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클럽하우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오승환(34.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을 향해 한 선수가 슬그머니 다가와 말을 걸었다. 불펜투수 맷 보우먼이었다.
보우먼은 "오승환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며 기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오승환 옆에 의자를 '딱' 갖다 놓고 앉은 보우먼은 마치 기자처럼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대뜸 "당신의 슬라이더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당장 던질 건 아니지만, 이번 겨울에 준비를 해야 하니 여러 정보들을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오승환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오승환의 슬라이더 비법 전수가 시작됐다. 오승환의 통역 유진 씨와 함께 세 이가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보우먼은 오승환에게 변화구의 기본인 슬라이더 그립부터 물어봤다. 검지와 중지, 엄지의 위치를체크했다. 오승환은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엄지는 속구 던질 때와 똑같이 잡아도 된다. (약간 구부려 공을 잡는) 나처럼 바꾸지 않아도 된다. 손목을 심하게 감아 던지는 것보단 속구와 똑같이 보이도록 던지는 게 중요하다. 어차피 슬라이더는 많이 휠 수가 없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만 속구와 차이가 나도 된다. 대신 공이 빨리 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오승환의 슬라이더는 '돌라이더'라 불리기도 한다. '돌직구' 못지 않은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간간히 던지는 커브도 효가가 좋다. 그래선지 세인트루이스 투수들은 "오승환이 선발투수로 등판해도 잘 던질 것"으로 믿는다. 다양한 변화구에 변화구 구위까지 좋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오승환은 "나이가 많아 선발은 못한다"며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기 일쑤다.
오승환은 보우먼이 궁금해 하는 슬라이더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에서 던질 때도 슬라이더 스피드가 시속 147km까지 나왔다. 부각이 안 되다보니 몰랐던 것뿐이지 꾸준히 던졌다. 특히 미국에 와선 슬라이더를 더 빠르게 던지자고 마음먹었다. 지금은 타자 성향에 따라 느리게 혹은 빠르게 던지고 있다. 굳이 커브를 던지지 않더라도 효과가 있더라. 컨디션에 따라서 같은 변화구라도 달라진다. 정말 희한하다. 초구에 슬라이더를 던져보면 느낌이 온다. 감이 안좋은 날은 안 던지고, 만약 포수가 슬라이더 사인을 내면 스피드는 내가 조절한다. 슬라이더나 다른 변화구를 던질 때 트위스트 하는 느낌을 많이 주는데 각도는 어차피 조금만 틀어도 된다. 타자가 못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똑같이 속구처럼 던진다는 생각을 한다.”
오승환의 일대일 교습에 보우먼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보우먼은 오승환과 친한 사이다. 오승환의 캐치볼 짝궁이기도 하다. 여기다 시즌 초부터 오승환을 멘토로 생각하고 따랐다.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오승환을 찾아와 묻곤 했다. 오승환의 근육을 보며 웨이트 트레이닝은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자칫 과도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무뎌질 수 있는 유연성과 밸런스는 어떻게 잡는지, 또 파워를 키울 수 있는 방법들이 무엇인지 등의 구체적인 질문을 자주 했다.
보우만은 불펜투수들 가운데 유독 오승환에게만 많은 조언을 구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그리스트나 로젠탈이나 여기 투수들은 워낙 덩치가 좋다. 타고난 실력, '타고난 선수'라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나는 아시안 스타일로 던지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많은 노력으로 이 자리에 온 오승환에게 궁금한 게 많다. 투구폼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부상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오승환이 유용한 팁을 주고 있다. 특히 이유를 정확히 짚어준다. 설명도 자세하고 또 친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