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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2-20 12:09
[일본] 징비록 티져보니 궁금한게 있는데요
 글쓴이 : 스마트아쳐
조회 : 9,499  

고증이 나아졌나 싶었지만 역시나 조선군은 포졸복 신세군요..(짤 못구한점 양해바랍니다 ㅠ)

그런데 비변사 기록에는 조선군이 갑옷 이 부족해서 거의 안입고 싸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일본측 기록이나 임진왜란 기록화 에 보면 조선군도 갑옷을 입고 싸웠다라는 기록과 그림이 있습니다

어느 측 기록과 그림이 맞는건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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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듐 15-02-20 13:01
   
제가 알기로 원래 조선군의 규정에는 모든 병사가 갑주를 입고 싸워야한다고 되어있으며 그렇지않을경우 처벌규정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잘 지켜지지않은것같네요
루뎅 15-02-20 13:39
   
일본측의 임진왜란 기록화 등은 적을 과장해서 그리는 과정을 통해 조선군의 무장상태를 높게 그린 것이라고 봅니다.
조선군도 갑옷을 입고 싸우는 비율이 분명 있지만, 적어도 일본측 기록(조선역해전도 라던가..)에 묘사된 것처럼 모든 병사들이 두정갑을 입고 싸우는 것은 명백히 과장이지요.
철부지 15-02-20 14:22
   
반대 논리도 있죠 오히려 적군이 더 실증적일수 있다는는 주장도 있습니다 왜군이 조선군을 과장해서 그린것이 아니라 그때 싸운 사람이 보고 얘기한 것을 토대로 그렸단 설도있죠 즉 어떤것도 과장할 필요도 없는게 왜군이였으니까요 그레서 오히려 일본측 고증이 더 정확하다는 평도 있다는것입니다 적'은 때로는 진실을 을 토대로 자기를 우월하게 만든다고 하죠.
아비요 15-02-20 14:38
   
말하나마나 반반일거 같군요. 조선군 데리고 싸우는 입장에서는 갑옷 못입은 허술한 병력들이 눈에 밟혔을테고, 싸우는 입장에서는 갑옷입은 정예병사들 상대한 것만 생각나는 거죠. 우리나라가 일본병사 생각하는거 보면 보통 사무라이 생각하더군요. 근데 사실 일본도 주력은 창병이고 갑옷이 꼭 있는것도 아닌데 일본도 들고 갑옷입고 있는거 생각하죠.
스마트아쳐 15-02-20 14:53
   
음;; 누구의 말이 맞는거져?
     
스마트MS 15-02-20 20:47
   
비변사의 문헌에 기록되 내용이 더 무게감이 있을듯 싶네요.
조선전기 까지는 갑옷의 수량이 넉넉하여 보급률이 높은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세종 15년. 야인=여진정벌에. 동원된 군사 3천명에게 갑옷 1천부를 지급할 정도로. 비축분이.)
후대로 갈수록. 수급에 어려움이 더해져.도성을 중심으로한 중앙이라면 모를까 지방의 군사는 자체수급은 어려워 모두에게 보급하기에는 미치지 못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포졸복이라 할수 있는 전복 차림의 군사가 대다수. 무관인 지휘관이나 직업군인인 갑사등 일부만 갑옷을 착용한걸로,,
게다가 갑옷의 주요 구성품 재료중 하나인 가죽 수급이 어려워서 비축분 확보에 어려워. 왜란당시에. 보급률이 높지 않았을수 도 있습니다.돼지가죽은 적합하지 않고. 질긴 소가죽이나.산짐승 가죽인데. 여러모로 소는 귀한 짐승이라 경제력을 흔들요지가 있으며.차선책으론 이중
멧돼지 가죽 경우.값이 베 10필에 해당되고. 가죽갑옷 한벌에 베 50여필이 필요로 한 기록이 있고
경번갑 같은 갑옷은 제작과정에서 공력이 많이 들기에. 수량을 채우기에는 어려움등.
갑사 이하. 군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일반 군사의 갑옷 보급률은 그렇게 높지 않았을듯 하네요.
뭐.일본군 처럼. 보급형 나무갑옷이라면. 모를까.만약 일본군 일반 보병갑옷이. 철제 자재가 충분하였다면.
수거하여 재사용하였을텐데.그렇지 않은걸 봐선. 조선군이나. 일본군이나. 보병의 방어력은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았을것 같네요.
개떡 15-02-20 15:13
   
전쟁초기에는 갑옷을 입은 정규군이 분명히 많았습니다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제대로된 훈련없이 포졸복 입은 징집병이 많아졌다고 봐야겠죠.
갑사라고 불렸던 이들은 신립이 충주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웠을때는 전부 북쪽의 여진족을 토벌하던 정규군이었습니다. 여진족들을 상대하던 사람들이라 기병 전술을 선호했는데 그 전술을 일본군에게 그대로 써먹다가 조총과 창병을 적절히섞은 밀집대형에 처참히 발렸죠...(스페인이나 포루투갈에서는 이 전술을 테르시오라고 했는데 포루투갈에게서 조총을 수입한 일본군이 조선군에게 그대로 사용한겁니다.)
그 이후로 계속 패전을 거듭하게되고 점차 조선군에 정규군의 비율이 급감하다가 나중에는 포졸과 의병들에게만 의존하게 된거죠.
     
국산아몬드 15-02-20 17:13
   
일방적인 패전은 전쟁개시 2개월뒤 벌어진 용인전투까지가 마지막입니다. 그 이후는 행주산성, 진주성대첩을 필두로 대부분 승전이 이어졌습니다
     
그노스 15-02-20 18:19
   
테르시오...문명 생각이 나네요. 군대 이름인줄 알았는데 전술이름이었군요.
          
현시창 15-02-20 19:46
   
테르시오 명사 맞습니다.
스페인어로 1/3을 뜻하는 단어로 스페인은 파이크병과 머스킷병으로 조합한 단위부대를 테르시오라고 불렀습니다.(사실상 번역어로 연대(regiment)라 불러도 무방함.) 이 각각의 테르시오들은 각자 모병과 보급을 실행하였으므로. 각 테르시오마다 연대의식이란 게 있었고, 당연히 각 테르시오마다의 전통과 전투력과 약간씩 구성도 틀렸습니다.

즉, 창병과 머스킷 병으로 구성된 각 연대를 [테르시오]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대대, 연대, 여단등으로 각 제대를 통칭하는 것처럼, 스페인식 연대를 테르시오라 불렀습니다. 즉, 스페인식으로 구성된 각 제병과 연대급 부대를 테르시오라 불렀고. 타국에선 이렇게 편성된 부대를 따라하면서 테르시오식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로 명사가 대명사가 된 격이죠.
     
스마트MS 15-02-20 20:29
   
엄밀히 따져보면. 왜란당시. 일본군은. 서양식 테르시오를 운용하지 않았습니다.
포르투갈 선교사나 혹은 직업군인들이. 테르시오 같은 보병전술을 전수하거나 전수 받았다라는 기록은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보병 밀집대형 방진에. 단순히 총병과 창병 이란 두 병과가 존재한다고해서 테르시오에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그런 해석이라면.오히려  활을 다루는 사수와 창검으로 무장한 살수 조합 동양의 보병전술 역시. 테르시오에 해당되는것이지요.
총병과 창병의 비율이나.  창병을 중앙에 놓고 지근거리내에 펼쳐진 총병의 대형을 유지한채 움직이는 서양의 테르시오와

왜란 당시 일본이 운용한 보병전술은 사뭇 다른것으로 보여지더군요.
먼저. 조총으로 사거리내 유효사격후. 나가에야리 라는 장병창을 운용하는 아시가루들이.야리부스마라는 전법으로 창날을 모아 대형을 이루어 전진하거나. 상창 내려치기 같은. 장창을  두손으로 세워 위에서 내려치는 전법을 구사하는 전국시대의 전술이. 조선군에게 유효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떡 15-02-21 16:57
   
뭐,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세부적인 것은 다르겠지만 창병과 조총을 동시에 운영했다는 것 자체가 테르시오와 흡사했다는 겁니다.
포루투갈이 직접 가르쳐주지 않아도 조총을 운용하면서 조총병이 기병 돌격에 취약하다는 것을 일본군은 거듭된 내전을 통해 익히 알고있었고 자연스럽게 야리나 나기나타 창병을 조총병과 함께 배치했죠.
일본도 본래는 기병전술을 사용해왔었는데 조총병+창병 조합이 나오기 시작한 뒤로는 사장됐다는 둥의 이야기도 있지만 더 가면 얘기가 길어지니...
야차 15-02-20 19:17
   
어떤 역사책에는 포졸복에다가 갑옷을 입던데
Centurion 15-02-21 11:42
   
"병사들은 단단한 가죽 갑옷을 착용하였고 유럽인의 모자와 같은 철모(첨주형 투구)를 쓰고있었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강철로 되어있었고 그 밖에는 무쇠로 되어있었다.
또한 그들은 개머리판이 없는 총포와 수없이 많은 터키 식 활(합성궁=각궁)과 화살을 사용하고있었다.

아고스띠뇨(고니시 유키나가)는 즉시 성채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우라 명하고,
목숨을 살려줄테니 항복을 하라고 성 안의 장수에게 사자를 보냈다." .

-루이스 프로이스 '일본사'

임진왜란이나 조선의 전쟁기록화를 보면 사실 갑옷에 대한 묘사가 각양각색입니다.

일단 조선쪽 기록화를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포졸복장이 나오는 케이스가 있고,
http://news.busan.go.kr/upload/news/buvi6741_8.gif

혹은 녹색, 적색 등으로 이뤄진 갑옷을 입은 케이스가 있죠.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ko/e/e6/%EC%B0%BD%EC%9D%98%ED%86%A0%EC%99%9C%EB%8F%84.jpg
https://encrypted-tbn2.gstatic.com/images?q=tbn:ANd9GcRzGfIf7mt6yewOGimw0enwAnJHK2KYfv9hnyPwljr9LV3AZ4bq
이건 고려시대 윤관의 별무반이 여진족을 토벌하고 경계비를 세우는 장면인데 위의 조선군 복장과 거의 비슷합니다.
http://img.kbs.co.kr/cms/1tv/sisa/historyspecial/view/vod/__icsFiles/artimage/2011/08/30/c_1ts_hists1/2-2.jpg

뭔가 중국식 갑옷삘이 나는게, 사찰의 사천왕 갑옷처럼 묘사되고 있죠.

http://weekly.chosun.com/up_fd/wc_News/2140/limg_org/2140_26_09.jpg
여진족을 토벌한 이일(임진왜란 때 인물)이 입고 있는 옷도 그런 삘이 나는 갑옷이죠.
흔히 중국식 갑옷이라는 피박식 갑옷.

이건 울산성전투도인데.. 일본쪽에서 17~18세기 경에 그린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일본측 그림은 상당히 디테일한 편이죠
http://photo.donga.com/udata/nudegallery/image/200706/26/-16669_0.80455700.jpg
http://dimg.donga.com/wps/NEWS/IMAGE/2007/06/26/7016837.1.jpg

여기에서 조명연합군이 딱히 구별되지 않지만, 모두 검은색 투구와 검은색 포형갑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번엔 정왜기공도권 명나라 종군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죠

http://pds9.egloos.com/pds/200808/06/57/f0006957_489877740c7ec.jpg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ko/4/46/JUNG-5_1-php2511.jpg
http://pds9.egloos.com/pds/200808/06/57/f0006957_4898902b22983.jpg

빨간색, 황색, 흰색, 검은색 등등의 갑옷과 첨주형투구를 쓴 병사들이 많이 보입니다.

조선, 명, 일본의 화가들이 지맘대로 그린건지, 사실적으로 묘사한건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대체로, 조선과 명의 화가들은 일본군은 갑옷도 안입은 모습으로 묘사했고,
그 중 조선 화가들은 조선군을 포졸복 혹은 좀 납득이 안되는 갑옷으로 묘사하고 있고,

일본쪽은 당대에 그려진 건 아니지만, 상당히 디테일하게 그린데다,
조명연합군을 갑옷입은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죠.

http://pds27.egloos.com/pds/201408/08/96/a0007296_53e4d9fa99c02.jpg
특히 한참 뒤에 그려졌다곤 하지만, 한동안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 그림도 마찬가지구요.

갠적으로 일본인들이 고증을 따지고, 디테일한 걸 좋아하는 측면이 있어서..
이런 조선군 묘사가 완전 거짓은 아니라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조선군도 어지간해선 살기위해서 갑옷 좀 챙겨입었을 겁니다.
전시 상황이라고 해도, 종이로 만든 지갑이라던가, 가죽으로 만든 피갑이나,
상황이 좀 괜찮으면 철편으로 만든 철갑 같은것도 입었을 수 있겠죠.

아마 제가 알기론, 조선군은 개인 장비를 본인이 장만하는 걸로 아는데..
집이 잘살거나, 중앙군이라면 장비가 좋았을 것이고,
집이 못살거나, 심지어 천민, 노비인 케이스라면 장비가 후졌을 가능성이 높겠지요.

하지만, 창,칼을 맞대고, 화살과 돌멩이, 조총이 날아다니는 전장터인만큼..
지휘관들이나 조정, 그리고 병사 개개인이 방호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을거라 봅니다.
그러니 조정에서 지급하거나,(위의 기록처럼)
지방 관아나 병영에서 갑옷을 보관하고 있다거나,(이것도 기록이 남아있죠)
혹은 대대적으로 만들어 나눠준다거나 했겠지요.

본래는 그런 장비를 못갖추면, 상관한테 몹시 깨지는터라..
잠시 장비를 돈주고 빌려주는 대여점 같은 곳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전쟁 상황이면 이런건 또 의미없겠죠. .
당장 전쟁하는데 무기와 갑옷이 없으면 답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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