐있는데,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누각은 봉황이 춤추는 듯 이무기가 기어오르는듯.

서늘한 마루와 따스한 방이 즐비하게 갖춰져 있고, 금벽이 휘황하며 단청이 늘어섰네.

비단으로 기둥싸고 채전으로 땅을 깔고, 온갖 진기한 나무와 이름난 화초들,

봄의 꽃과 여름 열매, 푸른 숲에 붉은 송이, 그윽한 향내 서늘한 그늘이 한껏 곱고 아름다움을 뽑내어오네.

-최자 [삼도부] 중에서-


그렇다고 이런 고려시대의 사회상이 조선시대보다 선진적이고 마냥 우월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괜히 귀족시대가 아니니.


축구장 규모의 고려시대 '저택' 유적지 발굴

대전 유성구 상대동서 2곳 확인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고려시대 중기 무렵 장원이나 대저택으로 생각되는 초대형 유적이 대전 유성에서 발견됐다. 그것도 두 곳이나 동시 확인됐다. 하나는 축구장보다도 크고, 다른 한 곳은 이보다 약간 작은 규모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백강문화재연구원(원장 서오선)은 한국토지공사가 대전 서남부지구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유성구 상대동 65-9번지 일원 20만7천㎡를 발굴조사한 결과 동서는 96m, 남북이 110-120m에 이르는 외곽에 담을 두르고, 그 안에는 각종 건물이 들어선 대규모 시설을 확인했다고 8일 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2399348
          
관성의법칙 15-02-12 21:57
   
3d복원으로 보고싶네요...

엄청난듯..
               
굿잡스 15-02-12 22:25
   
이 대전 유성 일대가 고려시대 공주 유성현(公州  儒城縣)지역으로 추정되는데

도로, 연못등이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온전한 고려시대 마을유적으로 발굴된 지역이기도

한데 나름 비중이 작은 지역은 아니지만 일개 지방현에서 저정도의 장원이나 대저택

의 규모가 동시에 두개나 발굴되었다는 건 당시 고려시대의 건축물이나 도시의 위세

를 짐작케하죠. 또한

고려말 여러 전란이나 어수선함도 있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조선으로 넘어 오면서

저런 고려 수도 개경의 으리 으리한 도시 풍광은 조선초에도 그리 낯선 도시전경이

아니게 이어져 왔을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조선 이성계가 고려 도시를 엎고

완전 새롭게 리셋한 게 전혀 아니니) 그기에 이미 조선의 정치적 수도인

한양도 고려시대 4경중 남경으로 중시되면서 고려의 대도시의 면모를 이미

어느 정도 갖춘 상태에서 경복궁은 거의 1여년의 빠른 공사기간에 만들어진

5대 고궁중 최초로 천도를 한 거죠. 그러니 당시 조선 초의 도시전경이 중후기의

전란과 소빙기에 온돌 장려등으로 단층 구조 선호의 모습만으로 봐서는 곤란하겠

죠.(이런 고려시대 토착 개경이나 평양 귀족들은 이후 정치입문이 제한받으면서

고급 인력이 상계로 들어가면서 거상들이 나오고 정치적 영향력은 줄어들었지만

그 대신 상업과 유흥, 예술의 도시로 조선시대에도 유명세를 이어 받게 됩니다.)
               
굿잡스 15-02-12 22:33
   
개성의] 여염집은 만 정(井)이나 되고 곡물은 백 전(廛)이 된다.

(중략) 봄바람에 술집 깃발이 펄럭이고 달 밝은 밤에 피리 소리 들린다.

민물(民物)은 풍성하여 실로 다른 고을에 비길 것이 아니고, 풍기(風氣)도 밀집하여 서경

(西京, 평양)이 견줄 바가 아니다.

-명나라의 문헌, 조선부(朝鮮賦, 1490년)-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 김양경(金良璥) 이 와서 아뢰기를,

“이제 풍덕군(豊德郡) 백성들의 상언(上言)으로 인하여 본부(本府, 개성)의 백성으

로 하여금 서적전(西籍田) 농부(農夫)에 속하게 하였는 바, 신이 보건대 본부(개성)

의 백성은 땅을 가진 자가 적고 비록 간혹 두어 경(頃)의 땅을 가진 자가 있다 하

더라도 항상 성(城) 안에 있으면서 사람을 고용(雇用)하여 농사짓고 오로지 장사

만 일삼는데, 만약 적전(籍田)에 속하게 하면 신은 〈백성들이〉 그 역(役)을

감당하지 못하여 장차 떠나가는 데에 이를 듯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9년(1478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집은 모두 기와로 덮었다. 외방(外方)도 그러하다.

오직 초야의 사람만이 모두 초가집이다.

-김성일의 풍속고이(風俗考異, 1590년)-
               
굿잡스 15-02-12 22:34
   
대개 성곽을 쌓을 때 높은 산을 베고 있다. 가끔 언덕이나 산기슭을 나와,
또한 구불구불 둘러 있는 것이 보인다. 큰 것이 날아갈 듯 치첩이 솟아 있고,
작은 것도 우뚝하게 표관이 웅장하다.

환취(황해도 봉산군에 있는 누각)는 날아갈 듯 아름답고, 총수(산 이름)는 구름이 이어졌다.
보산(관<關> 이름)에는 서기가 날아오르고, 금암(관<關> 이름)에는 시내가 통과한다.

[개성은] 봄바람에 술집 깃발이 나부끼고, 달밤에 음악소리 들린다.
그 민물(民物)은 풍성하여 실로 다른 고을에 비길 것이 아니고,
풍기(風氣)는 밀집하니 또한 서경(평양)에 견줄 바가 아니다.

[서울은] 트인 길과 통한 거리는 바르고 곧아서 구부러짐이 없고,
잘라낸 듯한 처마에 우뚝 빛나는 집이다.
모든 집은 높은 담이 있어서 바람과 불을 막고,
방마다 북쪽 창을 뚫어 더위를 피한다.

[서울에는] 종고라는 다락이 있다. 성 안의 네거리에 있는데 매우 높고 크다.

서울 안에 우뚝 솟았고, 길가에 높고 높도다.

시끌벅적 수레와 말 소리가 울리고,  끝없이 어룡 유희가 나온다.

식기는 금, 은, 동, 자를 섞어서 쓰고, 품물(品物)은 바다와 육지의 진기한 것이 고루 많다.

경기 안의 경치로는 한강이 제일이다.
누대는 높아 구름을 막고, 물은 푸르러 거울처럼 비춘다.
나루로는 양화도가 있는데, 물산(物産)이 또한 번성하다.

활은 중국의 제도에 비하면 조금 짧다. 그러나 화살은 매우 잘 나간다.



-명(明)의 동월(董越)이 1488년의 조선을 보고 1490년에 쓴 조선부[朝鮮賦]-


이 나라는 풍요하여 많은 쌀과 보리가 나고, 과일로는 배, 호두, 무화과, 밤, 사과, 잣,
그리고 무진장한 꿀, 약간의 비단, 다량의 면화와 베를 생산하고 있다. 지하자원으로는
금과 은 광산은 적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말과 소, 양질의 노새, 당나귀, 게다가 전 국토에 걸쳐
수많은 호랑이가 서식하고, 그 밖에 갖가지 다양한 동물이 있다. 그들이 만든 공작품은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그들이 솜씨가 좋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사람들은 피부색이 하얗고
건강하고 대식가들이며 힘이 세다. 그들은 터키 인의 활과 같은 작은 활을 매우 잘 다루고,
독을 바른 화살을 사용한다고 한다.

역대의 조선 국왕들은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도시에 큰 궁전을 지었는데,
그곳에 수많은 가신을 거느린 관청이 있었다. 서민들의 집은 대부분 기와지붕이며,
그 밖에는 초가지붕으로 그다지 청결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귀인과 부호들은
결이 고운 식물로 짠, 정교한 장식이 있는 극히 질 좋고 광택이 나는 돗자리를
집안에 깔고 있는데, 일본인이나 일본에 오는 포르투갈 인들은 그것을 매우 진귀하게 여겼다.

우리는 나가사키에서 조선으로부터 들여온 몇 벌의 백의를 보았는데, 그 옷에는
더할 나위 없이 섬세하게 공을 들인 자수를 해 놓았다. 그것은 어떤 부분은 짠 것인지
아니면 실과 바늘로 꿰맨 것인지 여간한 시력이 아니고서는 구별이 불가능 할 정도였다.
이상의 내용들이 조선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사람들을 통해 관백의 궁정이
조선에 대해 입수했던 정보의 요약이다.

 

-루이스 프로이스(Luis Frois, 1532~1597년)의 일본사(Historia de Japam)-





(5월 3일) 술시(戌時) 조선의 도읍 동대문으로 진입, 거기서 황성(皇城)의 모습을 바라보니 옥

루금전(玉樓■x殿) 늘어선 기와집, 널따란 성벽들의 조형미는 극치에 달하고 수천만 헌(軒)과

늘어선 대문들, 보귀로운 모습은 이루 말로 다할 길이 없다. 그런데도 막아 싸우려는 병사들

은 보이지 않고 대문은 굳게 닫혀 있어 온통 적막하였다. (중략) 내리(內裏) 안으로 들어가 보

니 궁전은 텅 비었고 사대문은 제멋대로 열려있었다. 그제야 전각을 자세히 살펴보니 궁궐

은 구름위에 솟아있고 누대는 찬란한 빛을 발하여 그 아름다운 모습은 진궁(秦宮)의 장려함

을 방불케 하더라. (중략) 후궁(後宮)에는 화장품 향기가 감돌고 산호의 대상(臺上)에는 화려

한 거울이 덧없이 남아있다. 난 향기는 전각 밖까지 풍기고 사람 살던 자취도 그렇거니와 하

염없는 구슬로 장식한 침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건물마다 문이 열려 있고 궁문을 지키

는 자 없으니 어디를 보아도 처량하기 짝이 없다. 그토록 용맹한 고니시도 천자(天子)의 옥좌

(玉座)에 절을 하고 신성하고 고아한 분위기에 휩싸여 두 눈에 눈물이 괴니 소오스시마, 아리

마, 오무라도 따라 눈물을 흘리었다.

-에도시대의 문헌 "조선정벌기 (朝鮮征伐記)"에서-
굿잡스 15-02-12 22:44
   
참고로 15,6세기 유럽 최대 상업도시라는 베네치아가 동시대 조선의 상업 대도시인 개성보다 훨씬 작습니

다.(평양보다도 작고). 마냥 서구추종적 관점에서 벗어나 이게 뭘 말하는지 한번 쯤 생각해

봤으면 하군요. 나아가 우리의 도시 규모나 문명 수준에 대해서도.
     
TheCosm.. 15-02-14 15:45
   
:3 이 부분은 좀 재고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베네치아는 지중해 각 지역에 주요 거점들을 두고, 베네치아를 거치지 않고서도 물류 이동이 가능한 경제구조망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현물 거래방식이 아닌, 화폐의 유통과 은행 또는 전문 중개상으로 통한 신용거래 등이 도시 내 주된 거래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베네치아 도시 자체가 큰 규모를 가질 필요성도 없었고, 또한 베네치아라는 도시의 지형적 여건도 도시 크기에 제약을 가져왔습니다.(이건 부가 설명이 필요 없으시겠죠?)

:3 우리의 상업이나 도시들이 서양에 견주어 흠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에는 동의를 하나, 비교하실 적에 여러 포인트들을 빼놓으시고서 비교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굿잡스 15-02-14 20:20
   
님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몇가지 첨언을 하자면 기본적으로 베네치아는 당시 중세

유럽에서 지금이야 지형적 한계로 작게 보여도 당시는 상당히 큰 도시로 14,5세기 초까

지 전성기를 구가한 도시국가이죠. 중세 영향력이 컸다는 프랑스조차 대표적 파리의 성곽

면적이(중세는 이런 성곽 방어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 프랑스어의 부르(Bourg)라는 말

이 성안에 있는 사람으로 이런 부유한 상공인들을 부른게 부르조아 (Bourgeois)) 2.4㎢이

고 이중에서 실제 시가지 면적은  고작 1.5㎢정도입니다. 이는 로마가 영국을 식

민지배하기 위해 세운 론디니움(런던)도 다르지 않구요. 즉 당시 도시의 크기나 부는

대항해 시대 이전까지 대체로 이런 지중해를 중심으로 동방의 중동과

동아시아를 매개로 해서 성장한 이탈리아반도로 베네치아등이 당시에도 상당히 큰 규모

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베네치아는 역시 십자군 원정을 통해서 당시 50만의

거대 비잔틴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의 동방원정을 통해 동지중해의 중계 무역을

장악하면서 전성기를 누리고 도시의 규모도 팽창한 도시국가임.

당시 중세시절 유럽의 도시가 커니 혹은 상당한 부를 이루었니는 그 당시 중세 유럽

내에서 통용되는 상대적 부와 도시 규모이군요. 이게 동북아로 넘어오면 또 달라 진다는

말입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고려는 4경체재로 전쟁없이 과장없는 전성기 100만의 거대

서라벌을 동경으로 흡수하고 고려의 개경은 이미 베네치아의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하

는 13세기때에는 유럽의 최대 도시라는 로마의 도시 크기를 상회하는 과장없는 50만 이

상의 거대도시를 구가합니다.(인구포화로 외성 밖으로 도시의 중심 시설인 거대 사찰들

이 뻗어 나감) 그리고 서경(평양)도 콘스탄티노플을 상회하구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정말? 언뜻 안믿거나 실감을 하지 못하죠.

그리고 이미 고려시대부터 기원하고 서양보다 200여년을 앞선 근현대적 복기부기의

원조격인 고려 개성상인의 사개치부법(四介治簿法)을 보면 회계를 좀 아시는지 모르

겠지만 이미 현금출납장부터 물품거래장에 위탁물처리장 및 어음거래를 한

어험수지장(魚驗收支帳)까지 님이 말하는 방식이 다 들어있군요.

여기에 이런 고려 자체만 해도 당시 로마나 콘스탄티노플에 상회하는 도시들을 가진

고려의(인구를 대략 3,400만으로 보는 건 상당히 축소해서 본 것이고 이미 고려시대에는

물경 7,800만 정도로 봄) 개성은 동북아의 로마 통합 제국시절을 능가하는 송나라나

요(금), 그기에 왜국 밑 동남아,아랍까지 거래를 할 정도였고 이후 조선전기 태종이

한양에 2027칸의 거대한 시전행랑을 구축하면서 개성일대의 상업이 위축되는 듯 하지만

불과 몇년 안되어 태종 1409년 개성 유후의 건의를 받아들여 개성은 한양과 더불어

상계의 두톱 체재로 지속적인 상업대도시로 구가를 하게 됩니다. 특히나 이 개경일대의

귀족들이 정계의 입문이 제한을 받으면서 고급 인재들이 상계로 진출하다보니 질은

더욱 높아졌고 거상들이 대거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전국적 유통망과 행상을

조직하고 신용장거래와 은행업등을 겸하면서 어음의 표권들도 유통시키고 있었고 나아가

명과 왜등에도 공사,밀무역까지 대외무역을 주도하게 되군요.

베네치아가 도시국가로 동지중해 무역을 장악하면서 제국 어쩌고 하는데 그 인구를

다해야 고작 150만 정도입니다. 조선은 이미 16세기경이면 인구 천만을 상회하는

세계사에서도 큰 대국이였고 그 옆의 명이나 왜,여진등과도 대외무역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동북아의 시장규모 자체가 달랐다는 점을 인지했으면 하군요.
          
굿잡스 15-02-14 20:27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 김양경(金良璥) 이 와서 아뢰기를,

“이제 풍덕군(豊德郡) 백성들의 상언(上言)으로 인하여 본부(本府, 개성)의 백성으

로 하여금 서적전(西籍田) 농부(農夫)에 속하게 하였는 바, 신이 보건대 본부(개성)

의 백성은 땅을 가진 자가 적고 비록 간혹 두어 경(頃)의 땅을 가진 자가 있다 하

더라도 항상 성(城) 안에 있으면서 사람을 고용(雇用)하여 농사짓고 오로지 장사

만 일삼는데, 만약 적전(籍田)에 속하게 하면 신은 〈백성들이〉 그 역(役)을

감당하지 못하여 장차 떠나가는 데에 이를 듯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9년(1478년)-


그리고 위에도 올린 기록입니다만 당시 조선시대 개성의 도시 전경도 그렇지만

성내의 사람들의 대다수가 상업에 종사할 정도로 개성시 자체가 당시 조선시대의

시선에서도 사대부고 백성이고 주직업이 상공업 종사자에  상업 대도시로

번성했던 상황을 알 수 있는 기록입니다.(이들이 유럽으로 치면 이른바 부르조아들인

것이죠.) 이들은 거의 농사도 짓지 않고 이런 농사나 혹은 군역까지도 상업 활동을

통해 쌓은 부를 가지고 대체하는 식으로 상업에만 매진한 사람들이고 종사자들입니다.

우리가 보통 후기 개성의 송상이니 전국적 상업망에 주목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조선 전기의 개성의 상업도시의 면모에 대한 여러 연구 논문들이 나오면서 인식이 더

욱 소급, 확장되는 상황이군요. 이부분은 따로 시간되면 구체적으로 한 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려시대 인구추정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95387&cid=46634&categoryId=46634
뿡뿡이 15-02-12 23:44
   
저기 갔었는데, 전 별 감흥이 없었어요.  공사중이여서 그랬을 수 있지만, 입구부터 너무 현대적이여서...

활래정은... 깊은 밤 앉아 있으면 운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거기서 연꽃향기를 맡을 수 있다면...
사ram입니다 15-02-13 16:20
   
휴~~~~~~~~~~~~~~~~~~  전.....
헤밍 15-02-15 05:36
   
하루 자고 왔는데 좋았습니다. 조용하니.. ㅎㅎ
참고로 봄하고 겨울이 제일 이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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