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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08 16:13
[중국] 연개소문의 초라한 고.당 전투 전적 (高. 唐 戰鬪 戰績)
 글쓴이 : 환빠처단
조회 : 6,494  

연개소문의 초라한 고.당 전투 전적 (高. 唐 戰鬪 戰績)
 
이미 삼국사기에서는 열전에서 난신(亂臣)으로 분류되어 있고 삼국사절요등의 사론에서도 그는 난신으로 취급되어 왔으며

신라의 김유신, 고구려의 을지문덕, 백제의 계백등은 그 사당을 지어 모셨거나 수묘를 했던 것이 확인된다.
그러나 연개소문에 대해서는 그러한 흔적조차 찾기가 힘든다
다만 조선 상고사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서 연개소문과 묘청에 대한 과대포장으로 오늘날 우리들이 이에 대한 비판없이

받아들인 결과와 이를 편승한 연개소문의 옹호론자들에 의해 더욱 부풀려져 연개소문은 마치 가공할 만한 무공과 지략을 지닌 위인으로

현혹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연개소문에 대한 환상이 그야말로 산산조각으로 나게 된다.
일단 그나마 수나라가 망하고 가공할 만한 당나라가 들어섬에 따라 고.수전쟁에서 수나라의 엄청남 물량공세를 경험한 고.수전쟁의 영웅 영류왕이 당나라를 대국으로 인정하고 친당청책으로 전쟁을 피하고자한 정책을 연개소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반란을 일으켜

영류왕을 토막살해하고 정권을 잡아 당나라와의 대립을 유발시키면서 당의 사신을 감금하는등 당의 침공을 부추긴 결과가 아래 高.唐간의 전투결과처럼 너무 참혹하다. 바로 이런 점이 연개소문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본인의 이유이기도 하다.
 
< 高.唐간의 전투결과 > 

645년. 건안성 : 영주도독 장검이 호병(胡兵)을 거느리고 우리 군사를 부수고 수 천명을 죽이다 ( 패 )
645년. 개모성 : 이세적과 강하왕 도종이 개모성을 함락하고 1만명 (자치통감은 2만명)을 사로잡고
                양식 10만섬 탈취 ( 패 )
645년. 비사성 : 장양(張亮)은 수군(水軍)으로 공격, 부총관 왕대도가 비사성을 함락, 남녀 8천 명이 죽다 ( 패 )
645년. 국내성 : 국내성의 기병과 보병 4만명이 강하왕의 4천 기병에게 패배하고 1천명이 죽다 ( 패 )
645년. 요동성 : 고구려군 1만이 살해당하고 1만이 포로로 잡혔으며, 남녀 4만명이 잡히다, 양곡50만석 탈취 ( 패 )
645년. 백암성 : 남녀 1만명이 포로로 잡히다 ( 패 )
645년. 주필산 : 고구려군 15만이 궤멸당하고, 말갈인 3천3백명이 생매장 당하고 말5만필, 소5만두, 명광개 1만령 탈취 ( 패 )
645년. 안시성 : 토산을 빼앗고 당군이 철수하다 ( 승 )
현도, 횡산, 개모, 마미, 요동, 백암, 비사, 협곡, 은산, 후황의 10성을 빼앗겨 철폐되고
요주, 개주, 임주의 3주의 호구를 중국으로 옮겨 도합 7만명이 중국으로 끌려가다.  ( 10패 )
647년. 이세적 남소성등 몇개의 깨뜨림 외곽을 불질러 태워버림( 패 )
647년. 석성 : 우진달, 이해안에게 석성을 함락당함 ( 패 )
647년. 적리성 : 고구려군 1만이 싸웠으나 이해안에게 참패하고 3천명이 죽다 ( 패 )
648년. 역산 : 우리의 보병과 기병 5천이 당군의 장수 고신감에게 패배하다 ( 패 )
648년. 역산 : 우리 군사 1만여 명이 신감의 배를 습격했으나 복병이 일아나 패배하다 ( 패 )
648년. 박작성 : 박작성주 소부손이 보병과 기병 1만을 거느리고 싸웠으나 무너지다 ( 패 )
648년. 박작성 : 고구려 장수 고문이 오골, 안지의 군사 3만을 이끌고 박작성을 구원하다 무너짐 ( 패 )
648년. 박작성 : 박작성을 함락시키지 못함 ( 승 ) 
654년  장수 안고가 고구려.말갈 연합군으로 거란 공격 송막도독 이굴가에게 신성에서 대패 (패)
655년. 귀단수 : 당군 정명수가 요수를 건너와, 고구려의 명진이 공격했으나 패배하고 1천명 사상,
                외성과 촌락을 불태움 ( 패 )
658년. 요동 : 설인귀와 정명진이 군사를 거느리고 왔으나 패배하다 ( 승 )
659년. 황산 : 설인귀가 황산에서 온사문 군대를 격파하다 ( 패 )
661년. 압록강 :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이 이끌던 고구려군 수만명중 3만명이 계필하력군에게 도륙당하고
                나머지는 모두 항복, 연남생 혼자 달아남 ( 패 )
662년. 사수 : 방효태와 그 열 세 아들이 사수에서 전사하고 옥저도 행군 전멸 ( 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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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영웅이신 연개소문 생전의 화려한 高.唐간의 전투기록으로써
도합 32전 4승 28패
자~~ 이것이 우리가 현혹되어 그토록 열광했던 환상적인 연개소문의 전투기록이 32전 4승 28패
위의 본 내용은 삼국사기, 동국통감, 삼국사절요, 동사강목 등의 기사내용을 있는 그대로 간추려 인용한 결과임
이후의 내용은 연개소문의 사후에 연개소문의 아들인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트리오의 戰績 결과임.

 

667년. 신성 : 이적이 신성을 빼앗고, 계필하력이 지키다. 도합 13개의 성을 빼앗다 ( 패 )
667년. 금산 :  천남건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설인귀에게 참패하고 고구려군 5만이 살해당하다 ( 패 )
667년. 안시성 : 우리군사 3만명이 학처준 군대에게 패배하다 ( 패 )
668년. 부여성 : 설인귀군 3천이 부여성을 빼앗고 고구려군을 격파. 40개 성이 항복하다 ( 패 )
668년. 부여성 : 천남건이 군사 5만을 보내 부여성을 구원하려 하나, 이적에게 참패하고 3만이 죽다 ( 패 )
668년. 평양성 : 함락. 고구려 멸망 ( 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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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노 15-03-08 16:27
   
아이디 젖같이 지었네...
철없는 놈의 글이라 읽고 싶지도 않다.
     
환빠처단 15-03-08 16:29
   
반박 못하죠 !
          
뚜리뚜바 15-03-08 16:42
   
이건 오히려 당나라가 등신이라는걸 입증하는거 같은데요;; 28승이면 7:1 승률인데;; 거기서 물러서게 한거면 오히려 고구려가 대단한거 아님? 그리고 왜 당대부터 쓴거임? 고구려는 수나라 때부터 회복할 기세도 없이 30만이상되는 군대를 계속 공격받았는데 왜 저기서 부터 전적 재는거임?
               
두부국 15-03-09 03:21
   
저런애들이 있으니 주몽 연개소문이라는 요상한 드라마가 설치는겁니다
          
꼬마러브 15-03-08 23:01
   
제 글에 답변 좀 달아주세요
마라도 15-03-08 16:53
   
연개소문이 고구려 멸망의 원인인건 역사적 사실...
여기 환국인들 보면 참 사고방식이 이상한게 전쟁의 결과엔 애써 눈을 돌리면서 그 전쟁을 구성하는 몇 개 전투에서 이기면 그걸로 자위를 함...참 어이없는 사고방식...ㅎㅎㅎ

청에 개털리고 임금이 대가리를 땅에 처박았어도 병자호란의 몇 몇 전투에선 이겼으니 조선은 강국....임진왜란으로 온 국토가 폐허가 되었어도 몇 몇 전투에선 이겼으니 조선은 강국....결국 고구려가 당에 멸망했어도 몇 몇 전투에선 이겼으니 고구려는 강국...ㅎㅎㅎ
자위도 이 정도면 거의 변태중의 상변태급임...ㅎㅎㅎ

아무리 변태가 발광을 해도 고구려가 당에 의해 멸망했고 조선은 임진왜란으로 온 국토가 개판이 되었지만 일본과의 협상자리에 참석조차 못하고 명나라와 일본의 협상을 지켜보는 등신짓만 했으며 그때의 교훈을 임진왜란 끝나자마자 잊어버리고 불과 얼마뒤 청나라에 다시 한번 온 나라가 개떡이 되어 임금이 대가리까지 땅에 처박은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임...ㅎㅎㅎ

고구려는 연개소문과 그 아들들이 말아처먹었음...이것 역시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ㅎㅎㅎ
     
나와나 15-03-08 19:57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아주 전형적인 어그로군요 ㅉㅉ

조선은 15세기에 앞선 선진 제도와 과학기술 및 군사력을 보유했지만 양란을 겪었으니 까고,

고구려는 수백년 간 동방의 패자로 군림하고 6차례 아니 그이상에 걸친 수, 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결국 망했으니 까면...

이 세계에서 까이지 않을 왕조는 어디죠? ㅋㅋ

로마 제국도 한 번 볼까요?

한때 한니발의 군대에 연전연패해 수도까지 위협받았고

노예로 이루어진 오합지졸 스파르타쿠스의 반란군에 농락당했으며

카르헤 전투에서는 파르티아 기병에게 전멸당했고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는 게르만족에게 3개 군단이 모두 전멸했고

황제 율리아누스는 직접 원정을 나갔다가 페르시아군과의 전투에 전사했고

연개소문과 그 아들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막장시기, 군인황제시대를 겪었고

알라리크의 고트족에게는 수도인 로마까지 점령당했고

반달족에 의해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 갈리아가 박살났고

아틸라의 훈족에게는 북이탈리아 반도까지 털렸으며

결국 게르만족 장군, 오도아케르에게 멸망당했습니다

캬.. 이런 시각으로 보면 로마 제국도 참 한심한 나라네요
대충 생각나는 게 이 정도인데 한 번 작정하고 온갖 꼬투리를 잡으면 얼마나 깔 수 있을 지..? ㅋㅋㅋ
          
오투비 15-03-09 00:51
   
아무리 그래도 로마와 조선을 비교하다니 ㅎㅎ
한낱 제후국인 조선과 제국으로써 영토를 정복하고 유럽문화의 뿌리를 낳은 로마. 반면 조선이 남긴것은 사대근성 ㄷㄷ
               
나와나 15-03-09 22:21
   
ㅋㅋㅋ 웃기죠?
제국으로써 영토를 정복하고 유럽문화의 뿌리를 낳은 로마를 제가 저딴 식으로 말하니까요

근데 저건 바로 마라도님의 논리를 그대로 사용한 것뿐입니다

님들과 같은 어그로들의 잣대로 역사를 바라보면 조선만이 아니라 로마도 충분히 한심해빠진 나라로 보일 수 있다는 거죠
               
나와나 15-03-09 22:24
   
조선이 남긴 것이 사대근성이라는 이유는 뭘까요?
로마가 유럽문화의 뿌리를 낳았다면 조선은 한국문화의 뿌리를 낳았습니다
댁이 쓰고 계신 한글은 뭐 어디 아프리카 부족민들이쓰던건가요? ㅋㅋㅋ
     
뚜리뚜바 15-03-08 22:52
   
연개소문에서 임금이 대가리 박은게 왜나오는거지;; 참 정신나간거 입증하고 앉았네;; ㅉㅉ
두부국 15-03-08 18:15
   
삼국사기는 김부식에 의해 신라에 편중된 왜곡되어진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특히 시대상황에 당나라와 신라는 우호관꼐이고
 
신라는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이 컷습니다. 그리하여 고구려를 폄하하기 위해 일부분 잘못된곳이 많습니다.
 
물론 고구려도 크고 작은 전투에서 패배한적이 있지만
 
큼직큼직한 대목에서는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것 처럼 강대했습니다.
 
또한 역대중국황제들을 섬기면서 관직을 하사 받은것은 일시적이고 몇몇왕들의 일입니다.
 
국력이 쇠퇴하여 전쟁을 막기 위한 전략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치면 조선시대는 내내 사대주의 시대를 보냈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자주성도 없고
 
비굴하게 살아오기만 한것으로 볼 수는 없는것이지요.
 
삼국사기 말고 다른 책들이 많이 전해졌다면 아마 삼국사기는 편향된 역사서로
 
우리들에게 왜면을 받았을겁니다. 허나 아쉬운것은 전해져내려오는 역사서가 몇 안되니
 
편향되었음을 알면서도 의존할 수 밖에 없지요
니르고저 15-03-08 18:16
   
당나라 군대가 오합지졸의 대명사 아닌가?
하지만 금청사만 우리역사로 편입되면
중원에 복수하는게 되고 병자호란 도 내전이 되는것임
뭐 어떻습니까?
우리에겐 필승카드 마법의 동이족이 있는데
ㅋ 고구려의 눈물
잠원 15-03-08 20:32
   
32전 4승 28패,,
이건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구타구만..


내용중에 기병 4천이 공격해서 성을 지키던 4만의 고구려군을 이겼다는데..
처들어온 적을 물리친 것이 아니고 성을 공격해서 승전했다?
고구려군이 인해전술로 버틴 것일까?

중국은 전통적으로 고대전투에서 외적과 싸울때..  상대보다 수배나 많은 병력으로 싸우는 걸로 유명한데..
그러면서도 승전기록은 거의 찾기 어려운 요지경나라로..  대규모 인해전술로 국가를 유지하는것이 전통인 나라거든..
헌데 어찌 고구려에 대해서만 반대의 상황과 결과가 나왔을까?

또 수 십만 군인을 끌고 와서..
원정 비용때문에 나라가 휘청했다고 하는구만...
수천리를 원정와서...  왜 이런 일방적인 싸움을 20여년을 끌었을까?



환빠를 싫어하는건 이해할 수가 있지만.. 고구려까지 씹는다?
이런 한국 알라가 나오기는 롯또 1등 당첨자 만나기보다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구만.
아무래도 조선족 알라같네..
.
Centurion 15-03-08 21:51
   
< 高.唐간의 전투결과 >
645년. 건안성 : 영주도독 장검이 호병(胡兵)을 거느리고 우리 군사를 부수고 수 천명을 죽이다 ( 패 ) 잃은 병력: 수천
645년. 개모성 : 이세적과 강하왕 도종이 개모성을 함락하고 1만명 (자치통감은 2만명)을 사로잡고  =1만~2만 + 수천
                양식 10만섬 탈취 ( 패 )
645년. 비사성 : 장양(張亮)은 수군(水軍)으로 공격, 부총관 왕대도가 비사성을 함락, 남녀 8천 명이 죽다 ( 패 ) -3만(남자4천 포함) / 여자 4천
645년. 국내성 : 국내성의 기병과 보병 4만명이 강하왕의 4천 기병에게 패배하고 1천명이 죽다 ( 패 )
645년. 요동성 : 고구려군 1만이 살해당하고 1만이 포로로 잡혔으며, 남녀 4만명이 잡히다, 양곡50만석 탈취 ( 패 ) -5만 / 백성4만4천
645년. 백암성 : 남녀 1만명이 포로로 잡히다 ( 패 ) 5만 / 5만4천
645년. 주필산 : 고구려군 15만이 궤멸당하고, 말갈인 3천3백명이 생매장 당하고 말5만필, 소5만두, 명광개 1만령 탈취 ( 패 )
645년. 안시성 : 토산을 빼앗고 당군이 철수하다 ( 승 ) 20만 /5만4천
현도, 횡산, 개모, 마미, 요동, 백암, 비사, 협곡, 은산, 후황의 10성을 빼앗겨 철폐되고
요주, 개주, 임주의 3주의 호구를 중국으로 옮겨 도합 7만명이 중국으로 끌려가다.  ( 10패 ) 20만 /12만4천
647년. 이세적 남소성등 몇개의 깨뜨림 외곽을 불질러 태워버림( 패 )
647년. 석성 : 우진달, 이해안에게 석성을 함락당함 ( 패 )
647년. 적리성 : 고구려군 1만이 싸웠으나 이해안에게 참패하고 3천명이 죽다 ( 패 ) 20만3천 / 12만 4천
648년. 역산 : 우리의 보병과 기병 5천이 당군의 장수 고신감에게 패배하다 ( 패 ) 21만3천 / 12만 4천
648년. 역산 : 우리 군사 1만여 명이 신감의 배를 습격했으나 복병이 일아나 패배하다 ( 패 ) 22만3천
648년. 박작성 : 박작성주 소부손이 보병과 기병 1만을 거느리고 싸웠으나 무너지다 ( 패 ) 23만 3천
648년. 박작성 : 고구려 장수 고문이 오골, 안지의 군사 3만을 이끌고 박작성을 구원하다 무너짐 ( 패 ) 26만 3천
648년. 박작성 : 박작성을 함락시키지 못함 ( 승 )
654년  장수 안고가 고구려.말갈 연합군으로 거란 공격 송막도독 이굴가에게 신성에서 대패 (패)
655년. 귀단수 : 당군 정명수가 요수를 건너와, 고구려의 명진이 공격했으나 패배하고 1천명 사상, 26만 4천
                외성과 촌락을 불태움 ( 패 )
658년. 요동 : 설인귀와 정명진이 군사를 거느리고 왔으나 패배하다 ( 승 )
659년. 황산 : 설인귀가 황산에서 온사문 군대를 격파하다 ( 패 )
661년. 압록강 :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이 이끌던 고구려군 수만명중 3만명이 계필하력군에게 도륙당하고
                나머지는 모두 항복, 연남생 혼자 달아남 ( 패 ) 29만4천
662년. 사수 : 방효태와 그 열 세 아들이 사수에서 전사하고 옥저도 행군 전멸 ( 승 )

=======================================================================================================
여기 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영웅이신 연개소문 생전의 화려한 高.唐간의 전투기록으로써
도합 32전 4승 28패
자~~ 이것이 우리가 현혹되어 그토록 열광했던 환상적인 연개소문의 전투기록이 32전 4승 28패
위의 본 내용은 삼국사기, 동국통감, 삼국사절요, 동사강목 등의 기사내용을 있는 그대로 간추려 인용한 결과임
이후의 내용은 연개소문의 사후에 연개소문의 아들인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트리오의 戰績 결과임.
 
667년. 신성 : 이적이 신성을 빼앗고, 계필하력이 지키다. 도합 13개의 성을 빼앗다 ( 패 )
667년. 금산 :  천남건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설인귀에게 참패하고 고구려군 5만이 살해당하다 ( 패 ) 34만4천
667년. 안시성 : 우리군사 3만명이 학처준 군대에게 패배하다 ( 패 ) 37만4천
668년. 부여성 : 설인귀군 3천이 부여성을 빼앗고 고구려군을 격파. 40개 성이 항복하다 ( 패 )
668년. 부여성 : 천남건이 군사 5만을 보내 부여성을 구원하려 하나, 이적에게 참패하고 3만이 죽다 ( 패 )
668년. 평양성 : 함락. 고구려 멸망 ( 패 ) 39만4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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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645년에서 648년까지만 해도 등장하는 고구려 병력이 약 26만3천명, 민간인 12만4천명 등장.
668년까지 등장하는 고구려 병력이 약 39만4천명 정도.. 패퇴하고 살아남은 병력이 재투입되는 중복과
대략20년 뒤에 세대교체된 인원들을 생각해도 중복된다해도.. 만만찮은 고구려의 저력..
각 성의 수비병력은 대략 1만~2만명 정도로 추정..

군량미 50만석, 10만석.. 대략 1인당 2석 정도의 쌀을 1년간 먹는다 쳐도, 30만대군은 충분히 먹여살릴 군량.

근데, 당태종이 실록도 직접 보고 뜯어고쳤다고 할 정도고,
당나라 사서가 왜곡이 너무나도 심각한 관계로
당나라군의 피해가 말도 안될 정도로 축소은폐되었다는건 익히 알려진 사실..

그보다 최치원이 고구려 백제 병력이 쩔었다고 하더니.. 정말인가 보네..

그리고 참고로, 당나라 군대 규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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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4년 6월 당은 고구려의 요동 공격을 명령한 후 11월 수륙 양면으로 약 50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원정군을 편성해 공격을 시작했다. 이때 당군은 각종 공성용(攻城用) 기구를 총동원했다. 당 태종은 다음해 2월에 낙양(洛陽)을 출발하여 직접 원정길에 올랐다. 또한 돌궐과 거란으로 구성된 이민족의 군대도 다수 동원되었다.

당 태종은 정예군 6만 명을 유주에 집결시키고, 요동을 향해 세 갈래 길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총 사령관인 이세적(李世勣)이 정예 선발대 6만 명을 이끌었고 현도성으로 향했다. 이도종에게 6만의 군사로 신성을 치게 하고, 장검에게 6만의 군사로 건안성을 치게 했다. 당 태종의 친정군 20만이 뒤를 따랐다. 거기에 당 태종이 친히 거느린 6도행군 36만이 뒤따랐다. 또한 장량(張亮)이 상륙군 4만3000을 포함한 수군 10만명, 1000척의 함대로 등주에서 출발하였다. 본대가 80만에 이르렀지만 새로운 수레의 발명으로 수송부대가 본대의 2배에서 1/4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수송부대를 합쳐서 100~104만에 이르는 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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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태종이 쪽팔려서 숨기려고 했지만, 군사편제상 전력이 뽀록남...
     
두부국 15-03-09 03:13
   
저 기록이 사실이면 고구려는 백제보다 더 빨리 멸망했어야합니다

애초에 32전 4승 28패 이거는 싸움이 아니라 학살입니다
Windrider 15-03-08 22:15
   
짱개는 옛부터 오합지졸이라 좋은 표현은 못듣죠. 환빠거리는 인간들중에 정상은 없음.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도 구분못하고 무조건 까는거죠. 아는건 없는데 까긴 까야겠고. 신라를 언급해도 너 환빠. 고구려를 언급해도 너 환빠. 논리가 없고 저열한 감정만 앞세우죠. 까면서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감정을 느끼기 위함인거죠.
꼬마러브 15-03-08 22:27
   
윗분의 말씀처럼 당나라같은 경우 왜곡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 예로 난을 평정하기는 탕왕과 무왕에 견줄 만하고 이치에 통달하기는 성왕이나 강왕과 비슷하였으며 병법에는 기묘한 전술이 무궁하여 가는 곳마다 대적할 상대가 없었다고 하는 당태종의 사안은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 전부 다 다릅니다(왜곡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리고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그 휼륭한 당태종의 최후는 고구려정벌 때 얻은 병으로 인해 고구려를 다시 침입하지 말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초반에 고구려는 불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당시 고구려는 수나라의 침입을 막느냐 국력이 악화되있었고(수나라는 국력이 악화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멸망함) 연개소문이 쿠데타로써 집권을 하여 조정이 친연파 반연파 갈라져 있는 상태였습니다.(양만춘도 반연파.. 백암성주는 몰래 당나라에 항복까지 했다하니 당시 고구려 상황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수 있죠.. 고수전쟁으로 수나라는 아예 멸망을 했는데 고구려는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이런 상황임에도 많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당태종의 고구려정벌은 실패하였고 .. 자신의 나라로 철군하는 도중 고구려 3만 별동대에 인해 대패를 당하고맙니다(즉묵전투, 마산전투)..그러고 보니 이 두 전투는 글에 없군요??? 자기 입맛대로 골라 쓰시는 것이 딱 보이는...

삼국사기 보장왕조 -中-
帝以不能成功 深悔之 嘆曰 魏徵若在 不使我有是行也
황제가 (고구려정벌을)성공하지 못한 것을 깊이 후회하고 탄식하면서 말하였다
만일 위징(당나라 공신)이 있었다면 나에게 이번 원정을 못하게 했었으리라..

그리고 님의 글을 딱보자 마자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이.. 글 제일 처음 나오는 건안성 같은 경우는 처음에 당나라 군사들에게 함락 당하였으나 얼마 안되어 다시 되찾습니다. 사료 보여드릴까요?

삼국사기 -中-
황제가 이 말을 따르려 하자 장손무기가 홀로 나서서 "지금 건안성과 신성의 무리가 아직도 10만이나 되는데, 우리가 만약 오골성으로 간다면 고구려가 반드시 우리의 뒤를 추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안시성을 점령하고 건안성을 취한 뒤에 군사를 먼 곳으로 진군시키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이 만전의 계책입니다.”라 하니, 황제는 곧 이전의 계획을 중지하였다.
참고로 위 삼국사기 인용문은 님의 글처럼 건안성이 함락당한 후에 나오는 말입니다.. 고구려가 다시 건안성을 되찾고 10만이나 되는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었다는 것이죠.. 근데 님의 글같은 경우는 처음에 잠시동안 함락당한 걸 마치 처음이 아니라 전체가 함락당한 것처럼 뉘앙스를 풍기고 있단 말입니다.(글 전체적으로) 고구려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보이는...아니 의도는 상관없는데 좀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글을 써야지 다른 것은 전부 무시해버리고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서 고구려는 당나라에게 매번 패배했다! 이러는 건... 도대체 무슨 초딩도 아니고;;

아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고당전쟁이 32전인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당연한 것이 님이 당나라라면 자신의 패배한 것보다는 승리한 것을 위주로 쓰겠지요.. 그러다 보니 실제로는 50전였는데 승리한 것 위주로 쓰다보니 32전이 됬을 수도..
Centurion 15-03-08 22:27
   
그리고 당나라 군대를 한국에선 오합지졸의 대명사로 쓰고 있지만..
실제론 중국 역사상 제일 뛰어난 정예강군이 당나라군대 시절이었다고 하죠..

물론 팔기병이나 몽골기병 같은 이민족 부대를 제쳐놓고 말이죠.
그리고 고구려 원정에 나선 당 태종은
그 이전까지는 중국땅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먼치킨급 인물이었다고 하고..

한마디로, 중국의 드림팀이 몰려왔다고 보면 되는 상황인데..
그런 당 태종이 고구려 원정을 후회하다 죽었으니 얼마나 비참하게 패했는지 감이 오죠.

*************

신채호는 중국의 야사 및 전설과 베이징 인근의 고구려와 관련된 지명을 근거로 삼아 연개소문이 도망 가는 당태종을 추격하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에는 다음과 같은 야사 및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산동성 봉래시 : 봉래 인근에서 당 태종과 연개소문이 전쟁을 벌였는데 이 때 당태종의 형이 전사하게 됨
산동성 즉묵시 : 당 태종이 산동성 즉묵 마산에서 연개소문에게 포위되어 사로잡힐 뻔 할 때 신라출신 용양장군 김걸이 당 태종을 구하고 자신은 연개소문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는 전설
강소성 비주의 전설 : 고구려군과 당의 설인귀군 간의 격전
강소성 숙천의 전설 : 연개소문이 당의 설인귀군과 전쟁에서 연전연승했다는 전설
강소성 염성의 전설 :염성 건호현에는 몽롱탑(朦朧塔)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는 당 태종이 연개소문에게 쫓겨 달아나다가 거미줄이 쳐진 빈 우물에 숨어 살아났는데 나중에 이 은공을 잊지 못해 그 우물이 있는 곳에 탑을 세웠다고 한다. 어둡고 어려움(朦)에 처해 있을 때 우물 속 거미줄이 몸을 보호해 줘 목숨을 건진대서 몽롱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강소성 금호 : 고려성이 있는 지역

***************

게다가 당 태종이 조작한 당나라 사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산동성과 강소성에 전해내려오는 고구려 추격군에 대한 민간 구전 설화..
밥밥c 15-03-08 22:30
   
문제는 기록이 흔히알고 있는 것에 비해서 꽤 특이하다는 점입니다.


  아래기록은 수나라 그리고 당나라가 고구려와 전쟁을 한 내용에 대한 기록입니다.

  여기에서 보면 강회(江淮)가 나오는데,  대륙에서 강회는 양자강과 회수입니다.  즉 황하보다 훨씬

  남부인 양자강과 회수근방에서 병력을 모집했으며,  고구려의 포로또한 양자강과 회수로 이주시켰다는

  점입니다.

  기존에 알고있는 강역에 대입하기에는 거리차가 꽤 큽니다.


  미수기언(허목) , 동사 , 권34 , 고구려세가

  여기에서 보면 ,  수나라와 고구려의 전투설명중
 
  수 양제 8년 (612) 에 장수 내호하가 강회(江淮)군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패수를 통해 들어가

 고구려 병사를 크게 무찌르고 곧장 평양에 이르렀으나 복병(伏兵)에게 격파되었다. 대군이 마침내

 무너졌으며, 내호하가 겨우 죽음을 면하고 달아나 돌아갔다.


  당과 고구려 전투후 ,

  당 고조 2년(669) 에 3만 8300가호를 강회(江淮) 남쪽 및 산남(山南)과 경서 (京西) 여러 주에

  이주시켰다.
두부국 15-03-09 03:19
   
당장 병자호란때만해도 4번 이기고 5번 졌습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5586&sca=&sfl=wr_subject&stx=%EC%A0%84%ED%88%AC&sop=and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5495&sca=&sfl=wr_subject&stx=%EC%A0%84%ED%88%AC&sop=and


근대 4번이기고 28번패했다 그런데도 고구려가 승리했고 당나라는 후퇴했다 말이됩니까?
Windrider 15-03-09 07:30
   
중국 역사기록은 신빙성이 떨어지는게 져도 이겼다고 쓰는게 짱개들이라.
정욱 15-03-09 08:33
   
겨우 신라끄려드려 이겨노고 지나똥화교 쌕끼 거품물고 질알하네. 그리고 당나라가 쭝거나라냐? 당나라는 명백희 선비족나라지. ㅉㅉㅉ
수제천 15-03-09 13:20
   
몇몇 어그로들은 똥글만 싸놓구 댓글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답변을 못하는지...
똥글만 싸놓으면서 어그로 끄는 거에 희열을 느끼면서 딸치는 또라이들인지...

계속 똥글을 올리는 거 봐 왔지만 어느 글에서도 제대로 된 답변을 한적이 없는 어그로들... 밥은 먹구 다니냐?
끄으랏차 15-03-09 14:02
   
거 참 신기하네
붙는 족족 지고 성은 죄다 뺏기고 노예도 10만이상 잡혀가고
병사도 30만이나 죽었는데 고구려는 도대체 어떻게 버틴거??
고구려가 우리가 알고 있는 영토 몇배에 인구도 몇배이상 되나 보네 ㅋㅋ
깡신 15-03-09 14:31
   
무슨 숫자셈도 못하는 바보같은게 자료는 어디서 만들어왔는지 참...우습지도않다.
Assa 15-03-09 17:34
   
완전 중국 드라마 정관의 치 수준
11학번 15-03-09 21:27
   
중국 놈들 춘추필법 쓰는거 모르나? 연개소문한테 쫒겨서 중국 내륙까지 도망친 내용 쏙 빼뜨리고 당태종 이세민 고당전쟁 때 전사한거 병사했다고 구라치고 구라가 한 두개가 아닌데 그걸 그대로 쳐 믿네. 중국 사서는 그대로 믿으면서 한국 사서는 우리나라 좀 좋게 기술하면 환빠라고 비아냥거리는 전형적인 역센징 수준.
갈매기사랑 15-03-10 19:17
   
한마디로 빙신이 지랄하면서 쓴 글이구먼
지나가던이 15-03-22 12:26
   
아이디부터 정체성입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나가던이 15-03-22 12:27
   
글쓴이는 정신차리고 잠이나 자시길~ㅋ
위구르 18-01-30 16:56
   
정신나간놈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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