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의 전설인 놀런 라이언은 불세출의 강속구 투수였다. 그런 라이언도 강속구 일변도의 피칭은 소용없다는 점을 일찍부터 강조했다.라이언은 저서 <피처스 바이블>에서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의 스피드 차가 시속 15마일(약 24km)은 돼야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웬만한 투수라면 시속 15마일 차가 나는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구사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사실 라이언처럼 평균 95마일 이상의 강속구를 뿌려댈 수 있는 경우에나 쉬운 얘기다.라이언은 그러나 예외도 언급했다. 라이언은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의 스피드가 10마일(약 16.1km) 안팎으로 차이가 나도 효과적일 수 있다. 단 패스트볼이 반드시 스트라이크존의 아래에 걸치도록 낮게 제구될 때에 한정된다”고 했다.LA다저스 류현진이 12일 6.2이닝 5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4승째를 따낸 마이애미 말린스전에서 라이언의 말이 ‘진실’임을 재확인해줬다. 류현진의 패스트볼은 평균 89~90마일(약 143.2~145km)이었고, 오프스피드 효과를 노린 체인지업은 78~80마일(약 125.5~128.7km) 수준이었다.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의 스피드 차는 10마일 안팎. 그럼에도 류현진은 이날 매우 효과적으로 타자들을 농락했다. 패스트볼이 대부분 낮게 컨트롤된 덕분이다. 패스트볼이 낮게 제구되면 타자의 눈에 공이 더 빨라보인다. 물론 장타를 허용할 확률도 줄어든다.류현진은 이날 자신감이 배어있는 패스트볼이 낮게 제구되면서 체인지업은 물론 변화구의 위력도 드높였다.돈 매팅리 감독이 류현진을 향해 ‘매스터 크래프트맨(Master Craftman)’이라고 극찬한 것도 여러 구종의 적절한 배합, 피칭의 완급 조절, 구석구석을 찌른 제구력을 종합적으로 호평한 수사법이다.특히 패스트볼이 아주 좋았다. 패스트볼은 투수에겐 기본반찬이다. 패스트볼이 좋다면 다른 변화구를 곁들여 ‘진수성찬’을 만들어낼 수 있다.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투심패스트볼을 던지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류현진에게는 좋은 요소다. 류현진은 투심패스트볼을 던지지 않지만 MLB.com 등 메이저리그 투구 분석에는 투심패스트볼로 기록되는 구종이 있다. 이렇게 투심패스트볼로 오인되는 공은 대부분 오른손 타자의 바깥쪽으로 던진 포심패스트볼이다. 왼손투수인 류현진이 오른손타자의 바깥쪽으로 포심패스트볼을 던질 때 종종 약간 역회전이 걸린 공처럼 바깥쪽으로 휘며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공이 투심패스트볼처럼 보이는 것은 류현진에게 득이다.마이애미와의 경기에서 류현진의 베스트 스터프는 패스트볼이었다. 특히 높게 들어가지 않고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경계선을 들락거린 공이 좋았다.류현진을 상대한 타자들의 입장에서 헛갈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류현진이 평소보다 패스트볼을 더 자주 구사했기 때문이다. 총 투구수 114개 중 58%에 이르는 66개가 패스트볼이었다.
류현진은 중요한 순간 패스트볼을 결정구로도 선택했다. 이날 3개의 삼진을 모두 패스트볼로 잡아낸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