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한국시간 4월 3일) 류현진(32)은 그들이 잘 아는 바로 그 체인지업 투수였습니다.
숙적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 시즌 두 번째 선발 등판한 류현진은 7이닝 6피안타(1홈런) 2실점하며 개막 후 2경기 연속 승리 투수가 됐습니다. 삼진 5개를 잡았고, 13이닝 연속 무4사구를 이어갔습니다. (작년 8월부터 홈구장 39이닝 무4사구 행진)
이날 구위가 최고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잠깐 흔들린 6회초를 제외하곤 아주 안정된 피칭을 이어갔고, 투구수를 절약하며 7회를 무난히 마쳤습니다. 투구수 87개에 스트라이크가 58개였습니다. 시즌 평균자책점은 2.08이 됐습니다.
1회초를 삼진 2개를 곁들이며 상큼하게 시작하더니 2회초 6번 솔라테를 129km 체인지업으로 2루 땅볼 병살타를 끌어낸 것을 기점으로 류현진은 체인지업의 비중을 확 늘려갔습니다.
1회에는 단 1개, 2회에도 포지에게 1개의 체인지업 이후 솔라테에게 체인지업을 던져 첫 두 이닝 동안 3개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3회초는 공 10개 중에 4개가 체인지업이었습니다. 특히 선두 타자 7번 코너의 2루 땅볼과 9번 범가너의 삼진 결정구가 모두 체인지업이었습니다. 4회에도 체인지업으로 1번 더거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운 후 2번 벨트, 3번 롱고리아를 연속 체인지업으로 땅볼 아웃으로 이끌었습니다.
공 6개만으로 이닝을 끝낸 5회초는 5개가 체인지업이었습니다. 마지막 솔라테에게 던진 120km 체인지업은 정타로 맞기도 했지만 수비 이동한 2루수 키케 에르난데스의 다이빙 수비에 막혔습니다.
이날 유일하게 류현진이 고전한 것은 6회초였습니다.
5회까지 투구수 48개에 불과했고 첫 타자 7번 코너도 공 1개로 처리하며 그때까지 아웃 카운트 16개를 정확히 16타자로 끝내는 완벽함. 그러나 야구에서는, 혹은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로 순간 방심이나 집중력 저하는 금물임이 곧 드러납니다.
8번 파라와의 승부도 나쁘지 않았는데 6구째 112km 느린 커브가 빗맞았지만 좌측에 안타가 되며 투수에겐 불운한 진루가 됐습니다. 그리고 상대 투수 범가너. 첫 타석에서 삼진으로 잡았지만 늘 상대 투수를 압박하는 뛰어난 타격 재능을 지닌 선수.
2구째 142km 커터가 스트라이크 존에 높게 걸리자 여지없이 그의 방망이가 돌아갔습니다.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범가너 생애 18호 홈런. 2-5로 자이언츠의 추격이 시작됐습니다.
투수에게 안타를 맞아도 화가 나는데, 아무리 범가너라지만 상대 선발에게 홈런을 맞은 류현진이 발끈한 것이 보였습니다.
자존심 상한 정상급 투수에겐 당연한 반응이지만, 그것이 잠시 류현진의 감정을 지배했습니다. 체인지업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며 강약 조절로 자이언츠 타선을 요리하던 류현진은 상위 타선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순간적으로 강공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러나 1번 더거는 이날 류현진의 가장 빠른 구속인 148km 포심 패스트볼을 때려 좌전 안타를 뽑았고, 2번 벨트도 145km 속구를 때려 시프트를 뚫고 중전 안타를 쳤습니다.
연속 4안타를 맞으며 흔들린 류현진은 그러나 강했습니다.
3번 롱고리아를 맞아 초구 체인지업 스트라이크에 이어 포심 2개를 연속으로 낮게, 높게 꽂으며 삼진을 잡았고, 늘 위험한 타자 4번 포지와의 긴 승부도 129km 체인지업으로 3루 땅볼을 끌어내며 힘겨운 이닝을 더 이상 실점 없이 마쳤습니다. 마지막 포지의 바깥쪽으로 낮게 휘어 떨어지며 범타를 끌어낸 공이 이날 23개째 체인지업이었습니다.
개막전에서 류현진은 총 8개의 체인지업을 던져 비율이 11%에 불과했습니다.
통산 체인지업의 비율이 21%가 넘는 투수이고, 빅리그에서 가장 인정받는 구종도 체인지업입니다. 그러나 의외의 구종 배합으로 개막전 애리조나 타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류현진이었는데, 이날은 체인지업의 비율을 27.6%까지 끌어올리며 또 다른 투수가 됐습니다. 처음 호흡을 맞추는 러셀 마틴 포수는 주로 속구를 많이 요구하는 유형이지만, 류현진은 몇 차례나 고개를 흔드는 모습을 보이면서 피칭 패턴을 자신이 주도했습니다. 평균 구속이 개막전보다는 떨어졌지만 커터의 구사율을 낮추는 대신에 춤추는 체인지업을 적극적으로 자신 있게 구사하며 힘 떨어진 자이언츠 타선을 요리했습니다. 첫 5경기에서 9득점에 그치는 빈타에 시달리던 자이언츠 타선은 이날도 류현진에게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다저스 타선이 범가너를 상대로 폭발한 3회말 공격에서도 류현진은 본인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범가너를 흔든 주역이었습니다.
8번 마틴이 범가너의 송구 실책으로 진루하자 류현진은 당연히 희생 번트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범가너의 갑자기 흔들린 제구를 침착하게 지켜보면서 볼을 3개 골라냈고, 4구째는 애매했지만 마케스 구심이 볼로 선언하면서 스트레이트 볼넷을 얻어나갔습니다. 범가너는 양팔을 벌리며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을 정도로 감정이 상했습니다. 결국 범가너 천적인 1번 타자 키케 에르난데스의 적시타로 1점을 선취한데 이어 투아웃 이후에 5번 벨린저의 중월 만루 홈런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5-0으로 경기의 분위기가 다저스로 넘어갔습니다. 벨린저는 벌써 5호 홈런으로 절정의 장타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범가너 5실점은 모두 비자책)
다저스는 이날도 홈런을 치며 개막부터 6경기 연속 홈런으로 1954년 브루클린 다저스의 최고 기록과 타이를 이뤘고, 초반 6경기 17개의 홈런을 치는 파괴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작년 시즌부터 치면 10경기 연속 홈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