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이 한화이글스에 부임하고 얼마 후 청와대 직원을 대상으로 "어떤 지도자가 조직을 강하게 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김 감독은 강연에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하는 것 자체가 리더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이며, 내가 욕을 바가지로 먹더라도 내 뒤의 사람이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아일보 사설은 "책임 전가를 하지 않는 리더십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김 감독의 강연은 듣기에 따라서는 청와대가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옳다고 여기는 바를 밀고 나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사설 말미에는 "조직을 우선시하는 김성근식 야구는 통할지 모르겠으나 김성근식 정치는 통하지 않는다. 야신의 강연이 여론의 비판에 귀 막고 그냥 밀고 나가라는 메시지를 청와대에 준 것이었다면 곤란하다"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김성근 감독을 강연에 초청한 것은 청와대이다. 국민들과의 소통 부재로 논란을 빚고 있는 청와대를 상대로 김 감독이 "밖에서 뭐라하든 리더는 자기 소신대로 밀고 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 했더라도 김 감독은 자기의 철학을 전달했을 뿐 강연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그를 강사로 초청한 청와대에는 아쉬움을 표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오늘 스포츠 기사를 보니 김 감독의 인터뷰 기사가 네이버 메인에 실렸다. 기사에서 김 감독은 혹사 논란에 대해 "혹사는요, 대한민국 사람들 전부가 혹사당하고 있어요. 어느 분야 간에. 지금 김현정 앵커도 혹사당하고 있는 거에요" 라며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재치있는 답변을 했다. 댓글에는 "혹사에 대해 김성근의 방식은 동의할 수 없지만 이말은 맞는 말이다"는 글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김성근의 이러한 답변은 재치는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혹사에 대한 본질을 회피한 전형적인 물타기식 화법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 단적인 예가 로저스에 관한 논란이다.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로저스의 재활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역할만을 강조했지 왜 로저스가 인대 부상을 당했는지는 전혀 설명을 못하고 있다.
지난해 로저스는 4일 휴식 후 등판이 잦았고 한 경기 투구수도 국내 외국인 투수보다는 비교적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미국에서 던졌던 것보다 작년 3개월 동안 한국에서 더 많이 던졌을 것이다는 과장된 말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고치 스프링캠프의 추운 날씨가 로저스의 인대에 더 안 좋았을 수는 있겠으나 추운 날씨 때문에 인대 부상이 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보면 로저스의 인대 부상은 누구의 잘못과 연결되는지 알 수가 있다.
혹사에 대처하는 김 감독의 "논점흐리기식 대처법"을 보면서 그동안 많은 강연회에 초청받은 명강사 답게 순간적인 처신도 매우 뛰어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건 무슨 이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